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선남선녀보다 평범하고 못난 캐릭터에 열광
기업, 투자자 신뢰 원하는가? 과장하지 말고 솔직해져라
부정적인 뉴스도 공시하라 이젠 '투명성'이 힘이다
'마텔(Matell)'사가 만드는 바비 인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인형이다. 필자의 딸도 어렸을 때 '치어리더 바비'나 '백설공주 바비' 같은 여러 개의 바비 인형을 산 뒤 드레스를 따로 구입하여 갈아 입히면서 놀곤 했다. 바비는 금발머리에 오똑한 코, 팔등신 체구를 가진 서양 최고의 미인이다. 아이들은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바비와 자신을 동일시했을 것이다.그런데 최근 들어 바비 인형의 시장점유율이 예전 같지 않게 됐다. 바비 인형의 아성을 점점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양배추 인형(cabbage doll)'과 '아메리칸 걸(American Girl)' 시리즈 인형이다. 양배추 인형은 양배추처럼 얼굴이 뚱뚱하고 못생긴 인형이고, 아메리칸 걸 시리즈도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다. 그런데 이런 인형들에 현대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 넘볼 수 없는 미인 인형만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못한 인형을 더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아메리칸 걸 인형의 매출액은 바비 인형을 앞지르지는 못했지만, 격차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인간관계도 똑같다. 자기가 똑똑하다며 잘난 체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대담이나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게스트의 말을 수시로 끊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진행자들이 있다. 일부 마니아 팬이 생기기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진행자를 마음속 깊이 좋아하지 않는다.
똑똑하지 않고 실수도 종종 하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고, 게스트의 말에 같이 마음 아파 눈물 흘리거나 흥분하기도 하는 오프라 윈프리가 최고의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로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의 인기 비결
'1박 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의 인기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1박 2일'의 강호동과 MC몽은 누구나 다 아는 쉬운 구구단 문제도 자주 틀려서 밥을 굶기도 하고, 경쟁에 이기기 위해 남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심술궂은 모습도 보인다. '나만 아니면 돼' 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이고, 속이 아프다고 화장실에 달려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주 '1박 2일'과 '패밀리가 떴다'를 보면서 울고 웃는다. 최근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이 종료해 기존 멤버들이 빠지고 새 멤버들로 시즌 2를 시작한다고 하니 인터넷 게시판에 한동안 난리가 났을 정도다. '1박 2일'은 시청자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자 수만명의 지원자가 쏟아졌다. '겨울연가'나 '꽃보다 남자', '아이리스', '선덕여왕'에 아무리 최고 인기를 누리는 선남선녀들이 등장해서 멋진 연기를 펼쳐도 '1박 2일'과 '패밀리가 떴다'처럼 한국 문화의 한 조류가 될 만큼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1박 2일'과 '패밀리가 떴다'의 등장인물들이 나 자신 혹은 친근한 내 이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잘나서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깐깐한 사람보다는, 같이 술 마시고, 실수도 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한다.
물론 우리는 '아이리스'의 이병헌이나 김태희와 같은 영웅에 열광한다. 그렇지만 그런 영웅들의 이야기가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면 식상해지게 된다. 그때 나타난 이효리와 강호동의 인간적인 모습, 아침에 잠이 깨어 화장 안 한 얼굴로 눈을 비비면서 뛰쳐나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수수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 이효리와 강호동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우리와 똑같이 밥을 먹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남의 성공에 배 아파하고, 남의 아픔에 울어주기도 하는 인간이구나' 하면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부정적 뉴스를 공시하지 않는 한국 기업
그러나 기업들의 공시(公示)는 이런 사회 인식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앵무새처럼 '신기술 개발', '신사업 투자', '이익의 증대 예상', '새로운 혁신' 등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제 투자자들은 그런 기업 공시를 잘 믿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매수' 의견만 발표하는 애널리스트들의 투자 보고서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동화 속의 왕자님 같은 완벽한 남자 주인공과 천사 같은 마음씨와 미모를 가진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사실이 아닌 것처럼, 기업이 발표하는 멋진 뉴스들 역시 모두가 다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투자자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상당한 수준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발표한 뉴스 내용 중 반만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양치기 소년'처럼 실제로 긍정적인 뉴스가 있어도 기업의 주가는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되고, 부정적인 뉴스가 있다면 투자자들은 실제 상황은 발표된 것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추측한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간단하다.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도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즉 이효리와 강호동처럼 기업이 자신의 단점조차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준다고 투자자들이 받아들이게 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로 투자자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며, 기업의 자본 비용이 낮아지게 된다. 즉 기업이 더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차입할 수 있고, 배당을 적게 지급해도 주가가 하락하지 않게 된다.
한국 기업의 공시 행태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2000년대 한국 기업의 공시 내용 중 긍정적인 뉴스가 55%로 과반수이고, 부정적인 뉴스는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중립적인 뉴스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현재의 한국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즉 기업들이 공시하는 뉴스의 대부분이 긍정적인 뉴스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 추세가 점점 변하기 시작해서 부정적인 뉴스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뉴스의 공시가 더 많아졌다. 모든 기업은 아닐지 몰라도, 상당수의 미국 기업들은 이제 뉴스의 내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요한 뉴스가 있으면 투자자에게 적극적으로 이를 알리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뉴스를 알리지 않거나 거짓말을 한다면 철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의 법률적 환경도 이런 추세에 공헌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보수적인 입장에서 부정적인 뉴스를 더 자세히, 그리고 자주 공시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공시 내용 중 부정적인 뉴스가 50% 이상, 긍정적인 뉴스가 30% 정도이다.
우리는 너무 잘난 사람보다 약간 결점을 가지고 있는 보통사람, 또는 결점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을 마음속으로 더 사랑한다. 한국 기업들도 이제 이런 사회의 추세를 정확히 알고 경영에 적극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 ▲ 최종학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학·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00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6년간 홍콩과학기술대학 교수로 근무한 뒤 2006년부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콩과기대에서 6년 연속 우수강의상을 받았으며, 서울대에서도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