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북한 인민여배우 우인희가 승용차 안에서 북송 재일동포 청년과 사랑을 나눈 뒤 배기가스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남자는 죽었지만 우인희는 살아남아 사상투쟁회의에 넘겨졌다.
그는 자아비판은커녕 정권 유력인사들에게 성(性) 상납을 해왔다고 폭로하며 정면으로 맞서다 끝내 공개 총살당했다.
▶김일성종합대 학생들은 수업은 빼먹어도 두어 달에 한 번 열리는 사상투쟁회의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아' 꼭 간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남학생이 약혼자에게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가 사상투쟁회의에 서게 됐다.
자아비판을 듣고 난 총장이 "그래서 (약혼자와) 살겠다는 건가 안 살겠다는 건가"라고 다그치자 남학생은 "살겠습니다"라고 고함쳤다.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썼던 북한 대표팀이 귀국했을 때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2년 뒤 김일성이 갑산파를 숙청하면서 불똥이 선수들에게 튀었다.
갑산파가 월드컵 성과를 자기네 업적으로 내세웠던 탓이다.
선수 대부분이 사상투쟁회의에서 자아비판을 한 뒤 함경북도 시골로 추방됐다.
선수들은 "8강전 포르투갈 경기를 앞두고 외국여자들과 잠자리를 해 힘이 빠져 역전패했다"는 누명까지 둘러써야 했다.
▶사상투쟁회의는 말·행동·사고방식의 잘못을 털어놓고 자아 또는 상호 비판을 하도록 하는 주민통제장치다.
올해 44년 만에 남아공월드컵에 나갔지만 전패(全敗)한 북한 축구팀이 사상투쟁회의에 회부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다.
참석자들이 김정훈 감독과 선수들을 비판했고 끝무렵엔 선수들도 한 명씩 김 감독을 비판했다고 한다.
김 감독이 당에서 쫓겨나 평양 건설현장 근로자로 '하방(下放)'됐다는 소문도 있다.
월드컵 성적을 김정일 아들 정은의 공(功)으로 포장해 후계 굳히기에 써먹으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거꾸로 김 감독을 희생양 삼을 모양이다.
▶김 감독은 월드컵 기간 "장군님(김정일)이 개발한 눈에 안 보이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전술 조언을 받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포르투갈전에서 공격 일변도로 나가다 7대0으로 지자 전문가들은 "수비형인 김 감독 전술이 아니다.
'김정일 감독'이 눈에 보이지 않는 휴대전화로 엉뚱한 지침을 준 모양"이라고 했었다.
주체(主體)의 나라에선 감독을 맡는 것도, 선수 노릇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듯하다.
지난달 21일 남아공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7-0으로 참패한 북한 축구대표팀이
귀국 후 사상 비판에 회부됐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7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지난 2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월드컵에 참가한 축구선수들을 놓고 사상투쟁 회의가 열렸다”고
‘북한 소식에 정통한 중국인 사업가’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재일동포인 정대세와 안영학 선수는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방송은 밝혔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박명철 체육상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월드컵 참가 대표선수들에 대한 비공개 대논쟁 모임이 있었다”며 “(모임에는) 체육성 산하 종목별 선수들과 평양체육대학·김일성종합대학 등의 체육학부 학생 400여 명이 참석했다”고 소개했다. 또 “대표팀의 김정훈 감독과 선수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체육성 산하 종목별 선수 대표와 대학 대표의 비판이 벌어졌 다”고 전했다. 방송은 “회의 말미에는 대표팀 선수들을 한 명씩 내세워 김정훈 감독을 비판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포르투갈전을 북한 중앙TV로 생중계했다.
하지만 참패로 끝나자 TV 해설자가 말을 잃어버리고 중계를 서둘러 마쳤다.
이 때문에 축구팀은 물론 생중계 결정으로 망신을 초래한 선전·선동라인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돼왔다.
특히 44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활용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자유아시아방송은 한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대논쟁의 내용이 ‘김정은(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의 셋째 아들) 청년장군의 믿음을 저버렸다’는 것이어서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아마 김정훈 감독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첫댓글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냥 안쓰러운 마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