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질 텐데
김 난 석
어느 기관의 민원실에 면회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점심시간이니 한 시에 오라고 하나 어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봄볕 들이치는 창가에 앉아본다.
이곳저곳 민원창구에선 남녀 직원들이 제각각의 표정을 지으며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들도 집에 돌아가면 어엿한 아들이요 딸이요 가장일 게다.
아마도 혼기를 기다리는 처녀의 몸도 더러는 있을 터요
저마다 집에서 나올 때는 옷장에 걸려있는 옷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걸 골라
걸쳐 입고 바르고 손질하고 나왔을 테다. 제일 어울리는 낯빛으로 말이다.
보꽃는 이는 그들의 뒤란에 복잡한 사연들이 숨어있음을 알지 못한다.
저 창 밖의 화사한 모습도 마찬가지이니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면서
한 송이 봄꽃이 이슬을 털고 수런수런 피어남을 볼 때
우리는 땅 밑에서 자갈층을 헤쳐 가며 자양을 빨아올리는
힘든 역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꽃송이는 그저 아름다운 자태만을 뽐낼 뿐이니
이것이 찬란한 자연의 조화를 이뤄내는 요체일 게다.
그러다가 문득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지느니
그것 또한 숭고한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그와 달리 문화(culture)는 경작이나 꾸밈이 그 어원(語源)이라 한다.
인간은 발가벗은 상태로 태어나 얼마간은 가슴이며 사타구니며
더 은밀한 부분까지 다 내보이면서도 스스럼없이 살아간다.
어디 육신뿐이겠는가.
때론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내기도 하느니,
이게 인간의 원형일 게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해를 더해가면서 드러내 보인 부분들을 하나씩 가리기 시작하고
언어의 기교 또한 복잡 미묘해지기 시작한다.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거나
그리워하면서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어디 감정뿐이겠는가.
단순한 육신을 꾸미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니,
자신의 육신에 덧대거나 붙이고 가리개를 한다거나
긴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는 것들이 그것이다.
인간은 고양(高揚)의 한 수단으로 복잡 미묘한 꾸밈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턴가는 다시 고양의 한 수단으로 원형으로 회귀하려 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원형과 꾸밈 사이를 드나들면서
가장 아름다운 시점을 찾아 헤매는 에트랑제인지도 모른다.
원형과 꾸밈의 순환 속에서 나의 시각은 지금 몇 시를 지나고 있는가?
원형과 꾸밈을 드나드는 나는 무엇을 고양시키려 하는가?
현란한 꾸밈 속에서 원형을 들여다보거나
단아한 원형 속에서 현란한 꾸밈을 들여다봤을 때 미묘한 감흥이 느껴지기도 하느니,
꽃 피고 지는 이 봄날 원형과 꾸밈을 생각의 머리맡에 가까이 놓아보는 것도 좋을 게다.
때론 봄날의 단아한 원형에서 현란한 꾸밈을 들여다보거나
때론 현란한 꾸밈에서 단아한 원형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으려니
이 화사한 봄날, 피고 지는 꽃잎에서
한 조각 분홍빛 아름다움을 떼어내 가슴에 달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이야
내 앞의 뜰에는 찬바람을 안고
무던히도 쌓여 쌓여 무거운 눈을 머리에 이고
긴긴 겨울을 견디더니 기어이 감내하고
하얀 꽃잎이 피는 목련이 있더란다
가지가지마다 추운 겨울에 멍이 들어
푸르기까지 하도록 멍이 들어
견디다 견디다 새봄을 맞으려니
그렇게도 대견스러웠던 모양이더구나
그러기에 하얀 꽃잎을, 잎새 하나 없는
하얀 꽃잎을 피워냈으리라
남풍이 불어 분홍 꽃 소식 만발하려니
그러면 홀연히 잎을 내리고 땅 속으로 가시지만
머지않아 그 떨어진 꽃잎을 자양으로
분홍빛
분홍빛 벚꽃은 만발하리라.
