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이런 권한이 없는데 주제넘게(?) 가져와 봅니다. 합당치 않다 여기시면 지우셔도 좋습니다.^^------
구약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율법에 근거하여 다루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경륜에서 하나님은 오늘날 그분의 백성들을 율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믿음에 따라서 대하십니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원칙이며, 믿음은 신약에서 그분이 우리를 다루시는 원칙입니다. 구약의 경륜에 따르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율법의 원칙은 폐하였지만 율법의 계명은 폐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원칙이 폐하여졌기 때문에 율법의 계명 또한 폐하여졌으므로 우리의 부모를 공경할 필요가 없고 훔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결코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의 계명은 폐하여지는 대신에 오히려 높여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율법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높이 올려진 율법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를 해야 할 것은 의식적인 계명은 제외된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의 내용은 의식적인 계명과 도덕적인 계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의식적인 계명은 하나의 형식이요 그림자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제물로 드리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림자의 시대인 구약에서는 제물들과 절기들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실제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제물은 양이나 염소가 아니라 구약의 모든 제물들의 실제이신 그리스도입니다(골 2:16-17).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안식은 어떤 특정한 날이 아니라 역시 그리스도입니다(막 2:27-28). 율법 중에서 의식적인 율법을 제외한 나머지는 도덕적인 계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8번>에서 발췌하였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왕국 헌법의 공포 (6)
이 메시지에서 나는 율법에 관하여 좀더 말하고 싶은 부담이 있다. 율법에 대한 이 문제에 관하여 그리스도인 교사들 가운데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쟁들은 주로 율법에 대한 성경의 빛의 결핍에 기인한다. 구약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율법에 근거하여 다루셨다. 이것이 율법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신약의 경륜에서 하나님은 오늘날 그분의 백성들을 율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믿음에 따라서 대하신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원칙이며, 믿음은 신약에서 그분이 우리를 다루시는 원칙이다. 구약의 경륜에 따르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율법의 원칙은 폐하였지만 율법의 계명은 폐하여지지 않았다. 율법의 원칙이 폐하여졌기 때문에 율법의 계명 또한 폐하여졌으므로 우리의 부모를 공경할 필요가 없고 훔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결코 생각지 말라. 아니다, 율법의 계명은 폐하여지는 대신에 오히려 높여졌다.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율법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높이 올려진 율법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음
여기에서 안식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율법의 모든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이 계명들 중의 하나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율법의 계명을 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 근거하여 우리는 여러분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들은 폐하여지지 않았지만 이 계명들 중의 하나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율법은 도덕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의식적인 율법이다. 의식은 하나의 형식이요 그림자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제물로 드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우리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림자의 시대인 구약에서는 제물들과 절기들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실제의 시대이다. 우리의 제물은 양이나 염소가 아니라 구약의 모든 제물들의 실제이신 그리스도이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안식은 어떤 특정한 날이 아니라 역시 그리스도이다. 실제이신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기 때문에 모든 그림자들은 끝났다. 안식일을 지키는 계명은 의식적인 계명이지 도덕적인 계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그것을 지킬 의무가 없다. 이 계명은 도덕적인 것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지금은 끝난 그림자, 곧 형식에 관계된 것이다.
율법의 원칙
우리는 율법의 원칙에 관하여 인상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언제나 하나의 원칙에 근거하여 다루신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대하시는 것은 약속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율법의 계명들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단지 약속만을 주셨다. 하나님에 의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것에 따라 아브라함을 다루시는 원칙이 되었다.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다. 따라서 시내 산 위에서 주어진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루시는 원칙이 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율법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그분의 백성들을 다루시는 원칙이 되었다. 이제 신약에서 하나님은 믿는이들을 더 이상 율법에 따라 다루시지 않고 믿음에 따라 다루신다. 이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충분히 발전되었다. 만일 당신이 이러한 책들을 읽어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이들을 율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믿음에 따라서 다루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율법에 따라 사람을 받으셨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율법의 표준을 만족시켜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은 율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받으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받으심은 믿음에 근거한다.
