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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김포, 영진5만지도94쪽 한남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분기하여 흐르다가 인천의 최고봉 계양산을 솟구친후 아라뱃길에서 끝이 나지만 경인운하인 아라뱃길이 생기기전 산경표에 의한 산줄기를 아쉬운 마음으로 문수산으로 이어가고들 있습니다 지금의 아라마루 휴게소가 있는 곳이 운하가 생기기전 계양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안부를 만드는 등고선상50m인 성황당고개입니다(지금은 해발0인 뱃길이 되고 말았지만) 바로 그 성황당고개에서 올라간 등고선상90m 살짝 오른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纛室봉(△100.4, 0.3)-범어골고개도로(70, 0.2/0.5)-둑실고개도로(70, 0.2/0.7)-천주교공원묘지-당하고개도로(50, 1.2/1.9)-장로교공원묘지-황해도민공동묘지-검단고개도로(50, 1/2.9)-만수산(110, 0.5/3.4)-고산(110, 0.7/4.1)-고산후고개도로(70, 0.4/4.4)-황화산(△128.3)어깨(110, 0.5/4.9)-신원당고개도로 (50)-구원당고개도로(50, 0.5/5.4)-金井산(156, 0.6/6)-풍무고개도로(70, 0.5/6.5)-章陵산(150.3, 1/7.5)-도로(50)-김포경찰서 삼거리도로(10, 1.6/9.1)-김포성당봉(△44.3)-걸포삼거리(10, 0.6/9.7)-신향마을을 지나 나진포천이 김포천(계양천, 걸포하천)을 만나는 곳(10, 1/10.7)에서 끝나는 약10.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신경수님 글] |
ㅁ산행코스 : 독실동아라마루전망대 버스정류장-분기봉(X90)-둑실봉-범어골고개도로-철탑-둑실고개도로-철탑(39번)-천주교공원
묘지)부활의도안)-공원도로-성직자묘역 앞 도로-하늘의문 묘원-당하고개도로(중앙분리대)-장로교묘지-황해도 도민회
묘지-검단고개도로(육교)_만수산-고산후-고산후도로(2차선)-유적지내 발굴조사 현장-산불초소(X123.1)-황화산-산불
초소(X123,1)-유적지내 발굴조사 현장 위-원당고개도로-원당고개도로-승가대학 안부-고산(X123.4)-승가대학 안부-금
정산(156), 정자-풍무고개도로-(포장마차)-김포 장릉(인헌왕후)-장릉산 산책로 공원-장릉산 회주산책로-군부대 앞(장
릉산-북변터널-김포교회-김덕문 외 12용사 위령탑-김포초등학교-김포시내-걸포삼거리- 아파트-걸포초교사거리-
걸포공원후문 버스정류장-걸포중앙공원-서초교
[산행지도]
한겨울 마음만이라도 산으로 가고 싶기에 배낭을 진다. 들은 것이 없어 가볍지만 산책이라도 할 겸 가까운 거리에 있는 김포의 장
릉 인헌왕후의 묘가 문득 생각 나기에 그리로 발걸음이 갔다. 산줄기를 그려놓고 책상 속에 묻어 두었던 지도를 꺼냈다.
부평역에서 계양역으로 인천지하철을 이용하였다. 계양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지선버스 597번으로 환승하여 목삼교 건너 아라폭
포지나 독실동 아라마루 전망대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게 된다. 지도에 표기된 둑실동인데 독실동으로 되어 있는 버스정류장에
서 산행준비를 하여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독실동 아라마루 버스정류장]
우뚝 서 있는 계양산의 짙은 구름은 숨을 죽이고 잠시 흐름은 멈추었다. 어쩌다 올랐던 저 산에 눈이 내리고 살포시 진달래꽃
피는 산정에 잠겨들던 봄날의 어느 날이 스쳐갔다. 한남정맥의 계양산을 오르던 날도 그 때였었다.
아라마루 휴게소가 보이는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아라천이 끊어놓은 성황당고개를 지나 도로 옆 산으로 올라 묘 2기를 지나 또 묘
2기를 지나자 잔솔가지 사이 오솔길을 오른다. 잔설처럼 남아 있는 눈에 눈에 가고 한남정맥에서 갈라지는 90봉에서 살짝 오른
봉우리 '소부대전술훈련장'이란 비가 세워져 있는 분기봉에 발을 밟는다.
