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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채동석회장님제공]
캐나다의 한 노신사가
현대자동차를 구매하려고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신사는 구매계약을 하면서
딜러에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딜러는 이 말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노신사가 차를 찾기로 한 날 현대차 딜러가 준비한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노신사는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지금부터 현대차 딜러가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알아 보겠습니다.
캐나다의 노신사 도널드 엘리엇씨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현대차 미시소거점을 방문해서 구매 상담을 합니다.
엘리엇씨는 자신을 맞아 주던 동양인 딜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에게 "혹시 한국인 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동양인 딜러가 "한국인 맞다"고 하자 엘리엇씨는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그럼 내 이야기 좀 들어 보겠소?"
캐나다에서 쭉 살아온 엘리엇씨가 왜 한국이란 말에 반가움을 느낀 걸까요?
"멀고도 가슴 아픈 나라"
그의 입에서는 가슴 아픈 사연이 흘러 나왔습니다.
"큰 형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보지도 못했고
이제는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수없어 가 볼수도 없습니다."
60년 전, 머나 먼 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떠난 형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어려운 형편에 형의 묘지 조차 찾지 못한채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 버린 것인데요.
하지만 그는 한국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자신의 형이 피를 흘리며 자유를 지켜준 나라라며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당시 큰 형이 20살이었으니 어린 엘리엇씨가 한국을 방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다해도 어렸을 적 형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는데요, 그 그리움이 한국인 딜러를 보자 터져 나왔던 것 입니다.
이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한국인 딜러 신상묵씨는
뭔가 자신이 도울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한가지를 물어 봤습니다.
"형님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Roy Duglas Elliott 입니다."
자동차 계약도 끝났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지만 신상묵 딜러는
손님과 고객사이가 아닌 한국인으로서 정말 그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는데요. 차랑 출고까지 남은 시간 3일 72시간 안에 정보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거기 Roy Duglas Elliott씨의 묘비가 있습니까?"
엘리엇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큰 형님의 성함과 1953년에 전사하셨다는 것에 집중하여
일단 서울에 묘지가 있다는 말에 인터넷부터 전화까지 돌려가며
수소문 했지만 도무지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이름 하나만 가지고 묘비를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쉬울리가 없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차가 나오는 날 오전이 되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신상묵 딜러는 혹시나 하고 부산 유엔 기념공원 사이트에 들어가보았는데요.
그곳에는 유엔군 전몰용사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이 리스트를 확인하던 신상묵 딜러는 심장이 벅차올랐습니다.
마침내 그토록 찾던 이름을 발견하게 된것입니다.
"Roy Duglas Elliott"
사이트에는 묘비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는데요. 곧바로 사진을 현상해서 액자에 넣었습니다.
차를 찾으려온 엘리엇씨에게 딜러는 액자를 선물하며 형의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엘리엇씨는 액자를 꼭 껴안더니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60년만의 큰 형님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그 감정은 누구도 감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엘리엇씨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이에 신상묵 딜러는 이런 말을 건네었습니다.
"당신의 큰 형님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이 사연이 신상묵 딜러의 페이스북에 올라오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고마운 마음을 공감하며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되었고
한국 정부에서도 그의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요.
곧 엘리엇씨에게 또 다른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가 보훈처에서 엘리엇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감사함을 전한 것입니다.
"형님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희생한 용사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신상묵 딜러..
이들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캐나다는 6.25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2만7천여명을 파병 516명이 전사를 했고
30여명이 실종 1,200 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R.D.엘리엇 상병이 속했던 캐나다 제2보병 대대는 1951년 4월 가평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운 부대.
중공군이 캐나다군이 위치한 곳을 주요 공세 목표로 지정하면서 캐나다군이 많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군은 절대 그곳을 뚫려선 안된다며 끝까지 사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캐나다군이 한국에서 수행한 작전 중 가장 위대한 전투 입니다.
낮선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당신들이 있었기에 한국은 아픔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모든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나라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 호국영령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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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 미국에서 40년간
결혼생활을 한 한국인(크크)
아내가 40년이 지난 지금 남편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며 졸랐다.
"자기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남편은 그런 아내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A B C D E F G H & I J K"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아내가 묻자 남편이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Adorable (사랑스럽고)
Beautiful (아름다우며)
Charming (매력적이고)
Delightful (애교 있으며)
Elegant (우아하고)
Fashionable (멋있으며)
Gorgeous (대단하고)
Honorable (존경 할만하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이 아직도 식지
않은 것 같아서 무척 기뻤지만
"I J K" 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자
다시 물었다.
"그런데 I J K 는 무슨 뜻이야?"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It's Just Kidding ! (농담이야 !)"
그러자 아내의 눈꼬리가
올라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ㅍ ㅎ"
남편이 그 뜻을 묻자
아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겁)대가리 없는 (늠)이
(돌)았구만.
