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에서 신망을 받는 스님 중의 한 분인 수암 스님(제주 금붕사 주지, 전 동방불교대학 부학장)이 태고종의 중흥을 위한 절절한 고언을 태고종 종단기관지인 <한국불교>에 발표해 종단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수암 스님은 ‘희망! 2013, 태고종의 중흥과 그 방향’이라는 제목의 <한국불교> 신년호(제598호, 1월 9일자)의 신년기획에 기고했다. 수암 스님은 이 글에서 “태고종이 중흥하기 위해서는 인재 양성을 해야 하며, 인재양성을 위해 종단교육기관을 정비하고 교육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특히 총무원장은 지금까지의 관행처럼 파당을 지어 작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뽑아야 하며 당당하게 뽑힌 총무원장이라야 종단의 지도자로서 결단하여 현실적으로 목표를 추진할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태고종의 현재와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태고종의 중흥을 위해 고언을 아끼지 않은 수암스님.
수암 스님은 “태고종은 조직이 약화되고 재정이 빈약하여 교계와 사회가 요구하는 부분을 감당 못해 주목 받지 못하고 있으며 가난한 종단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종단의 현실을 진단하고 “종단이 이렇게 침체되어 있는 동안에 여러 종단 순위 서열에서 신생후발종단에 밀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또한 “개인주의 팽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스님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과 습의까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종단관과 애종심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암 스님은 특히 파당, 작당, 당당 등이 횡행하는 선거의 폐해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수암 스님은 “결국 종단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며 “승려의 교육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자 종단의 제일 우선 과제로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수암 스님은 종단 승려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육시설의 확충 및 인프라 구축를 비롯하여 교육재원의 확보, 교육전문인(교수) 확보, 교육제도 개편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수암 스님의 이 같은 고언에도 불구하고 태고종이 변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더구나 종단집행부에서 이 같은 고언을 흔쾌하게 수용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종단 일각에서는 다가오는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수암 스님의 고언이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 섞인 관측도 아주 없지는 않다.
<미디어붓다>는 수암 스님의 발표문 전문을 스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이 기고문이 단순히 태고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희망! 2013, 태고종의 중흥과 그 방향
제주 금붕사 주지 수암
1.들어가는 말.
다사다난했던 임진년은 저물고 희망찬 계사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침체를 거듭해 왔던 태고종의 모습도 이제 과거의 찬란한 중흥의 역사를 재현하려는 듯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금년에 실시될 총무원장 선출에 있어서 불협화음 없이 깨끗한 선거 풍토의 모범을 보여야 할 종도들이 이번에도 갈등과 대립을 표출하여 분열위기를 조장하고 안에서 해결할 문제들을 밖으로 들고 나오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곧 종단의 위상추락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또한 종단의 운명은 종도들의 교육정도에 의하여 좌우된다. 인재 또한 종단의 교육기관에서 양성되고 배출되어야 종단의 백년대계가 유지될 것이다. 이에 우리종단의 행정 수반인 총무원장은 반드시 교육마인드를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태고종의 전통계승과 시대적 요구를 결합하여 수행 중심적인 교육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안목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교육운동가이어야 한다. 오늘 이러한 문제를 제안한 것은 우리 종단이 안고 있는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600년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우리 종단의 현재를 성찰하고 나아갈 방향을 창출하여야 할 것이며 우리의 본래면목을 찾아서 종단을 바르게 만들자는 것이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무에 가위를 대듯이 같은 종도라는 입장에서 종단의 발전을 위한 조그마한 제언이니 다른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관용을 베풀기를 바란다.
