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뽐내지 않는구나! 후퇴할 때 군대의 후미에서 방어하며 왔는데, 장차 문에 들어오려 할 적에 그 말에 채찍질하며 말하길, 감히 뒤에 섰던 게 아니다. 말이 나아가지 않았을 따름이라 하였다.”라고 하셨다.
孟之反魯大夫 名側 胡氏曰 反卽莊周所稱孟子反者 是也 伐誇功也 奔敗走也 軍後曰殿 策鞭也 戰敗而還 以後爲功 反奔而殿 故以此言 自揜其功也 事在哀公十一年 맹지반은 노나라 대부이고 이름은 측이다. 호씨가 말하길, “맹지반은 곧 장주가 맹자반이라고 호칭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伐이란 공을 자랑하는 것이다. 奔은 패주한 것이다. 군대의 뒷부분을 殿이라 한다. 策은 채찍질 하는 것이다. 전투에서 패하여 돌아올 적에 후방엄호부대가 되는 것을 공으로 삼는다. 맹지반이 패하여 돌아올 때 후방엄호부대가 되었기에, 그래서 이런 말로써 자신의 공을 스스로 덮어서 가린 것이다. 이 일은 애공 11년에 있었다.
朱子曰 莊子所謂孟子反 蓋聞老氏懦弱謙下之風而悅之者也 주자가 말하길, “장자가 말한 맹자반은 아마도 노씨의 나약하고 겸손한 풍모를 듣고서 기뻐하였다던 사람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左傳哀公十一年 齊國帥師伐我 孟孺子洩 帥右師 冉求帥左師 師及齊師戰于郊 右師奔 齊人從之 孟之側後入以爲殿 抽矢策其馬曰 馬不進也 춘추 좌전 애공 11년에, 제나라가 군대를 이끌고 우리나라를 쳤는데, 맹유자설이 우군을 인솔하고 염구가 좌군을 인솔하여 군사가 제나라 군사와 만나자 교외에서 전투를 벌였다. 우군이 도주하자 제나라 사람들이 그를 뒤쫓았는데, 맹지측이 뒤로 들어가 殿이 되었다. 화살을 뽑아 그 말을 채찍질하며 말하길, 말이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朱子曰 這便是克伐怨欲不行 與顔子無伐善底意思相似 주자가 말하길, “이것은 바로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욕심이 많음을 행하지 않음이니, 안자의 선을 자랑함이 없음의 뜻과 서로 비슷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奔而爲殿 固已難能 及將入門 是國人屬耳目時也 反非惟不自有其功 又自掩其功深 自抑損如此 故聖人有取焉 爲學之害 矜伐居多 聖人取之以敎門人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도주하면서 殿이 되는 것은 본래 이미 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장차 성문에 들어옴에 미쳐서는 나라 사람들이 耳目을 모으는 때이다. 맹지반은 단지 자기에게 공이 있다고 자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자기 공을 스스로 가림이 깊었다. 스스로 억누르고 덜어내는 것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성인이 그에게서 취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학문을 함에 해가 되는 것은 자랑하는 것이 제일 많으니, 성인께서 이를 취하여 문인들을 가르치셨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 2 | ○ 謝氏曰 人能操無欲上人之心 則人欲日消 天理日明 而凡可以矜己誇人者 皆無足道矣 然不知學者 欲上人之心 無時而忘 若孟之反 可以爲法矣 사씨가 말하길, “사람이 능히 남보다 위로 올라가고자 함이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인욕이 날로 사라지고 천리가 날로 밝아져서, 무릇 자신을 뽐내고 남에게 자랑하는 것은 모두 말할 것조차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울 줄 모르는 자는 남보다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을 언제라도 잊을 때가 없다. 맹지반 같은 사람이면, 가히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欲上人之心 便是私欲 聖人四方八面提起向人說 只要去得私欲 孟之反 他事不可知 只此一事便可爲法 주자가 말하길, “남보다 위로 올라가려는 마음이 바로 사욕이다. 성인께서 사방 팔면에서 제기하여 사람들을 향해 그저 사욕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맹지반은 그의 다른 일은 알 수 없지만, 그저 이 일 하나만으로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問人之伐心固難克 然若非先知得是合當做底事 則臨事時必消磨不去 諸葛孔明所謂此臣所以報先帝而忠陛下之職分也 若知凡事皆其職分之所當爲 只看做得甚麽樣 大功業亦自然無伐心矣 曰 也不是恁地 只是箇心地平底人 故能如此 若使其心地不平有矜伐之心 則雖十分知是職分之所當爲 少間自是走從那一邊去 遏捺不下 少間便說我却盡職分 你却如何不盡職分 便自有這般心 孟之反 只是箇心地平 所以消磨容得去 누군가 묻기를, “사람이 자랑하고픈 마음은 본래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임을 먼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일에 임할 때에 곧바로 이런 마음을 없앨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제갈공명이 말한 이른바 ‘이것은 신이 先帝에 보답하고 폐하에게 충성하는 직분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일이 전부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바임을 알았다면, 그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만 살펴볼 것이니, 큰 功業이라 할지라도, 또한 자연스럽게 자랑하고픈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래도 역시 이렇지는 않은 것이다. 그저 심지가 평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심지가 평온하지 않아서,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다면, 비록 이것이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임을 매우 잘 알고 있다 할지라도, 잠깐 사이에 저절로 저쪽을 따라 달려가 버려서, 이를 억누르지 못할 것이고, 잠깐 사이에 곧바로 나는 직분을 다하는데, 너는 어째서 직분을 다하지 않는가 하고 말할 것이니, 이러면 곧 저절로 이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맹지반은 그저 심지가 평온한 사람이었으므로, 이 때문에 이런 마음 없애는 것이 허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孟之反不伐 與馮異之事不同 蓋軍敗以殿爲功 殿於後 則人皆屬目歸他 若不恁地說 便是自承當這箇殿後之功 若馮異乃是戰時有功 到後來事定 諸將皆論功 他却不自言也 맹지반이 자랑하지 않은 것은 풍이의 일과 같지가 않다. 대체로 군대가 패배하였을 때, 殿의 일을 맡아 하는 것을 공으로 여긴다. 뒤에서 殿의 일을 하면, 사람들 모두 눈을 모아 그에게로 돌리는데, 만약 이렇게 말이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후방에서 殿의 일을 한 이러한 공을 스스로 떠받들어 감당하는 것이다. 풍이의 경우는 도리어 전시에 공이 있었는데, 나중에 일이 안정되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 공을 논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스스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雙峯饒氏曰 人所以矜伐 只爲好勝之心蔽了天理 有些小功 能自視不勝其大 容著不得 只管矜伐 若能捺伏此心 則私意消天理明 便是有莫大功業 亦只如一點浮雲 何足矜伐哉 上蔡平時用力去箇矜字 所以說得如此痛切 쌍봉요씨가 말하길, “사람이 자랑을 하는 까닭은 그저 好勝心(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마음)이 天理를 가리기 때문이다. 사소한 공이 있으면, 큰 공을 이길 수 없음을 스스로 알아볼 수 있지만, 이를 용납할 수 없어서, 그저 자랑하고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만약 능히 이런 마음을 눌러 엎드리게 할 수 있다면, 사사로운 뜻이 소멸하여 천리가 밝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막대한 공로와 업적이 있을지라도, 또한 그저 뜬구름 한 점처럼 여길 뿐이니, 어찌 자랑하기에 족하겠는가? 상채 선생은 평상시에 힘을 써서 ‘矜’이라는 글자를 제거하였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이와 같이 통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