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 최 태 준
세상에 싸움이 많지만 부부싸움만큼 객쩍은 일로 시작하는 싸움도 드물 것이다. 전쟁에는 영토문제가 개입되지만 부부싸움에는 단연 자존심의 향배가 문제가 된다. 그러나 자존심이라는 완강한 성채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당사자들이 전쟁 때보다 더 고달픈 환경에 처할 수도 있기에 나는 저 심리적 보루를 두고 벌이는 싸움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어제 아내와 모처럼 감정대립이 있었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내게 왔지만 아내도 밤새 고달팠을 것이다. 아내는 식탁을 바꾸고 싶고, 나는 멀쩡한 것이 아까워 그냥 두자는 생각이었다. 아내는 토라져서 저녁을 굶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다. 나는 간식으로 대충 저녁을 해결했다. 아내는 아침에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제 식탁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답답한 대치상황을 해소하고 함께 아름다운 아침을 맞아야 할 게 아닌가.
우리부부의 삶에서 싸움은 어떤 낙인 같은 것이었다. 아내와 맞선 때 처갓집에서 운명철학관에 물어보니 두 사람의 사주가 상극이라 시도 때도 없이 싸운다는 것이었다. 그 탓에 헤어졌는데 인연이 있었던지 이년 후 다시 만나 결혼했다. 우리는 자주 싸웠고, 아내가 사주에 맞추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나에게 덤볐다. 인내심이 있다고 느껴왔는데 나는 아내의 고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나 같이 무뚝뚝한 성격에는 여우같은 여자가 어울리지만 아내는 고집이 세고, 쉽게 승복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저 싸움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혹 있을까 하여 서점에서 <손자병법>을 사서 읽었더니 많은 전략들 중에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싸움에서는 먼저 주도권을 장악하라. 적의 허약한 부분을 포착해 공격하라. 싸움은 승리가 중요하지 버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일찍 승부를 내는 것이 유익하다. 한번 망한 나라는 존재할 수가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한동안 저 담대한 충고를 부부싸움에 거듭 적용해봤지만 어떤 경우에도 들어맞은 적이 없었다. 주도권을 잡았지만 아내가 응하지 않아 아무 소용없었고, 약점이다 싶은 점을 집중 공략했더니 아내가 펄펄 뛰며 반격하는 바람에 승리는커녕 궁지에 몰리기 일쑤였다. 아내의 심상은 죽의 장막이자 크레물린이라 내가 알려고 할수록 정작 미로에 빠져드는 것은 나였다. 일찌감치 승부를 내려고 밀어붙이다보면 일이 더욱 꼬여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러다 아내가 나를 두고 떠나면 가정은 망하고, 떠난 사람이 되돌아올 리 만무하니, 저 마지막 단언만 그럴 듯 할뿐 나머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손자병법이 부부싸움에는 무용지물임을 확인한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하여 나만의 비책을 개발하였다. 오늘 아침 그 전술로 아내의 성을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젯밤 아내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은 것은 나름의 전략이었다. 아내는 밤새도록 잠을 설치며 성을 쌓고 허물었을 것이다. 지금이 절호의 타이밍이라 아내의 침대 곁에 서서 외쳤다; 그까짓 식탁 당장 사라, 아버지의 절약정신을 닮아 그런 거지 나라고 왜 새 식탁이 싫겠나, 당신이 마음 아파하는 거 더 이상 못 보겠다. 아내는 예상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얼른 이불을 걷어 아내를 포옹하고는 심하게 간질였다. 나의 비법은 간단하다. 일단 아내가 웃으면 끝난다. 조금 우스꽝스러울지는 모르나 이게 특효약임엔 틀림없다.
아내가 아침 식탁에서 눈을 흘기며 한마디 한다, 또 애먹이면 앞으로 밥 굶을 줄 알라고. 자신의 퇴직기념으로 식탁을 바꾸고 퇴직금에서 돈을 지불한다는데 내가 왜 굳이 참견했던가. 지난 날 아내의 반응을 돌이켜보면 거기에는 부끄러워해야할 나의 원죄가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 봄날, 결혼하면 겨울’이라고 했던가. 평소 남자는 여자에게 많은 약속을 하고는 곧 잊어먹지만 여자는 그 약속을 모두 기억한다. 약속과 기대,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불화가 생겨난다. 남자가 발행해온 약속어음을 부도내면 어느 시점에서 여자의 인내심이 폭발한다. 부부싸움의 발단은 대동소이하다.
내가 부부싸움에서 언제나 먼저 투항하는 것은 그 죄업 때문이며, 달리 대학시절 자취집에서 목격한 처참한 부부싸움의 기억 때문이다. 아직도 그 혈투가 눈에 생생하다. 시부모와 미혼의 시누이들과 동거하던 그 여성은 자주 벌떼 같은 시누이들의 공격을 받았다. 싸움의 발단은 그녀가 남편의 잔소리에 대꾸했다는 정도인데 항상 시누이들에게 옮겨 붙었다. 시누이들은 그녀의 머리채를 낚아챘고, 남편은 팔짱을 끼고 바라만 보았다. 시부모는 외동아들 편이라 침묵을 지켰다. 싸움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수순이었다. 그녀는 푸석푸석한 몰골로 부엌 뒤에 서서 훌쩍거렸고 눈이 마주치면 얼른 외면했다. 그때 나는 훗날 절대로 아내를 울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남남이 만나 서로 얼굴 맞대고 사는데 어찌 평탄할 것인가. 의무와 애정의 상관관계 속에 갈등은 잠재한다. 서로 보완관계임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부부싸움은 전혀 다르다. 한쪽이 이겼다고 이긴 게 아니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아 그 영향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부부싸움에서는 상대에게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손자병법이 결코 가르쳐 줄 수 없는 이 현묘한 부부싸움의 원리를 나는 오랜 쟁투 끝에 비로소 터득하였다.
‘내외간의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은 부부 간의 필연적인 다툼을 옹호하는 말일 게다. 가벼운 싸움은 자주 해도 무방하다는 낙관론이기도 하다. 우정도 싸운 후에는 더욱 돈독해지지 않던가. 부부 또한 싸우는 가운데 애정이 도타워지는 법이니 부부사이가 미적지근하다면 이따금 싸우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화해 뒤에 찾아드는 상큼한 기분, 그 애정 갱신의 날개를 타고 부부가 마음을 새롭게 다질 수 있다면 부부싸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5매)
첫댓글 어떤 분의 글인데 읽어볼만 합니다~~
같은 싸움을 반복하면 안되겠지요 , 부부싸움은 안하는게 좋고 , 하면 원인을 찾아야합니다.
원인을 찾아도 상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 어쩔까요?~~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