2. 일그러진 자화상
우리 태고종은 조계종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 종단은 사설사암이 중심이 되어 있어 종단은 협의체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종단에 구속력이 없어 자발적인 참여만을 기대할 뿐이며, 종도가 협조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따라서 조직이 약화되고 재정이 빈약하여 교계와 사회가 요구하는 부분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국가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가난한 종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종단이 침체해 있는 동안에 점차 우리 종단의 위상이 여러 종단 순위서열에서 신생후발종단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종단의 사찰은 대부분이 사설사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적 특성 때문에 종단을 생각하기에 앞서 내 사찰, 내 신도만 우선하여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 뿐이랴! 타 종단에서 전종해 오는 사람, 장판 때가 묻지 않은 사찰의 후계자들, 그리고 스님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과 습의까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런 스님들이 애종심과 종단관이 있겠는가? 종단관이 없다보니 법회참석, 분담금 납부, 연수교육 참석 등 종단활동에 부정적 사고를 갖는 것이다.
승려는 지도자이며 공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갖추어야할 소양이 있다.
① 사회생활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일반상식
② 신도 교화에 필요한 불교의 전문지식
③ 시사, 문화, 종교, 사회, 경제문제 등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 등이 필요하다.
사회규범이나 도덕적으로 자기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며, 대중의 귀감이 되는 지성과 양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적 자질과 자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단의 체계적인 승가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린 종단에 출가하는 예비스님들의 평균나이는 4·50대가 대부분이다. 특히 청년출가자의 감소와 고령출가자들이 늘어나면서 질적 저하는 물론 일반적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스님들이 있다. 또한 수행정진보다는 직업의식을 가지고 출가하는 스님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실정을 타파하고 새로운 중흥의 길을 가기 위해 우리는 켳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선암사 합동수계산림 장면. 태고종의 스님이 되는 의식이다.
3.중흥의 길을 향하여
가. 파당 작당 당당
파당 작당 당당이라는 말은 선거 때가 되면 수없이 듣는 이야기다. 신문이나 TV를 통하여 정책선거가 되어야지 결코 금권선거가 되거나 파당이나 작당이 횡행하는 선거가 되어서는 안 되고 당당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그들 중에 스스로 그 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경책에나 있을 법한 교육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실제로 그들도 파당과 작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와 같이 숫자가 적은 집단의 선거에서는 파당과 작당이 위력을 발휘한다. 대개 작당하는 사람들은 홀로 능력이 없거나 당당하지 못하여 무리를 지어 거대한 힘에 기대거나, 또는 무리를 형성하여 잠시 파당과 작당을 지었다가, 그 목적이 다하면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 작당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는 작당키 위해서는 미리 소임자리를 주고 공동이익이라는 같은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당당함이란 결코 무리를 지어 작당하지 않고 오직 바른 정책이나 정신만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각종 선거의 결과를 보면 대부분 작당하는 무리가 승리한다. 그러나 당당하면서도 작당의 무리를 이길 수 있는 경우는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작당이 나쁘고 당당해야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스스로는 모두 작당하려고 하고, 그렇게 해야만 승리할 수 있고, 승리해야 종단을 이끌 수 있고, 종단을 이끄는 사람이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갖가지 방법을 통하여 교육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당당한 사람의 숫자는 적기 때문에, 당당함이 승리하는 사회는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
일개미 100마리를 관찰해 보면, 그것들이 일개미임에도 불구하고 80마리는 일을 하고 20마리는 놀고, 다시 일하는 80마리만을 모아놓고 관찰해 보면, 그것의 80%인 64마리만 일하고, 나머지 24마리는 논다고 한다. 인간도 동물인데, 아무리 당당한 무리들만 모아, 그들을 관찰해 보면 그들의 20%정도만 계속 당당하고, 당당했던 20%만을 다시 모아 관찰하면, 다시 그들의 20%만 당당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이 깨끗해지도록 교육하는 것은 무의미하단 말인가. 부처님 말씀인 인간들이 추구하는 外境(외경)이 헛것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몸이 헛것인데, 하물며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를 안다면 그것 때문에 작당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파당 작당에 자유롭고 정정당당할 수는 없겠는가?
나. 교육을 잡는 자 종권을 잡아야
희망! 2013년은 교육이 중요하다. 종단의 미래는 교육이기 때문에 복지보다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고학력의 무한경쟁사회에서 인천의 사표가 되어 중생을 구원해야할 승려의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자 종단의 제일 우선 과제이다.
