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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성령의 열매맺는 달☜
모든 생명의 양식(복음)을 등한히하면,사탄의 표적되어 영생의 기쁨을 빼앗기게 됩니다.
롬16:1-27절) 서로 문안하라
전에 우리나라는 황 모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진위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줄기세포라는 것은 난자(卵子)가 수정되면서 분열하기 시작할 때의 세포를 말하는데, 이것은 장차 뇌세포가 될 수 있고, 척추가 될 수 있고, 피를 만드는 세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연구만 성공하면, 현재 척추장애라든지, 백혈병이라든지, 파킨슨씨병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이 연구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난치병(難治病)으로 많은 고통을 받는 환자들에게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는 윤리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난자(卵子)가 수정하면, 이미 한 인간이 탄생하는 것인데, 어떤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 생명을 죽이고, 줄기세포를 빼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한 생명이 죽고, 다른 한 생명이 삶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장기(臟器)기증은 오늘날 너무나도 보편화된 실정입니다. 많은 간암이나, 간경화 환자들은 간을 기증받아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얼굴 피부까지 기증받아 얼굴에 이식(移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 복음(福音)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죄인들에게 이식해서 새 생명을 얻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의 이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복음(福音)이 아닐 수 없습니다.
Ⅰ.사도 바울의 복음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의 가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는 지금까지 인류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놀라운 사실들을 분명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죄의 보편성(普遍性)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죄를 저지른 악(惡)한 사람들만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 속에 죄성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눈에 보이는 죄의 행위들은 곧 죄성의 자연스러운 표현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과거나, 현재의 인간들 중에서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경험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따라서 인간들 중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이 한 것은 하나님의 의(義)의 절대성(絶對性)입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한 의(義)를 인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어 죽게 하셨는데, 누구든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내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것을 시인(是認)하기만 하면, 그 사람을 무조건 *의(義)롭다*하시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수님의 의(義)가 우리 안에 이식(移植)되어 우리 죄는 예수님이 다 가지고 가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사도 바울의 복음(福音)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어떻게 처리되며,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어떻게 *의(義)롭다*하시는가를 전한 것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福音)은 인간들의 입장에서 많은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즉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것을 믿는다고 해서 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과 아들 사이의 약속(約束)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義)롭다*하신 후에 어떻게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의(義)롭다*하신 후에 그냥 내버려 두시면, 하나님은 불의(不義)하신 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 안에 성령을 주셔서 실제로 의(義)롭게 살게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義)의 조건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고, 곧바로 천국 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실제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믿으면 됩니다. 우리의 미래가 너무나도 불투명하고, 불안하지만,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 우리에게 고난(苦難)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을 믿습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을 믿습니다. 모든 죄(罪)와 유혹(誘惑)과 시련(試鍊)을 믿음으로 이겨야 하나님의 의(義)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넷째로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느냐?는 문제에 대해 혈통상의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생명의 말씀을 믿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진짜 유대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믿지 않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버리심으로 이 세상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게 하셨고, 많은 이방인들을 예수 믿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꽉 차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Ⅱ.바울이 로마에 편지를 쓰는 목적
복음의 놀라운 사실은 모든 인간이 죄(罪)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詛呪)아래 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외에는 영생(永生)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순간이라도 빨리 믿지 않는 자들을 전도해서 구원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곧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즉 인간은 누군가가 아무리 좋은 것을 주더라도 자기에게 믿어지지 않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무리 복음(福音)이 옳고, 확실하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먼저 복음으로 변화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고. 특히 구원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어떤 것인가 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헐뜯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아무리 중요한 철학(哲學)을 가르치고, 인생론을 강의한다 해도 갑자기 머리를 쥐어 받고, 팔을 물어뜯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미쳤다(狂人)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서로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중요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미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데,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었을 때, 고린도나, 아가야 지역의 이방인 교회에서 헌금(獻金)을 거두어 예루살렘 교회를 경제적.(經濟的)으로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본다면, 원래 로마 교회는 유대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였기 때문에 바울이 적극적으로 관여할 대상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크레스토스'로 인한 소요 때문에 유대인들은 모두 떠나고, 이방인 신자들만 남아 자연스럽게 이방인 신자 중심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고, 유대인 추방령(追放令)이 철회되자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제는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 신자들을 판단하고, 따돌(왕따)리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로마의 이방인 신자들에게 돌감람나무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작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유대인 신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해서야 되겠느냐?고 충고하면서 하나가 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축복(祝福)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문제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받은 은혜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참감람나무에 붙어 최고의 감람열매를 맺어 성전의 등불이 밝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굳이 다른 시시한 것까지 다 차지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은 지중해 끝에 있는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즉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로마 교회의 도움을 받길 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나, 아가야, 교회의 도움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로마 교회의 도움으로 스페인 선교를 감당하길 원했습니다.
