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둔전병제와 모병제는 전혀 다릅니다. 둔전병제는 사람들에게 농사지을 토지를 주는 대신, 국가에 대한 병역 의무와 납세 의무를 다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모병제는 국민 중에서 병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을 모집해서 월급을 주고 군인으로 채용하는 제도구요. 전혀 다릅니다.
그럼 동양, 특히 중국에서는 왜 둔전제-둔전병제가 실시되었을까요? 중국에서 둔전병제가 널리 퍼진 시기는 삼국시기 조조에서부터 당나라 때까지입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둔전병제가 실시된 것은 조조 때부터라고 보면 됩니다.
왜 조조는 둔전병제를 실시했을까요? 토지가 있어도 농사지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제국 말기때부터 삼국시대까지는 대혼란기였습니다. 중국 전체에서 전란이 계속되었고, 전쟁, 학살, 기근, 전염병 등으로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바람에 중국에서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버립니다. 한제국 전성기 때 4000만 이상이던 인구가, 조조의 위나라가 성립될 당시에는 200~300만 명 정도로 급감해 버리죠. 그래서 후계자 조비 때의 기록을 보면 "지금 천하의 인구는, 옛날 한나라 때의 한 군(郡)의 인구만큼도 남아있질 않다"라고 할 지경이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당시의 대혼란 속에서는 그 누구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조조 자신이 서주에서 대학살을 벌인 것에서도 보이듯이, 당시에는 군벌들 사이의 전쟁 때문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유리걸식하는 사람들도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이들은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끝까지 고향에 남아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곡식이 익을 쯤이면 어디서 군벌의 병사들이 나타나서 그냥 가져가 버린단 겁니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피땀흘려 지은 걸 가져가는데도 그냥 바라만 봐야 하구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구도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곡식을 가꾸어도 자기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한제국 말~삼국시대의 특징은 굶주림이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곡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군벌의 군대 조차도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당연히 그 군대가 먹을 것도 형편없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최강의 군벌이던 원소의 군대 병사들은 매일 매일을 뽕나무 열매로 연명했다고 합니다. 곡식은 구경도 할 수 없었구요. 이런 상황이니 병사들은 더더욱 농민들을 죽이고 그들의 곡식을 약탈하려 들었고, 그럴수록 농사를 짓는 사람은 사라져 갔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군벌의 군대에 들어가 다른 농민들을 약탈하고, 그럴수록 농사짓는 사람은 사라져서, 살아남은 사람은 군벌의 군대에 들어가...........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주인없이 버려진 땅이 사방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 토지의 주인이 죽임을 당했든, 도망갔든, 가축으로서 잡혀갔든 간에)
이런 상황이다 보니 땅이 있어도 농사를 지을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고, 사방에는 주인없이 버려진 땅이 가득했습니다. 남자들은 군벌의 군대에 끌려가 싸우는데도, 어디서도 농사를 짓지 않아, 사방을 찾아봐도 곡식 한톨 없었습니다. 길가에는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은 시체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리하여 상황은 점점 파탄을 향해 가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군벌들의 전쟁이 한창일 당시, 조조는 이런 상황을 끝낼 방법을 찾게되고, 그리하여 둔전병제가 실시됩니다. 조조는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농민들을 끌어모아서, 그들에게 땅과 농기구, 소를 주어서 농사를 짓게 합니다. 그 대신, 그들은 조조가 명령할 때마다 병사로서 복무해야만 했으며, 많은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세금은, 전체 수확량의 80%였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높은 세금이지만, 최소한 굶어죽는 건 면할 수 있으니까 평가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지와 농기구와 소를 그냥 다 주고, 몸만 오면 된다고 하니까........
(그리고 자기 군대에 있는 병사들 역시 둔전병으로 삼아, 그들에게 토지와 농기구를 주어 농사를 짓게 합니다. 역시 그 대신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다하게 하구요. 원래 그들은 농민 출신이었기에, 곧바로 농업에 투입해도 된다는 계산이었죠.)
그래서 조조는 둔전병제를 실시하여, 식량과 병사 두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강의 군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중국 대부분을 다 통일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둔전병제는 그 후, 5호 16국 시대 북부에서 널리 실시됩니다. 조조의 위나라가 사마씨의 진(晉)제국으로 바뀐 후, 진제국은 황족들 사이의 왕위다툼 때문에 흔들리게 됩니다. 이때를 틈타 북방의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일제히 남하하게 되어, 진제국은 멸망하고 중국 북부는 북방 야만족의 지배하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 시대가 바로 5호 16국입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황족들은 남부에서 동진 왕조를 세우게 되지만, 북부는 여러 이민족들의 지배하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북방 유목민족은 지독하리만치 약탈과 학살을 자행하게 되어, 위왕조-진왕조의 시대에 좀 늘어난 인구를 왕창 줄여 버립니다. 그바람에 다시 인구가 급감하게 되죠. 유목민족의 왕조들 사이에서는 매일 전쟁이 계속되고 나날이 땅은 황폐화되어 갑니다.
그러다가 5호 16국 시대 말기가 되면 선비족의 북위 왕조가 성립하게 되면서 좀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북위왕조는 북부 대부분을 통일한 후, 안정된 왕조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쯤 되면 땅은 모조리 다 버려져 있고, 농민들을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안정된 농민층이 필요한데 말이죠. 그래서 북위 왕조에서는 방법을 찾다가, 결국 조조의 둔전병제를 다시 실시하게 됩니다. 농민들에게 땅과 농기구를 주는 대신, 무거운 세금을 바치게 하고 병사로서 싸우게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사람 수가 부족하다 보니, 북위 왕조는 주위 국가들을 공격해서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와서 땅을 분배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즉, 동양의 둔전병제의 특징은, 사람에게 토지를 주는 대신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빼놓아서는 안되는 사실은, 둔전병제는 사람을 "물건"으로 대우했다는 겁니다. 즉 "땅이 남아도니까, 사람을 붙들어서 거기서 농사짓게 하고 병사로 사용한다"가 둔전병제의 사고방식입니다. 어디까지나 중심은 "토지"이며, 사람은 그 토지에 매여 있는 존재일 뿐이죠. 그렇기에 동양의 둔전병제는 인본주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정말 문제많은 제도였습니다. 하긴, 조조도 당시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런 비상식적인 제도를 운영한 것일 테지만.....
첫댓글 감사합니다. 헌데 궁금한 것이 생기는군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둔전제를 실시하면 병사들은 곧 농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으면 병사들은 농사를 지을 겨를이 없을 거라 여겨지는데요. 이 문제는 역사에서 실제로 어떻게 나타났는지요?
동원가능한 예비병력을 총동원하는 경우는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싸움외에는 하지 않으니 둔전제를 떠나 어느것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둔전제 역시 병사이자 백성이기 때문에 농업에 종사할수 있는 수준을 유지한채 전쟁을 지속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