(지난 날의 단상 중에서)
이 해의 봄도 눈 녹은 가지에서 매화로 피어나
담 너머로 수줍게 고개 들던 목련 잎을 여의고
언덕배기에 올라서서 벚꽃 화설(花雪)로 휘날리다가
아카시아 꽃 페로몬 향을 뿌려대며 녹음 속으로 숨어들리라.
봄의 마지막 치맛자락이 사라지기 전에 저고리 팔에 걸고
흩어진 꽃길을 따라 가만가만 뒤를 걸어보리라.
불길이 꺼져버린 곳엔 차디찬 무생물만 남으려니
그처럼 보기 흉한 게 또 어디 있으랴.
다 식어가는 화롯불일망정 다독거려
따뜻한 불씨는 꺼지지 않도록 보듬어나가야 할지니
연인의 손을 잡고 개여울을 건너는 기분으로
봄의 끝동이라도 잡고 가리라.
불길 중에서도 아름다운 성(性)의 불길이 으뜸이라 하나
자연 앞에 희열을 느껴보는 게 어찌 성의 불길만 못하랴.
꽃은 피고 질 텐데
나자
나자
걸망 하나 걸머메고
봄처녀 머뭇거리는 들로 산으로 나자
이 봄이 이 봄을 저버리진 않으려니.
첫댓글 이제 삼월로 들어셨네요.
게을러서
삶의 이야기 방에 올린 글을 여기에도 올려보며 인사합니다.
올해가 벌써 어느덧 2달이 지나가 버렸읍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3월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아직 서울은 하루중 최저기온이 영하입니다
그러니 봄이 온거는 아니지만 겨울은 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아름다운 계절인 봄을 만끽합시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아침은 우중충하지만 점점 가벼워지겠지요.
겨울이 가고있는건 분명하고요.
건강하게 지냅시다 우하하 님.
오늘, 삼월을 맞는 첫날이기도 하지만
104주년 삼일절이기도 합니다.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땅속에선 새싹을 튀우기 위한 준비로
바쁘겠지요.
곧 나뭇가지에도 새움이 봄볕을 맞을 것입니다.
움추렸던 마음을 활짝 열고
새봄을 맞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석촌님도 건안하시기 바랍니다.
네에 오늘이 삼일절이기도 하지요.
날이 우중충하지만 점점 맑아지겠지요.
석촌선배님...안녕하세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건강 하셨죠?
늘 응원 드립니다!❤💑💏🌹💐
네에 잘지냅니다만
아무래도 활기가 좀 떨어지지요.
그저 마음 상하지 않게 잘 어울리세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석촌님의 원형과 꾸임
메시지를 들으면서요.
저는 어떤 색깔로 사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석촌 선배 님.
와인 색 코트가 참 이쁘던데요.~^^
@석촌 아 그렇군요
인터넷에서 와인색 원피스를 살까말까
망설였는데 사야겠어요.
(3월 초에 사촌조카 결혼식 있거든요)
조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월이 반가운 것은 초보운전자가 더이상 눈길을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ㅎㅎ
오늘 남쪽을 거쳐 중부까지 왔는데 남쪽 시골길엔 벌써 철쭉이 만발했더군요.
석촌대형님, 건강하시지요?
그게 제일이지요.
저도 잘지냅니다.
식어가는 홧롯불 잘 다독여
화사한 새 봄 맞이하시길 빕니다.
네에 고마워요.
쓰신 글에 어떤 언어로 답을 한다는 것이 외람된다는 생각이라서 ...
주춤거리면서
석촌님의 글을 읽게 됨에 한없는 영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돼지방 아차산 시산제에 석촌님을 뵙고 싶어서 갔었답니다 ...)
늘 언제나 항상 건강하세요
석촌님의 글을 읽고 감상함에 행복한 사람도 있다는것을 ....
(예전에 김동길 교수님의 노익장에 그분집에서 하루 만이라도 있어 그분의 24시간
어떤식으로 삶을 살기에 그 연세에 "한시" 영시"
그리고
모든 역사의 지식을 술술 내 밷으시는 지 알고 싶었던적이 있었답니다)
아이구우 부끄럽습니다.
인사라도 나눌걸 그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