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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반도 위기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추리 소설이며, 등장 인명·지명·기관·사건 등은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제21화 킹메이커의 야망]에서 계속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
제22화. 역사의 반전]
“지난번 자네가 역사를 바꿀 전략이 있다고 했지?”
대통령 상욱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동혁을 바라보았다.
“오늘 한번 들어보세. 자료가 있다면 가져오고.”
대통령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눈빛이 기대인지, 경계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자료는 없습니다. 워낙 극비 사안이라서…”
대통령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더 궁금하군. 어서 말해 보시게.”
동혁은 숨을 고른 뒤,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나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표정은 긴장과 호기심 사이를 오갔다.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되묻기도 했다.
동혁은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노트북을 펼쳤다. 화면 위에 수치들이 떠올랐다.
“형님, 이것 좀 봐 주십시오. 만약 성공하면 최소치가 2경 5천조 원입니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20조 달러입니다.”
그는 낮았지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최소치로 잡아도 미국 연방정부 1년 예산의 세 배가 넘는 돈입니다. 무려 대한민국의 40년 예산을 넘어서는 금액입니다.”
대통령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동혁은 그 반응을 살펴가며 말을 이어 갔다.
“지난 IMF 사태 이후, 한국은 이미 열강의 경제 식민지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국내 자산운용사의 자금을 모두 합해도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BR사가 운용하는 자산의 9%도 되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러니 남북한이 통일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동혁은 숨을 죽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행히 파생상품은 무한대의 손실과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만 배와 만 배, 딱 두 번만 반복해도 무려 백만 배 이상의 이익이 가능합니다.”
그는 대통령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려 백만 배입니다.”
“뭐라고?”
대통령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백만 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세어 가며 계산을 시작했다.
“그럼…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순식간에 100억 원이 된다는 건가?”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동혁이 짧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엄숙했다.
상욱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참… 흠… 그 파생상품이라는 게 결국 동화 속 알라딘의 요술 램프나 도깨비방망이 같은 건가? 도대체 파생이 뭔가?”
“좋은 지적이십니다.”
동혁은 노트북 화면을 넘기며 설명했다.
“파생상품은 주가지수, 금리, 환율, 금, 은, 석유 등 기초 자산에 따라 종류가 다양합니다. 모두 주식보다 변동성이 훨씬 큰 상품입니다.”
대통령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에 만 배가 가능한가?”
동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자본주의가 설계한 금융 시장은 원래 총성 없는 전쟁터입니다.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카지노입니다. 그래서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말까지 붙은 겁니다.”
동혁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몇 해 전, 우리 한국에서 도이체 방크라는 회사가 보유 주식을 종가에 일시 매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과 십 분 만에 파생상품에서 2,500배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 사건은 나도 뉴스로 봤네. 그런데 수익이 무려 원금의 2,500배였다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전체 수익이 아니라, 일부 파생 상품의 종목에서 최대 수익이 그렇게 난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 상황에서는 만 배가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그것이 현재 세계 금융시장의 무서운 현실입니다.”
대통령은 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의 금융 시장이 도박장보다 더 무시무시한 곳이라니… 정말 놀랍소. 내가 오늘 또 하나 배웠군.”
대통령은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표정이 별안간 싸늘하게 굳었다. 그러다 갑자기 손을 내저었다.
“뭐라고?”
그의 목소리가 급격히 높아졌다.
“인간 존엄성의 회복, 약탈과 살육의 역사를 보상받고, 전 세계의 굶주린 빈민을 구제하며… 그리고 뭐? 개미 투자자들의 복수를 대신해 준다고?”
대통령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전 실장.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대통령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동혁은 별안간 질책을 받자 놀랐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조금만 더 들어주십시오.”
하지만 상욱은 이미 단호했다.
“그만하게.”
상욱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눈가의 주름마저 단단히 고정되었다.
“자네 지금 위험한 소릴 했네. 비서실장으로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했어. 미안하지만, 자넨 해임이야.”
순간, 동혁의 어깨가 무겁게 떨어졌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개도 떨군 채 말문을 닫았다. 이윽고 결심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즉시 사직서를 제출하겠습니다.”
동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문을 나섰다.
대통령 집무실의 문이 닫혔다.
복도에 선 그는 크게 심호흡했다.
그때였다.
낯익은 구두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대통령이었다.
“자네, 오늘 큰 실수를 했네.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경호원들이 다가오려 하자, 대통령은 손짓으로 그들을 멈춰 세웠다.
“잠시 산책하지.”
대통령은 동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 정원 쪽으로 걸었다.청와대 정원은 어둡고 고요했다. 멀리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자넨 대통령 집무실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나?”
동혁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대통령은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수시로 감청 조사를 해도, 어떤 기술이 쓰이는지 다 알 수는 없네. 오늘 자네와 내가 나눈 대화가 내일 아침 미국 프롬펠의 책상 위에 보고서로 놓일 수도 있는 게 현실이야.”
