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ROTC8기총동기회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생활 정보 스크랩 그린 존 Green Zone의 시대는 아직 안 끝났다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47 10.03.30 11: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크라식 이라 부르는 영화를 보며 자란 나는 허리우드 키드였다. 요즘 영화 배우들을 모르는 세대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본시리즈에 나오던 맷 데이먼은 대단하였다.

영화를 보면서 이락의 운명과 강대국 미국의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사악한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중동의 운명과 한 나라가 가진 음모를 생각한다.

더우기 아직 바다에 잠겨있는 천안함은 단순한 침몰일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한다.

 

아랫글은 인터넷에서 잘쓴 영화평을 추려서 옮겼다. 나의 생각에 따라 편집을 했다.

능력이 없으니 모작을 하게 되는 점을 이해하여 주시길...

 

그린 존은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라힙 찬드라세카란의 논픽션 [Imperial Life in the Emerald City: Inside Iraq’s Green Zone]]에서 각본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화가 아니고 픽션이다. 이야기 속 상황들과 인물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감각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미국 고위 관리인 클라크 파운드스톤은 실제 이라크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 중 하나로 폴 브레머와 비교되었고, 에이미 라이언이 연기한 WMD 기사를 쓴 월 스트리트 저널 기자 로리 데인은 실제로 부시 행정부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그와 같은 기사를 쓴 뉴욕 타임스 기자 주디스 밀러와 비교되었다. 이처럼 현실에 근접한 픽션을 토대로 해서 영화는 이라크를 침공한 게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으로도 얼마나 일이 더 잘못되어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 문화는 마음놓고 제 나라를 홀딱 껍질을 벗긴다. <30 락>, <심슨 가족> 같은 몇몇 프로그램들은 자신들이 전파를 탈 수 있게 해주는 방송국을 풍자합네하며 희롱한다. 총소리 빵빵 터지는 블록버스터들 속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자주 본다. 나쁘게 말하면 자국의 치부로 돈 벌기이며 좋게 말하면 자신들의 큰 영향력으로 자국의 실체를 많은 관객들에게 알리는 나름의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때때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의 감독들에 의해 더욱 활발히 전개되기도 한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 또한 대표적인 경우다. 북아일랜드 민간 시위 중 발생한 참극을 그린 <블러디 선데이>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 영국 감독은 할리우드로 건너오면서 '본' 시리즈의 메가폰을 잡으며 노선을 바꾸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나름의 시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본' 시리즈는 그의 손이 더해지면서 박력 있는 날것의 액션과 정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더 뚜렷해졌고, 그러는 한편 <플라이트 93>과 같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극사실주의 영화로 현대 세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뎌지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그린 존>은 언뜻 맷 데이먼의 참여와 중견급 배우들의 포진으로 '본'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그보다 <블러디 선데이>와 <플라이트 93>의 연장선에 더 가까이 있는 듯 했다.

2003년 3월 19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색출하고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기 위한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면서 이라크전이 발발했다. 어딜 가도 목숨이 위태로운 이 현장에서 안전한 곳이라곤 미국이 이라크 임시정부를 세운 옛날 후세인의 공화궁, 이른바 '그린 존' 지역 뿐이다. 미 육군 로이 밀러 준위(맷 데이먼)는 대량살상무기가 있는 곳을 찾아내 이를 제거하는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상부에서 받은 정보대로 혼란으로 가득 찬 이라크 속을 그와 그의 부하들이 헤쳐 나가서 간 곳에서 그들은 번번이 삽질만 합니다. 최근에 그들이 어렵사리 간 장소만 해도 신경가스커녕 핵폭탄도 없고 잡동사니들만 놓여있다. 슬슬 밀러는 자신이 받는 지시뿐만 아니라 그 지시가 나온 근원인 정보 제공자인 ‘마젤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이 질문에 그의 상사들은 무관심하나 CIA 책임자인 마틴 브라운(브렌단 글리스)는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밀러를 눈여겨보고 그에게 접근한다. 로이는 실태를 파악하던 중 이라크군의 알 라위 장군이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로이는 알 라위가 대량살상무기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수소문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 정부가 관련된 위험한 진실과 마주치게 된다.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조작에 미 정부가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했을지 모른다는 것 말이다.