율법의 계명들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높이 올려졌음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 믿는이들을 율법의 원칙을 따라서 다루시지 않는다는 사실은 옛 율법의 계명들이 폐하여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구약의 처음 두 계명은 다른 신을 두지 말고 형상을 만들지 말 것을 언급했다. 율법의 원칙이 폐해졌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계명들이 폐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에 따르면 이러한 계명들은 강조되었으며 강화되었고 높이 올려졌다. 구약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들었으나 신약에서 우리는 심지어 탐심도 우상 숭배임을 본다(골 3:5). 욕심은 하나의 우상이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우상 숭배에 관한 계명이 높이 올려진 것을 본다. 그렇다. 율법의 원칙은 폐하여졌지만 율법의 계명들은 폐하여지지 않았다. 우리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대한 계명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았다. 신약에서 이 계명은 반복되고 강화되며 높이 올려졌다.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자손들이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우리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또한 살인과 간음에 대한 계명들을 높이셨음을 본다. 살인과 간음에 대한 구약의 계명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은 그것들을 보완하셨다. 살인에 관한 구약의 계명은 미움과 화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주님은 살인에 관한 옛 율법을,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화내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 보완하셨다. 그분은 또한 간음에 관한 계명을,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심으로 보완하셨다. 이러한 예들로서 우리는 도덕적인 율법들이 결코 폐하여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높이 올려졌음을 본다. 안식을 지키는 계명인 네 번째 계명을 제외하고 십계명의 모든 계명들이 신약에서 반복되고 높이 올려졌다. 이 계명이 끝난 것은 그것이 도덕에 관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것은 의식적인 계명이다. ------------
물론 안식일이 의식계명이 아니라 도덕계명이라는 안식일 교회의 주장도 눈여겨 볼 필요는 있다고 보여집니다만 현재로서 저는 위의 글에 더 동감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과 서신서들을 100번 정도 읽으면선 전체적으로 제 안에 형성된 관념에 비추어 볼때 위의 관점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앞으로 조심스레 살아가면서 항상 안식일교회의 주장도 유념할 것입니다. 구원은 넘 중요한 문제니까요. 언젠가 안식일교회 주장으로 기우러질 지도 모르겼습니다.......^^
(결정성경 로마서 10장 7절 각주를 덤으로 올립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끝내고 그것을 대치할수 있도록(8:3~4) 율법을 이루려고 오셨다(마5:17~18). 그리하여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 자신인 하나님의 의를 영접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방면의 역사를 이루심으로써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첫재,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율법의 공의의 요구를 이루셨다.
둘째,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 옛사람을 못 박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켰다(롬7장 4, 6),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했다. 그런데 그 순간 충돌 사고가 나서 운전사가 죽었어다면 그는 교통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교통법은 그대로 있으나 운전사가 죽었음으로 아무 효력이 없게 된 것이다. 율법은 거룩하고 선한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었기 때문에 율법은 우릴 전혀 속박할 수 없다.
셋째 그분은 설령으로 우리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대신 율법을 이루신다.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요ㅏ 그분이 우리 대신 행하시는 것은 은혜이다.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이 얼마나 달콤한가--------
첫댓글율법의 원칙은 폐하여지고 계명은 폐하여지지않았다. 는 말이 이상하네요. 계명은 십계명을 말하시는 것 같은데 아홉계명은 지켜야 되고 4째계명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이상하고요. 제칠일 안식일은 태초에 정해진 법인데 왜 의식법이라고 하는지 좀더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안식일은 십계명중 네째 계명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아버지가 제정하신 법을 기쁜 마음으로 지키는것 아버지를 사랑함이지요.“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위에글 잘 읽어 보세요. 안식일은 여호와의 날이고요 그 날(안식일)을 복되게 하고 그 날(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였는데 사람이 마음대로 변경하고 지키지 않겠다는 것 않되지요.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사인)을 삼았었노라”(겔 20:12)
원칙은 받는 근거이고 계명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자들이 마땅히 높은 도덕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핵심은 10계명중 4만 빼고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우린 10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높여진 도덕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율법에 관한 성경구절은 매우 많습니다. 전체문맥을 살펴 그 의미를 살펴보아
서 신약의 말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잡아야 하는데, 저와 님들의 차이는 그 전체적인 내용의 이해에 있어 다르므로, 성경한구절 가지고는 문제 해결 안될듯.... 님들께서 7천년 대쟁투가 율법전쟁이었다는 사상과 이 사상을 바탕으로 읽어낸 성경이고, 저는 이를 받아들이 않고 있기에.......