동혁은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의 등을 툭 쳤다.
“사표 낼 필요는 없네. 오늘 들은 드라마는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었어. 하하하.”
동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 하다가 멈출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하면 안 되는 거야. 잘 생각해 보시게. 하하하.”
그 말의 어감은 묘했다.
경고 같기도 했고, 허락 같기도 했다.
대통령은 등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에는 모호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동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잘 생각해 보시게…’
그는 귓전에 맴도는 대통령의 말과 목소리, 그 어감을 여러 번 곱씹었다.
늦은 밤.
대통령 집무실의 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정원장 황병욱이 들어섰다. 대통령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전 실장이 오늘 이상한 이야기를 했네.”
국정원장 황병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입니까?”
대통령은 잠시 침묵했다.
“뭐… 그냥 역사 얘기였어. 별건 아니야.”
그는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를 잘 아는 국정원장은 더 캐묻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대통령은 차가운 시선으로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사표를 제출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를 내치지 않을 거야. 다만…”
말끝을 흐린 대통령이 시선을 돌려 국정원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용히 살펴보시게. 오버는 하지 말고.”
황병욱은 고개를 숙였다.
“네.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대통령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은 위험할 만큼 너무 커, 그러나 매혹적이야.”
창밖의 어둠이 그의 얼굴 위로 스며들었다.
“아마 언젠가는… 나를 뛰어넘을 거야.”
집무실의 조명이 대통령의 뒷모습에 묘한 그림자를 남겼다.
그에게 동혁의 존재는 언제나 신뢰와 경계, 그 두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동혁의 구상은 거부하기 어려운 역사적 제안이었다. 그러나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 설계는 꿈처럼 황홀했고, 동시에 악몽처럼 두려웠다.
황병욱.
그는 공안 검사 출신임에도 뜻밖에 국정원장 자리에 올랐다.
동혁은 그 배경을 알지 못했다. 임명 과정에서 반대하지도 않았고, 굳이 이유를 캐묻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자신과 병욱의 과거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과, 기억조차 하기 싫은 악연을 품은 채 살아가야 했다. 황병욱은 동혁에게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되살려 내는 존재였다.
대법원 사건으로 징역 20년을 구형받고, 12년 형을 선고받던 시절. 그의 담당 검사는 다름 아닌 병욱이었다.
국정원장 임명 통보를 받은 병욱은 곧바로 동혁에게 식사를 청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임명에 반대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다. 정권의 실세인 동혁이 반대했더라면, 자신이 결코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실장님, 정말 대인이십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또 동혁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항고하지 않았던 것이 자신의 배려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혁은 기억하고 있었다.
수사관들은 검사인 병욱이 조사실에 들어올 때마다 어김없이 자신을 무릎 꿇린 채 고문을 시작했다.
배려를 말하든, 무엇을 말하든.
검사는 결국 검사였을 뿐이었다.
황병욱은 동혁이 가장 비참했던 시절의 절대적인 지배자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를 마주하면, 처참한 절망과 치 떨리는 굴욕이 되살아났다.
철제 의자의 냉기. 거친 숨소리들, 엄습하는 공포, 이어진 욕설과 구타, 자신의 신음 소리.
조사실 천장의 희미한 형광등까지.
지금도 그 기억들은 종종 통증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동혁은 현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창의적 기획력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이 정권의 탄생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를 따르는 세력도 막강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충성 세력을 만들기 위한 인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회의석상에서 늘 묵묵히 경청했다. 하지만 그가 작성한 최종 보고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그는 늘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그러나 원칙은 단호했다.
타협이나 야합은 절대 없었다.
한번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다. 탄탄한 논리와 달변은 상대를 압도했다.
사심도, 두려움도 없는 사람.
일단 마음을 정하면 모든 것을 거는 사람.
대통령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국정원장 황병욱에게, 그를 세심히 지켜보고 수시로 보고하라는 은밀한 지시를 내린 것이다.
‘오버는 하지 말고…’
황병욱은 대통령의 모호한 지시를 곱씹었다.
경계하라는 것인가. 보호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그는 고심 끝에 동혁의 오랜 친구이자 국정원 제1차장 이종철을 불러냈다. 그리고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것은 대통령과 동혁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병욱 나름의 고육지계였다.
한편 동혁은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친 뒤, 저녁 모임에 참석했다. 자리에는 이미 창근과 혜경, 그리고 국민 펀드 대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민복지 펀드는 출범 몇 달 만에 고수익을 올리며 두 대표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그들은 방송에도 자주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그 성과의 바탕에는 동혁의 치밀한 기획이 있었다.
남북 간 평화 무드 조성.
DMZ 공동개발 합의.
지하궁전 프로젝트.
금융 선진화 방안.
모두 그의 설계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두 대표는, 생색 한 번 내지 않는 동혁의 태도에 진심으로 존경을 보내고 있었다.