 

브라운은 일이 돌아가는 데에 불만이 많은 데, 그 이유는 마젤란과 접선해서 WMD 관련 정보를 얻은 파운드스톤(그렉 키니어)를 위시한 미국 행정부 쪽 사람들이 자신과 CIA 사람들을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중동이나 이라크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퇴물 취급하면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신경도 쓰지 않는 동안 파운드스톤은 민주주의의 도입으로 새로운 이라크를 만들어내겠다고 하면서 이 나라를 재건하려고 한다.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블러디 선데이]와 [플라이트 93]의 핸드헬드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통해 화면에 현장감을 불어 넣었고, 모로코에서 촬영한 영화 안의 배경은 바그다드 시내로써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바그다드에서 ‘충격과 공포’를 당하는 처지가 어떤 지를 살 떨리게 보여 주는가 하면, 그 후에 바그다드 시에 함께 존재하게 된 두 동떨어진 세계의 기이한 모습을 강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정부상태의 그 지역 바깥의 위험한 세상이다. 조지 W. 부시는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한 캐릭터가 밀러에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야’라고 말하듯영화에서 우린 이 바보 같은 종전 선언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더욱 더 바닥을 쳐가게 될 괴상한 상황의 시작을 본다. WMD를 찾는 일에 계속 허탕을 내던 도중 밀러는 현지인인 프레디(칼리드 압달라)의 정보제공으로 WMD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이라크 군 장군 알 라위(이갈 나오어)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를 잡지만, 파운드스톤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달가워할 입장은 아니다. 그에 따라 밀러는 바그다드의 그 위험한 미로 속에서 아군이지만 파운드스톤의 권한 아래 있는 특수부대와 격렬한 추격전을 벌어야 한다.