[분기봉]
5년 전 왔었던 사진첩마져 기억에 없는 산줄기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은 둑실봉으로 옮겨가게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춥지 않았다.
높지 않기에 편히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맞는다. 길섶 휑한 나무가지 아늑한 둥지서 푸다닥 나는 꿩이 날 놀라게 하고 산속 고요
도 정적을 깨운다.
[둑실봉 △100.4]
눈을 쓸어 소삼각점을 찍어 이미지를 남겨 둑실봉을 내려선다. 지형적 특성이 살아 숨쉬는 곳, 교통호와 벙커를 지나 흐릿한
길어 들었다 내려선다.
[범어골 고개도로]였다.
고개 서쪽으로 준모동 서너 채의 집이 보인다.
철탑 아래를 지나 향나무가 있는 묘지를 지나 내려서면 통신시설물이 있는 [둑실고개]도로로 내려섰다. 서쪽으로 '둑실굿당'의
팻말이 있는 전선주의 도로따라 갔다 묘지 위로 올라선다.
[39번 철탑]
잘 관리되어 있는 묘지군을 지나 천주교묘원의 도로를 따르게 된다.
[천주교구묘원]의 도로를 따라 가며 '부활의 동산'비가 세워진 길따라 가며 저 멀리 당하지구아파트숲이 조망되는 공원묘지가 커
다란 동산을 차지하고 있다.
[천주교원]도로따라
'성직자 묘역'을 지나 사무소가 있는 길을 나오면 연두색 철책을 친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인천교구묘원'비가 새겨져 있는 [당하고개]로 내려섰다.
당하고개도로에는 중앙분리대가 있어 건널 수 없고
[하늘의문 묘원]의 도로따라 걷다 도로의 신호받아 당하고개 도로를 건너 [장로교 묘지]로 올라선다.
장로교 묘지 길따라 큰 고압선의 무서움을 잠시 느끼며 묘지 위로 오르게 되며 원당지구의 아파트가 철탑아래 조망된다.
장로교 묘지 위에서 길은 밭사이를 가르며 가게 되며 겨울나무 사이로 원당지구의 아파트를 보면서 걷게 된다. 황해도민회공동
묘지가 길따라 이어진다.
[황해도민공동묘지]
빨간깃발이 보이는 문수산 아래 황해도민공동묘지가 차지한 산릉을 걸어 가게 된다. 문수산이 보이는 저 산으로 나 혼자 이면서
겨울나무 사잇길 올라 이 겨울의 풍경속에 오른다.
바람이 멈춘 오늘
햇빛마져 구름에 숨어 이 으슥한 산릉에 쓸쓸함이 맴돌아 돌고 돌아 간다.
[검단고개]도로의 육교에는 '노을이 아름다운 서구 장서진'이란 글이 도로벽에 붙고 널따란 6차선 도로를 건넌다. 동쪽으로 원당
지구의 아파트가 가득 짙은 구름속에 비친다.
여기저기 참나뭇잎들이 내 발소리에 바스락 소리를 내고 부서진다. 겨울나뭇잎도 바싹 얼어 붙었다.
문수산 오르는 능선길에는 운동기구를 지나 빨간깃발이 보이던 문수산이다.
[문수산]
바람이 차다. 문수산의 깃발이 휘날리고 산자락에 내 입김이 퍼져갔다. 길가에 세운 빨간깃발의 의미는 무엇일까.
문수산에서 운동기구가 있는 산릉으로 돌아와 길은 동진하여 가며 고산후를 따라간다.
또한 고산후란 지명인지 산봉우리인지 알 수 없는 궁금증을 가지며 오솔길따라 가는 산릉아래에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출입금지 사격중'이란 팻말이 붙고 육군 제5602부대장의 경고판이 수시로 세워져 있는 부대 철조망을 따른다.
[x103.4]봉
경고판 뒤 산봉우리를 쳐다보며 산릉위로 올라섰다. x103.4봉이 철망 안에 갇혀 있고 발걸음은 잠시 흐름을 멈춘다.
바람소리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서가자.
혼잣말 소리가 크게 발자욱 소리가 빨라졌다.