혜경은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결국 먼저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동혁은 말없이 허공에 손가락으로 엑스 표시를 그렸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시 얘기해 보지요. 오늘은 그냥 술이나 마시며 세상 이야기나 합시다.”
혜경은 그가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창근과 두 대표는 전혀 몰랐다.
한순구와 연용철.
두 사람은 창근이 추천한 인물로, 대선 캠프 시절부터 동혁을 도왔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잠시 뒤, 가볍게 취기가 오른 동혁이 혜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기자님, 오늘 노래 한 곡 부탁드려도 될까요?”
의기소침해 있던 혜경의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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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끝나자 연 대표와 한 대표는 환호하며 기립 박수를 쳤다.
“안 기자님은 미모에 노래 솜씨와 피아노 실력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앙코르!”
웃음이 번졌다. 그때 동혁이 창근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듀엣으로 부탁드립니다.”
곧 창근과 혜경의 노래가 시작됐다.
그들이 노래하는 동안, 별안간 동혁이 두 사람을 번갈아 응시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연 대표님.”
순간,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두 사람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요즘 시장에서 개미 투자자들은 어떤가요?”
연용철 대표가 먼저 대답했다.
“개미 투자자들이요? 외국계 거대 자산운용사들, 그들이 아침저녁으로 시장을 흔드는데 어떻게 돈을 벌겠습니까.”
그는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 한국의 금융시장은 결국 약탈과 착취의 합법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금융 시장은 언제나 개미들의 화장터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동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계시는 군요.”
한순구 대표가 곧장 말을 보탰다.
“개미들이 평생 열심히 일해서 번 돈, 단 한 번에 다 털리지요. 큰 시각으로 본다면, 국부의 유출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프롬펠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틈만 나면 시장을 죽였다 살렸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면서 변덕을 부리잖아요.”
동혁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문제가 많은 시장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큰 사건으로 급변할 때 개미 투자자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요?”
연 대표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쉽지 않습니다. 개미들의 투자 패턴도 문제지만, 시장에는 속임수가 너무 많습니다. 대책이 없다고 봐야죠. 안 그렇습니까, 한 대표?”
한 대표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매일 흔들리는 변동성도 어렵지만, 약 10년 주기로 더 큰 파도가 옵니다. 중동전쟁, 유가 쇼크, IMF 사태, Y2K,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같은 것들이죠. 그때마다 개미들은 홀딱 털리지 않습니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어렵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동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국민 펀드 모금도 5차까지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총 500조 원이 되는 거죠.”
연 대표도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서는 개미들의 개인 투자를 줄이는 것이 최선인 듯합니다.”
동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만약 시장이 극도로 혼란스러울 때, 장단기 정책으로 조율한다면 어떨까요?”
두 대표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연대표가 물었다.
“어떤 의미입니까?”
동혁은 조용히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개미 투자자들의 공포와 탐욕이 교차하는 그 순간, 정부가 미묘한 정책 신호를 섞어 낸다면 반응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시장의 흐름에 맞춘, 일종의 시간차 타법 같은 겁니다.”
말을 끝낸 동혁은 두 대표의 반응을 살폈다.
연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만약 누군가 결과를 예측하고, 또 확신할 수 있다면… 그건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결국 모든 건 타이밍이니까요.”
한 대표도 진지하게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특히 국가적 위기 때는 국민이 정부의 숨결 하나에도 예민해집니다. 그 흐름을 조율할 수 있다면, 투매도 매수도 어느 정도 설계할 수 있다고 봐야죠. 다만 연기금의 역할도 그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동혁의 눈빛이 깊어졌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쪽은 이미 여러 번 만났습니다.”
두 대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동혁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우리 홍보라인을 총동원해 두 분을 투자의 귀재, 국민의 영웅으로 계속 띄우겠습니다. 그건 허상이 아니라 실체이니까요.”
그는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중요한 시기마다 개미들을 잘 이끌어 주십시오.”
연 대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움이 된다면 물론입니다.”
동혁의 목소리가 더 단단해졌다.
“아니요. 꼭 하셔야 합니다.”
순간, 테이블 위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이건 단순한 협조가 아닙니다. 약속입니다. 두 분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두 대표는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이내 잔을 들었다. 유리잔이 부딪치며 묵직한 울림을 냈다.
그때 동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앞으로 딱 한 번.”
두 대표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향했다.
“저나 혜경 씨가 아주 중요한 부탁을 드릴 때가 올 겁니다. 그때는 오늘 이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유 불문하고 따라 주셔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무거웠다.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연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한 대표도 잔을 들어 올렸다.
“저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들의 은밀한 약속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동혁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늘 이 약속 꼭 기억하시는 거죠? 하하하. 그럼, 두 분만 믿겠습니다.”
세 사람은 엄숙히 잔을 부딪쳤다.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울림은 축배가 아니었다. 다가올 폭풍의 전조였다.
☞제 23화-빛과 그림자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