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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영화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1년 영화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74년 평창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던 풍경들.
평창군 평창강 일대는 홍수 침수 다발지역이라서
징검다리가 물에 잠기고 섶다리가 떠내려가기 일쑤.
평창강 섶다리.
1974년 8월에 평창 육백마지기 마을로 가던 길.
머루 다래가 덩쿨 위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던 오지.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토속적인 풍경이 가득한 곳.
과자가 귀해서 머루 다래 산딸기는.,야생 과일
목욕탕이 귀해서 개울에서 남녀혼욕은.,전통 풍습.
강원도 두메산골 전통풍습이 살아 숨쉬던.,평창 일대.
갓 대학을 졸업 후, ROTC 장교로 임관한 후
그해 8월에 근무지였던 38사단 116연대 1대대.
보급관 업무 외 평창군 대민봉사도 겸했던 시절.
당시 육백마지기마을은 평창군에서도 가장 오지.
문명과 동떨어진 벽지라 군부대의 지원이 필요했다.
산모가 출산하면, 군부대 의무대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아들 낳길 염원하는 임산부가 남근바위에 오르다가
치성 도중에 떨어지면, 군부대 의무반에서 긴급 출동.
장날마다 주민들과 농산물을 '대화'로 실어서 운송하기.
키넘는 폭설 속에 고립되면, 눈을 치워 끊긴 길을 열기.
그당시 내 나이는 스물 다섯이었고, 지금은., 예순 여덟.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그곳 오지는 어떻게 변했을까?'
대화 군부대에서부터.,육백마지기마을로 가는 길.
강원도 여행을 할때마다 오며 가며 지나치는.,평창군.
방림, 미탄, 봉평, 진부, 용평, 월정사도.,들러보게 된다.
평창군 관광지도.
강원도 중남부 평창군(平昌郡)은 군청 소재지는 평창읍이고,
행정구역은 미탄면, 방림면, 대화면, 봉평면, 용평면, 진부면,
대관령면 등 1읍 7면이며 2018년 세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활강코스.,가리왕산.
"정선과 평창의 지붕"이라고 불리우는., 가리왕산(1561m).
아직도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는 오지이자 원시림 청정구역.
봄에는 각종 산나물과 야생화가 지천(地天)에 널려 있고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아 '눈꽃나라' 설국(雪國).,가리왕산.
"한반도 최후의 심산"이라 불리우던.,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저 산등성이마다 흰눈이 가득 쌓였다가 녹아 내리고
또 다시 폭설이 두텁게 쌓였다가 흔적없이 녹아 사라지면
내 마음 속에 가득한 첫사랑을 향한 그리움 또한 사라질까?'
목이 터져라 소리쳐 그녀의 이름을 불러봐도
되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뿐이었던.,그 곳.
1974년에는 원시림이 첩첩산중 가득했던.,가리왕산.
1976년 겨울에 용평스키장에서 만난.,마지막 사랑.
그후로는 해마다 자녀들과 함께 즐겨찾았던 강원도.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간.,가리왕산.
"평창군의 지붕"이라고 불리우는.,가리왕산.
아래 사진에서는 아득하게 보이는.,산등성이.
평창군에서는 어느 산정에 올라가도.,첩첩산중.
강원도 정선.,가리왕산(加里王山 : 1,560m)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북평면 &
평창군 진부면에 걸쳐 있는 가리왕산.
북서쪽에 백석산(白石山, 1,365m), 서쪽에 중왕산(1,376m),
동남쪽에 중봉(1,433m)·하봉(1,380m), 남서쪽에 청옥산(1,256m)
동서남북 첩첩산중 사이로는 사방팔방 강물이 구비구비 애워싼 오지.
북쪽으로는 남한강 지류, 동강으로 흘러드는 오대천(五臺川).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나전리에서 조양강(朝陽江)과 합류한다.
옛날 맥국(貊國)의 가리왕(加里王)이 이곳에 피난하여 성을 쌓고
머물렀으므로 가리왕산이라고 하는데.,북쪽 골짜기에 대궐터 흔적.
가리왕산 상봉 망운대.
남쪽의 회동리에는 무연탄의 탄광이 있고,
회동리 석회암층에서는 실루리안 코노돈트.
한반도의 지사연구(地史硏究)에 크게 이바지.
한편, 회동리에서 용탄리에 이르는 사이의 침식면에는
석회암 용식지형(溶蝕地形)인 돌리네지형(Doline) 발달.
이곳은 한반도의 북부 지방과 연결되는 고산지이기 때문에
한대성 식물과 자작나무 군락 자생지가 수해(樹海)를 이룬다.
이 밖에도 약초류가 풍부하고
초본류 꽃이 많아 벌꿀의 산지.
메밀꽃 필 무렵이면 양봉업자들이
철새처럼 몰려 왔다가도 꽃이 지고나면
또 다시 꽃을 따라 철새처럼 떠나가는.,오지.
그외 외지인으로는 등산객이나 찾는.,가리왕산.
가리왕산에서부터 연이어 이어지는 능선에는
벽파재(碧波嶺)·성마령(星摩嶺)·마전령(馬田嶺) 등,
정선아리랑 등 많은 민요가락들의 여운이 서려 있는 곳.
가리왕산에는 특징 있는 뚜렷한 명소나 사찰은 없지만,
삼림 계곡 자연 경관이 빼어나기에.,갈왕산(가리왕산) 팔경.
동해가 보이는 망운대, 백발암, 장자탄, 용굴계곡, 비룡종유굴 등.
상봉 망운대, 가리왕성터에 동심(東深)과 서심(西深).,샘터,
중봉 후룡봉(後龍峰)의 시녀암(侍女巖), 하봉 백수암(白鬚巖),
.
가리왕산 북쪽 기슭에 있는 여울이., 장자탄(長者灘),
장자탄 위에 있는 용굴계곡· 회동리계곡· 비룡종유굴 등
가리왕산 이들은 앞으로 관광 지구로의 개발이 기대된다.
강원도 평창군은 북쪽 홍천군과 경계인 오대산부터 시작해
태기산, 백덕산, 가리왕산, 선자령 등 고산들로 둘러 쌓인데다
발왕산 백석산 황병산 등 1천m급 명산들을 품고 있는 고산지대.
해발 700m 이상인 곳이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
겨울이면 적설량이 풍부해 스키장만해도 3곳이다.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세계 속 평창으로 부상.
가리왕산은 원시림, 산삼, 약초, 산나물이 풍부하며
청명한 날에는 정상에서 동해바다를 관망할 수 있고,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에 통나무집 등이 발길 붙잡는 곳.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오토캠핑장.
회동계곡.
용탄천 발원지 회동계곡은 천연기념물 열목어 서식처.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백설 속 눈꽃나라.
1993년부터 휴양림, 통나무집, 야영장, 캠프화이어장 시설.
항골계곡.
맑은 계곡으로는 북평면 항골계곡
북면 자개골의 경치도 가히 견줄 만.
자개골.
가리왕산은 강원도 최대 원시림, 활엽수 극상림이 분포.
전국 최대 산나물 자생지이며 백두대간 중심 주목군락지.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자연휴양림., 산림청 100산 중 하나.
가리왕산에서 남서쪽으로 내려 뻗은.,청옥산(1,256m)
동해시, 청옥(1402m) 두타산 무릉계곡과는 동떨어진 산.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능선 상.,가리왕산과 이어진다.
