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절에서 수행을 6년여 수행을 마친 원제 스님(40)은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절에 들어올 때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스승은 절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산문(절) 밖의 선지식을 찾아내는 그 사람이 진정한 공부인”이라는 말을 여러 어른 스님들에게서 들어왔던 터였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며 수행하던 원제 스님은 ‘여기에 뭔가가 있다’, ‘이 사람(부처님)은 진짜를 말하고 있다’라는 확신이 들어 출가를 결심했다. 2006년 해인사로 출가,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다. 그러다 2012년 9월, 원제 스님은 산문 밖을 나가 2년여 시간 동안 5대륙 45개국을 다니는 세계 일주를 했다. 수행이 진척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한 답답함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한편으로 그동안 해오던 수행을 세계 곳곳에서 점검해야겠다는 결의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 불교와 선 수행을 알리고자 하는 목표도 있었다. 고집스레 두루마기 승복을 입고, 낡은 삿갓을 쓰고, 손엔 염주를 놓지 않았다.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복장을 고수한 까닭은 꽤 현실적이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저는 줄곧 두루마기를 입고 삿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많은 짐을 메고 걸어가야 할 때나, 스쿠터를 타고 운전할 때, 험한 산을 오를 때, 해변에서 수영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두루마기와 삿갓이었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두루마기와 삿갓 복장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이 복장이 저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다만 나로 살 뿐』 중)
스님이지만, 속세를 향한 수행 길에는 생활인으로서 애환도 있었다. 바로 예산 문제였다. 일부는 기부를 받았고 또 나머지는 여행비 절약으로 해결했다. 돈도 아끼고 문화 교류도 할 겸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잠잘 만한 ‘소파couch’를 ‘옮겨 다니는 일surfing’을 뜻하는 여행자 네트워크)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현지인 집에 머물며 식비와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 불교와 선 수행을 알렸다.
“저는 좋은 집을 가지고 더 안락한 조건을 제공하는 호스트보다는, 불교와 명상, 선(禪)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과의 만남을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검색으로 사용한 단어는 Buddhism이나 Meditation, Zen 등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재능 기부인데, 저는 선 수행이 제 전문 분야였기에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만나려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불교와 수행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고루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한국에서 찾아온 진짜 선승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고, 저로서는 세계 도처에 있는 불교 수행자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며 교류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다만 나로 살 뿐』 중)
스님도 세계 일주 여행자가 겪는 여행 매너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통상 100일 정도 여행 기간이 지나면 어떤 신비한 모습을 보아도 식상하고 감흥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 시간을 견뎌내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바로 여행을 삶과 분리하지 않고, 삶의 연속으로 사고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 매너리즘이고, 연인 혹은 부부에 겪는 일은 권태기이다. 여행이라고 해서, 스님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원제 스님은 구도자의 자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극심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도 있었고, 특이한 옷차림인 자신에게 다가와 축원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반야심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읊어주는 시간도 있었다. 원제 스님은 돌이켜보니 모든 순간순간이 수행이었고, 모든 이들이 살아 있는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제가 세계 일주를 하며 꼭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든 안 좋든 그 수많은 상황을 접하며 낱낱의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움으로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경험을 치러냄이 모두 훌륭한 수행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저는 세계 일주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 일주를 하던 당시에는 그런 여러 경험의 수행을 치러내느라 바빠서, 또 그렇게 비움으로 제대로 돌이킬 만한 사색의 여유가 없어서, 도리어 그것이 수행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듯합니다. 그때도 연습 중이었고, 지금도 연습 중입니다.”(『다만 나로 살 뿐』 중)
수행자가 결행한 세계 일주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희소하고도 의미 있는 간접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원제 스님은 2012년 9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25개월간의 경험을 블로그와 월간 〈해인〉에 연재했다. 그 여행기를 책으로 엮자는 요청이 많았지만 원제 스님은 여행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아직도 그 의미와 영향을 찾는 과정이고, 앞으로의 삶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확인될 것이라 믿고 있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는 신조를 지닌 원제 스님에게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책 속에서는 이렇게 전한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자연의 풍광도 좋고, 다양한 체험도 좋지만, 사람 사이의 만남이 역시나 가장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스님인 저에게 있어서 불교는 그 모든 만남과 소통의 시작이며 중심입니다. 불교 신자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불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들으며 제 경험을 들려주는 일이 제가 하는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다만 나로 살 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