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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오소호(從吾所好)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리라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내 것의 소유만큼 내 삶의 의미에 집중하자.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순환한다. 올봄이 지나가더라도 내년의 봄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인생은 앞으로 나아갈 뿐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때론 재수와 재기의 기회가 있어 마치 인생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의 차이일 뿐, 인생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2500년 전 공자는 끊임없이 실패를 맛보며 곤경에 처했다. 이렇게 거듭 시대와 불화에 휩싸이면 문학 작품에 나오듯 악마와 손을 잡고 역전을 꿈꾸거나 현실의 요구에 굴복할 수 있다. 공자는 떠밀린 삶을 살며 때때로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렸지만, 그때마다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공자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을 살았던 공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논어> 술이(述而)편 12장
— 163번째 원문
만약 경제적 성공을 추구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 채찍을 잡는 문지기라도 나는 꼭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을 추구할 수 없다면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아가리라.
富 : 부(富)는 넉넉하다, 부자의 뜻이다.
雖 : 수(雖)는 양보와 역접의 맥락을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비록 ~할지라도, 그러나, 만약, 다만의 뜻을 나타낸다.
執 : 집(執)은 손으로 무엇을 잡다, 지키다의 뜻이다.
鞭 : 편(鞭)은 채찍, 매질하다의 뜻이다. 편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직을 나타내는 말인 교편(敎鞭), 선생과 선배가 학생과 후배들을 타이르고 격려하며 앞으로 잘 이끌어가는 지도편달(指導鞭撻) 등으로 쓰인다.
士 : 사(士)는 무사와 문사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오늘날 전문가에 해당된다. 집편지사(執鞭之士)는 채찍을 잡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직업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풀이가 있다. 채찍을 쥐고 말을 몰았다는 마부 설, 채찍을 휘두르며 귀한 이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보디가드 설, 시장에서 채찍을 잡고서 질서를 잡았다는 보안요원 설 등이 있다. 여기서 세 번째 설에 따랐다.
吾 : 오(吾)는 1인칭 대명사로 나, 자신의 뜻이다.
亦 : 역(亦)은 또, 또한, 모두의 뜻이다.
如 : 여(如)는 동사로 같다, 따르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접속사로 영어의 if처럼 가정의 맥락을 나타내는 만약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 접속자로 쓰이고 있다.
從 : 종(從)은 좇다, 따르다, 받아들이다의 뜻이다.
기다림의 괴롭힘인가, 성장의 미학인가?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人(인) 자는 무릎을 구부린 사람의 옆모습을 본떴고, 大(대) 자는 팔다리를 벌린 사람의 앞모습을 본떴다. 山(산)은 높이 솟은 산봉우리의 모양을 본떴고, 川(천)은 물이 흘러가는 물살의 모양을 본떴다. 이런 글자를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특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사물의 특성을 간단하게 형상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한 꼴을 가지고 있지 않아 볼 수 없거나 추상적인 개념(감정, 사상, 문화 등)을 글자로 만들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山(산) 자와 실제의 산 모양은 유사하여 그 연관성이 쉽게 드러나지만 글자와 추상적인 개념의 연관성이 드러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글자의 형상화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心(심)은 사람의 심장을 형상화시킨 글자이다. 性(성)은 기쁨과 슬픔, 자질과 능력처럼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나타냈다. 心(심)이라는 글자가 생겨나자 性(성)이라는 글자가 파생된 것이다. ▶창힐(蒼頡) 초상화. 중국의 한자를 만든 전설상의 인물 창힐은 새나 짐승의 발자국 모양을 보고서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도교의 신들>
그렇다면 좋아한다는 의미의 한자는 어떻게 형상화되었을까? 글자를 만든 언어의 창조자는 ‘好(호)’ 자로 좋아한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했다. 왼쪽의 女(여)는 어머니, 여성의 뜻이고 오른쪽의 子(자)는 아이(자식), 남성의 뜻이다. 갓 연애를 시작한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수시로 전화나 문자를 통해 어디에 있는지 또 뭘 하는지 확인한다. 서로 연결되어 함께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린아이는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화장실에 간 엄마가 자기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금세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오면 울다가도 금방 울음을 멈추고 헤헤 웃는다. 아직 눈물방울이 마르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렇듯 好(호)는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거나 떨어지면 불안하게 느끼는 연인 사이, 부모와 자식의 사이에서 실마리를 찾았으리라. 나는 好(호) 자를 만든 창조자는 젊은 시절 뜨거운 연애를 해보고 아이를 키워보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好(호) 자를 도무지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좋아할 ‘好(호)’ 자를 써보라고 한다. 두 글자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나는 좋아할 ‘호’ 자가 아니라 밀어낼 ‘호’ 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한자 ‘好(호)’자는 어머니, 여성을 뜻하는 女(여) 자와 아이(자식), 남성을 뜻하는 子(자)를 조합하여 ‘좋아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 글자를 만든 언어의 창조자는 아마도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연인 사이, 부모와 자식의 사이에서 실마리를 찾았으리라.