청옥산 육백마지기.,고냉지 채소밭.
풍력발전기 15기.,2016년 3월 상업운전 시작
2018년엔 평창 동계 올림픽에도 공급될 예정.
옛부터 곤드레나물 및 각종 산나물이 많았던.,청옥산.
춘궁기에는 굶주린 주민들이 나물을 뜯어 생계를 유지.
산나물을 뜯으며 삶의 애환을 달랜 노래가 ‘평창 아리랑’.
산 정상부 "육백 마지기"에는 고랭지 채소를 주로 재배.
이곳 대평원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던 시기는 1960년대 초.
이곳 지명 그대로 육백마지기 규모였으나 지금은 3배 규모.
2017년1월 현재.,약 1천8백마지기(36만평) 대평원.
지금은 축구장 크기의 100배가 넘는 면적이 되었으며
배추 모종을 옮겨 심는데만 한달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이곳 배춧잎은 벌레가 갉아 먹어 군데군데 구멍투성이다.
이곳에서 배추농사만 17년째 하고 있다는 장영득씨(61).
“버러지가 배차(배추)잎을 갉아먹어도 농약은 치지 않는다”
실제로 이곳 배춧잎은 벌레가 갉아 먹어 군데군데 구멍투성이.
사람이 아닌 자연에게 배추의 생장을 고스란히 맡긴 셈.
이곳에서 재배되는 중갈이 무는 그 맛이 배맛 같이 달다.
산이 높아 구름도 쉬어가는 해발 1,200m 고지 ‘육백마지기’.
하얀 구름이 배추 밭을 뒤덮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지길 하루에도 수백번 반복.
늦장마에 햇살이 귀한 것을 아는 푸른 배추는
잠깐씩 얼굴 내밀었다가 사라지는 도깨비 햇살에
알찬 속살을 키워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몸을 키운다.
이곳은 고등채소 작황이 대관령보다 우위에 있으나
교통편이 나빠 주민 소득에 많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륜구동 차량은 청옥산 육백마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높은 산 정상까지 SUV 사륜구동차로 오르면
한눈에 주변이 내려다보이는.,광활한 산맥줄기.
이런 곳이 전국적으로 그리 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대관령 삼양목장. 함백산 정상.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피덕령의 감자 재배단지(고랭지 채소). 육백마지기 등.
산을 내려와 수하계곡을 따라가면 동강으로 향한다.
미탄면 끝자락 마하리는 동강을 끼고 영월과 경계선.
마하리 강가 안돌바위에는 뗏군 부부 전설이 서려 있다.
미탄면.,동강.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벤 나무를 뗏목으로 엮은 뒤
강물에 떠내려 보내 서울까지 운반하던 시절 이야기.
그때 물길로 보름에서 한달 걸리던 길이 이젠 하루길.
양평., 두물머리
청옥산 정상부로 오르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육백마지기.,가는 길 & 삼신신앙 대본사.,가는 길.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왔다면, 두곳을 다 봐도 좋을듯.
삼신신앙 대본사
산 정상부에 위치한.,삼신신앙 대본사(三神信仰大本司).
육백마지기는 산악자전거를 이용해도 재미있는.,등산 코스.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미탄면 소재지를 지나 동강과 합류하기 직전
약 8km 가량의 기암괴석과 협곡으로 이루어진
수하계곡을 지나는데 이곳이 동강 래프팅 출발점.
'동강'이라는 하천 지명은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영월읍 동쪽을 흐르는 하천이며 정식 명칭은., 조양강.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하산 길에 동강도 가볼 만 하다.
동강 어라이언.
........................동강(조양강).....................
태백시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한강 원류가
골지천(骨只川)을 이루고 북류하면서 임계면을 지나
아우라지에 이르러, 황병산 대관령 송천(松川)과 합류.
.
이것이 조양강(朝陽江)을 이루고 남서류하다가
나전리에 이르러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과 합류
남면 가수리 수미마을에 이르러 동남천(東南川)과 합류.
이곳에서부터 주민들은 동강이라 불리며,
동강이 곡류로 남서류하다가 진탄나루에 와
평창군 미탄면 미탄천(美灘川)을 합류 후 남하.
영월읍 덕포리에 이르러 정선 의림천, 연하천과 합류.
하송리에서 평창강(서강)과 합류래 남한강 본류를 이룬다.
'수미마을에서 하송리까지' 약 65㎞에 이르는 동강이.,조양강.
.................................................................................
동강 래프팅 출발점.,수하계곡.
이곳에서 동쪽으로 5km쯤 강변을 따라 걸으면
약 5가구만이 거주하는 뇌룬리(문희 마을)가 있다.
수하계곡은 경관이 아름다워 마을관리휴양지로 운영.
수하계곡에는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가 서식하는 일급수.
낚시도 즐길 수 있으며 미탄면 한탄리부터 기화리, 마하리에
이르기까지 3개리에 걸쳐 있는데, 계곡 근처에 백룡동굴이 있다.
동강
가족과 함께 래프팅도 할 수 있고
넓은 자갈 톱이 있어 야영도 가능.
평창 장암산 패러글라이딩 & 평창강,
평창군에는 태백산맥과 차령산맥 분기점.,오대산을 비롯
해발 1,000m 이상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내륙의 고원지대.
험준한 산들이 평창군 내 전역에서 남북으로 연이어 펼쳐진다.
평창군에서도 남부지역이
타 지역들에 비해 낮은 편.
태백산맥이 뻗어내린 동쪽에 선자령(仙子嶺:1,157m)·
고루포기산(1,238m)·장군바위(1,140m)·노인봉(1,338m)·
발왕산(,458m)·옥녀봉(1,146m)·박지산(博芝山:1,394m)·
가리왕산(1,561m)·청옥산(1,256m) 등 1,000m 이상 고봉들.
대관령.
평창군에서 비교적 낮은 곳이.,대관령(832m).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도암면.,경계 고갯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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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평창군 청옥산 일대에 폭설이 두텁게 쌓이면
약 6개월간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었던.,육백마지기마을.
일년에 절반은 겨울철이고, 나머지 절반은 월동 준비기간.
기나긴 겨울 & 봄, 여름, 가을.
계절의 개념이 희박한 오지마을.
'봄 여름 가을'은.,곧, 월동 준비기간.
산간마을에 눈이 와서 녹을때까지는.,기나긴 겨울.
눈이 녹아내리고 서리 내리기 전까지.,월동준비기간.
현재, 육백마지기마을은.,고냉지채소 및 산나물 생산지.
청옥산 정상부에 펼쳐진., 고냉지 평원.
관리사 몇채만 있을뿐.,민가는 없는 고냉지.
하지만, 그곳 지명은 여전히 육백마지기마을.
'육백마지기 마을로 가는 길'에만 민가가 있다.
평창읍 대영식당에서 된장찌게로 아침을 먹고
고개를 하나넘고 조금 차로 달리면 미탄면사무소.
'육백마지기마을'로 가는 길이 좁아 버스가 겨우 커브.
1970년대 경운기가 겨우 오르던.,산길.
2010년대 관광버스도 오를 수 있는 곳.
봄철에 만 반짝.,야생화 산나물 관광 시즌.
청옥산 육백마지기마을로 가는 길은.,오지.
원래, 능선이 평탄해서 산행을 하기에 부담 없지만
SUV 차를 이용하면, 정상까지 비포장길이 열려 있다.
구비구비 임도를 따라 오르면 정상이.,육백마지기 평원.
