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하게 드리워진 커튼을 슬며시 밀어내며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안긴다.
질색을 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마음을 가다듬고 모른 척 옷깃을 여미며
언제 보았는지 기억조차 없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작은 별을 찾았지만, 작은 별은커녕 큰 별도 없었다.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던 별들은
모두 어디로 도망간 것일까?
찬찬히 밤하늘을 응시하며 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희미한 별 빛이 모두 도망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 있긴 있었구나'
존재조차 의심받고 있는 도심의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옛 친구를 만나고 싶은 것처럼
갑자기 별들의 잔치가 보고 싶었다.
좌구산행
2월 마지막 일요일은 별들의 잔치를 볼 수 있는 천문대가
설치되어 있는 좌구산으로 산행이 있는 날입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동녘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는
첫새벽 찬바람이 선잠이 들었는지 조용합니다.
바람결이 매섭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놓여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가는 동녘하늘을 오랜만에 바라보며
회심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길, 차도조차 간간히 차들이 지나가고 있어
한적한 휴일 새벽풍경에 잠시 여유를 되찾으며 좌구산행
버스가 있는 사당동으로 갔습니다.
아침햇살이 차창에 부딪치며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눈이 부셔 커튼을 잡아당겨봅니다.
커튼사이로 겨울을 고수하려는 찬바람과 새봄이 오고 있다고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 아침 해가 빈 들녘에서 한바탕 씨름 중인
풍경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버티라고 끝까지 버티면 분명 이기고 너의 뜻대로 될 거라며
파아란 하늘에 떠있는 아침 해를 향해 무언의 응원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복병 차멀미가 예고도 없이 찾아와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아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가 않습니다.
눈을 꼭 감고 애써 잠을 청하지만 차멀미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천만다행 구세주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충북방 산우님들과 만나는 초정행궁에 다 왔다고.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군 내수읍 초정약수로
주차장에 좌구산행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달려갔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봉사활동같이 하는 아남칼라 선배님을 만나
선배님께서 주신 멀미약으로 만신창이 되어버린 속을 달랬습니다.
서울에서 87명 충남 16명 충북에서 14명의 산우님들께서 모였습니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5060 카페 회원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흉허물을 감싸주는 진솔한 친구로
산행을 통해 거듭난다고 웃음꽃을 피우며 카메라로 확인 사살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좌구산행 버스를 타고 증평군 증평읍
솟점말길 간이주차장으로 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여전히 바람은 쌀쌀맞게 우리를 맞이하지만
아침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아 위로합니다.
그들의 위로에 발걸음조차 가볍게 철책이 드리워진 울타리 길을
116명의 산우님들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명상 구름다리를 건너 죄구산의 비밀을 알아내다.
나지막한 언덕길을 지나고 돌계단을 올라가자 이 산과 저 산을 연결하여 놓은
철제다리 이름하여 구름다리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명상의 구름다리답게 다리바닥을 나무판넬로 쫘악 깔아 놓고
대청마루를 걷듯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친절한 안내를 편안한 웃음으로 화답하며 구름다리를 건너갑니다.
100m쯤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다리가 흔들거리기 시작합니다.
무섬증이 왔다 하면 한 발자국도 띄어놓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에 절대로 위험하지 않다고
두려워하려는 마음을 타이르며 130m 흔들 다리를 건너면서 불현듯 생각합니다.
'왜 명상 구름다리일까?'
'공중에서 흔들거리며 명상을 할 수 있을까?'
색동옷을 입은 거북이 소년 소녀가 청사초롱을 들고
명상 구름다리를 건너온 우리를 축하합니다.
비스듬한 언덕에 높게 세워진 돌탑들이 좌구산의 비밀을
간직한 듯하여 슬며시 귀 기울여 봤습니다.
"1608년 광해군이 직위하고 이유야 어떻든 폭정은
병조판서 김치가 좌구산에 은둔했다고 합니다.
심기원 최명길이 주도했던 능양군 왕으로 밀어 올리는 반정에서
심기원이 은둔하고 있던 김치를 찾아왔습니다.