'황화산 정상 1.5km'에 황화산의 이정목을 지나 도로로 내려서면 [고산후고개]도로였다.
고산후고개를 지나 벌거벗은 산을 깎아놓은 곳, 유적지내 발굴조사 현장으로 출입금지 간판이 수시로 붙어 있는 산릉을 지나
오른다.
[유적지내 발굴조사 현장]에는 모두를 비워 놓고 땅만을 드러내고 땅을 파 현장을 간간이 드러내고 있었다. 동진하게 되는
길을 잠시 두고 북진하여 황화산으로 갔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x123.1봉을 지나 구불어져 가는 느낌이 여울져 가는 것처럼 황화산으로 올랐다. 의자가 있어 잠시 쉬어
휴식을 하기에 안성맞춤 겨울산이 아늑해진다.
[황화산]의 삼각점과 같이 사진에 담았다.
발굴조사 현장 위까지 되돌아와 동진하여 갔다.
철탑이 보이는 산릉으로 연결되는 낮은 구릉따라가게 되는 산줄기가 쉽지 않았다. 철탑아래 쓰레기더미가 있는 공터로 내려오
게 되는데 넝쿨진 풀덤은 엉켜있고 길이 없었다.
잠시 잡목숲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공터로 내려서 폐허가를 지나 집이 보이는 도로에 닿는다. [원당고개]도로였다.
원당고개도로
집이 보이는 길를 따라 폐허가를 지나면 또 도로를 건넌다. 이곳 역시 전선주가 즐비한 원당고개로 불리나 보다.
휑한 나무가지 채워진 마루금을 오른쪽에 두고 임도를 따라갔다. 좋은 길도 잠시 폐허가 옆 산릉으로 올라서면 잡목이 발을 잡
고 있었다.
산책로로 간간이 객의 모습이 보인다. 중앙승가대학교 안부였다. 금정산과 삼성쉐르빌의 작은 팻말이 길가에 서 있는 승가
대학교를 안고 있는 고산으로 올랐다.
[고산 x123.4봉]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고산에는 이렇다 할 이미지가 없었다. 산봉우리 역시 정상같지 않았다.
승가대학교 안부로 내려가는 길에는 '시련의 언덕길'이란 팻말이 땅위에 붙고 '고지가 바로 저긴데'란 팻말로 금정산을 가리키고
있는 팻말도 있었다.
승가대학교 안부로 되돌아 왔다.
[금정산 정상]표지석
[금정정]의 정자 아래 산객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가 그 무엇인가가 어렴풋한 그리움을 다가온다. 소주 한 잔이 그렇고 정다운 삶 속
의 정겨움이 그대로 묻혀 냈다.
흰로프줄이 가지런히 길따라 이어지는 산릉을 따라간다.
목책계단에 붙은 24절기의 절기이름이 붙고 얼마쯤 내려왔을까. 노란 건물이 왼쪽으로 들어왔다. 양쪽으로 철책을 따라 이어
지는 금정산 내리막은 도로였다.
[풍무고개]였다.
풍무고개 비닐포장안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시며 잠시 쉼을 하여 인헌왕후의 장릉으로 가기 위해 단맥의 길을 버리고 산책로를
따랐다.
간간이 교차하는 분들도 만나게 되고 장릉저수지를 지나 김포풍무 현대 힐아파트의 현수막이 걸린 도심속에 장릉공단의 산책로를
이어갔다.
장릉으로 가는 길~~
드디어 '김포 장릉'의 커다란 간판이 세워진 김포장릉 입구
장릉
추존 원종과 인헝왕후의 능 원종(1580-1619)은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와 인빈 김씨의 셋째 아들로, 1587년 (선조20년) 정원군에 봉해졌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 올라 선조를 모신 공으로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1623년(인조 1) 첫째 아들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으로 추봉되었고, 1632년(인조 10) 왕으로 추존되었다. 인헌왕후(1578-1626)는 능안부원군 구사맹의 다섯째 딸로, 1590년(선조 23) 정원군과 혼례를 올리고 연주군부인에 봉해졌다. 원 종 사이에서 3남(인조, 능원대군, 능창대군)을 낳았다. 1623년(인조 1) 첫째 아들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계운궁 연주부부 인으로 높여졌고, 1632년(인조 10) 왕후로 추존되었다. |
입장료 1,000원의 입장권을 구입해야 했다. 나무숲 길을 따라 유적지 답게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이란 대형 장릉역사관
을 지나 재실이 보이는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홍살문으로 들어서면
경사진 지형에 따라 향, 어로가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향. 어로는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박석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제향 때 향을 들고 가는 길이라 하여
향로라고 하며, 오른쪽 약간 늦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로라고 한다.
