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에서 가장 좋은 시스템을 갖춘 삼성과, 현재 KBO에서 가장 좋은 개인기를 가진 넥센이 KS에서 맞붙습니다. 정규리그 1-2위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결과겠지요.
물론, 삼성도 개인기가 훌륭하고 넥센도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두드러진 특징을 말하라면 바로 저 두 단어가 팀 색깔을 나타내겠죠. 선동열때도 잘했고 류중일때도 잘하는 것은 바로 삼성 시스템의 힘이고, 넥센의 파죽지세는 다승왕/홈런왕/홀드왕/구원왕/타격왕/40홈런 유격수의 시너지효과일 테니까요.
한국시리즈의 승자를 예측할 때, 저는 거의 무조건 [정규리그 1위팀]을 꼽습니다. 야구를 더 잘하니까 이미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것이고, 포스트시즌은 투수력의 두께가 전력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아무래도 리그 1위팀이 (플레이오프 거치고 올라온) 2위팀보다는 투수력이 훨씬 여유가 있겠죠. 정규리그는 한 경기가 3시간이지만, 포스트시즌은 한 경기가 4시간이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워낙 게임차가 적고, 넥센도 조상우와 손승락이 방전되지 않은 상태로 한국시리즈를 치루네요. 평소라면 9:1로 삼성의 우세를 점쳤을텐데 이번에는 6.5 : 3.5 정도로 삼성의 우세를 예상해봅니다.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아직 유리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삼성식 야구'를 좋아합니다. 무조건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그룹 분위기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90년대 후반 FA에 대한 중복투자를 얘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삼성라이온즈는 왜 1등을 못하는가]에 대한 뼈저린 자기반성과 대대적인 그룹 감사 후 확 달라진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의 모습을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삼성은 기본에 충실하고 시스템에 강합니다. 그들은 2군과 재활 및 치료 시설에 다른 구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예산을 씁니다. 심지어 연고지 내 대학교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에게까지 투자를 하죠.2군 선수들에 대한 처우도 가장 좋고 . KBO에서 가장 먼저 '3군'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장기적인 플랜이 확실하다는 의미죠.
그라운드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투수들은 볼넷을 주지 않고, 타자들은 볼넷을 가장 많이 얻어내며 수비는 류중일이 코치시절 만들어 둔 시스템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삼성이 (올해는 밴덴헐크가 잘 던졌지만) 오버뮬러나 탐션 같은 소위 '폭망' 외국인을 자꾸 뽑으면서도 계속 야구를 잘하는 이유가 바로 저런것 들이죠. 장담컨대, 삼성은 농구선수 출신 문경은이 가서 감독을 해도 4강에 갈 겁니다. 이미 누구 하나의 역량으로 왔다갔다 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 넥센을 응원하시는 분들이 더 많을겁니다. 삼성이 얄밉기도 하고, 맨날 삼성만 이기니까 다른팀이 이기는 걸 보고 싶기도 하고, 또 최근 넥센이 아주 매력적인 팀이기도 하니까 그들의 승리를 보고 싶은 분들도 많을겁니다. 하지만 저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삼성이 또 우승하기를 원합니다. 누구 하나가 빠져도 큰 틀이 변하지 않는 프로세스, 아래서부터 튼튼하게 다져온 시스템, '볼넷'이나 '수비'같은 야구의 기본적인 가치에 충실한 선수들, 이렇게 잘 갖추어진 조직이 힘을 낸다는 것을 다른 팀들도 얼른 느껴서 구단들이 전부 그런 모습을 갖추기를 바라거든요.
물론, 넥센이 패권을 차지한다면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거대 모기업 조직의 힘 없이 독자적인 성장과 마케팅 전략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될 것이니까요. '대기업이 아니어도 야구할 수 있고, 프로야구단 자체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의 긍정적인 효과를 저도 인정합니다. 다만, 프로야구가 태생적으로 대기업 위주고 제가 응원하는 팀 역시 대기업이니 이왕이면 삼성 시스템을 배우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FA에 중복투자하며 '돈질'이라고 욕도 먹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결국 그런 과정이 모여 지금의 삼성라이온즈가 됐으니까요. 33년 동안 29번 가을잔치에 갔다면, 그들에게서 분명 배울 것이 있을겁니다. 삼성에 대한 호불호는 둘째치고라도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이전글 제목이 기억에남네요. 대단한팀과 대단한팀을 누르고 우승한 더 대단한팀...
어떤 내용인가요? 더 대단한 팀이 삼성을 말하는 것인가요??
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쥔장님의 생각에 거의 동조하지만, 늘 시스템이 갖춘 곳이 독식하는 구조도 없는 사람들이나, 집단에게는 삶의 희망을 던져주지를 않게되는것 같아요. 적어도 야구인들한테는 다르겠지만, 저는 야구를 취미로 보니까 드라마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늘 바랍니다. 없는 집단도 잘 짜내면 한 번쯤 일을 낼 수 있다는 것...!! 그런 재미까지 없으면 야구는 진짜... 삶처럼 재미없는 일이 되겠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