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상담멜 하나가왔다.
개인적인 케이스로 예를 들었는데 그것은 여기에 올리지 않고 질문 그 자체만 올려 본다.
이 상담 케이스를 묵상에 그대로 올리는 이유는 이 분 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여기에 대한 질문이 있을 법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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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언의 은사.
선교사님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요?
세상일은 하면서 배운다고 하지만,
대언의 은사를 사용할때 실수를 하게되면 정말 너무 심각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어요.
그 은사는 제게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은사예요.
그래서 묻어두고 쌓아두고 있어요.
이 은사를 잘 사용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선교사님 사역도 많으시고, 바쁘신데.
저의 담임목사님도 아닌데,
이런 부탁을 드려서 너무나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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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한도내의 답을 적어 본다.
우선
대언의 은사라고하는 그 뜻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모세가 자기가 말을 잘 못한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아론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론이 하나님의 할 말을 알려 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대언의 은사라고 하는 것은 "예언의 은사"랑은 다르다.
영어로 하면 on behalf of God! 이된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대신 해 준다 하는 이런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그러니 하나님이 예언을 해 주시기도 하지만 항상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은사를
"예언의 은사"라고는 말 할 수없다.
하나님이 그 때 그 때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 누군가가 "대변"해 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바로 지체들을 세우기 위함이요 권면하기 위함이요 위로하기 위함이요 또한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기도 한 것이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보통 방언의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방언을 하면서 마치 방언의 통역처럼 이 대언의 은사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은사를 많이 사용하다보면 굳이(?) 방언을 사용하지 않고도 기도하면서 상대방에게 하나님이 이 시간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기도문"안에 잘 나타나게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이 위의 분 처럼 "내가 하는 말이 정확하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말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요?"라는 질문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데
이럴 때 굳이? 두려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교회에서 성가대 하면서 자기가 꼭 노래를 가장 잘 불러야 할 필요가 없지만 성가대에 설만한 (?)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내가 하는 말이 꼭 정확하지 않아도 은사는 활용하면서 더 그 은사의 "효과"가 높아져 간다고 볼 수 있다.
대언의 은사 받은 사람이
"점쟁이"인 것은 아니다.
즉슨! 점쟁이 처럼 용하게?? 모든 상황을 잘 맞추어야 하는 "의무감"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은사는 믿음의 지체에게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깝게 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은사 사용하다가? 혹 그 대언의 말이 그 사람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를 겁낼 필요는 없다.
듣는 사람에게 "혼동"이 왔다고 말하면 자신이 한 "대언의 기도"를 그냥 무시해 버리라고 말하면 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요 혼동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을 들려 주면 좋다.
은사의 사용은
믿음의 지체에게 덕이 되는 것이지
이 일이 얼만만큼 "정확한가" 그런 것으로 우선순위를 삼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상고하고 기도 하는 사람이라면 웬만해서는?? 우리들의 지체가 어떤 말을 그 상황에서 들어야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은사를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즉슨 방언기도를 해 주면서 그 방언을 통역하는 듯 하면서 들려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이 지금 기도 받고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와 주었다 한다면
하나님이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더 더욱 찐하게 깨닫게 되었다면
그 은사는 잘 사용된 것이다.
어떤 때 사람들은
내가 이 일을 할까요? 말까요?
어디로 이사 갈까요 말까요?
이런 기도 부탁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기도의 부탁은 위험성을 갖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를 떠나고 친척을 떠나라 했을 때 아브라함에게 직접 말 했다는 것을 상고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일을 어떻게 남의 말을 듣고 결정하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 해 주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말을 해 주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그럼 인생에 앞으로의 결정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대신 들어 주는 것으로 결정을 해야 할 것인가?
그러니 이럴 때는 대언기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도
그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해야한다고 말을 하는 것에는 "조심성"이 있어야 하고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사람에게 기도하면서
"주님은 그대에게 이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 했는데
이사하고 난 다음 모든 상황이 은혜롭지 못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기도 받아서 그 기도 대로 한 사람은 나중에 그 책임(?)을 누구에게로 돌리고 싶은 것인가?
그러니.. 대언기도 은사가 "점쟁이"처럼 그렇게 사용되는 것에는 지혜와 영 분별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도를 받는 사람 역시 "지혜와 영 분별"이 필요한 부분이다.
만약 기도 받았는데 마음에 평화가 없고 혼동스러우면 기도를 안 들은 것으로 여기는 것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기도 받는 것을 그렇게 반가와? 하고 기대하고? 그러지는 않는 편이다.
혼자 기도해도 우리는 받을 말씀은 거의?? 다 받게 되어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지 않는가?
그 성령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 분이 우리에게 직접 말을 못하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도 건강보조음식인 비타민도 먹고 오메가 3도 먹고 그리고 건강을 잘 관리하고자 하듯이
은사들도 사용되어져야 하고
은사 사용하는 것을 사모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은사 자체의 목적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언의 은사 이런 거 있다 해서
남들 없는 어느 "영적 자격증" 같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기기만"이 없어야 한다.
잘 못 대언하다? 그럴 수 있지 왜 없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처럼 말을 항상 정확하게 잘 하겠는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만큼 더듬더듬 할 때도 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듣고 감동 받고 회개도 하고 위로도 받고 그러면.. 은사로서의 역할은 충분한 것이다.
오늘 내가 이 상담 질문을 길게(?) 답을 하는 이유는
오늘 내 아침 묵상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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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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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im the whole building is joined together and rises to become a holy temple in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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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은사에 대해서 질문이 있는 지체가 있는가 하면
나름? 답을 갖고 있는 지체도 역시 있고
서로 서로 도와 가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오늘도 우리는 함께 자라 가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갖는 신앙적 질문들은 참으로 귀한 질문들입니다.
제가 질문상담을 받을 때 명쾌한 답을 잘 주어서 궁금한 마음들을 잘 풀어 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저 역시 질문이 있는 많은 부분들을 그 때 그 때 주님이 주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책을 통하여 묵상을 통하여
누군가의 간증이나 지식적인 나눔을 통하여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임은미 선교사의 묵상 중에서 발췌
첫댓글 귀한 말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