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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김승옥 문학여행기 -한국방송대문학기행반 제130차 문학기행에 동행하다 (2014. 11. 1 ~ 2)
정채봉 프란치스코 선생님! 선생님의 고향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바다는 내 그리움의 총체'라고 하시며 '난 바닷가에 서 있어야 할 한 그루 소나무가 아닐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둑을 막아 바다는 멀리 물러나 있지만 선생님의 그리움이 녹아 있을 갯밭과 출렁일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스무 살 어머니와 늘 정답게 사소서!
11월 1일, 순천의 두 작가 문학여행 준비를 마치고 군대에 간 큰 아들(일병 권용환)에게 '동화작가 정채봉 추모시'를 넣고 간단한 안부를 묻는 가을편지를 쓴다. 우표(300원)가 넉장 남은 걸 보니 116통 정도 편지를 쓴 것 같다. 앞으로 150여통 쓰면 제대하겠지.........! 편지는 마음의 사진!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마음사진은 어땠을까?
동심의 샘터에서 만나
-권창순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우리들 가슴에 하얀 동심의 발자국 찍어놓고 스무 살 엄마 품으로 돌아갔네
우리 외로울 때 언제고 마음속 그 발자국을 따라가 흰 구름 떠있는 샘터에서 스무 살 엄마 만나 비로소 그 큰 두 눈망울에 활짝 핀 그리움이란꽃 향기도 퍼 마시리
동심의 샘터 그리움의 샘터 엄마 품 같은 샘터에서 동심은 세상을 구원한다는 그의 말과 새들과 바람과 나무와 하늘과 동화와 즐겁게 목욕도 하리 그리고 사랑이란 우리들 사랑도 그 동심으로 언제든 노래하리
그리운 아들아! 열심히 훈련받고 있겠구나. 항상 건강과 안전 챙겨라. 아버지는 올 해 처음으로 문학기행 떠날 채비를 하느라 가슴 설레고 있다. 전남 순천으로 소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과 동화작가 정채봉 문학기행이다. 훈련 잘 받고 건강히 귀대하길 바란다. ++편지는 마음의 사진! 아버지의 마음사진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안녕! 또 쓸게. -서울에서 아버지가.
김승옥 작가님(1941 ~현재)과 함께 (순천문학관내 김승옥관 옆 집필실 마루에서)
나를 따라나선 서울떨잎이 순천떨잎을 만나고 있다
집을 출발, 동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떨잎(낙엽) 하나를 주웠지. "우리 순천으로 여행 떠나자!" "좋아! 그런데, 네 호주머니 속은 답답해!" "내 호주머니 속에서, 내 이름표 속에서 콜록거린 떨잎아! 미안해!" 우리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서울떨잎을 너무 답답하게 했나봅니다. 그래도 새로운 친구들과 참새떼처럼 바람에 몰려다니면 그 고운 색깔도 다시 찾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순천을 그렇게 몰려다니면 반드시 동심을 찾을 것입니다.
이보게 순, 세상이 밝은 건 태양 때문만은 아니라네! 우리들 꽃등도 한몫 하지!
이보게 순, 하늘에도 길이 있다네! 누군 쭉 뻗고 싶지 않겠나. 그러니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말게나.
동화작가 정채봉 (1946-2001)
이해인 수녀의 편지
아동문학의 대선배 문학관 앞에서 동심을 짓는다고 헤맨 세월이 부끄러웠습니다. 정채봉 작가님! 이제라도 부끄러움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까지 맑아지는 동화작가 정채봉 전집(전17권)
[스무 살 어머니] -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는 애틋한 사모곡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 고통을 어루만지는 잠언과 우화, 시로 전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 [눈을 감고 보는 길] -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의지, 인생에 대한 긍정과 사랑이 가득한 에세이 [그대 뒷모습] -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이 아닌,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의 글들 [좋은 예감] - 하루를 준비하는 새벽의 짧은 기도처럼 한세상 착하게 새겨둘 만한 깊고 푸른 이야기 [너를 생각하는 것이 너의 일생이었지] -힘겨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주옥같은 시들 [초승달과 밤배(전2권)] - 탄탄한 문장과 경박하지 않은 유머가 반짝이는 성장 소설 [사랑을 묻는 당신에게] -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아름답고 지혜로운 사랑’을 위한 메시지 [단 하나뿐인 당신에게]- 가장 먼저 ‘나를 좋아하기’ 연습을 권하는, 정채봉식 자기 계발서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아름답고 울림 깊은 언어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들려주는 명상 잠언집 [간장종지] - 하얀 도화지 같은 마음으로 써내려간 동화작가의 수도원 일기 [생각하는 동화(전5권)] ❶이 순간 ❷멀리 가는 향기 ❸참 맑고 좋은 생각 ❹향기 자욱 ❺나는 너다 - 짧은 이야기, 긴 여운… 정채봉이 선물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만들어 낸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가 이성표의 담백하고 시적인 그림과 만나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현대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 등을 지적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을 정채봉 특유의 정갈하고 향기로운 언어로 표현해 읽는 이로 하여금 영원한 마음의 고향, 동심童心의 세계를 거닐게 합니다.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 오고 가는 그 나그네여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 법정(스님)
죽음이란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세계다. 이제 형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그저 마음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에겐 그가 남긴 동화가 남아 있다. 나는 이제 형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일 외엔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 - 정호승(시인)
뵙고 싶은 선생님, 마지막 본 그 미소,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린 가만히 손을 잡고 침묵 속에 기도했지요. 그토록 투명하고 아름다운 글을 선물로 남기고 가셨으니 그 글 속에서 선생님을 가까이 만나렵니다. -이해인(수녀)
동심의 웃음이십니다!