강원도 청옥산(1,256m)은 평창군 미탄면과
정선군 정선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곤드레나물과
'청옥' 산나물의 자생지로 알려져 붙여진.,산 이름.
평지가 드문 강원도 산골에서
"볍씨 육백 말을 뿌릴수도 있다."는
대평원이라 명명된.,'육백마지기 평원'.
그러한 희망을 품고
화전민들이 처음 정착한
대평원이.,육백마지기마을.
화전을 일구면
콩을 심은지.,3년
감자 옥수수 농사.,3년.
이곳 육백마지기 평원은
고냉지 채소 산나물 특산지.
우리나라 최초 고냉지 채소밭.,육백마지기.
대관령 고냉지 채소밭보다 평균 400m나 높아
여름에도 서늘하고 모기도 볼 수 없는.,청정지역.
이곳이 고냉지 채소밭으로 개간되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 초로 이곳 배추는 농약을 쓰지 않기로 유명.
또한 꽃보다 예쁜 배추밭 물결이 장관이며 무 맛도 달다.
이곳 관리사는 고냉지채소 농사철에만 사용하며
관리사무무소는 산 아래 마을로 옮긴지.,이미 오래.
.
지금은 봄나물 채취 외지인들이나 겨우 아는.,오지.
그 주변으로 십리에 하나씩 민가가 동떨어져 있을 뿐.
1974년 겨울까지는., 화전민들 몇 가구가 모여 살던 곳.
필자가 1974년 여름에 광주보병학교 4개월 훈련 수료.
원주 38사단으로 발령 받고 약 1달 간 교육을 받고나서
강릉 116연대 1주일간 교육을 받은 후., 대화 1대대 발령.
강릉 116연대에서 교육을 종료한 후,
동기들과 함께 찾아간 경포대해수욕장.
그리고나서, 시외버스를 타고.,'강릉~대화'.
그당시 그곳 바닷가 피서철 인파가.,한풀 꺾일 무렵
육백마지기마을 초입 대화 산간마을은 월동에 바빴다.
며칠 후, 태백산맥 산등성이 모진 높새바람에 내린.,서리.
필자는 그곳에서 보급관 직책을 받아
안으로는 1대대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면서
밖으로는 부대 인근 오지마을 대민봉사가 소임.
그무렵 강원도 첩첩산중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산등성이마다 쌓인 눈이 칼바람에 휩쓸려 아래로 내려와
계곡마다 두텁게 쌓인 눈이 키를 넘기에 외부와 고립되었다.
폭설기에는 외부와 고립되었던.,육백마지기마을.
고립되기 전에 추수한 농산물을 장터에 팔아야 하고
월동할 식량 보관창고는 각별히 견고하게 지어야 한다.
자칫, 굶주린 멧돼지떼의 겨울 식량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
폭설기 산속 수십마리 멧돼지떼가 민가를 습격하면
월동식량 창고를 지키기 위해서 사투를 벌려야 한다.
폭설기에는.,지붕이 무너질 만큼 쌓이는 눈과도.,사투.
젊은이들이 대부분이 도시로 떠난.,강원도 산간마을.
인근 군부대에서의., 대민봉사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키넘는 폭설로 길마저 끊기게 되면.,기나긴 겨울.
인적이 끊긴 그곳 첩첩산중 눈길 위에는
꿩, 산토끼, 멧돼지 등 야생동물 발자국 뿐.
폭설기 굶주린 멧돼지 떼는 맹수와 다름 없다.
설령, 겨울철에 눈길이 잠시 열려 있다고 해도
언제 눈사태가 덮쳐 계곡길이 막힐지 모르는 곳.
키 넘는 눈구덩이에 빠지면, 헤쳐 나오기 어렵다.
겨우내 겹겹이 쌓인 눈이 층층이 얼어붙어
눈구덩이 속에 자칫 층층이 빠져들면.,난감.
눈구덩이에 허리까지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폭설기엔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오지.
육백마지기마을은 나에게 첫사랑의 추억 같은 곳.
1974년 그곳에서 첫사랑의 상처를 달랬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있으면.,온통 하늘 가득.
눈을 감고 있어도., 망막 위에 가득.
지우려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그 모습.
.
1970년대 통키타 가수 박인희 노래.,'세월이 가면.'
1956년 박인환 시, 나애심 노래로 명성을 얻었던.,옛 노래
1970년대 첫사랑이 청아한 목소리로 내게 처음 들려주던.,노래.
1970년 갓 대학에 들어가 첫미팅에서.,첫만남.
그해 겨울 첫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에 명동 데이트.
1973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헤어진 첫사랑.,애창곡.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1973년, 가정을 꾸릴 경제력 없는 대학생이던 나.
내가 그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유일했던 길.
그때 그 시절이.,그리워서
다시 찾아간.,육백마지기마을.
예나 지금이나.,첩첩산중 산간벽지.
강원도 청옥산 자락.,육백마지기마을.
볍씨 한말을 뿌릴 수 있을 면적.,1 두락.
논은 200평, 밭은 300평이 1두락(마지기)
'육백마지기'는 600 마지기 규모의 면적.
1974년까지만 해도 화전민들이 모여살았던 오지 마을.
지금은 민가가 없는., 고냉지 채소밭 및 산나물 재배지
원래 이곳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최대 산나물 군락지.
일명 '하늘 아래 첫동네'였던.,육백마지기마을.
1970년대 육백마지기마을로 가는 길목.,반정리.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하안미1리'가 곧.,반정리.
반 半.
헤아릴 程
마을 里
반정리(半程里)
강릉- 2백리 - 반정리- 2백리- 원주
'대화 ~ 평창' 중간이.,반정리 새추거리.
영동 고속도로와는 동떨어진 위치에 있다.
새추거리 삼거리는., 청옥산으로 가는 길목.
반정리는 강원도 첩첩산중 두메산골 오지마을.
평창군 미탄면 일대에서 널리 불리는 평창아라리.
영동 고속도로와 동떨어진 위치에 있다.
옛 주민 대부분 기차조차 본 적이 없다는 오지.
반정리 오지 옛주민들은 6.25 참상조차 몰랐단다.
1974년 그곳 군부대 보급관 시절에
예비군 교관을 겸하면서 알게된 사실.
반정리 첩첩산중 옛주민 화전민들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상 개념조차 없다.
서당에서 글을 배운 정도가 학력의 전부인 탓.
인근에 학교가 없어 서당에서 깨우친.,한글
예전에는 신문조차 들어오지 않았던.,산간마을.
반공이란 개념을 깨우치기조차 열악한 환경인 벽지.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 평창군
하여, 강원도 오지 중에서도 오지.
머루 다래 산과일이 지천에 깔린 오지.
산위에 올라봐도
산 넘어 산만 보이는
첩첩산중 두메산골 오지.
십리에 한채씩 농가가 있는 화전민 마을
산넘어 산으로., 이어지는 옥수수밭 감자밭
감자 옥수수가 주식인 강원도 평창군 오지마을
감자 수확 후에는 하루 세끼 모두 감자
옥수수 수확 후에 하루 세끼 모두 옥수수
겨울에서 봄까지 저장한 감자 옥수수가 주식
그것 만으로 배를 채워도 감지덕지
굶주린 멧돼지떼가 저장고를 털까 두렵고
저장고 겨울양식을 털리면 겨울나기 힘든 곳.
