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오전 11시 정각에 광림교회 신도들이 육군, 해군(해병대), 공군 등 6개부대를 직접 찾아가서 통일성취기도회를 개최한바 있다.
기도회를 마치고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김선도 목사 사모님이 일산 광림교회 박동찬 목사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오늘 열쇄부대를 방문했을때 브리핑 실내에 게시되어 있는 역대 지휘관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박정희 대통령도 있으며 김재규도 있던데!
김재규 부하로 있던 박선호 대령에 관련된 얘기를 하려고 한다고 운을 뗀 후
나의 둘째 아들이 어느날 아주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을 데리고 왔다.
그의 이름은 박동찬이었다.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고 알레르기성 피부병으로 고생하면서 어떤 날엔 가려워서 밤새도록 긁으면서 잠을 전혀 자지 못한 적도 있었다.
둘째 아들이 독일로 유학을 가면서 “아버지 어머니 저는 독일로 유학을 가더라고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조달 하고 집에는 전혀 손을 내밀지 않을 터이니 나의 유학비를 모두 박동찬이 학비에 보태 주세요” 라면서 내 대신 둘째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잘 보살펴 달라고 신신 당부 하기도 했다.
동찬이는 아주대학교를 졸업한 후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어떤때는 몇 달씩 행방 불명되기도 해서 둘째 아들이 그를 찾아 다니고 무척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저녀석이 왜 저러나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었다.
동찬이는 교회 청년부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다가 감리교 신학대학에 진학, 졸업 후 광림교회 부목사로 재직하다가 일산광림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다.
오늘은 10.26 박대통령 시해 사건 발생 31주년이 되는 날이다.
시해 현장에서 김재규의 부하였던 박선호 대령이 바로 박동찬 목사의 부친이라고 한다.
박선호 대령은 한때 자신을 가르쳤던 전직 교사 김재규의 부름을 받고 중앙정보부에 차출되어 근무하던 중 상관의 명령에 따라 사건 현장에 갔던 죄값으로 처형 되었는데,
그가 사형 형장에서 마지막 남긴 말은 "내가 지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처와 자식들을 남겨 두고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고 떠나는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하늘 나라에서 처와 자식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 할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그의 기도 덕분에 박동찬 목사가 방황의 시절을 끝내고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증거 하는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사모님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첫댓글 박 동찬 목사님의 어려움 이해 되네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버님의 일로 인하여 방황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상관의 명령에 절대 충성?[복종}한 박선호 대령의 훌륭한 아들이 있엇군요
끝까지 비굴하지 않었던 군인으로 기억되었는데 박동찬 목사 께서 방황후의
하나님을 만나 더 큰일 감당하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절대충성하는
교계의 큰 목사님으로 거듭 거듭 태어 나시기를 기도합니다..
방황하던 한 영혼을 주의 종으로 붙들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박선호 대령은 훌륭한 군인으로 기억되는데, 그 불행을 이기고 목사님이 되셨으니 하늘에서도 기뻐하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