(라)면이라도 얻어
(묵)꼬 살고 싶으면
(바)보 같은 짓 말라구 (새)끼야
(얼)빠지고 (정)신 나간 얼간이가
(치)매 까지ᆢ
(칵) 직이 뿌까 보다 (탱)자 탱자
(퍼)질러 자빠져 (헷)쏘리 몬하게"
ㅋㅋㅋ(크크)(방긋)(윙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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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와 여자 💃
남자는 나이를 먹으면
안으로 들고
여자는 나이를 먹으면
밖으로 돈다는
우스개 말이 있지요.
뭔 소린가 했습니다..
헌데 안타깝게도
그말이 이해가 가려합니다.
젊어 밖으로 돌던 사내,
힘 다하니 집으로 들고.
젊어 집안서 몸 사리던 여자,
나이드니 밖으로 돕니다.
젊은 시절 다가니,
사내는 세상에 버림받고.
젊은 시절 다가니,
여자는 세상에서 해방이 됩니다.
늙은사내
허구헌 날 리모콘 들고
이리저리 틀어대며 연속극 찾을때.
분위기 좋은 찻집에선
여인네들 수다가
시간 가는줄 모릅니다.
휴일이라고 ..늙은사내
침대에서 뒹굴뒹굴 구를때.
경치 좋은 외곽 맛집에선
여인네들 웃음소리
담을 넘습니다.
늙은사내
밥차리기 귀찮아서
라면 끓일때
차려입은 여인네는
고급스런 식당에서
칼질을 합니다.
사내 젊어 밖으로 돌때
독기품은 메세지
수시로 날아 들었는데.
늙은 지금, 사내는
마눌님께 어디냐고
묻지도 못할 것이고
사내 젊어
귀가 시간 늦을라 치면
온갖 험한 협박
다 받았었는데
늙은 지금,
고작 보낸 메세지는
조심해서 들어 오란 말뿐입니다.
속에선
열불이 나지만 어쩝니까
이미 대세는 기운 걸
모든 선택권은 이미
사내손을 떠났습니다.
어쩌다
짠한 드라마 같이 봅니다.
주인공이 울면
사내는 눈물 참으려
하늘 보며 딴짓을 하지만.
여자는 어떠냐구요?
여자는..
주인공 울린 놈을
죽일놈 살릴놈하며
욕을 해댑니다.
적응 해야 됩니다..
그게 현명한 선택이니까요.
.
.
.
이상!
웃자고 해본 낙서니까
남자 동지들
열 받지 마시길요.
어쩌다 보낸 세월이
많은 탓이지 뭐~^^^
♡♡♡
읽다가 보니
재미있는 글이라서
이곳으로 모셔 왔는데...
찬찬히 읽어보니까
구구절절이
틀린 말 같지가 않습니다.
헐~~~
그 좋았던 젊은 시절은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할매 눈치나 슬슬 보고 있다가
손주가 재롱 떨어주는 모습에
그나마 위안을 받는 현실 입니다
그치만 어쩌나요?
그냥 그려려니~
하고 살아가야지요
다~~
내가 지은 업이니까요
세월을 뒤로 돌릴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 🍢
마꼴리 한잔하며
날구지 하는데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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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
(음표) 최희준 노래..
길은 끝이 없다
사람의 마ㅡ음도 끝이 없다.
모든 것이 내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부모님과의 길
가족과의 길
친구들과의 길
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다 같은 내 안에 인생이다.
길은 영원할 것 같으면서도
영원하지 않다.
그것 또한 내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이별도
가족과의 이별도
친구들과의 이별도
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다 같은 내 안에 고통이다.
그것이 시간이고
그것이 운명이다.
영원할 것 같은 길
시간과 인생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건강 할 때 자주 만나고
걸을 수 있을 때
좋은 추억 만들며 아름다운 관계 이어가자.
산다는 거 별 거 아니더라.
나 살아 있어야, 나 건강해야 세상도 존재하는 것...
나 떠나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
ㅡ 옮긴 글 ㅡ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
🎼https://youtu.be/SxWQS-teu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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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이트에는 묘비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는데요. 곧바로 사진을 현상해서 액자에 넣었습니다.
차를 찾으려온 엘리엇씨에게 딜러는 액자를 선물하며 형의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엘리엇씨는 액자를 꼭 껴안더니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60년만의 큰 형님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그 감정은 누구도 감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엘리엇씨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이에 신상묵 딜러는 이런 말을 건네었습니다.
"당신의 큰 형님 덕분에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이 사연이 신상묵 딜러의 페이스북에 올라오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고마운 마음을 공감하며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되었고
한국 정부에서도 그의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요.
곧 엘리엇씨에게 또 다른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가 보훈처에서 엘리엇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감사함을 전한 것입니다.
"형님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희생한 용사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신상묵 딜러..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