겨울양식을 털리지 않더라도
춘궁기에 대부분 산나물로 연명.
결혼 전까지 보리 한말 먹으면 잘 산다던 곳.
보리밭 일구기 어려울만큼 척박한., 첩첩산중
그래서,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던 젊은이들
강원도에서도 '평창 정선 영월은 대표적 오지.
옛날 옛적에., 정선골에 스무살 꽃 다운 나이에
열살도 채 안된 어린 신랑에게., 시집을 간 처녀.
그 새색시는 철부지 같은 어린 신랑의 시중을 들면서
한편으로는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시달려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물레방아를 보고 문득 세월도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듯.,
어린 신랑도 세월이 가면
남편 구실을 할 것을 깨닫고
귀가하며 부른 노래.,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은 나무하러 다닐 때, 밭에서 김을 맬 때,
혼자 길을 걸을 때나., 동네사람들이 모여 놀때 불린다.
가사는 노래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높은 목청으로 한껏 내뽑아 부를 때에는
살림살이의 시름도 모두 내질러 버리는듯
구슬프고도 서정적인 노래가.,정선 아리랑.
'아름다운 여울' 미탄(美灘)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혼욕 풍습이 있는.,고장.
하여, '아름다운 여울' 미탄이라 부르는 것일까?
혼욕은 옛부터 강원도 처녀 총각 간 구애하는 풍습.
목욕하자는 말 자체가 곧 프로포즈.
동의하면 구애를 받아들이겠다는 뜻.
함께 목욕하면 장래를 약속한다는 의미.
...........고려도경 기록.....................
고려인들은 하루에 서너 차례 몸을 씻었고,
개성 큰강에서 남녀가 함께 어울려 목욕했다.
여인은 목욕용 모시치마를 입고 물에 들어갔다.
...................................................................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대중목욕탕
1924년 평양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1970년대 중반 대중목욕탕이 하나였던 평창.
그것도 혹한기 겨울에만 3개월 간 문을 열었다.
평창강 미탄은 주민에게는 대중목욕탕인 셈이다.
1970년대 조혼이 성행했던.,미탄 일대.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이농현상 때문
하여, 오지일수록 노인만 남게되자 대책을 강구
남녀 나이 10대를 벗어나기도 전에 짝지어 주었다.
어른들이 철부지 처녀총각 혼욕을 권장할 만큼
농촌 이농현상을 막으려 했던.,고육지책 중 하나.
조혼으로 아이를 낳고 나면.,이농현상이 줄기 때문.
미탄(美灘)은 평창강으로 흘러드는 지류 중 하나.
...........................평창강..........................
한강의 제1지류이며, 강의 길이는 149㎞이다.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계방산(桂芳山:1,577m)
남동계곡에서 발원해 속사천(束沙川)이라 불리며
남쪽으로 흐르다가 흥정천(興亭川)·대화천(大和川)·
계촌천(桂村川)을 차례로 합쳐 평창읍을 관류하고
영월군 서면에서 주천강과 합쳐 남동쪽으로 흐른다.
영월읍 하송리 일대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평창군 평창읍 중심부를 흘러 평창강이라 한다
영월읍 서쪽에서는 영월 서강(西江)으로,
남쪽에서 동강으로 불리는 남한강에 합류.
내륙 산간·고원 지대를 심하게 곡류해 흐른다.
하여, 해마다 홍수 다발 지역.,평창강.
"혼인하기 전까지 보리 한말 먹으면.,부자."
1960년대까지 평창 일대에 전해오는 이야기
명절에도 쌀밥은 커녕 보리밥 먹기도 힘든 고장.
남한강과 합류하는 영월읍 일대에만 충적평야가 분포.
평창강 유역 내에는 옥수수·감자·고랭지 채소 등이 재배되며
상류 유역을 지나는 영동고속도로 주변은 홉의 재배지로 유명
홉은 맥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주 원료
평창강에는 냉수성 어종인 송어의 양식장이 많다.
유역 내 이승복반공기념관, 이효석 생가와 묘소·문학비,
팔석정, 송학루, 장릉, 청령포, 노산성지, 봉산서원 유물·유적.
.......................................................................................
평창강
'한강 제1지류' 평창강(149㎞)은 홍수 다발지역이다.
영월 서강의 상류를 이루는 평창강은 계방산에서 발원
평창을 관통하듯 그 중심부를 흘러 지나가기에.,평창강
옛부터 홍수가 잦은 만큼 애환 많았던 미탄 유역
미탄면 일대에서 널리 불려오고 있는.,평창 아라리
많은 애환과 정한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 아라리.
"혼인하기 전까지 보리 한말 먹으면.,부자."
1960년대까지 평창 일대에 전해오는 이야기
명절에도 쌀밥은 커녕 보리밥 먹기도 힘든 고장.
평창아라리
인생살이 한이 깊이 스며있고,
적절한 해학과 풍자가 어울려서
어깨춤이 절로 일어나는 가락이다.
농부는 고된 농사 일을 하다가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흥얼거렸고,
아낙은 방아를 찧으며 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변천을 거듭하였어도
감흥이 절로 일어나는 이 노래를
지금도 주민들은 널리 부르고 있다.
...................평창아라리.....................
골목골길이 인심이 좋다고 딸놓지를 마세요
강냉이밥 아이듬하다가 잔허리 살짝 꺽어요
미탄땅이 살기좋대서 내가 살러왔더니
돈 그립고 님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강냉이밥 사절치기는 오글박작 끊는데
임자 당신은 어딜 가시려고 신발 단속을 하시오
십요야 밝은달은 무슨 애로가 있어서
세상만물이 다 잠든년에 밤길을 가느냐
개구장가의 검은 오리는 무스내죄를져서
다큰색시 손길에 외칼침을 맞나
평창같이 살기 좋은데 살려만 오세요
그물같은 물밑에도 해화가 핀대요
이모항 쌍총을 어깨어다 메고
십이명 식구에서 나 혼자만 가라네
나물도 뜯고 임도보고 겸사겸사 왔더니
나물도 못뜯고 임도 못보고 임시 낭패났네
.............................................................
'평창 아라리'의 특징은
'정선 아리랑'과 같은 음률.
1990년 10월, 강원도 민속 경연대회에 우수상
TV방송 및 여러 보도 기관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평창 문화원에서 가사를 재발굴하여 보존하고 있다.
평창아라리는 평창군 미탄면 일대에서 불려오는 민요.
두메산골 오지마을 애환과 정한을 담고 있는.,전통 아라리.
주민들이 산나물을 뜯으며 삶의 고달픔을 잊기 위해 부른 노래.
아리라 가사가 되어 마탄지방 주민들 사이에 퍼진 것.
'평창아라리'는 '정선아리랑'과 거의 비슷한 가락이다.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죽이
나지미〔愛人〕 마음만 같다면
병자년 흉년에도 봄살이 나네.”
‘한치’는 미탄면 평안2리,
‘곤드레 딱죽’은 특산 나물,
“월정 오대산 박달남근/죽자 왕자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서 노다 가세.”
“영월읍에는 덮개(德浦里)가 있어도 춥기만 하고요
평창 땅에는 약수(藥水里)가 있어도 사람만 죽는다.”
“영평정(寧越·平昌·旌善) 삼읍(三邑)에 딸 주지 마라
삼베 치다가 잔더위 먹는다.” 인근 지방의 특색을 노래.
“청옥산 줄기가 무너져서
육지 평지가 되어도
임자하고 나하고는
맘 변치 않는다.”
