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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마
‘피같은 땀 흘리는 말’ 한혈마 종류
하루에 1000리(400㎞)를 달리는 말. 온몸이 숯불처럼 붉고 잡털이 하나도 없으며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1장(303㎝)이고 키가 8척(242.4㎝).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전설적인 명마 적토마(赤兎馬)에 대한 설명이다. 적토마는 동양사회에서 초패왕 항우의 애마 오추와 함께 최고의 명마로 평가 받고 있다.
적토마는 자신이 선택한 주인이 아니면 태우지 않았고 관우가 죽은 후에는 식음을 전폐하다가 굶어 죽었다. 말로서의 능력인 체력, 근력, 스피드뿐 아니라 용맹함과 충성심까지 두루 갖춘 최고의 명마였다.
적토마는 동탁의 소유로 삼국지에 등장한다. 이후 동탁이 최고의 장군이었던 여포를 회유하기 위해 선물로 주었다. 여포는 이에 감격해 의부 정원을 살해하고 동탁의 수하로 들어갔다. 뒷날 여포가 조조에게 생포되어 죽은 후, 조조가 소유하고 있다가 다시 관우에게 주어졌다. 이후 늘 관우와 함께 했지만 관우가 마충에게 생포되어 죽은 후 먹이를 거부하고 관우를 따라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적토마에게 최고의 미사여구가 사용되지만 중국 정사에서는 '사람중에는 여포가 있고 말 중에는 적토마가 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다.
적토마의 품종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최고로 평가 받던 한혈마로 보고 있다.
한혈마는 '피 같은 땀을 흘리는 말'이라는 의미다. 한혈보마·대완마 등으로 불렸고 한 무제는 천마고 불렀다.
한혈마는 오늘날 명마의 고향으로 유명한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을 원산지로 하는 아할테케(Akhal-Teke)와 같은 품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할테케는 사막·반사막에 사는 온혈종으로 모양과 모색이 눈에 띈다. 체모는 색상을 불문하고 금속성의 광택이 나고 털색은 흑색 밤색 황색 회색 적갈색 등이 있다.
아할테케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에서는 아할테케가 아랍보다 더 오래된 종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아랍이 아할테케의 조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할테케의 특성은 다리는 길고 가늘고 강인함과 스태미너가 좋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갈기와 꼬리는 가늘고 실크처럼 부드러우며 이마 갈기는 없는 경우가 많다.
아할테케는 속도와 지구력 때문에 경주마로 쓰이며 승마 지구력 경주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채준 기자
부케팔로스(고대 그리스어: Βουκέφαλος, 기원전 355년경 ~ 기원전 326년) 또는 부케팔라스(Βουκεφάλας)는 알렉산더 대왕의 말이자 고전 고대 역사상 실제하는 가장 유명한 말이다.
부케팔로스는 그리스어로 βούς(소)와 κεφαλή(머리)를 조합한 단어로 "소머리"라는 뜻이다. 부케팔로스는 기원전 326년 히다스페스 전투 후에 죽었고, 젤룸 바깥쪽에 있는 잘랄푸르 샤리프라는 마을에 묻혔다.
부케팔로스(Bucephalus) 길들이기
부케팔로스는 온몸에 검은 털을 두르고, 이마에 커다란 흰색 별모양이 있으며, 몸집과 머리가 매우 크고 사나운 말로 묘사되고 있다. 플루타르크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기원전 344년 12살의 알렉산더가 부케팔로스를 어떻게 길들이는지 전하고 있다.[4] 필로니쿠스라는 이름의 테살리아 말 장수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에게 13 달란트에 부케팔로스를 팔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사나운 부케팔로스를 길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필리포스 2세는 그 말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더가 자신이 그 말을 길들여 보겠다고 나섰다. 알렉산더는 만약 자신이 그 말을 길들이지 못하면, 말 값을 대신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부케팔로스에게 다가가서, 부케팔로스를 태양 쪽으로 향하게 돌려세웠다. 그래서 부케팔로스가 더 이상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게 했는데, 그 그림자가 부케팔로스를 흥분시킨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을 등지고 있던 부케팔로스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자 얌전해졌다. 자신의 펄럭이는 망토를 벗고 말 등에 올라타서 공터를 한바퀴 돌고 난 뒤, 알렉산더는 부케팔로스를 성공적으로 길들였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필리포스 2세가 이 사건에 매우 감동하여 "오 나의 아들아, 네게 맞는 왕국은 너 스스로 찾아라, 마케도니아는 네게 너무 작은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알렉산더와 부케팔로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그림에 등장하는 알렉산더와 부케팔로스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애마이자 군마로서, 수많은 전투에서 알렉산더와 함께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그림에서도 알렉산더는 부케팔로스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부케팔로스는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어서 기원전 326년 6월 30살의 나이에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부케팔로스를 기리기 위하여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로스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도시는 현재 젤룸 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부케팔로스는 현재 젤룸 외곽에 있는 잘랄푸르 샤리프라는 마을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더와 연관되어 있는 부케팔로스의 전설 중에는 그들이 동시에 태어났다는 허구도 있다. 알렉산더 로망스 중에 어떤 것은 그들의 죽음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 이성계의 8준마
http://m.blog.daum.net/milk234/195
횡운골(橫雲鶻) - 여진산, 납씨(納氏)를 패주시키고 홍건적을 평정할 때 탔던 말
유린청(游麟靑) - 함흥산, 해주에서 싸우고,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승리할 때 탔던 말.