어로를 따라 걸으며 정자각으로 느린걸음으로 옮겼다.
[정자각]안으로 보이는 문 밖으로 능침이 보였다. 제향을 올리는 정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정자각은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단다.
[비각]
은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두는 곳,
[인헌왕후 육경원 비석 받침돌]이 남아 있다.
1626년 인헌왕후가 세상을 뜨자 김포 성산 언덕에 안장하고 원호를 육경원이라 했다. 육경원 조성 당시의 비석 받침돌이
출토되어 보존되고 있다.
정자각과 추존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과 장릉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곳,
[정자각, 비각, 수복방]
조선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
그러기에 대부분의 왕릉에서 사라진 연지를 볼 수 있는 이곳의 연지에서 머물고 싶었는지 모른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채 추위에 움츠린 아름드리 나무숲길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새소리가 들려 자연을 만
끽할 수 있으리라.
오롯이 산도 좋지만
산줄기도 가지만
산아래를 보고 싶었다. 오늘 만큼은,
장릉을 나와 산책로를 따라 장릉산으로 옮겼다. 가는 길은 제한구역의 안내판으로 오를 수 없었고 장릉산 공원을 지나 산책로
를 따랐다.
산책로에는 김포시가지가 발아래 였으며 장릉산이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오를 수 없는 경고문이 수시로 붙어 있었다.
'건강지압 보도'길을 지나 장릉산의 현위치4 번호판이 있는 도로 위로 올라 장릉산의 정상으로 가까이 갔다. 군부대 정문앞에
섰다.
장릉산
장릉산의 사면으로 돌았다면 이곳으로 나왔을 곳을 생각하며 도로따라 내려서 갔다. '장릉산 회주산책로'란 팻말이 세워진
길다란 도로를 따라가다
진지가 보이는 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산으로 들었다.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북변터널에서 보이는 김포시내의 시가지가 조망
되고 김포교회와
[김덕문 외 12용사 위령탑]을 지나 김포초등학교 사잇길로 내려 서 김포시내로 내려섰다.
[김포성당]이 보이는 산줄기를 보면서 발길을 옮겼지만 건물들이 가로 막았다.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왼쪽 도로를 따라
48번도로의 김포세무서와 경찰서의방향따라 교통표지만을 보고 걸었다.
교통판은 경인항(김포)로 안내했고
걸포삼거리
걸포초등학교와 OSTAR 파라곤 아파트와
[걸포초교사거리]를 지나
걸포공원 후문의 버스정류장을 지나 서촌과 향교촌의 마을을 지나
[걸포중앙공원]의 마루금을 보면서 도로를 따랐다.
[서촌교]였다.
나진천의 얼음이 떠 있다. 98번 도로는 인천, 강화와 문산, 고양으로 가는 도로가 앞에 나란히 가로 막았다. 그 뒤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는 걸포하천 어딘가 보다.
걸음은 서촌교에서 되돌아 나왔다. 중앙공원의 정자로 올랐다.
[걸포중앙공원]의 정자에 올라 보면 한강을 보고 싶었다. 합수부를.
정자에 올라 합수부를 향했지만 선명한 그림은 소나무가 가로 막았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걸포는 지금 공사 중이었다.
벌써 하루가 가고 있다.
서둘러 스틱을 접고 버스에 올라 임학역인 인천지하철로 부평까지 와 환승하여 귀가 하였다. 오랫만에 나선 산줄기는 김포시내
도심을 지나는 산줄기 보다 인헌왕후 장릉의 능침이 비치는 장자각이 선명했다.
다시 컴퓨터를 켰다.
[끝]
첫댓글 자세한 후기 감사 드립니다. 저도 둑실봉 에서 고산 금정산 가보고 싶어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