액션 장면들은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 잦은 편집과 정신없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표현되어 이런 막 흔들리는 화면이야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들에서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린그래스와 그와 함께 작업하면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거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기술진들은 어떻게 우리를 휘어잡을 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고, 그 와중에서 브라이언 헬겔렌드의 각본은 명각본은 아닐지언정 단단히 우릴 붙들어 맬 안전벨트 역할만큼은 제대로 한다. 페이스는 더 빨라지지 않는다면 모를까 느려지는 법이 없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존 파웰의 거침없는 음악과 함께 최고조에 달하면서 보는 사람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본' 시리즈의 제작진과 감독, 그리고 맷 데이먼의 출연에 '본'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영화의 내용은 그런 오해를 충분히 피해 간다. 손과 발을 많이 쓰는 잠입 액션이 많았던 '본' 시리즈와 달리 <그린 존>은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총이나 미사일이 숱하게 등장하는 전쟁 액션에 가깝다. 두 영화 모두 숨가쁜 추격전이 여러번 등장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여전히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격렬한 핸드헬드 카메라 방식을 고수하며 사방이 지뢰밭이나 다름없는 이라크 한복판을 실감나게 중계한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기에 화면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흔들려서 집중이 잘 안될 우려가 있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폭발이나 총격전의 파괴력에 따라 흔들림의 강도가 달라지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 속 상황의 긴장감을 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거칠게 줌인과 줌아웃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기교를 거의 부리지 않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우리나라의 케이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와 같이 다큐처럼 보이는 픽션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 총격전이나 추격전같은 액션 장면 역시 과대 포장 없이 담백하고 날카롭게 구사한다. 이 속에서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에서처럼 충직하면서도 끈질기게 진실을 뒤쫓으며 활달한 연기를 펼친다. <그린 존>의 경우는 특히 실제 사건 속 시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터라 이러한 극사실주의적인 묘사는 오락적인 쾌감과 동시에 현실 고발적인 면모도 두루 갖추게 한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지난 영화들에서 현대 세계 사회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굳이 에둘러 말하려 하지 않았다. 늘 정면돌파였다. <블러디 선데이>는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그대로 쫓아가며 사건의 한복판을 생중계하다시피했고, <플라이트 93>은 심지어 테러의 대상이 된 비행기의 승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어떤 큰 사건을 두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가운데에서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그린 존>에서도 여전히 엿보인다. 이라크전에 관해 전세계 사람들이 품었던 가장 일반적인 의문, '과연 대량살상무기란 진짜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시작부터 파고 들어간다. 그것도 대량살상무기를 색출하는 임무를 띠었던 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말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등장하고 1억 달러의 할리우드 자본이 투입된 영화이긴 하지만, 이렇게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사정없이 정면돌파하는 이야기의 시각은 이 영화를 '다큐영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과언이 아니게끔 만든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이라크전 와중의 이라크 내부의 모습은 참혹한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정부가 완전히 엎어진 상황 속에서 대다수의 이라크 국민들은 당장 마실 물마저 없어서 거리를 지나치는 군용 차량만 보이면 너나할 것 없이 달려든다. 마치 불꽃놀이라도 즐기듯 수시로 거리 곳곳에 폭탄과 미사일 세례가 퍼부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굳이 그런 불의 세례가 없는 곳이라도 기아와 가난이 뒤덮고 있는 이라크는 그 자체가 무법천지다. 반면, 공화궁이 있는 '그린 존'의 모습은 완전히 상반된다. 관광객들이 놀러와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며, 호화 수영장까지 펼쳐져 있어 그곳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바깥에서 온갖 혈전을 다 거치고 난 군인들이 정부에 고할 것이 있어서 들어올라치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식으로 극심한 위화감이 생길 정도다. 상황은 어디까지나 미국인들 중심으로 개선될 뿐, 이라크 국민들의 상황은 썩어문드러져간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미국 정부는 당당히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한다. 실은 상대방이 방어할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공습해놓고는, '승리했다'는 표현을 쓰는 게 이상하다. '세계평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전쟁이라는데, 갈수록 전쟁을 주도한 그들만 이로워지는 듯 하고 그들이 지켜주겠다는 사람들은 갈수록 불행해지고 있다. 독재자의 축출 여부를 떠나서, 강대국의 손에 의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 나라의 정부가 갑자기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생활의 기반이 완전히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은 더욱 동요될 수 밖에 없다. 명백히 자신들에게만 이로울 공격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볼 때, '대량살상무기'라는 명분은 이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달아줄 수 있는 지상 최악의 떡밥이 될 뿐이다.

<그린 존>이 보여주는 정면돌파식 전개는 '강대국의 힘' 아래 겉으로 왜곡될 수 밖에 없었던 이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주시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격렬하지만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액션 장면들은 미국 정부의 포장 아래 숨겨진 아비규환의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던 이가 어느 순간 그 임무의 실체를 잃어버리면서 겪는 공허감과 분노, 그리고 강대국의 압력에 휩쓸려 변화의 주체가 되기는커녕(새로 정부의 수장이 되고자 하는 이라크인은 미국 정부의 힘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오히려 불순분자의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는 이라크인들의 현실을 병치시킨다. 이들이 강력한 현실에 부딪치며 겪는 과정은 할리우드적인 영웅심리보다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허탈감을 부각시킨다.

결국 영화는 꽤 현명하게도 빤한 영웅담의 길을 걷지 않는다. '내가 이 나라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한 영웅의 포효보다 '우리 일에 제발 간섭하지 말라'고 울부짖는 희생자의 절규가 더 크게 들린다. 이미 강대국의 정부가 자기들 뜻대로 한 나라를 갈아 엎어버린 상황에서, 개인이 나서서 영웅처럼 변화를 일으킬 여지는 현실적으로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시들지 않는 문제 제기 뿐. 다소 싱겁게 끝나는 게 없지 않지만 <그린 존>이 보여주는 마무리는 그런 점에서 시원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현실적이다. 윗사람들이 마음껏 얻어먹고 내다 버린 이 거대한 떡밥은 누구에게 짐이 되어 돌아가는가. 미국 바깥에서 온 감독이 보여주는 시선은 좀처럼 미국에 대해 관대해지지 않는다. 중량감 있는 액션으로 무장한 듯 보이는 <그린 존>은 이렇듯, 강대국의 무책임한 전쟁놀이와 약소국의 무의미한 희생의 비극을 꽤 냉정하게 바라보는 묵직한 시선이 담긴 영화다. 현실적으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하지만, 시각의 공감대는 충분히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영화 안에서 달려가곤 하는 맷 데이먼을 보면 당연히 제이슨 본이 연상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제이슨 본이 자신의 정체란 맥거핀을 향해 달려가듯이 밀러는 WMD라는 맥거핀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데이먼은 제이슨 본보다 훨씬 더 현실에 가까운 캐릭터를 맡았고 영화 속의 액션들은 막 요동치면서 질주할지라도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다가 자신이 속한 시스템에 회의를 느껴가는 밀러를 보면 혹시 본 영화가 그린그래스의 [마이클 클레이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밀러는 복잡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데이먼은 액션 영화 주인공으로써도 신뢰가 갈 뿐만 아니라 분주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주인공으로써도 믿음직하다.