김치는 점을 보면서 반정일자를 논의하고 깊은 밤 곤하게
자고 있는데 개가
심하게 짖어 염탐꾼들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하여 坐拘山 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멀리서 보면 거북이처럼 생겼다 하여 座龜山"이라고 부르며
거북이 바위정원까지 꾸며놓고 증평군 수익에 일조를 하는 듯합니다.
이제는 좌구산의 비밀도 알았고 우리들은 또다시 명상구름다리를
건너 오늘에 하이라이트 천문대로 향합니다.
과연 명상 구름다리에서 명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하면서.
구름다리를 건너온 산우님들은 삼지저수지로 가시는 B팀과
천문대로 가시는 A팀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천문대 앞산에 있는 겨울 산수국
지리산에도 있고 설악산에도 있고 높고 낮음과 거리의 차이지
어느 산에 나 있는 깔딱 고개가 천문대로 가는 들머리입니다.
산행거리가 짧다는 사전지식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올라갈수록 가팔라지는 산길에서는 춥다고 입었던 오리털
조끼를 마치 허물을 벗듯 벗었습니다.
오르막 산길에 수북수북 쌓여있는 낙엽을 밟으니 사그락사그락 거리며
지난가을의 전설 이야기 꽃을 피우려 할 때 바로 코 앞에
커다란 돔 건물이 우뚝 서 천문대라고 합니다.
오늘에 최종 목적지 천문대까지 오긴 했지만,
갈 길 바쁜 구름나그네처럼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것 같은 천문대.
아득히 먼 어린 시절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너무나 멀어
도심 밤하늘에 작은 별처럼 희미한 기억이....
천문대에서 아스팔트 횡단보도를 건너니 나무계단을
만났습니다.
쉬엄쉬엄 계단을 올라오자 나지막한 능선길입니다.
가르다란 나뭇가지에 상아빛 꽃이 피어있습니다.
물론 물이 올라 꽃잎이 통통한 꽃은 아니었지만
꽃잎이 선연한 꽃들이 활짝 피어 우리들을 반깁니다.
언론의 호들 값이 아니더라도 지난겨울 세기의 추위를
이겨내며 어디 한 군데 상처도 없이 곱게 피어있는 꽃잎들은
주목만큼이나 위대하여. 산수국이라고 합니다.
좌구산 산수국.
세기의 추위를 몰고 왔던 지난겨울.
모진 칼바람을 굳건히 견뎌낸 그대여.
톡 건드리면 바스러질 듯 연약한 꽃잎이
선명도 하여 좌구산의 온기를 품은 듯하여이다.
에필로그:
영국의 나포리나스 미국의 샤스터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 초정약수라고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1444년 안질과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초정약수터로 행차하시면서 만들었던 초정행궁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약수로에 있습니다.
청주시에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조성하여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초정행궁이란 입간판이 있는 기와집 문을 들어가면
전시관, 초정약수체험관, 왕자방, 편전, 침전, 수라간, 전통찻집, 한옥체험관 등등이 있으며
족욕을 하는 초정약수 족욕체험관도 있답니다.
누구보다도 과학에 심혈을 기울였던 왕답게 재위시절 만들었던
측우기, 수표, 풍기대, 온천의, 천평일구, 소간의, 해시계, 천문관측기 등등의 모형물이 야외 전시되어 있고
나랏말싸미 하는 훈민정음 서문이 새겨져 있는 비석도 보입니다.
특히 인상 적였던 것은 한글 창제를 마무리하던 집현전을 재현하였기에
발칙하게도 인증 사진을 찍는 괘씸죄를 저지르고 말었습니다.
2023년 2월 27일
NaMu
첫댓글 참 좋은 산행 좋은 나들이였네요.
여전한 건각 잘 유지하세요.
건강해서 산행 할 수 있으니 얼마나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석촌 선배님도 늘 건강하시길 소망합니다.
한편의 상큼한 수필을 마주하는
나무랑님의 좌구산 등산입니다.
