묠란드
홍인혜
탄산 같은 햇살 게으른 파도 형형색색으로 칠했지만 엇비슷한
빛깔로 바래가는 지붕들 고양이들은 배를 내놓고 잠들고 그림자
를 쓰다듬던 여름마저 꾸벅거리는 섬 아이들은 마음껏 더럽고 노
인들은 부끄럼 없이 성글고 왜 이곳에 왔는지 묻지 않지만 부은
빌목과 젖은 머리칼에서, 화약 냄새와 불탄 소맷단에서 서로의 이
력을 더듬는 나라 묠란드 손마디 굵은 사람들이 올리브나무 아래
기타를 치고 선율과 함께 손금이 풀려나간다 둥치마다 밤이 기웃
거린다 먼 나라에서 도망쳐온 연인들은 누구의 찬성 없이도 광장
에서 키스하고 입맞춤마다 사라지는 멍 자국들 차례로 켜지는 앵
두전구들 크리스마스 같아, 속삭이지만 묠란드에선 어떤 날도 기
리지 않고 내일의 계획을 물으면 모두 어제처럼 웃곤 하지 착하게
굴지 않아도 아침은 선물처럼 머리맡에 놓인다 편지는 온 나라를
돌고 돌아 느리게 도착하고 그 즈음엔 모서리가 닳아 모든 말들
은 둥글다 행인들은 목적이 없어 난생처음 제 속도로 걷고 너의
찢어진 주머니에서 굴러 나온 팥알들을 모두가 말없이 주워 손바
닥에 얹어준다 신발끈은 헐겁고 사람들은 너그러워 마치 한 번쯤
죽어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