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과 역사 속 안시성
금년 추석 전후에 영화 안시성이 성황리에 상영 중이다.
산성과 고대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퍽 기대에 젖게 한 작품이다.
현재 안시성은 심양과 대련의 중간 지역 하이청(海城) 잉청즈(英城子)산성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요녕성의 오골성 등 여러 설들이 있으나 일단 영성자산성(평면도 사진 참조)으로 보고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안시성 평면도>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산등성이에 축조한 둘레 4km의 삼태기형 포곡식 산성이다. 서쪽은 요하요, 북쪽의 신성, 요동성과 백암성, 남쪽의 건안성, 동쪽 오골성 등 방어성들이 포진해 있는 최전선의 고구려 방어성이다. 당과 고구려(중국과 고구려)를 오가는 중요한 길목에 자리했다. 성이 함락되면 남자들은 모두 죽이자고 참모 이적(李勣)이 태종에게 건의할 정도로 견고한 속에 저항이 심했던 곳으로 당태종이 3개월에 걸쳐 공격했어도 결코 공략되지 않았었다. 당시 중국의 최첨단 공성도구와 무기들을 동원해서 공략했으나 60일 간의 지구전과 60만 연인원을 동원하면서 안시성을 내려다보고 공격할 거대한 토산까지 구축하면서 공격했으나 하나로 뭉친 성주와 성안 백성들의 강한 저항에 막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충차로 성벽을 무너뜨리면 목책으로 방어하는 한편 쌓은 토성은 산이 헐어져 무너지자 고구려군은 헐어진 곳으로 따라 올라가 오히려 토산을 점령해 버렸다. 이에 이 작전을 담당한 부복애를 참형하고 3일 동안 계속 공격했으나 성공치 못했다. 수많은 사상자와 산같이 쌓인 무기를 잃고 겨울에 가까워져 추위와 식량부족으로 질펀한 요하를 어렵게 건너 퇴각하고 말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전송하는 성주에게 당태종은 오히려 가상히 여겨 비단 백 필을 주면서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안시성은 고구려 멸망 당시에도 함락되지 않았다가 수년 후 검모잠 등의 후고구려마저 붕괴된 후에야 비로소 무너졌다.
<안시성 원경>
이 영화를 통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영화는 역사 그대로가 아니라 그것을 소재(바탕)로 삼아 허구성, 창작성이 가미된다는 점이다. 안시성전투 전초전격인 주필산전투다. 연개소문은 욕살(고구려 벼슬) 고연수, 고혜진 등에게 말갈병 포함군사 15만을 주어 지원케 하나 원로 장수 고정의의 자연지형에 의지하여 원정으로 인해 피곤하게 만든 다음 공격하자는 건의를 무시하고 야산에 주둔하여 공격하다가 고지를 차지한 적의 유인책에 말려 2만여 명의 군사를 잃고 항복함에 말갈병 3,300은 모두 생매장됐다. 포로가 된 고연수, 고혜진은 당군에 중용돼 안시성 전투에 투입된다. 이런 사실은 주필산전투라는 약간의 멘트로 영화에서는 처리된다.
양만춘과 연개소문의 갈등은 자객을 통해서 암시된다. 그러나 양만춘에 감화된 자객의 변심은 당시 고구려 내부의 정황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며, 여동생과 장수의 사랑, 음식을 사이에 둔 도부수(도끼부대)원들의 갈등과 그들을 화합시키는노력은 양만춘의 인간성과 지도력, 인간성 등을 부각시키려 설정한 복선들이다.
다음으로는 청야입보(淸野入保-들을 정리하고 입성하여 지킴)와 수성전 그리고 협력방어 등 우리 고대 전술들이다. 이 전술들은 산지가 많은 지형을 이용해 우리 민족이 수천 년에 걸쳐 이룩한 최적의 방어 방법이었다. 땅이 넓고 평탄한 중국의 전술과는 판이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전술로 백만의 수나라 대군, 20만 당군을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군사 5,000을 주면 허약해진 평양성을 공격하겠다고 건의하는 도종(道宗)의 건의를 거부한 것은 산성 간의 보급로 차단 등 협력방어전술을 의식한 당태종의 염려였다. 이런 점들도 고려하면서 보면 좋을 듯하다.
산성이 주된 방어 수단이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서 전개되는 전투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보여 주는 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창과 칼, 활, 도끼, 장창, 갈고리, 돌 등의 경보병용 병기 외에 공성탑, 토산, 팔륜누거(망루를 매단 수레), 운제(사다리형 무기), 충차(성벽, 성문 파괴용 강한 봉), 투석기, 쇠뇌, 목책 등을 포함한 다양한 공성무기들이 소개된다. 이 외에 동(棟), 지도(地道) 등의 알 수 없는 무기들도 사서에는 등장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우리 산성전에는 적합지 않은 것들도 많다. 실제로 기록 속 우리 산성전에는 경보병용 무기들 외에 운제, 충차, 쇠뇌, 목책, 투석기와 철질려(마름쇠) 등의 예들은 등장한다. 화공의 경우는 기름 주머니를 쏘아올려 사용한 것은 사서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방법으로 극적 효과를 위해 설정한 복선들이다.
손자의 병법에 天時는 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人和만 못하다고 했다. 영화 안시성 속에는 양만춘의 인간애가 진하게 부각되지만 그것은 5,000 성민들과 군사들을 결속케 한 人和의 정신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들이다. 지구전으로 겨울까지 버틴 안시성 전투의 천시는 날씨였다. 입구 방면을 제외한 삼면의 험한 지형적 조건을 잘 이용한 것은 지리였다. 이렇게 양만춘은 인화를 바탕으로 하고, 천시와 지리는 승리의 축들로 삼았다.
앞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역사가 아니다. 다만 역사를 소재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하는 허구적 창작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된다. 인물들은 의도를 달성하도록 이끌어 가는 도구일 뿐이다. 굳이 진위의 시비를 말할 필요는 없다. 스토리에 가미된 사소한 사건들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주려고 했는가, 그것을 위해 어떤 것들이 동원됐는가 등을 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사극이라면 중심 사건을 해치지 않는다면.
고대사, 고대 전쟁사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됐으면 한다.
첫댓글 조영연 선생님이 올리신 글을 허락하에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