“극락암 뒷절에 도는 안개는 눈비나 줄려고 돌지만
소녀집 문전에 도는 청년은 누구를 바라고 도느냐.”
주변 산경치, 남녀 관계를 대구(對句)로 부르는 노래.
이 밖에도 특산물인 감자·옥수수·삼·목기(木器) 등을 소재로
여성들이 일을 하거나 여흥으로 부르는 「시집살이 노래」등.
“성님오네 성님오네/분고개로 성님오네
성님밥은 멀(뭘)로짓나/앵도같은 팥을놓고
외씨같은 전이밥을/복지개로 오복소복…….”
이밖에., 자장가 잠자리·
다리빼기 노래 등., 동요.
미탄 회동리 청옥산은 곤드레, 딱죽이를 비롯한 산나물 산지.
봄철 춘궁기에는 주민들이 이곳에서 나물을 뜯어 생계를 유지.
'평창아라리'는 두메산골 산간벽지 인생살이 한이 깊이 스며있다.
해학과 풍자가 어울려 어께춤이 저절로 일어나는 가락.
농부는 농사일 하다가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흥얼거렸고,
초성 좋은 아낙네들은 방아를 찧다가도 이 아리랑을 불렀다.
평창아라리 특징은 정선 아리랑과 음률이 같으나 후렴이 없다.
그 옛날 정선을 넘나들던 선비들이 청옥산 성마령을 넘어 다니며
정선으로 전했다는 정선 아리랑 곡조는 평창아라리 곡조에서 비롯.
2012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
평창에서 정선 방면 멧둔재 터널을 지나면.,미탄면.
면소재지 창리부터 회동리, 평안리, 기화리, 한탄리,
율치리, 마하리, 백운리, 수철리까지., 9개 리로 구성.
미탄.,무지개송어
'아름다운 여울' 미탄은 평창군에서 최남단 오지마을.
북쪽으로 청옥산 동쪽으로 정선과 연결되는 비행기재,
서쪽으로 멧둔재, 남쪽으로는 영월과 동강을 연결한다.
동강.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과 함께 수려한 자연경관, 청정 농산물
옛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애환이 담긴 ‘평창아라리’의 발생지.
현재 우리나라 아리랑 중에서 가장 원형에 가까운 평창아라리.
성마령
정선입구.,문치재
청옥산과 육백마지기, 성마령, 동강 등을 무대로
독창적인 음률과 가사를 가지고 있는 평창아라리
미탄 주민은 누구나 부를 만큼 가락이 살아 숨쉰다.
평창군 청옥산 자락.,'육백마지기마을'.,겨울
육백마지기마을.,고냉지채소밭
강원도는 강릉, 원주의 머릿자를 딴.,합성어.
'강릉과 원주' 그 중간지점에 있다 하여.,반정리.
‘메밀 꽃 필 무렵’ 배경마을 평창 & 대화'가 그 일대.
강원도 중남부에 위치한.,평창군.
.......................평창군..................
태백산맥과 차령산맥 분기점에 위치해
해발 1,000m 이상 산지로 둘러싸인.,평창군.
1974년 겨울에만 문 여는 목욕탕 하나 있던.,군.
동쪽은 강릉시·정선군, 서쪽은 횡성군,
남쪽은 영월군, 북쪽은 홍천군· 강릉시.
평창군 산지에서는 주로 고랭지채소.
밭에서는 옥수수· 감자· 배추 등을 생산.
횡계리 일대에서는 목축업이 활발한.,군.
2011년 제123차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면적 1,464.16㎢, 인구 43,256
.......................................
1974년 광주보병학교 4개월간 교육 수료.
원주 38사단 배속된 후, 강릉 116연대 발령.
116연대에서 일주일 교육받고 1대대로 가던 길
강릉에서 대화로 가던 길.
2017년 현재, 세월이 흘러
반세기 전.,추억 속 이야기.
1974년 그당시만 하더라도
평창군은.,강원도 두메산골.
'한폭의 그림' 같은.,산간벽지.
평창강 섶다리.
1973년에는 평창강 곁에 있었던.,1대대.
평창강 범람 때 침수되어 이전한 직후라서
그당시, 군부대를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워낙 인적이 드문., 오지였기에
길을 물어볼 행인조차 없었던 탓.
강원도 중부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한강 지류이자, 길이 220㎞.,평창강.
평창강 따라 구비구비 이어진.,구도로.
2016년 평창강
1974년 '강릉~ 원주'는 비포장도로.
시외버스 간에 마주치면, 산마루에서.,곡예운전.
그때마다 벼랑 끝으로 추락할듯 오금저렸던.,옛 구도로.
차 한대 자나칠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비포장도로 흙먼지길.
서울~원주~평창~대화~진부~강릉.
그당시, '강릉~원주' 구간은.,산간도로.
산등성이 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가는.,험로.
지금은 영동고속도로가 열려있지만
그당시, 서울~ 원주~ 방림~평창~ 대화~장평
~용평~진부~방아다리약수~월정사 ~진부령~강릉
'평창과 대화' 중간지점에
3거리 안쪽 샛길.,새추거리.
청옥산으로 들어가는.,길목.
새추거리~군부대 ~육백마지기마을~ 청옥산.
새추거리 외길 따라 3~4km 걸어 들어가면.,1대대.
군부대 위치는 평창군 미탄면에서.,청옥산 가는 길목.
새추거리 구멍가게.
3거리 가게에서 시작되는 길.
새추거리 외길 끝나는 지점이
청옥산 자락.,육백마지기 마을.
산등성이 넘어 산으로 연이어지는.,화전.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옥수수밭 물결.
그곳에는 가뭄에 콩나듯 하나씩 동떨어진 민가.
미탄면에서 가장 오지마을.
600 마지기 규모의.,화전민촌.
화전민 5~6 가구가 모여사는 곳.
'육백마지기 마을' 그 주변에는
10리에 하나씩 동떨어진 민가도 있다.
산넘어 산등성이마다 징검다리 같은.,민가.
워낙 산간마을 오지라서
6.25 전란도 겪어본적 없고
기차를 본 적도 없다는 주민들.
문명의 이기와는 아예 동떨어져 사는.,화전민촌.
전화, 신문도 없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오지
그곳 육백마지기 마을에 비하면, 군부대는.,문명세계.
용천수가 솟아 얼음처럼 차가운.,대화천.
10초간 발담구기도 힘들어.,"냉천" "땀띠강"
군부대 일대 주민들에게는 마을 공동목욕탕.
객지에서 온 나그네에게는
한여름에 잠깐 만 발을 담궈도
발이 시려워 견딜 수 없는.,냉천.
"누가 오래 발담구나 내기할래요?"
나그네에게는 무더위에도 발이 너무 시려워
개울에 잠시 담궜던 발을 곧 빼내게 되는.,냉천.
한여름에도 얼음장 같이 차가운.,냉천.
개울에 서있으면 곧 등골이 쭈뼛해지고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다.
대화천 & 용천수
현지에 사는 주민들 경우
남자는 낮에 주로 땀을 씻고
여자는 주로 밤에 목욕하는 곳.
남녀혼욕, 목욕광경 훔쳐보기.
옛날부터 강원도 산간지역 풍습.
전통적인 풍습이라 여기는 주민들.
대화천.
남녀 간 목욕하는 광경을
몰래 숨어 훔쳐보는 행위가
흠이 되지 않는 곳이., 대화천.