추풍오(追風烏) - 여진산에서 탔던 말
용등자(龍騰紫) - 단천산, 해주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탔던 말
응상백(凝霜白) - 제주산, 위화도 회군때 탔던 말
사자황(獅子黃) - 강화도 매도산, 지리산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탔던 말
현표(玄豹) - 함흥산, 토아동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탔던 말
발전자(發雷赭) - 안변산에서 탔던 말
이중 이성계는 ‘유린청’을 가장 아꼈다고 합니다.
함흥산 말, 유린청은 전장에서 화살을 3대 맞았음에도 죽지 않고 31년을 살았던 명마였습니다.
■ 나폴레옹의 마렝고(아래)
위) 부케팔로스를 길들이고 있는 알렉산더
■ 초패왕 항우의 말 ‘오추’
비운의 초패왕 항우를 말할 때 그의 애마 오추(烏錐)는 빠지지 않는다. 오추는 주인인 항우에 충성을 다한 말로 유명하다.
오추는 검푸른 털에 흰털이 조금 섞인 덩치가 큰 말로 하루 1000리(400㎞)를 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추는 초한지의 항우 편에 등장한다.
항우가 회계도산 인근의 산적인 우영과 환초를 회유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인근 백성들이 사나운 말 한 마리 때문에 농사일을 망치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한 농부는 “이 산에 큰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속에는 검은 용 한마리가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용이 말로 변해 날마다 마을로 내려와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과 집이 뒤흔들린다. 또 논이고 밭을 마구 뛰어다녀 농사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항우가 연못에 가니 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더니 검은 말이 튀어나와 소리를 지르며 발로 사람을 차려고 했다. 항우는 말에 달려들어 목덜미를 움켜쥐고 힘으로 제압했다. 그리고 훌쩍 말 등에 올라타고는 연못을 10여 바퀴를 돌면서 말을 굴복시켰다. 오추라는 이름은 항우의 숙부인 항량이 지어준 이름이다.
오추는 항우와 만난 후 시종일관했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마지막 싸움이었던 해하전투(垓下戰鬪)에서 항우가 패했다. 항우는 한나라군의 포위를 뚫고 오강(烏江·쓰촨성에 위치)에 이르렀으나 낙담했다. 자신이 거느리던 10만의 군사는 대부분 전사했기 때문이다. 항우는 자신도 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항우는 오추를 자신의 호위 장수에게 주고 자결했다. 오추는 배를 타고 오강을 건너던 중 항우의 죽는 모습을 보고 슬피 울다가 강에 빠져 죽었다.
오추의 품종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혈마 계통인 적토마와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시기상 한혈마가 중국 지역에 보급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오추는 장건에 의해 알려진 한혈마에 비교하면 시기상 100년 이상 앞선 시기의 말이다. 전문가들은 오추를 당시 북방 민족인 흉노 계통의 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 한나라 초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한서 경제기에는 ‘말의 키 5척9촌 이상의 말·이빨이 아직 고르지 않은 말은 관문을 나가지 못한다’고 적혀있다. 한나라의 척은 23㎝로 5척9촌은 135.7㎝정도다. 이빨이 아직 고르지 않다는 것은 어린 말을 뜻한다. 좋은 말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지사항이었다.
말의 질적인 면에서 볼 때 중국의 말은 흉노의 말에 한참 뒤진다. 그래서 중국과 이민족간의교역에서도 중국은 물건 값을 말로 받았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좋은 말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북쪽 이민족뿐만 아니라 서방에서도 말을 구입했는데 좋은 말은 대게 북쪽에서 유입됐다. 변방의 이민족과 중국을 비교하면 중국측은 말의 품질도 떨어지는데다 말을 다루고 부리는 기술도 부족했다. 한혈마가 알려지기 전 까지 중국의 말은 대부분 북쪽에서 유입됐다.
채준 기자
역사 속 명마 - 나폴레옹의 말 마렝고
유명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그림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에서 나폴레옹과 애마 마렝고의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나폴레옹 시대 유명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그림)'은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모습은 묘사했다. 그런데 나폴레옹과 함께 그림에 등장한 백마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말의 이름은 마렝고(Marengo)다.