2시간 남짓 한 상영 시간 동안 많은 걸 하고 많은 걸 보여 주느라 바쁜 이야기에는 입체적인 캐릭터들보다는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단번에 전달해 주는 스테레오 타입 캐릭터들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고 데이먼을 둘러싼 조연 배우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 하면서 그를 보조한다. 그렉 키니어는 의도는 선할지는 몰라도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생각을 잘 해 보지 않은 가운데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독선적인 캐릭터를 맡은 가운데, 브렌단 글리슨은 주어진 상황에서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는 CIA 요원으로써 든든하다. [플라이트 93]의 테러리스트들 중 한 명이었던 칼리드 압달라는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쓰는 현지 정보제공자/통역관으로써 영화 속 상황에 대한 이라크 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영화의 중요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린 존]은 영리하고 재빠른 액션 영화이면서 동시에 이라크 전에 대해 대놓고 비판을 하기도 하는 정치 스릴러 영화이다. 이야기가 현실에 바탕을 두었으니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고 본 영화를 통해 이라크 전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는 정해진 경로를 빠르고 박진감 넘치게 달려가고 이는 매우 볼 만 하다. 그리고 허구에서 엿보여지는 보여 지는 사실들은 영화 밖의 현실을 되새기게 합니다. 몇 년이 지난 가운데 이와 같은 영화가 블록버스터급 지원을 받으면서 만들어질 수 있게 된 지금도, 그 쪽 상황이 변한 건 별로 없다.

 

 

맷 데이먼은 1988년 <미스틱 리버>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뒤, 22년의 세월 동안 한결 같은 이미지로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채워왔다. 그런 그에게도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당연히 <굿 윌 헌팅>이었다.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 깊은 상처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 윌 헌팅을 연기한 맷 데이먼은 이 한 편의 영화로 자신의 이미지를 명확히 정의 내렸다. ‘모범생’, 그것이 바로 <굿 윌 헌팅>이 맷 데이먼에게 부여한 첫 번째 이름표였다. 실제로도 매사추세츠의 캠브리지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다닐 정도로 재능이 특출했던 맷 데이먼에게 수학 천재 윌 헌팅은 더할 나위 없는 적역이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절친 벤 에플렉과 함께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 사실은 그의 모범생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줬다. 권력과 맞서 싸우는 <레인메이커>의 신출내기 변호사 루디와 욕망으로 가득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리플리>의 불운한 청년 리플리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맷 데이먼과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아마도 이때까지 맷 데이먼이 21세기를 빛낼 액션 스타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옮긴 <본 아이덴티티>에 맷 데이먼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의외였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때까지 <본 아이덴티티>로 시작된 <본> 시리즈가 맷 데이먼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은 맷 데이먼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사람들은 지적인 이미지의 맷 데이먼이 액션 연기를 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수수께끼와도 같은 음모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제이슨 본처럼, 맷 데이먼 또한 이전까지의 자신을 감싸 안고 있던 모범생 이미지를 다 지워버린 듯 처음 도전하는 액션 연기에 온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빈틈없이 상대방을 공격하면서도 절도를 잃지 않는 제이슨 본의 냉철한 이미지는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잃지 않는 맷 데이먼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루며 관객을 매혹시켰다.

