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가 덩치 큰 유모의 도움을 받아 힘들게 코르셋을 착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코르셋은 16세기에 프랑스에서 등장해 19세기 말까지 서양의 여인들을 그야말로 육체적으로 옥죄었던 복장이다. 동물의 뼈나 상아 혹은 은이나 철재로 지지대를 만들어 무게가 9~12㎏나 되었다.
미적으로는 아름다웠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들었고 지나치게 조여 질식하거나 탈장, 내출혈을 일으키고 갈비뼈를 부러뜨려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을 시 여성들의 요구를 담은 33개 항목이 삼부회에 제출된 이후 프랑스에서는 상속법이나 가족법 등에서 여성 지위가 많이 개선됐고 이러한 영향은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과 미국에 영향을 미쳤다. 1869년 미국의 와이오밍주를 시작으로
1893년에는 국가 단위로는 처음으로 뉴질랜드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1918년과 1920년에 여성들이 투표권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단초를 제공했던 프랑스 여성들은 오히려 1945년이 되기까지 참정권을 얻지 못한다. 1804년 나폴레옹에 의해 시행된 새로운 민법전은 기혼 여성의 이혼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정하고 여성을 가정적인 역할에 가두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다른 쪽에서 다시 한번 세계 여성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주도한다. 그 중심에 코코 샤넬이라는 아이콘이 있었다. 샤넬은 여성 패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미국의 여성 운동가인 아멜리아 블루머는 1869년 코르셋을 거부하고 무릎길이의 바지와 짧은 스커트를 기본으로 한 혁명적인 ‘블루머 복장’을 주장하며 여성의 복장 해방에 불을 붙인다. 이 복장은 미국과 영국에서 상당한 사회적인 논란을 가져왔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신세대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기존의 관습을 거부했다.
짧은 머리에 재즈를 듣고 진한 화장을 하고 가슴과 허리선이 드러나지 않는 직선적인 라인의 길이가 발목 위로 올라간 짧은 치마를 입었다. 차를 직접 운전하고 성을 일상적인 생활의 일부로 생각했으며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치마 길이가 짧아지자 스타킹을 종아리 중간까지 말아 올리고 드러난 무릎과 종아리에 그림이나 화장을 하는 ‘무릎 메이크업(Knee Makeup)’이 유행했다. 이른바 ‘플래퍼 룩(Flapper Look)’이다.
코코 샤넬은 이러한 플래퍼 룩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S라인을 거부하고 가슴선이 도드라지지 않은 단선적인 실루엣과 남성적인 이미지의 짧은 머리, 샤넬 수트, 바지 패션, 저지 천을 사용한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 때까지 창백하고 흰 얼굴을 선호했던 여성의 이미지에 선탠을 한 건강한 이미지를 직접 소개한 것도 샤넬이다.
무엇보다도 그때까지 상류층을 위해 만들던 고급 의상점(오뜨 구뛰르)의 옷을 대중화 했다. 럭셔리의 반대는 빈곤함이 아니라 천박함이라고 했다. 1926년 발표한 까만색의 심플한 ‘ LBD(Little Black Dress)’는 대량생산되어 의상의 ‘포드 자동차’로 불렸다. 1955년 2월 내놓은 ‘샤넬 2.55 핸드백’에는 어깨걸이 체인을 처음 달아 여성들의 양손을 해방시켰다.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이야기할 때는 와인도 빼 놓을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와인은 여성에게 오랫동안 금기였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에서는 와인을 마시다 발각된 여성이 이혼을 당하거나 사형을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 동안 와인은 남자들의 술이었고 여성에게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다만 로마제국 초기에는 여성들도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졌고 이에 따라 권력을 가졌거나 부유한 여성들은 스스로 만찬을 주최하고 와인을 마실 수도 있었다. 그리스나 로마와는 달리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의지대로 와인을 구입하고 마실 수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법률상의 주체가 되어 남자 보호자 없이 계약을 체결할 수가 있었고 자신의 재산을 직접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왜 남성들이 가진 것을 탐하는가. 여성들이 가진 것 중 하나가 남성 아닌가.” 샤넬의 또 다른 명언이다.
샤넬은 의상점에서 가까운 리츠 호텔의 스위트 룸에 머물면서 리츠 호텔의 바에서 달리, 피카소, 쟝 콕도 등의 유명예술가와 어울려 와인을 마시면서 교유하였다. 리츠 호텔의 바는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챨리 채플린, 마르셀 프루스트 등도 자주 애용했던 곳으로 헤밍웨이 바로 불리기도 한다.
샤넬은 런던 방문 시에는 사보이 호텔에 머물면서 호텔 바 ‘보포르(Beaufort)’에서 프랑스 론 지역의 레드 와인인 ‘샤또네프 뒤 빠쁘’를 캐비어와 함께 자주 마셨다. 지금도 사보이 호텔 바에는 이를 기념한 칵테일이 메뉴에 있다.
얼마 전 작고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샤넬 로고를 이용하여 와인 라벨을 만들기도 했다. 샤넬사도 현재 보르도와 나파 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변연배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