당시 스페인에는 로마가 카르타고를 정복한 후, 식민지(植民地)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에 성공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스페인에 있는 로마 식민지까지 복음화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스페인에서 어느 정도 복음화가 이루어지면,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 땅 끝까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복음을 들고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병(病)에 걸려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만이 사람을 살리고,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의 특징은 여성의 인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어떤 인도 형제들은 자기의 누이가 검은 수건을 쓰고 자유롭게 다닌다 해서 총으로 쏘아 죽이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인도에서는 지금도 며느리가 지참금을 작게 가지고 왔다고 시집 식구들이 때려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도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연약한 여성과 아이들이 학대를 받고, 말도 되지도 않는 미신(迷信)과 억압(抑壓)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맹인(盲人)이 눈을 뜬 것과 같으며, 토굴(土窟)속에 평생 갇혀 있던 죄수들이 결박을 풀고, 그 감옥에서 나온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무한한 축복(祝福)의 미래가 열려 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의 욕심에 얽매이지 말고, 무한한 자유를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Ⅲ.서로 문안하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가장 먼저 뵈뵈라는 여자 집사(執事)에 대한 추천(推薦)의 말을 하고 난후에 로마의 이방인 신자들이 문안하고, 돌아보아야 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나, 모임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로마에서 같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서로 내왕(來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서로 따돌리지 말고, 내왕(來往)도 하고, 함께 초청해서 떡도 떼고, 위하여 기도도 하면서 신앙의 교제를 나누라고 추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문안하라*고 하는 사람들은 맨 앞에 나오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외에는 대개 다른 곳에서는 이름을 확인하기 어려운 무명(無名)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개인적으로나, 가정교회를 통해서 주님을 섬기고, 다른 형제와 자매들을 돕는 아주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뵈뵈 집사(執事)를 이렇게 추천(推薦)했습니다.
16:1-2절)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여기서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뵈뵈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했는데, *일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인데, *집사(執事)*라는 뜻입니다. 뵈뵈 집사(執事)는 여성이었는데, 로마서를 가지고 로마 교회를 찾아간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길에 강도도 많고, 도둑들도 많아서 여성이 중요한 로마서를 품에 가지고 로마까지 가서 편지를 전달했고, 그 편지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잃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맙고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뵈뵈는 *사도 바울과 다른 사람들의 보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보호자*라는 것은 의식주(衣食住)나 안전(安全)이나 모든 것을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뵈뵈는 사도 바울의 모든 것을 다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로마 교회를 살리고, 세계 교회를 살리는 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전달자라는 중요한 책임을 맡고, 로마에 갔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조금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얼마나 등을 돌리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맨 먼저 문안하라고 하는 사람은 브리스기아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16:3-4절)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했든지, 사도 바울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도 내어 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평신도 선교사요, 목회자요, 가정 사역자였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추방령 때, 로마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고, 함께 장막(帳幕)을 짜면서 복음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에서도 자기 집을 교회로 모였고, 로마에서도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로마의 이방인 교인들이 별로 교제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의 이방인 교인들에게 이렇게 훌륭한 사역자를 가까이 두고서 만나지 않고, 도움도 받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다른 많은 이방인 교회도 부리스가와 아굴라 라고 하면, 모두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집에서도 젊은 사람들만 있으면, 어른들을 잘 찾아가려고 하지 않고, 인사도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만 만나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그 마을에 당연히 인사드려야 할 어른들이 있으면, 인사부터 하고, 놀러가게 하십니다. 어른들을 찾아가 인사하는 것이 귀찮고,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어른들에게 인사함으로 자신의 인생의 폭이 그만큼 더 넓어지게 됩니다.
또
16:5절)...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라고 하면서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처음 전도해서 결신한 사람이 에배네도였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 전도한 사람을 지금까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로마로 이사를 해서 사는데, 로마 교회와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 맺은 열매*라는 것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든지 간에 그 사람의 신앙이 무럭무럭 자라고, 능력 있는 신자가 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또
16:6절)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 마리아가 젊었을 때, 특히 이방인 신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했는데, 이제는 늙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옛날의 수고는 다 잊어버리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즉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이방인들을 위해 봉사 했는데, 늙으니까 힘도 없고, 또 새로운 사람들은 옛날 일을 다 잊어버리니까 구석에 처박아 놓고, 상대를 잘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너무 과거에 얽매여도 안 되지만, 예전에 고맙게 한 사람들을 쉽게 잊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주님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대로 사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자기들끼리도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 보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사도 바울의 친척이요, 함께 감옥에 갇혀 고생했던 사람입니다.