"냉천" "땀띠천".,'용천수' 대화천
군부대는 산간벽지라 TV는 켜도 볼 수 없는 곳.
라디오 방송 채널 중에 하나쯤은 들리는.,군부대.
평창전화국 교환을 통해야.,시외전화 걸기가 가능.
군부대에서는 평창전화국에 근무하는 교환수.
즉, 처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유일한 통로.
군인은 여자 교환 음성을 듣는 것만도 큰 즐거움.
당시 1대대는 예비군 동원훈련이 주업무.
약 7~800명 예비군들이 연이어서.,들락날락.
특히, 서당에서 글을 배운 오지 주민들이 많았다.
그당시 강원도 오지 두메산골에는
정규 교육을 받을 학교가 드문 때문.
하여, 서당 출신 예비군이 오지 지식인.
'오지인들도 사람이 그리웠던걸까?'
예비군 동원 교육을 소풍 온듯 즐기는 편.
장가 가기 전까지 보리 한말 먹으면.,부자집.
오지 현지인들은 예비군 동원훈련이 좋은듯.,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군부대 연병장이 좋은듯.
서당 지식인들의 입담 좋은 옛날 이야기가 인기.
특히, 노래자랑이 벌어지면 어린아이처럼 신바람.
1대대 군부대에서 동원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쌀밥을 먹기때문에 소풍온듯 좋다는 예비군들.
동원훈련이 끝나도 귀가하려 하지 않는 현지인들.
'농번기를 피해 입소한 때문이리라.'
"쌀밥 한끼 만 더 먹고 가게 해 달라."
농번기 예비군 훈련은
군부대에서 교관을 파견
현지에서 예비군 교육 실시.
......................
......................
군부대 내 BOQ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영내에서 연병장 밖으로 나가., 5km 구보.
마을 문앞마다 소복하게 쌓여있는 감자껍질.
집집마다 감자 삶는 냄새와
모락모락 연기 올라가는 굴뚝.
강원도 오지에서 아침 짓는 풍경
감자, 옥수수가 주식인.,강원도.
당시 그곳에서 보급관을 하며 특이했던 점은
월정사 소대 예비군은.,모두 다 스님이었다는 것.
스님도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월정사 스님들을 일반 예비군들처럼 대할 수 없어
1대대 교관을 월정사 경내로 파견해서.,예비군 교육.
그래서, 월정사 스님들을 교육시킨 적이 몇차례 있었다.
월정사 경내에서 첫교육 경험은 총검술 16개 살해 동작.
내가 교육하던 도중에 총무스님이 기겁을 하며 뛰어나와
손을 휘저으면서 몹시 당혹해 하시는 바람에 잠시 교육 중단.
그일로 인해 월정사 총무스님 방으로 들어가
애국심 강한 장교와 불심 남다른 스님 간 토론.
총무스님이 정성껏 준비한 마가목차와 사찰 다과.
"뇌물입니까?"
"음!~ 그렇다네."
"그렇다면 차라리 술을.,"
"여긴 월정사 경내 일세."
"스님들은 총검술을 하면 안됩니까?"
"전란에 불경 만으로 나라가 지켜집니까?"
"총칼 없이 애국심으로만 나라가 지켜집니까?"
"나무관세음보살."
애국심이 투철한 막무가내 신임 보급관이
월정사 총무스님에게도 상대하기 버거웠던듯.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더 가까워진.,총무스님.
나는 1대대에서 유일한 상대 ROTC 장교 출신.
대대장이 소위인 나를 보급관으로.,파격적인 임명.
'병참, 수송, 의무반, 예비군 교관, 대민봉사 등을 관장.
월정사 총무스님도 쩔쩔 맬 정도.,지역사령관.
1대대 관할 내 파출소 소장들도.,쩔쩔 맸을 정도.
지역 예비군 부대 및 파출소에 수시로 무기고 검열.
검열 나간다 통보하면
파출소 순경들과 소장이
개울에 나가 잡은 물고기로
정성껏 민물 매운탕을 끓여 대접.
총기상태 수입불량 무기고 파출소는
군부대에서 관할 경찰서에 통보하면 처벌.
면책을 받으면 보직이 해임된다는 파출소 소장.
그것은 예비군 중대장도 마찬가지
총기상태 수입 불량이면.,보직 해임
1대대 관할 예비군 중대장들도 이미 평정.
1대대 관할 파출소 소장들은 이미 알아서 처신.
'관할지역 관공서의 기강를 잡으라.'는.,대대장 밀명.
그들에게도 매년 연례행사라
대대장 밀명을 이미 간파한듯..
1대대에 신임 보급관이 오면
대대장 밀명에 의한 연례 행사.
대대장 위상 높이기도 보급관 업무.
그것은 부대대장이 해야 할 업무지만
월남참전 때 머리에 총을 맞은.,부대대장.
직책는 부대대장이지만., 휴양차 경내 근무.
그래서, 부대대장 업무까지
보급관이 위임을 받게 된 것.
가정집 목욕탕 만한.,밥 솥단지.,6개.
삽으로 밥 짓기, 장화 신고.,김장 담구기.
개울에서 담요 빨래, 장날에 찬거리 장보기.
사단은 원주에 있고
연대는 강릉에 있어
부식은 현지에서 구입.
주식은 연대를 거치지 않고
사단이 있는 원주에 가서 수령.
1대대에 속한 수송부 차량 만 6대.
그외, 임산부 아기 받기, 주민 긴급환자 후송.
장날에 주민들 농산물 실어 나르기 및 대민봉사
동원예비군 훈련지원 및 대대 안살림 도맡아 하기.
신임 소위에게는 과분하고도
막중한 첫 보직이었던.,보급관.
대위 중대장보다 못지 않은 보직.
틈틈이 한가할 때는., 산 위에 올라 피리불기.
산 넘어 산 첩첩산중에서 첫사랑 그리움 달래기.
중대장들의 신혼 집도 사전 예고없이.,들이 닥치기.
신혼의 달콤함에 젖어있을 밤늦은 시각에
부부 단칸방 앞에서 인기척 대신.,피리 불리.
한곡조 끝나기 무섭게 방문을 열고.,처들어가기.
"아!~ 잠깐만.,옷도 안입었는데."
"어머머!~ 아! 어떻게 해~난몰라."
한밤중 초대 없는 기습 방문에 당혹.
방안에서 문고리 부여잡고 다급함 호소.
그 낌새 알면서도 모른 척 밀고 들어가기.
마지 못해 문을 열면, 들어가 밤샘 버티기.
한번 혼난 기혼 장교들에겐.,공포의 피리소리.
결국, 집들이 차례를 정해 사전 통보하기로 합의.
대대 보급관이라는 보직 탓에
중대장들도 밑 볼 수 없는.,위치.
보급관 장난기에 혼쭐난 기혼부부.
군부대 인근은 외식할 식당도 없는.,오지마을.
집밥이 너무 그리워 그렇게라도 해소해야 했다.
기혼장교들도 독신장교들의 애로사항을 이해했다.
그래서, 독신장교 BOQ에 반찬을 공급해 주면
그 기혼장교 집들이 차례는 한번 걸러 넘어가기.
BOQ는 군부대 독신장교가 거주하는.,장교 숙소.
집들이 식재료는 보급관 지원이 그 부대의 전통.
시장에 함께 가거나,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해 주기.