찬바람과 봄바람이 교차하는
기분을 상기하며
'명상 구름다리를 건너
좌구산의 비밀을 알아내다' 로
시선과 마음을 모이도록 하네요.
봄은 오는 듯 오는 듯 하지만
기웃기웃 합니다.
나무랑님의 등산에는 봄맞이가 깃들었네요.
그러게요 좌구산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있었다고해요.
아직은 바람결이 차지만 봄은 우리곁에 오고 있어요.
그~쵸
삭제된 댓글 입니다.
큰 행사 주관하시고 치르시느라
정말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나이에 어울리는 않게 낯을 많이 가려서
인사를 못하고 온게 마음에 걸렸어요.
좌구산 산수국 닮으신 늘 평화 충북방장님
여러가지로 감사드립니다.👍
서울에서 별을 볼수있으니 좋은곳에 사십니다
아고 차멀미 고통스럽지요
저도 차멀미 심해서 버스 타는게 망설여집니다
초정약수는 들어본것 같군요
매주 산행하시니
부지런한 분 같아요, 세심한 글도 그렇고 ~
턱 하고 걸터 앉아서 턱까지 괘였으니 세종대왕께서 발칙하다 하셨겠네요 ㅎ
어쩜 별들이 어디로 다 도망갔데요.
설마 했는데 새삼 놀랐어요.
그러게요 차멀미가 심해서요 어디를 잘 안가요.
그렇다니까요 괘씸죄 맞는거죠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진짜 구봉님 땜에 웃어요.
옙^^ 이잡듯 상세하게🤣
평생 소원 중 하나가 천문대 가까이 텐트치고 누워 별바라기하다가 잠드는 것이었지요.
다행히 요즘 그 소원을 거의 풀었습니다. 텐트는 아니지만 빼곡히 하늘을 메운 별들을 가끔 볼 수가 있으니까요.
조구산 산행, 덕분에 나무랑님따라 잘 했습니다. ㅎ
그렇다니까요 느즈막히 소원풀이 하셨으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머리 싸매고 열정을 불사르기에는 이미 지난 우리들
이잖아요.
나중에 시간나심 별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좌구산 저도 처음 가봤는데요.
초정약수가 있는 초정행궁도 가까이 있고 천문대도
있고해서 아이들하고 가볍게 나들이 하기에는 넘
좋을 것 같았어요.
좌구산을 한자로 적어주시니 이해가 되고 머리에 쏙 들어옵니다
이골 저골 이산 저산
다니던 때가 있었건만
지금은 나와는 먼 이야기같습니다
엄두내지않고 둘레길만 사부작 다니거든요
봄되면 한번쯤 욕심내고픈 마음이 불쑥
그러게요 저랑 산행같이 하던 산우님들도
이제 거의 산행은 못하셔서요.
산행 할 기회도 거의 없어요.
요사이는 둘레길을 잘 다듬어 놓아서 둘레길이
강세예요. 해파랑길이 그렇게 좋다고하던데요.
옙^^건강 관리 잘 하셔서 봄에는 가벼운 산행도 할
수 있기를 화이팅!
마치 함께 하는 여행 인듯~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 집니다.
차 멀미가 심하신 모양입니다.
좌구산..언젠간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집니다.
집현전 앞의 잔잔한 모습 예쁘십니다.
차 멀미가 심해서요.
왠만해서는 잘 안돌아다녀요.
광천수가 사이다마냥 톡 쏘기도하지만 레몬향도
난다고 하는데요.
초정행궁에 가면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초정행궁 들렸다가 좌구산 구름다리하고 천문대까지 가는 코스도 볼거리가 많아서 재미 있을 것같아요.
전혀 힘들지 않아요.
운동화 신고 평상복 입고 가도되요.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충북 지역과 합동으로 산행하셨군요.
건강 잘 유지하셔서 오랫동안 산행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옙^^ 합동산행 였는데요.
코스가 좋아서 볼거리가 많아
넘넘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