이제 우리는 공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아가리라”고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자신이 그 일을 결코 그만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삶의 불안과 우울
“청년 실업 100만”의 현실에서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어렵다.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다수를 차지한 상태에서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이러한 취업난은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실업 또는 실업의 위기는 이제 몇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힘겹게 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불안하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 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은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시험이 끝나기만을 바라겠지만 그 뒤에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뜨겁게 사랑하며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는 축복 속에 결혼식을 치르겠지만 이후에 펼쳐질 출산과 육아 그리고 집값을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는 한 우리는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경기가 나빠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각종 사건사고의 소식이 전해지면 삶의 불안은 한층 깊어져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19세기 러시아의 대표 시인 푸시킨(1799-1837)은 사람이 알 수 없는 미래와 우호적이지 않은 현실 때문에 될 듯 말 듯 알 수 없는 세상에 속아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읊고 있다. 하지만 푸시킨은 사람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미래로 인해 영원히 속지 않고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도전하여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삶은 뜻대로 될 듯 뜻대로 되지 않는 속임의 연속이 아니라 그러한 속임을 넘어선 희망을 품고 있게 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 최선 옮김
잘게 나눈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로 합친 전체의 단위로 보면, 삶은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 아니라 결국 기쁨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기쁨의 날 앞에 있던 우울한 날들은 우울하기만 한 시간이 아니라 소중한 시간이 된다. 따라서 우울할 때 우울에 갇힐 것이 아니라 우울한 지금이 그 상태로 멈춰 있지 않고 결국 지나가리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푸시킨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알 수 없는 미래에 우리는 휘둘릴 수밖에 없지만,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시로 전하고 있다.
푸시킨의 시에서 현재 슬픈 것이 영원하지 않고 순간적이며, 결국 지나가게 되리라고 한 것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의 OST ‘Let it go’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추위도 나를 괴롭힐 수 없고,
The clod never bothered me anyway
참 재밌게도 무시무시한 것도 멀어지면 작게 보이거든.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 small
(…)
지나가게 내버려둬, 지나가게 내버려둬.
Let it go, Let it go
공자처럼 좋아하는 삶을 살았던 김득신
공자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공자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삶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미워하지도 않았다. 자기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그는 운명을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에서 채찍을 들고 질서를 잡는 일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있다고 한다면, 공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자신이 내몰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사람이 불안과 우울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도 시간은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지만 공자는 끝나지 않는 현재에 머물며 점점 왜소한 존재가 되어 간다.’ 공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서 평안과 명랑의 정조를 지켜낼 수 있었다.
공자와 같이 조선시대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우려와 불안을 날려버린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김득신이다.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조선 중기의 인물로 당시 최고의 시인이라는 명망을 얻었다. 그는 공자와 달리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손자이며 부제학 김치(金緻)의 아들로 소위 “있는 집안”의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지독하게 나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해 뒤처졌다. 한자를 익히고 문장을 짓는 것에도 도통 재능이 없었고 방금 익히고 외운 문장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집안에서는 김득신에 대한 기대를 접고 양자를 들여 과거에 응시하라고 성화였지만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의 노력을 믿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김득신은 자신의 지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사기 열전> 중 ‘백이열전’을 11만3천 번을 읽었다. 36편의 다른 글도 모두 1만 번 이상 읽어서 그 의미를 완전히 터득하게 되었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지독한 노력은 김득신을 불안과 우울로 몰고 갈 수 있는 길을 닫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신뢰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결국 김득신을 웃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묘갈명(墓碣銘)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학문에 힘쓰는 자는
재주가 다른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선(한계)을 긋지 말라. (勉學者, 無以才不猶人自晝也.)
이 세상에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도 없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 이루었다. (莫魯於我, 終亦有成)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在勉強而已)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자기 자랑한다며 예사롭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김득신의 말이기에 감동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 방금 외운 것을 기억하려고 했을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 그 참담함, 몇 백 번을 읽었지만 그때마다 전혀 다른 글로 여겨질 때 그 멍청함, 이것을 감내하기가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이 참담함과 멍청함을 받아들이고 노력을 한 끝에 김득신은 59세에 과거 급제하고 성균관에 입학했다. 그가 고향집을 떠나 성균관에 첫발을 디뎠을 때 그 벅찬 감동은 푸시킨이 말한 “기쁨의 날”과 같았으리라. 또 공자가 내몰린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며 느꼈던 즐거움과 같았으리라.
독수기(讀數記) 편액. 독서광 김득신이 책을 읽은 횟수를 적어 놓은 글이다.
떠밀린 삶을 살면 다수를 따라가니 ‘나’는 덜 불안하지만 여유가 생길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다른 길을 가지 않았던 나를 부끄러워한다. 이에 반해 좋아하는 삶을 살면 미래를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니 불안하기 그지없지만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만큼 자아의 분열을 겪지 않는다. 공자, 푸시킨, 김득신 이 세 사람은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닮은꼴의 삶을 살아가려고 했던 인물이리라.
글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가슴에 담아갑니다~♡
세상살이 그저 밥벌이 하는데 얽매어 좋아하는것 따르지 못한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하고싶은거 하고 살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나 또한 從吾所好
좋은 글 올려 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득신 자신의 경험을 묘갈명(墓碣銘)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학문에 힘쓰는 자는 재주가 다른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선(한계)을 긋지 말라. (勉學者, 無以才不猶人自晝也.)
이 세상에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도 없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 이루었다. (莫魯於我, 終亦有成)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在勉?而已)
종오소호(從吾所好),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리라.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