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한도 사람입니다. 감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철저히 살인병기로 길러졌다 하더라도 자신을 인간으로 느낄 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프고 힘들고 기분 좋고 등등 그런 감정은 사람이라면 저절로 반응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 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 기계요 그냥 쇳덩어리죠. 일이 계획대로 잘 해결이 되었다, 기분 좋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일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짜증나지 않겠습니까?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예로 영화 ‘레옹’을 들 수 있습니다. 차디찬 모습의 전문 킬러인 레옹이 도움을 청하는 12살 소녀 ‘마틸다’의 청을 무 자르듯 거절하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에 놓이면 아무리 차가운 살인자라 할지라도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사의 지시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킬러는 명령에 따라 상대를 찾아 살해하면 끝납니다.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죽어야 할 만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등등의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려진 지시를 따라 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궁금합니다. 왜 죽어야 하는가, 꼭 죽어야 하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가,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금기사항입니다. 그러니 지시 위반이고 그 대가는 역시 죽음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 짓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호기심인지도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동기와 연관이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의 과거가 꾸준히 자신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지금의 자기를 키워준 스승 같은 전임 상사는 ‘에이바’를 아낍니다. 그래서 그 잘못을 알면서도 희생당하지 않도록 이 모양 저 모양 배려합니다. 그것이 신임 상사에게는 또 다른 훼방이 됩니다. 그러니 젊은 새 팀장인 ‘사이먼’은 자신을 키워낸 전임 상사인 ‘듀크’마저 제거하려 합니다. 그리고 결국 해냅니다. 더구나 듀크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에이바에게 발송해줍니다. 각오하라는 전갈이지요. 생명의 은인이고 아비 같은 사람이 당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에이바에게 이것은 살인청부 지시보다 더 마음을 다지게 만듭니다. 이제는 상사가 아니라 철천지 원수입니다.
8년의 공백,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가족도 놀라고 주변 지인들이 놀랍니다. 마약에 술꾼이었다가 새로운 모습에 또 놀랍니다. 더구나 뜻하지 않은 대처 능력에 더욱 놀라지요. 그 동안 도대체 어디서 뭘 한 거야? 물론 밝혀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느낍니다. 그 사이 자신의 애인이었던 ‘마이클’은 동생 ‘주디’에게 갔습니다. 마주한 두 사람의 눈빛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책임은 져야 합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더구나 동생은 임신까지 했습니다. 마이클도 옛정이 솟구치는 것을 이성적으로 대처합니다. 에이바 역시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처사입니다. 단지 마이클의 옛 버릇은 고쳐야 할 과제입니다. 일단 도박 빚을 청산해줍니다. 그 고마움을 느낀다면 이제는 물러서겠지요.
엄마는 내 편? 딸의 소망입니다. 어쩌면 자식 편을 드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책이 없습니다. 남편이 없는 삶에 대하여 상상한 적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우선 살아가기 위해 딸보다는 남편이 옆에 있어야 합니다. 아빠의 불륜을 알려준 딸의 말을 무시합니다. 딸이 엄마 곁을 떠날 것을 각오하고 남편을 택합니다. 그것이 엄마의 현실이었습니다. 아빠에게 화가 났고 엄마에게도 화가 났습니다. 술과 마약에 찌들다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돌아왔습니다. 한결 성숙한 모습으로. 그래서 둘만의 자리에서 당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함께 눈물짓습니다. 엄마는 이제 병상의 몸입니다.
사이먼을 처리하고 다시 고향을 떠납니다. 그 전에 자신이 모아둔 것을 동생에게 건네줍니다. 마이클과 함께 우선 얼마간 집을 떠나 피해 있으라 당부합니다. 분명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화가 닥칠 수 있습니다. 주디 너는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언니인 에이바와는 다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속된 말로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본인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길에 놓여 있습니다. 너만은 그 희생이 되어서는 안 돼, 그것이 언니의 바람입니다.
이 살인청부 조직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정부 기관은 아닌 듯한데, 사설 업체로도 존재할 수 있겠지요. 무서운 세상이니까. 영화 ‘안나’와 비교됩니다. 안나는 정부 기관의 훈련된 살인병기입니다. 적국의 요인 암살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국가 간의 암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에이바는 불분명한 어느 기관의 지시를 받는 킬러입니다. 가족 간의 문제를 안고 있는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두 영화는 똑같이 여성 킬러가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스케일이 매우 다릅니다. 영화 ‘에이바’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랜 만에 들어오셨습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