 

물론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은 데에는 또 다른 공로자가 있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그 주인공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을 현장감 있게 살려낸 <블러디 선데이>로 재능을 인정받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본> 시리즈 참여는 <본> 시리즈를 기존 액션 첩보영화와 차별화시키는데 결정적이었다. 무엇보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맷 데이먼이 지닌 장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연출자였다. 언제 어디서나 단정함을 잃지 않는 맷 데이먼의 이미지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사실감 넘치는 연출과 만나 ‘격’이 다른 첩보요원 제이슨 본을 만들어냈다. 재능 있는 감독과 품격 있는 배우의 만남. 그 화학작용이 빚어낸 두 편의 영화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을 통해 맷 데이먼은 ‘모범생’이 아닌, 21세기의 첫 번째 액션 스타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됐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3년 만에 함께 한 <그린존>은 <본> 시리즈로 쌓인 두 사람의 돈독한 신뢰를 바탕으로 완성된 영화다. 저널리스트 라지브 찬드라세카란의 논픽션 에세이 ‘에메랄드 시티의 제국주의 생활’을 바탕으로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쳐 가는 액션 스릴러 <그린존>에서 맷 데이먼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감춰져 있다는 정보에 의문을 갖는, 맷 데이먼 스스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믿음이 흔들리면서 사건에 의문을 갖게 되는 훌륭한 군인”이라고 표현한 밀러 준위를 연기했다. 냉철한 판단력으로 사건의 실체를 추적해가기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누가 뭐래도 제이슨 본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다.

 

이번 영화를 위해 맷 데이먼은 실제 군인들과 함께 연기하며 군인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진짜 군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물론 이는 언제나 현실감을 살리는데 공을 들이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의도이기도 했다. “전문 배우 대신 실제 군인을 캐스팅한 건 폴 그린그래스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들은 내 연기 자체를 바꿔 놓았다. 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면 더 많은 에너지가 촬영에 소모됐을 것이고, 신병훈련소에 보냈다고 한들 그런 현실감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 또한 “처음에는 장교인 것처럼 보이기만 하던 맷 데이먼이 며칠 만에 진짜 장교가 되는 모습에 놀랐다”고 맷 데이먼의 연기에 대한 감상을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군복을 입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전장을 뒹굴어도 맷 데이먼은 맷 데이먼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고 사태를 분석하는 밀러 준위는 어떤 옷을 입어도 자신만의 품격을 잃지 않는 맷 데이먼의 한결 같은 이미지를 통해 더욱 단호하면서도 믿음 가는 캐릭터로 완성될 수 있었다.

 

 

 

 

모범생과 액션 스타. 지적인 재능과 육체적인 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맷 데이먼은 이 메우기 힘들 것 같은 간극을 거뜬히 뛰어 넘는다. 어떤 옷을 입어도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듯,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들 줄 안다. 그렇기에 맷 데이먼이 영화에 출연한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 보장된 연기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폴 그린그래스를 필두로 스티븐 소더버그, 케빈 스미스, 구스 반 산트,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많은 감독들이 맷 데이먼과 계속해서 작업을 함께 하는 것은 단순한 친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배우로서 지닌 맷 데이먼의 변치 않는 품격, 거기서 생겨나는 깊은 호감, 그것이 바로 맷 데이먼이 감독과 관객 모두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다.

 

 

그린 존의 FQA

 

 

1. 착한 놈 좋은 놈의 분류는?

 

밀러 준위는 왜 전쟁을 의심하나, 브라운 국장의 이라크인 뺨치게 이라크를 사랑하는가. 두 사람의 거동은 영화 속 즐거리를 만드는 역할뿐인가.

로이 밀러의 진실을 향한 불타는 정의심이나 전쟁을 향한 순수한 분노에 동참할 수 없다.