결국, '미운정 고운정' 한솥밥 가족처럼 가까워진 사이.
‘그후, 보급관의 피리소리가 들리면
맨발로 문밖까지 뛰어나와.,반길 만큼.’
..........................
...........................
청옥산.
강원도 청옥산.,육백마지기 마을.
보급관 시절에 이따금 찾아갔던.,육백 마지기 마을.
당시 '600 마지기' 규모 화전이 있던.,청옥산 오지마을.
화전은 옥수수밭 ~ 감자밭 ~ 청정 고냉지 채소밭., 탈바꿈.
그것이 임야를 개간한 후에, 화전을 일궈가는.,순서.
육백마지기마을은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진 화전민촌.
기차를 본적도 없고 6.25 사변도 몰랐던 주민이 대부분.
혼인 전까지 규수가 보리 한말을
먹기 힘들만큼 첩첩산중 오지마을
새추거리에서 육백마지기마을로 가는 길.
강원도 산간마을의 옛풍습이 남아있던 곳.
남녀가 서로 약혼한 사이라면
개울에서 함께 자연스럽게.,목욕.
그것이 흠이 되지 않는.,오지마을.
옥수수 밭에서 새참 & 애 만들기.
한여름 밤에 개울가에서 목욕하기.
목욕하는 광경을 몰래 숨어 엿보기.
한겨울 월동하는 물고기 개구리 잡기.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 끓이기.
군것질거리로 머루 다래 산딸기 따 먹기.
그 정도의 놀이 문화가 고작인 오지마을.
T V 난청지역 & 신문 우편배달 어려운 곳.
새추거리에서 그곳까지는 낙후된 오지 풍경.
언덕 넘어 언덕으로 끝없이 펼쳐진.,옥수수 밭.
집집마다 싸리문 앞에 쌓인 감자껍질과 굴뚝 연기.
모락모락 연기 피어나면.,삶은 감자 익어가는 냄새.
산마루 올라서면.,익어가던 머루 다래와 불타는 노을.
느티나무 고목 아래 서낭당 건너 편.,물레방아.
아들 낳기 기원하는 임산부 추락 잦은., 남근바위.
그곳을 지나고 나면., 십리에 하나씩 있는 화전 농가.
강원도 산간 오지마을 월동준비는 여름철 직후에 시작.
겨울식량 멧돼지떼 습격에 대비해.,울타리를 두텁게 보수
십리에 하나씩 있는 민가라 이웃 도움 기대 못하는 오지마을.
여름이 지나면, 가을은 없고
곧바로 겨울이 시작되는.,산간.
겨울이면 키가 넘게 쏟아져 내리는 적설량.
칼바람 불면 산등성이로부터 흘러 내리는 눈.
계곡 사이길이 막히면 봄눈이 녹을 때까지 고립.
일년의 반은 외지와 단절될 수밖에 없는 환경.
눈 내리면 지붕 무너지지 않도록 밤샘 제설작업.
농가와 뒷간 사이에 묶은 새끼줄 휘둘러.,터널공사.
그래서, 눈발이 날리면 가고 깊어도 갈 수 없던 그곳.
자칫, 육백마지기마을 눈밭 속에 반년간 고립되기 쉽다.
민가가 몇채 없는 육백마지기 마을에 갇히면 굶어죽기 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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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가을로 기억되는 그곳 오지 산행.
그당시에도 강원도에서 두메산골 오지마을.
설악산을 다녀오며 들렀던.,육백 마지기 마을.
예전엔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졌던 화전민촌.
그 마을 총면적이 '육백마지기'라 붙여진 이름.
평창군을 맴돌며 묻고 물어 다시 찾아갔던 그곳.
미탄면 회동리 청옥산(해발 1250m) 정상 자락.
예전엔 임도였을텐데 언제부터 차도로 변했을까?
그곳 통해 간적에 예전에 없었기에 길 입구부터 생소.
큰돌에 새겨진 각자.,‘육백 마지기 마을’
‘지금은 예전보다 주민들이 더 늘었을까?’
삼십여 년 전엔 젊은이 보기 힘든 마을.
농촌 고령화를 막으려 조혼을 서둘렀던 오지.
처녀 나이 열일곱이면 철없는 나이인데도 혼인.
그 혼인이 도시를 꿈꾸던 젊은이들에게는 족쇄.
그래서, 딸둔 부모가 서둘러 사윗감 구하던 마을.
행여, 매일 밤사이에 보따리싸고 줄행랑 칠까 걱정.
그때 그시절에 오지마을에서
인기를 끌었던 '유행가' 가사처럼
“예쁜이도 금순이도 단 봇짐을 쌌다네.”
1974년에 그곳에서는 색시감이 몹시 귀했다.
어지간한 그곳 처녀들은 모두 서울로 떠난 탓.
색시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한다.- 속담-
그곳 풍습이 담긴 속담의 유래가 실감났던 곳
혼인 전까지 처갓집 머슴살이 해야 했던 신랑감.
처갓집 말뚝 또는 집기둥 눈금만 바라보았을 심정.
색시감이 눈금 만큼 자라야 혼삿날을 잡던 그곳 풍습.
처갓집 색시가 예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는.,눈금.
그래서, 장가들고픈 오지 노총각들이 처갓집 머슴살이 감수.
‘1974년 그당시 그곳 노총각들에게
처갓집의 말뚝 눈금은., 꿈과 희망’
인적드문 아스팔트 도로에서 시작되는 샛길.
비포장도로 끝에서 승용차로 오르기 벅찬 험로.
그곳부터 시간 반 걸어 올라간 정상 아래 외딴 가옥.
예전에 그곳 화전민촌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구릉지.
그곳에 외딴 가옥 한 채가 모 식품회사의 관리사일 뿐.
청정채소(산야초) 재배지로 바뀐 후., 원주민들은 철수.
봄나물이 한창인 봄철에만
반짝 외지인들이 찾는 곳으로
탈바꿈 되어있는.,율백마지기마을.
그곳 관리사에서 만난 중년남자의.,친절한 설명.
육백 마지기 마을은 지명만 남고 거주민이 없는 곳.
낯선 방문객조차 반갑기만 한 그 중년사내의 근무처.
그곳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
인적의 흔적이라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몇채 뿐.
아직도 그곳 산등성이 넘어 십리에 하나씩 보이는.,농가.
‘저 외딴 곳에서는 누가 살고 있을까?’
그곳에서 내려와 찾아간 30년전.,군부대.
지나가는 길에 추억 속 궁금증을 풀.,욕심.
규모가 커진 군부대 앞은 온통 현대화 물결.
그 마을 원로를 통해 들은 ‘추억 속 그소녀’ 소식.
겨울에만 하숙했던 세탁소 주인 딸.,7살 귀염동이.
도시로 시집가서 정육점을 하며 잘산다는 풍문 정도.
지금은 중년이 되어, 고기 먹고 잘살 것 같아 다행.
‘별 사탕이 들어있는 건빵을.,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곳을 지나 육백 마지기 마을로 가는.,길가의 풍경.
집집마다 농사 일손 돕던 소 대신에 경운기와 자동차.
그곳 새추거리 끝이 나오자 지금은 돌지 않는.,물레방아.
그대신에 손님이 없어 파리 날리는 방아간이 그 일을 대신.
그 건너 느티나무 아래 서낭당과
남근바위는 예전에 그 풍경 그대로.
승용차로 더 오를 수 없는 외길 끝 가로막는 막다른 농가들.