태고종의 종헌 종법(교육법)상의 교육기관현황을 살펴보면
⑴ 득도(행자) 교육기관으로 정수원(正修院)이 있고,
⑵ 승려의 기본(基本)교육기관으로 불교대학(佛敎大學)이 있으며
⑶ 내전(內典), 전문교육기관으로 강원(講院) 및 선원, 율원, 염불원 등이 있고
⑷ 기성승려의 재교육기관으로 연수원(硏修院)이 있으며,
⑸ 이외에 특수학교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상의 교육기관은 허명무실(虛名無實)하여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일단 득도하고 나면 불교대학이나 강원에 들어가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매년 한 두 차례 연수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이 또한 참여율이 저조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는 원천적으로 각 교육기관의 교육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고 교육콘텐츠 역시 부실할 뿐 아니라 종단이 정한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는 제도상의 허점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필요에 따라 소극적인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단체는 교단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학문과 지식이 바탕이 되고 있어서, 그 교단의 현재와 미래는 종도들의 소양과 지성의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종단의 교육 현실을 들여다보면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허다하다.
첫째. 교육시설 확충 및 교육 인프라 구축 문제이다. 태고종이 당면한 교육개혁의 근본은 교육시설을 확보하고 교육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① 출가자의 기초교육을 시행하는 별도의 교육시설(정수원)이 필요하며
② 기성승려의 기본교육을 담당하는 종립대학의 교사(校舍)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을 확보하여 대학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지식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교육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교육재원의 확보 문제이다. 본 종단의 종도양성교육은 의무교육이어야 하며 종단이 교육재원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나 가용(可用)재원이 없는 종단의 실정으로 보아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현재는 행자교육이나 연수교육 등을 실시할 때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피교육자가 교육비를 부담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종단에서 교육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적인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셋째. 교육전문인(교수) 확보 문제이다. 종단승려교육을 여실하게 시행하기 위해서는 유능하고 실력 있는 전문교육인력(교수)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종단의 인사 중에서 교육관계경험이 있는 스님이나, 석․박사 학위 소지자를 발굴하여 교수지원단을 구성하고 교육인력을 확보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교육인력 양성대책을 수립하여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넷째. 교육제도의 개편 문제이다. 종단교육개혁의 출발은 교육제도의 개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종단의 교육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설정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각종 교육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하며 교육제도의 개편을 위해서는 모든 종도들이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여 재래의 교육관을 탈피하고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걸 맞는 새로운 인식을 공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집단에서든지 그 구성원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교육을 받지 않고 그 자리에 설 수 없다. 그래서 학교의 경영은 스스로 공부하지 않은 자가 경영해서는 안 된다. 장사도 제가 알아야 잘 할 수 있다는데, 학교는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종단의 백년대계인 교육을 망쳐서는 대대로 그 汚名을 씻을 길이 없게 된다.
3.맺는말
600년 역사를 이어온 태고종의 중흥과 그 방향을 좁은 지면에 전부 다룬다는 것은 무리 인 것 같다. 결국 빙산의 일각만을 기술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우리의 나아갈 길도 원론적인 것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려워 현실성이 떨어진 말장난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태고종은 다시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되었다.
종도들이 한 목소리로 태고종을 새롭게 중흥하자고 한다.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정정당당하게 적임자를 선출해야 할 것이며, 종도의 교육 역시 항상 불자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제라도 정진해야한다. 종도교육에 관심이 없고 도제양성을 하지 않는 것은 전쟁터에 나아간 군인이 군복만 입었지 총칼 없이 싸우라는 것과 같고, 승려가 승복만 입었지 경전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교화전선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
승복만 입으면 설법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파당을 지어 작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뽑힌 총무원장이라야, 종단의 지도자로서 결단하여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으며 그럴 때 비로소 한국불교태고종의 현재와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