16:7절)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인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사도 바울의 친척들 중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것이 늘 사도 바울의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친척 중, 사도 바울보다 먼저 예수를 믿었고, 또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함께 갇혀서 고생했던 사람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이런 훌륭한 친척이 있었다는 것은 백만 대군을 얻는 것과 같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16:10절)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평범한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대개 믿는다고 붙들려가서 엄청나게 고문을 당하고, 살아서 돌아온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몸에는 고문당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소개하는 것을 보면, 모두 유명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신실한 사람들이며, 깊이가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어 수천년 동안 아니. 지구가 멸망 때까지 설교 때마다 모든 거룩한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어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은 영광 중의 영광입니다. 우리 각 셀(cell)공동체도 이런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들이 세워져 우리 후손들에게 영광된 이름을 남기십시다.
또한 그리스도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로마에 있는데도 이방인 신자들이 가치를 알지 못하고, 교제를 등한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만나게 되어있고, 만나면, 그 자리에서 마음이 서로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또
16:9절)...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스다구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들은 로마의 한 구석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디다. 우리는 보통 유명한 사람들과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은 신경을 쓰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유명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에서 일하는 즉 이름 없는 전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하려면, 모세 혈관이나, 모든 세포가 건강해야 합니다. 모세 혈관이 막히게 되면, 결코 건강하게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가정 교회로 생각되는 무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6:10절)...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나 16:11절)...나깃수의 가족"이 있습니다. 아마 이들은 주인인 아리스도불로나 나깃수 집의 노예 그리스도인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주인이 믿으니까 모든 노예들이 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16:14절)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헤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은 조그마한 가정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16:15절)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의 가정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모두 크지 않았고, 자그마한 가정 교회들로 모여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자기들끼리만 모이지 말고, 서로 인사도 하고, 신앙적 교제도 나누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6:16절)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여기서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는 것은 서로를 신실한 그리스도의 형제요, 일꾼으로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교제를 하자고 하는데 가보면 모두 자기 식으로 교제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식으로 따라오지 않으면, 미워하고 왕따시킵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거룩한 입맞춤*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거룩한 입맞춤이라 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 늘 소외된 상태에서 믿음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던 형제나 자매가 얼마나 위로 받고, 격려를 받는지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들과 무조건 교제하라고 명령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제하지 말고, 거룩한 입맞춤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6:17-18절)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서로 *거룩하게 입맞춤*을 하는데, 전제(前提)가 되는 것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곧 *너희가 배운 교훈*입니다. 즉 *너희가 배운 교훈*은 사도 바울이 가리친 교훈이며,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복음신앙과 맞지 않을 때는 *거룩한 입맞춤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거룩한 입맞춤*이란 그야말로 마음을 활짝 열고 전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복음과 다르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이 아무리 말은 그럴 듯하게 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자기 야망이고 욕심이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거슬러서 자꾸만 분쟁만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걸어 넘어지게 할 때. 이 사람들은 주님의 일꾼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똥배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즉 자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심쟁이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하나님 백성은 이미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면 금방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겸손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임니다. 그러나 그 영(靈)이 겸손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신봉하기를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믿는 것은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무엇인가 복잡하고 어려운 이유는 인간의 생각이 끼어들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16:20절)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약속(約束)하고 있습니다.
사탄을 발 아래 굴복시키는 것은 복음(福音)의 권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는 절대로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틈을 보이기만 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또 여러 사람들을 실족하게 만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자기와 함께 편지를 쓰면서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늘 신실한 동역자 디모데가 있고,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디오는 바울의 편지를 대서(代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오는 식사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반갑게도 로마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서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16:25-27절)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복음(福音)은 전 세계와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축복이요,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복음(福音)을 가지고도 흥분되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자랑이 되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돌감람나무 였다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놀라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귀중한 축복(祝福)을 버리고, 다른 것을 가지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진리(眞理)를 맡은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또 말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복음(福音)을 나눠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이 복음(福音)을 위해서 선(善)한 계획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삶을 세상에 썩어질 것을 위하여 낭비하지 말고, 영생(永生)의 복음(福音)을 위해 최선을 다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 아-멘
찬송가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오늘의 기도제목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주님! 셀(cell)공동체, 예배공동체, 선교공동체로 부흥.성장케 하옵소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주님! 내게 맡겨주신 재물과 나의 생명 주님께 드려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교갱원의 엄격한 규칙을 지켜 낙오자 없이 모두 성숙한 복된 신자가 됩시다. ▣ 癸卯年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세워 성장하는 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셀(cell)로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 교갱원카페. 카톡.천국백성이 은혜받고 감사하며, 기도로 화답하는 것은 필수.기본상식. 후원계좌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내용)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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