한국 문학의 오롯한 봉우리, 작가 정채봉 (홈페이지 자료)
그는 이생에 사는 동안 맑디맑은 순수의 힘으로 동시와 동화와 소설을 썼다. 소처럼 커다란 눈망울은 늘 자신이 발견한 삶의 순수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자분자분한 걸음걸이와 말투에서는 늘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 드러났다.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정채봉은 우리에게 동화 작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남긴 작품은 동화라는 제한적이고 규정적인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는 놀라운 창작열로 소설과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유례를 찾기 힘든 문학적 향취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한국 문학사에서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동화의 독자를 어린이들로 한정하지 않고 성인들로 확장했다. 사실 동화 속에 담긴 메시지, 즉 순수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겨냥해야 하는 이들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들이다.
정채봉은 각박하고 흉흉한 세상살이를 겪는 동안 사람들은 애초에 지녔던 동심의 순수한 영혼을 잃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글로써 이들의 박토처럼 메마른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쓰게 된 것이 바로 ‘성인 동화’이다. 정채봉의 생각처럼, 어른들은 성인 동화를 읽으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망실된 동심과 순수를 깨닫고 자신을 성찰하고 수굿한 위안을 받게 되었다. 정채봉 작품의 특징은 그 특유의 단아한 단어와 문체, 감수성에 있다. 그의 작품은 그 어떤 것을 들추더라도 장르에 관계없이 ‘맑고 투명하다’라는 평가를 듣곤 했다. 이런 그의 특색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하는 동화》(전 7권에서 5권으로 개정) 시리즈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소설가 조정래는 정채봉을 일컬어 ‘그 누구도 따르기 어렵게 뛰어난 작품을 쓰는 탁월한 작가’이며 그의 문장들을 ‘아름다움을 넘어선 샛별처럼 빛나는 보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 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킬로 남았군요." "예, 한 삼십분 후에 도착할 겁니다." 그들은 농사 관계의 시찰원들인 듯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색 무늬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데드롱직(織)의 바지를 입었고 지나쳐오는 마을과 들과 산에서 아마 농사 관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관찰을 했고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광주(光州)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로 갈아탄 이래, 나는 그들이 시골사람들답지 않게 앉은 목소리로 점잔을 빼면서 얘기하는 것을 반수면(半睡眠)상태 속에서 듣고 있었다. 버스 안의 좌석들은 많이 비어 있었다. 그 시찰원들의 대화에 의하면 농번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할 틈 이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께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水深)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은 점잖게 소리내어 웃었다. "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웃음 끝에 한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소설 [무진기행]
사랑합니다! 김승옥 작가님!
무진의 순천에서 우린 말이 없어도 행복했습니다. 김승옥 작가님의 웃음과 김승옥 작가님의 문학향기에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모는 내가 바닷가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는 이모에게 소주를 사오게 하여 취해서 잠이 들 때까지 마셨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깨었다. 나는 이유를 집어낼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것은 불안이었다. '인숙이 '하고 나는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곧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이모가 나를 흔들어 깨워서 눈을 떴다. 늦은 아침이었다. 이모는 전보 한통을 내게 건네주 었다. 엎드려 누운 채 나는 전보를 펴보았다. <27일 회의 참석 필요, 급상경바람 영> <27일>은 모 레였고 <영>은 아내였다. 나는 아프도록 쑤시는 이마를 베개에 대었다. 나는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나는 내 호흡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思考)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 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 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 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소설 [무진기행]
멋진 배우, 강화도 장화리 이장님! 즐거움이시고 그리움이십니다.
우리네 삶도 동심처럼 즐겁고 맛있길!
나를 찾아가는 있습니다.
자신을 즐겁게 비워낸 논(흙)을 봅니다. 욕심을 비워내야 우리도 동심으로 저 논처럼 즐겁게 겨울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행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동행은 그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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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채봉 김승옥 두분다 너무 좋아하는 분들인데요 이런 기회를 못 잡았네요
즐거우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