그곳 주변에도 사람이 살지 않아 다 쓰러져가는 농가가 몇 채.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 해마다 폐가가 늘고있다는 그 곳.
그곳에서 다시 돌아내려오다가 만난 옛주민과 해후.
옛 신세 갚겠다며 사양해도 내미는 농산물 선물 보따리.
오지마을 인심은 옛날 그대로.,자녀들에게 용돈으로 보답.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청옥산 가는 아스팔트 도로공사.
새추거리 옛 정취는 사라지고 환경에 안 어울리는 고층 아파트.
그곳에서 나와 고속도로를 달리며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옛 추억들.
1974년 그해에 그곳에서 보급관을 하면서
내 마음 속엔 잊지못할 추억 2 가지가 있다.
그곳을 떠난 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추억.
추억 이야기.,하나.
1974년 가을, 대화 전국노래자랑에 군부대 대표로 참가.
보급관 겸 3.5인치 로켓트포 교관으로 예비군 교육 도중에
대대장의 명을 받고 대대장과 동행하여 참가한.,전국 노래자랑.
그당시만 해도, 고속도로가 열리기 전이라
강원도 평창군은 물론이고, 대화면 또한 오지.
내가 속한 군부대는 관할 오지 대민봉사도 주업무.
그당시 대화에서 전국 노래자랑이 열렸지만
사실은 평창군에서 개최한 전국적 규모의 축제.
평창군수 및 평창 유지들이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
이미, 대화 평창 여고 운동회를 열때마다
대민봉사 차원에서 군부대에서 차량을 지원.
보급관은 이미 지역사회 대민봉사 군부대 간판.
평창군 오지마을 주민들의 따듯한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던.,총각장교 신임 보급관.
평창군 축제 지원을 겸해, 노래자랑에도 참가.
전국 노래자랑 시작 직전에야 겨우 도착.
보급관이 군부대 대표로서 무대에 오르자 환영.
특히, 여고생들은 총각인 보급관에게 열광적인 박수.
이름 모를 소녀 / 김정호
.....
1절
.....
'버들잎 따다가 연못위에 뛰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속에
달빛어린 금빛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
2절
.......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속에
달빛어린 금빛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이름 모를 소녀
이름 모를 소녀
최종 결승 입상 후보자는 3명.
"이름 모를 소녀." 로 예선 통과.
"봄비"가 결승에서.,우승 후보곡.
박인수 노래 - 봄비.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내 눈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나리려나'
'봄비'로 대화 전국노래자랑에서 2위 입상.
당시 심사위원은 음악다방 주인, 정육점 주인,
평창 경찰서장, 대화 여고 음악 선생. 지방 유지.
특히, 그날 여고생들의 열광적인 환호성 덕분에 입상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한물갈 무렵 대화에서 유행하게 된.,봄비.
그후로부터, 평창 대화 여고생들의 팬레터가 하루 수십장씩 쇄도.
보급관 업무가 워낙 바빠 펜레터를 다 읽을 틈이 없어
군 장병들에게 읽고 답장쓰라며 위문편지로 나눠줬는데
그중 자칭 '봄비'라는 17살 여고생이 매일 팬레터를 보낸 것.
그 정성이 갸륵해 읽어보니
'개울가에서 만나 함께 목욕하자.'
그러한 내용의 구구절절한.,구애 편지.
예전에 한번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자칭 '봄비'의 구애가 당혹스럽기만 했다.
고심 끝에 대대장에게 상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봄비를 한번 만나서
타이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네. 만나서 그렇게 하겠읍니다."
결국, 봄비가 매일 기다리고 있겠다는
개울가에 나가서.,봄비를 만나게 되었다.
봄비는 예상보다 의외로 앳된 여고생이었다.
행여나, 여린 마음에
상처나 입지 않을까?
염려가 되던., 그 소녀.
"지금 몇살이지?"
"열 일곱 살 이예요."
"아직 너무 어리다. “
"전 어리지., 않아요."
"열일곱 살이면 공부에 전념할 나이."
"여기에서는 제 또래면 다 결혼해요"
"...................."
"제가 싫으신 건가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
제가 아저씨를 사랑하면 안되나요?"
"지금은 공부에만 전념하면 안되겠니?"
"노래자랑에서 아저씨를 뵌후 공부가 안되요."
"아직 네가 공부할때지
사랑을 할 때가 아니다."
"알아요.
잘 알아요.
하지만.,흑.흑."
"울지
말아라."
"사랑해요.
여기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절 사랑해 주시면
안되나요? 보급관님!"
그당시 그지역 여고생이면 일등 신부감.
고등교육을 받는 신여성이자.,결혼 적령기.
그곳 여고생들에게 독신 장교는.,선망의 대상.
"저는 이곳 오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서울로 올라 가서.,살고 싶어요.
누구든 저를 서울로 데려가 주면 좋겠어요."
"그래, 네 마음 다 이해한다."
서울에 올라갈 생각이 있다면
여고 졸업 후에 가도 늦지 않다."
"아저씨가 저를 서울로
데려가 주시면 안돼요?"
"................."
그 여고생의 여리고 여린 속마음에
상처 받지 않게 하느라 진땀 흘린 추억.
.
추억 이야기.,둘.
그무렵, 7살 소녀로부터 사랑고백을 받고 난감.
겨울에만 하숙했던 군부대 앞 세탁소 주인집 딸.
세탁소 주인이 하숙비를 안받아 딸 가정교사를 자처.
동그라미 5개 점수를 받아오면., 별사탕 군용건빵 선물.
대대장 아들이 그곳 초등학교에서 반장이고 반에서 일등.
네가 반에서 일등하면, 내가 너의 소원을 모두 다 들어줄께.
그후, 동그라미 5개 그려진 점수 자랑하던.,그 소녀.
나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다가 지쳐 내방에서 잠든 모습.
깨우기가 안쓰러워 내 방에서 재운 적도 많았던 그 소녀.
날마다 내 품속에 안겨 옛날 이야기를 졸라대던 귀염둥이.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일등 성적표를 나에게 들고온 것.
일등 성적표를 꺼내 보이며 나에게 결혼을 하자던 7살 그 소녀.
"제가 일등하면 소원 들어주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래. 네가 아저씨 눈 높이 만큼 크면, 결혼하자.”
“결혼하면 별 사탕 들은 건빵 매일 주실래요?”
“너는 아저씨보다 별사탕이 좋은 모양이구나.”
지금은 어엿한 중년 아낙네가 되어 있을 그 소녀.
그후 연락장교로 발령 받았기에 헤어졌던.,그 소녀.
‘그 소녀는 내가 떠난 후, 별사탕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첫댓글 내년에 동계올림픽이 열릴 평창에 얽힌 멋진 사연 잘 보았습니다...
군대생활을 남들은 고생하며 지내는 병역의무를 아름다운 추억의 보고가 되었네요...
가리왕산은 한번도 못가보았는데...그렇게 좋은산이군요...
.
1974년 그당시 가리왕산은 평창군 전역에서
멀리 바라만 보는 산이었고.,길을 찾는 랜드 마크.
평창군을 누비면서 그 산자락 만 맴돌며 쏘다녔어요.
그 이듬해 원주 38사단에 116연대 연락장교로 발령 받아
찾아가는 길에 달리는 차들이 무서워 길을 못건넜을 정도.
평창군 산골 생활 반년이면.,서울 사람도 촌사람이 되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