마렝고는 이집트산 순혈종의 아랍마로 1799년에 프랑스로 수입돼 나폴레옹의 애마가 됐다. 마렝고가 나폴레옹의 애마가 된 것은 아랍말 특유의 빼어난 자태와 함께 142㎝정도의 작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단신인 나폴레옹에게 마렝고는 맞춤옷처럼 편했고 몸집은 작지만 용맹하고 튼튼했다. 마렝고는 실전에 사용되는 전투용이 아닌 과시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렝고는 아침운동으로 50마일(약 80.5㎞) 식후 운동으로 80마일(약 129㎞)을 주파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나폴레옹의 사랑을 받던 마렝고는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서 씨수말로 사용되다가 38세에 죽었다.
마렝고의 품종인 아랍은 모든 말의 품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순수한 혈통이다. 베두인족은 아랍을 '신이 주신 선물'·'사막의 바람이 만든 걸작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는 말 ' 등으로 부른다.
아랍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베두인족은 기원전 3000년 노아의 5대손인 '박스'에 의해 예멘에서 잡힌 ‘바즈’라는 암말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베두인족은 아랍 암말을 중시해 최고 중의 최고만을 생산하며 세대를 거듭하여 모계혈통을 따라 이 특성을 물려준다. 아랍은 기원후 600년 시작된 이슬람 정복의 결과 중동지역은 물론 북아프리카·중국 ·유럽 등 세계로 퍼져나갔다. 1700년대에는 아시아와 북아메리카에 도입됐다. 아랍의 혈통은 토종 품종을 개선하고 개량하는데 사용됐다.
아랍의 특성은 키(등성마루 the top of the back) 147.3~152.4㎝ 정도이고 비례가 잘 맞으며 우아하고 운동능력이 좋다. 이들을 사육한 유목민은 아랍의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건함을 높이 평가했고 현재도 승마 지구력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말의 독특한 체형은 뼈의 구조 때문이다. 갈비뼈가 17쌍 요추가 5개 척추가 16개인데 이것은 다른 품종의 경우 18쌍의 갈비뼈 요추 6개 척추 18개와 다르다.
◆Tip 당나귀 타고 알프스 넘은 나폴레옹
다비드의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마렝고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것으로 표현돼 있으나 사실과는 많이 달랐다 .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폴 들라로슈의 그림에는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폴 들라로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나폴레옹은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생베르나르를 넘은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알프스를 넘고 4일후 길잡이에게 노새 고삐를 맡기고 안전하게 알프스를 넘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말 부케팔로스
길들여진 야생마 천하 길 뚫다
이탈리아 국립고고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으로 알렉산드로스와 부케팔로스의 그림,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그림으로 말 머리에 뿔이 묘사돼 있다.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애마로 부(소) 케팔로스(머리) 즉 소머리라는 뜻이다.
말의 배와 머리에 소머리 모양의 무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덩치가 큰 흑마로 뿔이 나 있는 말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폼페이에서 발견된 그림에도 뿔이 그려져 있다. 또 사람을 잡아 먹는 말이라는 전설도 있다.
부케팔로스와 알렉드로스대왕의 만남은 운명적이다.
한 말 상인이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왕에게 부케팔로스를 명마라며 엄청난 거금인 13텔런트를 요구했다. 말의 생김세가 워낙 잘생겼고 건장했을 뿐 아니라 비율도 대단히 좋았기에 필리포스왕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이 말은 사람이 등에 오르기만 하면 뒷발로 일어서서 사람을 떨어뜨리고 말에서 내리면 앞발길질 뒷발길질을 하며 난동을 피워 누구도 등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등자가 발명되지 않아 말이 기립 했을때 말 등에 버티고 있기 어려웠다. 궁에 있는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말에오르기 위해 도전했지만 아무도 말을 길들이지 못했다. 필리포스왕은 성질만 고약한 야생마를끌고와서 명마라고 거짓말을 한다며 말장수를 꾸짖었다. 이때 12세 알렉산드로스는 “솜씨도 용기도 부족한 사람들 때문에 천하의 명마를 잃는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필리포스왕이 알렉산드로스에게 말을 다뤄보라고 하자 알렉산드로스는 부케팔로스에 접근해 말을 돌려세웠다. 태양을 등지고 있던 부케팔로스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자 다소곳해 졌다. 부케팔로스는 자신의 그림자와 기수의 그림자를 보고 놀랐던 것이다.
말 등에 오르는데 성공한 알렉산더는 곧바로 공터를 한 바퀴 돌았는데 부케팔로스는 바람처럼 달렸다. 이후로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더가 평생을 아끼는 천하의 명마로 역사에 남았다.
부케팔로스를 얻은 알렉산드로스는 BC 338년의 카이로네이아전투에 처음 참가했고. 부왕이 암살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됐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BC 323년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원정 중이던 BC326년 알렉산드리아부케팔라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부케팔로스가 죽자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애마를 정중히 매장한 후 애도의 차원으로 도시를 건설한 것으로 부케팔로스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한 장면으로 검은 부케팔로스(Bucephalus)가 기립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