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展 / KIMYOUNGJIN / 金永璡 / painting
2009_0611 ▶ 2009_0830 / 월요일 휴관
김영진_무녀도_광목에 채색_39.5×50.5cm_1988
초대일시_2009_061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3월~10월_10:00am~07:00pm / 11월~2월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관람료
어른(25~65세 미만)_1,000원(단체 700원)
청소년, 군인(13~25세 미만, 부사관 이하 군인)_700원(단체 500원)
어린이(7~13세 미만)_500원(단체 300원)
경남도립미술관_GYEONGNAM ART MUSEUM
경남 창원시 대방로 1 경남도립미술관 제 4전시실
Tel. +82.55.211.0333
www.gam.go.kr
6월 11일부터 8월 30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제4전시실에서 1991년 작고한 故 김영진 화백의유작전으로 작가 김영진의 유작을 통하여 그의 예술생애를 조망하기 위한 전시이다. 마음속 깊이 절망과 공허를 안겨준 6.25전쟁과 그 폐허, 이 사건이 청순한 가슴에 묻어준 이 민족적 비극과 한의 언저리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잉태했다는 智山 金永璡 화백 부친께서 한의원을 운영하셔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함양초등학교를 거쳐 함양중학교 시절 정문현 선생의 영향을 받았고 함양농고에 들어간 후에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본미술전문학교 출신의 초등학교 스승인 하성근 선생으로부터 2년간 뎃상을 배우게 되었지만 집안의 장남이 그림을 한다며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지만 선생의 고집과 집념으로 결국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시골출신으로 대학에서 자신의 실력이 상대적으로 모자람을 깨닫고 3년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하였다.
김영진_무녀도_광목에 채색_68×57cm_1990
김영진_무녀도_광목에 채색_72×63cm_1990
김영진_무녀도_광목에 채색_74×47cm
대학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와보니 5.16혁명을 맞고 사회가 불안한 탓에 가사가 어려워 웅곡(熊谷. 곰실)에 들어가 땅을 개간하여 약초를 재배하기도 하였다. 1965년부터 함양여고 교편을 잡은 후 마산고(67~68), 사천중(69), 진주고(70~77), 마산고(78~80)을 거쳐서 80년 고성 영천중학교에 부임하면서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작품에 열정을 쏟게 되었다. 그러나 줄곧 강령하게 솟구쳐 오던 작품에의 귀의의식(歸依意識)으로 5월에 교직을 떠나게 되었다.
김영진_무녀도_한지에 채색_44×53.5cm
김영진_소년_한지에 채색_64.5×45.5cm_1991
선생의 작품세계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무당의 굿, 꽹과리나 마을 앞 두렁에서 밤새도록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통해 어릴 적 전쟁을 통한 피침으로부터 잉태한 민족적 恨, 그리고 아득한 조상의 소리를 표출함으로써 인간의 영적세계를 그리고 있다. 또한 무당의 굿과 꽹과리의 시청각 감흥은 무한한 정신적 영감을 일게 하는 것이었다. 고인 물은 부패하기 쉽듯 선생의 작품 성향은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여 경질(硬質)의 정신을 거부함으로써 정직하고 맑고 깨끗한 아침햇살 속 풀잎이슬을 맺으려한다. “욕심만으로 그리면 거짓이 깃든다.”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먼저 자기 정화가 선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한편으로, 선생은 마산미협 체계 확립에 남달리 노력해 왔다. 80년 사무국장 재임 시 미협역사 정리, 수첩제작을 시작으로 81~82년 이수홍 화백 화비건립 기금모금과 화비건립을 주도적으로 추진 결실을 맺게 하였고 특히「마산미술 50년사」를 편찬함으로써(89. 10. 12 출판기념회) 향토미술의 체계정립과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 경남도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