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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3;1-6절] 하나님의 임재,나의 하나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불안해진 사람들은 아론을 찾아가 자신들을 인도할신을 만들라고 요구 한다. 결국 32장에서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중 최악의 죄를 범한다.
출32;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
금송아지을 만들고 “ 이 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원한 신” 이라고 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불안을 달래려고 보이는 하나님을 금송아지 라고 하면서 만질수 있는 하나님으로 만든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사이에서 3000명가량 도륙 당하고,,,,
출32장26-28절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그리고 모세의 중보기도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출애굽기33장)
“이제 내가 너희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라.
천사들을 먼저 보내 너희들 앞에 있는 적을 무찌르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을 무찌를 것이니
“가라. 약속한 땅으로 올라가라.
나는 너희를 애굽의 노예생활에 꺼내어 주었고”
‘내가 너희들을 약속의 땅으로 보내니 어서 가라
모세, 너는 어서 이들을 이끌어라. 천사들을 보낼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 보다 더욱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동행]에 관한 이 위대한 깨달음을 중심으로 두지 않고서도 말입니다.
천사들이 앞장서서 적들을 물리치고 약속의 땅으로 보내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땅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내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괜찮아 보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
모세의 중보기도을 통해서 멸하지 않치만 ,,용서 하지만,, 이런 용서는 선조와의 약속 때문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 [출33;1],
사실 이스라엘은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때가 많았지만 하나님 다윗과의 언약 때문에 멸하려고 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자”을 앞에 보내어 모든 것을 예비하고 돕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거리을 두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까이 하기에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알게된 이스라엘 진영은 순식간에 초장집으로 변했다. ...통곡합니다. 왜?
출33; 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그리고 이스라엘은 어떨게 해서든지 흔들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고자 우상이 새겨진 “장신구”제거하는 일들을 행한다.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6절] 왜?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의 성도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나타나심] 없이 살아가는 것 무척 심각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관계- 영적 관계입니다.
모세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할가?
“ 다윗은 ” 하나님이여 주는 하나님의 하나님이시니 . 내가 간절히 주님을 찾습니다. 왜?요
왜? 주님의 나에게 이 일을 하셨지?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속상해서, 의심과 불평으로 마음을 채웁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즉 개인적인 관계을 의식 합니다.
시편기자의 말처럼 “ 우리가 하나님외에 누구에게 나아갈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을뿐만 아니라 그럴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것 과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듯이 똑같은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다윗은 “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그영혼의 모든 갈망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갈망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시고 그를 내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처한 환경보다 하나님께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적군에게 에워싸였습니다. 능력있는 장수가 압살롬과 왕을 않히기 위해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환경은 불확실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 그를 버리시지 않는다며, 떠나시지 않는다면 ,,,
확신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한걸음 더 나아가 “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다” 고 말합니다.
참 신앙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이 주제는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는 바로 이런 면입니다.
롯은 그의 눈이 평지와 세워진 도시와 풍성함에 머물렀지만 아브라함은 그의 눈이 하나님이게 있었으므로 들판으로 족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것이 참 삶의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 이것이 나의 삶의 전부이다” “ 죽는것도 유익합니다. 왜 ? 이렇게 말합니까?
나의 안전 보다... 이 어려운 곤경보다,,, 반역자에게 적개심을 두지 않고 “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이세상은 지나가는 , 일시적인 삶의 계속인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은 이 땅에 집중하도록[신문, 책,오락,매체] 이끌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삶을 집중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존재와 삶의 유지에 나아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습니다. 설사 가장 좋을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지혜는“ 우리가 여기는 영원한 도성은 없고....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그 속에는 실속이 없고 공허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세상의 향락은, 그 자랑과 뽐냄과 함께 모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더 이상 세상의 향락에 넋을 잃지 않습니다.
마6;19]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이것이 최상의 상태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나, 다윗이 하나님을 갈망 하는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분 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말로 표현 하기 어렵지만 표현하자면....
사람을 해본적이 있다면 사람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원하는 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은 그 재물도, 친구도, 그 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들 불행 합니다.
#공주 자리 버리고 사랑 찾아 떠난 일본 마코 공주, 뉴욕서 남편[한 법률회사 사무원]과 버스 데이트 즐기는 모습 포착
왕족 신분과 황실에서 주는 16억의 지참금을 포기하고 사랑을 떠나 미국 뉴욕에서 생활 중인 마코 공주의 근황이 오랜만에 공개됐다. 일본 국민 97% 결혼 반대했다.[공주의 왕적에서 빠지고,명예와 돈,,,잃어도]일본을 떠나 뉴욕에서 생활 중이다.* 공주의 남자...이남자의 매력은 뭘까? 마코공주의 모습은 여느 신혼부부와 다를 것 없어 보였다.
하나님의 임재는 다윗의 모든 것입니다.
나의 모든삶 보다도 나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더 귀중 합니다.
온전한 만족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어찌할바 모르고 슬퍼하는 어린아이가 아빠나 엄마를 볼때에 온전히 행복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 하신분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그의 모든적 들을 물리치십니다.
그 분안에 거하는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는 생명자체 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모든 것이 사실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과 달리 우리의 경쟁력은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것 입니다.
창21;22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시편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신앙 생활은 모든 삶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은 경험 하는것 입니다.
삶속에 하나님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신앙인이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가 전쟁에 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병들어 죽을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하고 도망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열방과 이스라엘이 다른 이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설령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독특한 정체성[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다.
빌리 선데이는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실패하는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생[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의 목적[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목표]이 없어서이다.”
배가 고프니 먹고, 피곤하니 자고, 나이가 들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니 아이를 교육시키고, 먹고살자니 돈을 벌고, 그러다 늙어 죽는 것이 인생입니까? 그런 것은 돼지도 소도 다 합니다.
먹고살고, 자식을 낳는 것은 짐승도 다 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서 안 됩니다.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도가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성도 독특한 정체성[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다.
과연 하나님이 그 중심에 있는 것입니까?
그가 진정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입니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아야 하는데
우리에게 그 깨달음이 있습니까?
이러한 깨달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관심 없습니다.
젖과 꿀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저 원수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당신을 원합니다.”
시편 23편 1절에서 6절의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는도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 저는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소원입니까?
또 시편 122편 1절에는 다윗의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귀하니 그의 즐거움이 왕궁에, 왕의 자리에 있지 않고 성전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나중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사모하고 사랑한 성전은 아름다운 성전이 아니라 천막, 휘장이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그가 나단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아무것도 아닌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내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가운데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겠습니다.”
“왕이여,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단 목사님에게 “나단, 아니야. 다윗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린 군인이라 내 집을 지을 수가 없다. 그의 아들, 평화의 사람 솔로몬이 내 집을 짓는다. 그러나 내가 다윗의 마음은 받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함께 하며 너를 존귀케 해주겠다. 네 집이 영원히 내 앞에 있게 하고 네 집이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는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겠습니까?
다윗은 자기가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된 것을 알자 아들이 짓도록 자기 보물과 모든 것을 다 쏟아 준비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치고도 아까워하지 않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을 사랑하셔서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역대상 29장 28절에 보면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함에 처하다가”
다윗은 부귀와 영화와 존귀를 다 누렸습니다.
그는 복을 따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함께하지 않으면 더 이상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본질을 그들은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어떤 번영이나 어떤 종류의 성공도 하나님의 부재[그곳에 있지 아니함]를 결코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 16:26)
하나님을 아십니까?
그가 당신과 함께 하시며, 당신의 삶에 계십니까?
당신의 삶 속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계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또 당신의 삶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