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장래를 위해서? -
권다품(영철)
부부?
남편?
무게 있는 가장?
다 필요없다.
나는 그동안 '가정을 바르게 이끌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우기위해서는, 연극을 해서라도 자식들에게 근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라는 걸 오늘에야 알겠다.
자식들이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집을 만들어줘야 하고, 그 어리광을 받아줄 수 있는 엄마 아빠가 돼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아내가 마음 편하게 어리광처럼 말을 편하게 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줄 수 있는 남편이라야 하는 것도 이제야 알겠다.
"집안의 가장이 가벼우면, 마누라와 자식들이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한다."
옛날 사고방식으로만 살아오던 어른들의 말만 믿고, 가장이랍시고 엄한 척 하며 무게만 잡으려 했었나 보다.
"남자가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면 가벼워 보인다."
살맞대고 사는 아내에게마져 근엄한 척 하고, 또, 우서워도 웃음을 참아가며 근엄한 척만 하고 살았으니, 중국의 그 과한 성리학을 진리인 양, 비판 하나 없이 받아들였으니, 나는 정말 바보였나 보다.
나는 내 가족들이 뭘 원하는 지도 모르고 살았다.
자식을 엄하게 키워야만 바르게 큰다고만 생각했었다.
내일을 위해 엄하게 키운다?
내 이 바보스러움으로 인해, 그동안 쓸데없는 근엄한 척 했던 표정에 내 가족들이 겪었을 불안함이 얼마나 컸을까?
정말 바보같은 애비였다.
군자가 어떻고, 대인이 어떻고, 소인이 어떠니 하는 옛날 중국 사람들의 성리학?
중국 사람들이나 그렇게 살고, 옛날 사람이나 그렇게 살면 될 것이다.
조상들이 그렇게 살아왔으니 따라야 한다?
지금은 조상들이 사는 그 옛날이 아니라, 아버지의 표정에 따라 가정의 행복도 달라지는, 옛날과는 가치관이 달라진 세상이다.
또, 꼭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산다?
이것도 참 바보스럽다 싶다.
하늘 나라에는 '삼신 할미'라는 신이 있단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신이란다.
그런데, 삼신할미가 처음부터 어린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그런 신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집에서 고렇게 예뻐하는 자식들이 있으면 이 삼신할미가 시샘을 내어서 몰래 잡아먹는 악귀였단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아기들에게는 "예쁘다."거나 ""잘생겼다."라는 말을 하면, 애기가 부정을 타서 안 좋다고 하지말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울부짖음을 듣다못해, 삼신할미의 그 못된 시샘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삼신할미가 그렇게 예뻐하는 삼신할미의 아들을 숨겨 버렸다.
다른 아이들을 잡아먹고 집으로 돌아온 삼신할미는, 자신의 아이가 없어진 걸 알고는, 울고불고 미친 듯이 찾아 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다녀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울고 불며 미친 듯이 찾아다니는 삼신할미에게 부처님이 나타나서 물어보았다.
"너의 아들이 없어지니까 네 마음이 어떠냐?"
"부처님, 정말 가슴이 찢어지고, 살기가 싫습니다."
"그러면 여태 네가 남의 어린 핏덩이들을 잡아먹었을 때, 그 핏덩이 부모들의 마음은 어땠겠느냐? 네가 네 자식을 잃었을 때 아팠던 그 마음 만큼, 네가 잡아먹은 그 어린 아이들의 부모들도 너만큼 가슴이 찢어지지 않았겠느냐?"
삼신할미는 그때야 깨달았다고 한다.
"제 죄가 너무 너무 크다는 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제 아이만 찾아 주신다면, 여태까지 제가 지었던 죄를 뉘우치고 갚기위해서라도,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어린 아이들에게 병마와 모든 마귀들을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부처님, 제발 용서해 주시고, 제 아이만 찾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삼신할미가 그렇게 죄를 뉘우치는 걸 본 후에야 부처님은 삼신할미의 아들을 내어 주었고, 부처님을 통해서 삼신할미는 자녀가 그렇게 귀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병마나 잡귀들에게 시달려 아픈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아프면, 안타까운 마음에 삼신할미를 찾아 손을 비비며 아이의 안녕을 빌었단다.
지금부터라도 다른 집 자식들이 잘 됐다는 말을 들으면, 내 자식은 저 집 자식보다 더 잘 돼얄 텐데 하는 시샘도 버리고, 전보다 더 축하하는 마음도 가져야 겠다.
또, 나 자신의 권위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해방돼 보련다.
가족들 맘부터 생각해 보는 아비가 되기위해, 내 욕심들을 버리는 연습을 해 보련다.
집에 들어가고,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밝게 웃는 내 아이들을 보고 싶다.
아이의 장래?
그 올 지 안 올 지도 모르는 시간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버리고, 자식을 혹사시키는 그런 바보같은 짓은 이제 하지 않으련다!
이제부터라도 가족들이 보는 내 얼굴에다 억지 웃음이라도 좀 얹어봐야 겠다.
제발 늦지는 말아얄 텐데....
아비의 체면?
이제 그 따위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내 생각에는 좋은 대학을 다녔다고, 꼭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또,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부모를 외면하는 인간이라면, 그 좋은 대학 졸업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으며, 좋은 직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서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지고, 엄청난 돈을 벌면서도 이혼을 해서, 자식들이 아버지 눈치를 살피고, 엄마 눈치를 살피게 한다면, 그런 좋은 대학에서는 자식들의 그런 아픔은 가르치지 않고, 자신들의 행복 추구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꼭 그렇기야 할까마는, 공부를 많이 해서 개인의 행복 추구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한다면, 차라리 그런 대학이라면 안 보내는 게 맞을 것 같다.
'돈을 좀 덜 벌면 어떤가? 돈보다는 가족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다.
또,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 보다는, 얼마나 착하게 크고, 어떻게 행복하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싶다.
이제 나도, 꼭 필요한 말이 있어서만 자식들에게 전화해보는 삭막한 아빠보다는, 집에 들어갈 때 "뭐 먹고싶은 거 있나? 니 먹고싶은 거 있으마 아빠가 사 갈게." 이런 전화도 해 봐야 겠다.
다른 아빠들이 자식들에게 어떻게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또,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 방식대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자식들이랑 같이 어울려 웃어봐야 겠다.
어이, 현실에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또, 중국에서 온 시덥잖은 그 유교적 사고로 자녀들에게 웃음을 뺏을 필요가 있겠나?
인자 세월도 많이 바뀠다 아이가!
꼭 서양의 나쁜 문화까지 받아들일 필요야 없겠지만, 우리 어른들의 좋은 문화는 받아들이고, 아무리 우리 조상들의 문화지만 나쁘고 고루하다 싶은 것은 과감하게 버려 뿌야지.
서양 것도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이야 우째 생각하든지, 나는 내 생각대로 살란다.
2010년 11월 23일 새벽,
못나고 초라한 애비 영철이가.....
2022년 10월 6일 낮 12시 35분,
다시 쪼매이 고쳐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