본 시리즈 3부작에 걸친 제이슨 본의 분노와 복수에 동감한 것은 제이슨 본이 기억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어서다. 만약 제이슨 본이 밑도 끝도 없이 '나는 전직 CIA킬러, CIA가 하는 더러운 짓을 참을 수 없어 모든 진실을 밝혀야겠다.'라고 떠벌리며 활보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본 시리즈는 액션만 가득한 평범한 액션 첩보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2. 이 영화의 제목은 바그다드 Black HawkDown?

 

그린 존의 전투씬은 정말 대단하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는 관객이 현장 한복판에서 있는 듯이 현장감은 압도적이다. 전투씬과 추격씬이 돋보인다. 특히 그린 존의 마지막 추격씬은 본 울티메이텀에서의 탕헤르 추격씬과 워털루역 추격씬을 연상시킨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본 시리즈의 제작진은 본 시리즈의 능력을 다른 액션 스릴러 영화들이 탕진했다는 사실을 깜빡했나보다. 그들이 이룩해두었던 새로운 액션의 표준은 첩보 액션의 대부격인 007시리즈부터 시작해서 헐리웃 영화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심지어 한국에서도) 액션 영화들의 교과서가 되어 철저히 인용되었고, 현장감을 살리는 극단적인 핸드헬드 촬영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래로 이미 전쟁 영화 촬영의 기본중의 기본이 되어왔으며, 특유의 정신없는 컷 교차 편집 기법은 첩보액션 장르에서와 달리 전쟁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대전을 다룬 전쟁 영화라는 특성상 영화 음악에서 많은 힘을 얻지 못하는 점도 크다.(본 시리즈 추격씬이 주는 긴장감의 5할은 음악이 선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최첨단 광학 테크놀러지를 이용한 추격씬도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필두로 본 울티메이텀에서 그 정점을 찍었고 또한 본 울티메이텀에서 자극을 받은 많은 액션첩보 영화들이 아주 주구장창 우려먹었던 소재라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 그린 존은 본 시리즈 제작진이 이라크를 배경으로 찍은 블랙호크다운이라는 식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3. 프레디,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속 로이 밀러가 진실을 알고 싶다며 정신없이 사방팔방을 들쑤시며 다니는 모습을 보던 중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불안함은 로이 밀러가 이라크 장군과 접선하기 위해 뛰쳐다니던중 미 정부가 이라크군의 전면적인 해체를 선언하는 부분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이 양반들... 이거 도대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내려고...' 그 불안함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 사방에 미군이 이라크군과 싸우며 로이 밀러와 이라크 장군을 찾아 에워싸고 있는 한복판에서 밀러가 이라크 장군을 총으로 겨누는 장면에서 결국 한숨으로 변하고 말았다. 밀러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저희와 함께 가시죠' 뿐이었던 것이다.

 

이라크 장군이 밀러와 함께 갔던지 안 갔던지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에 의해 소리소문없이 제거되었을 것이고, 이라크는 미국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고, 영화 안팎의 모두가 진실을 알거나(혹은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거짓된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했을 것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었고, 아마 이라크 장군에게 총을 겨누며 자신과 함께 가자던 영화 속 로이 밀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린 존의 결말은 마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속시원한 답을 쓸 수 없는 주관식 문제 앞에서 에라 모르겠다며 이도저도아닌 횡설수설만을 늘어놓은채 내버린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렇기에 밀러와 관객들은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시원하지 못하고, 파운드스톤은 협박을 당해도 무섭지가 않으며, 프레디는... 밥은 잘 먹고 다닐런지 어쩔런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이야기에,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의 연속, 그리고 시원찮은 결말... 이쯤되니 그린 존의 미국에서의 대실패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결국 그린 존은 기대치에 비해 미흡한 점이 많았다. 어찌되었건 영화는 (특히 미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고, 현재로서는 그린 존의 실패로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멧 데이먼 콤비는 본 시리즈 4탄과 영영 넘어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이미 하차한다고 알려졌는데, 그린 존의 상업적 실패를 보고도 무리해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을 기용할 것 같지는 않으니;) 하지만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멧 데이먼 콤비의 힘은 아직 이 정도가 끝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영화 흥행은 병가지상사라 하지 않던가?(아님 말고;) 한번의 실패로 굴하지 말고 다음에도 멋진 영화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