높은도덕을 살아낸다는것은 거룩한 십계명들을 지키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이땅에 십계명보다 높은 도덕을 제시하는 것이 어디있습니까... 이런논리가 지방교회의 암흑의 늪이지요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이고 이지구는 결국 율법전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요일5:3절은 십계명이 맞습니다 다른 계명을 이땅에 인간을 위해 주신 것이없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의 표현이고 전부 사랑의 표현이지요 고로 십계명은 사랑의 계명이고요 그런데 그당시 그들이 사랑의 그 계명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에 다시 새계명으로 제시하고 나타난것뿐입니다
10계명이 주어지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높은 도덕은 표현되었으며, 그리고 10계명을 전혀 몰라도(신약의 서신서들만 알아도) 여전히 높은 도덕을 살수 있답니다. 논리는 논리일뿐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숙고해보겠습니다.^^ 생명과 율법, 은혜와 노력, 값없이와 충성스런 댓가, 믿음과 행위 등등에 관해서 말입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십계명을 주의하지 않으면서도, 신약의 말씀들을 통해 주님만이 자기 인생의 모든의미요 힘이며 기쁨이고 소망인 사람들, 주님의 임재안에 살고 안에서 운행하시는 성령을 따라 사는 분들의 삶을 보면, 바로 빛고 소금이지요? 순수하고 관대하고 의롭고 사랑이 많고 기뻐하고 배려하고 양보하고 품어주
고, 욕심없고, 거짓없고, 낮아져 섬기고, 세속적이지 않고 주님과 말씀으로 풍성하고 화평하고 다가서기 쉽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받아주고, 등등등.. 마태복음 5~7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삶이 높은 도덕이겠지요? 모세이전에도 인간의 생명과 양심은 이러한 삶이 옳고 높은 삶임은 알고 있지 않았나요?^^ 타락하여 행하는
사람은 적었겠지만, 행하진 않아도 옳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무시하고 내맘대로 살때에도 무엇이 높은 도덕인지는 알고 있었고, 주님을 아예 믿지 않는 수많은 불신자들도 어떤 삶이 높은 도덕을 사는 삶인지는 알고 있고 또 매우 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사람으로 부터 찬양과 감사를 받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 다 알수는 없지만 성경대로 믿으시면 틀림이 없는 것이고 여러 핑개를 대어 그것을 무시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범죄하기 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범죄후에 더한 율법으로 같이 취급하면 안되겠지요 십계명은 에덴 동산에서 안식일과 결혼제도로 주어진 영원한 법이고 그 후에 두 계명을 10개로 구체화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이웃을 사랑하라고 십계명을 설명한 것입니다.
제가 핑게를 대는 걸로 보이세요? ^^ 10계명이 사랑의 율법으로 제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이 되나 형제님들은 그렇지 않은것이 다를뿐 핑게를 대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안식일과 결혼제도가 영원한법으로 주어졌다는 성경근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안식일은 안식일교회가 만든 무슨교리가 아닙니다 이성희님 잘생각해 보십시오 님께서 율법에 대한 개념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참사랑과 참믿음은 절대로 율법을 싫어하지 않는 믿음이 될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바른복음의 길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이 이것을 모르니 자꾸 반복이야기를 하는것뿐이고요
첫댓글 율법의 원칙은 폐하여지고 계명은 폐하여지지않았다. 는 말이 이상하네요. 계명은 십계명을 말하시는 것 같은데 아홉계명은 지켜야 되고 4째계명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이상하고요. 제칠일 안식일은 태초에 정해진 법인데 왜 의식법이라고 하는지 좀더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안식일은 십계명중 네째 계명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아버지가 제정하신 법을 기쁜 마음으로 지키는것 아버지를 사랑함이지요.“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위에글 잘 읽어 보세요. 안식일은 여호와의 날이고요 그 날(안식일)을 복되게 하고 그 날(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였는데 사람이 마음대로 변경하고 지키지 않겠다는 것 않되지요.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사인)을 삼았었노라”(겔 20:12)
율법의 원칙은 사랑이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그분이 만드신 모든 율법의 원칙은 사랑이랍니다. 십계명은 사랑하는 방법이지요 지키지 않으면 사랑은 깨어지고 말지요.1 - 4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5 -10계명은 사람과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원칙은 받는 근거이고 계명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자들이 마땅히 높은 도덕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핵심은 10계명중 4만 빼고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우린 10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높여진 도덕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율법에 관한 성경구절은 매우 많습니다. 전체문맥을 살펴 그 의미를 살펴보아
서 신약의 말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잡아야 하는데, 저와 님들의 차이는 그 전체적인 내용의 이해에 있어 다르므로, 성경한구절 가지고는 문제 해결 안될듯.... 님들께서 7천년 대쟁투가 율법전쟁이었다는 사상과 이 사상을 바탕으로 읽어낸 성경이고, 저는 이를 받아들이 않고 있기에.......
요일 5:3은 10계명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구요.
높은도덕을 살아낸다는것은 거룩한 십계명들을 지키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이땅에 십계명보다 높은 도덕을 제시하는 것이 어디있습니까... 이런논리가 지방교회의 암흑의 늪이지요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이고 이지구는 결국 율법전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전쟁을 이기기 위해 <믿음>을 가져야하고 또<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것은 예수<믿음)으로 의를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관관계를 잘 이해하시길 빕니다 고로 선과악의 대쟁투는 율법문제입니다
요일5:3절은 십계명이 맞습니다 다른 계명을 이땅에 인간을 위해 주신 것이없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의 표현이고 전부 사랑의 표현이지요 고로 십계명은 사랑의 계명이고요 그런데 그당시 그들이 사랑의 그 계명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에 다시 새계명으로 제시하고 나타난것뿐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이것을 역이용하여 다른계명이라고 분리하도록 속이고 있습니다 지방교회등 수많은 개신교회가 이미 속았지요
10계명이 주어지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높은 도덕은 표현되었으며, 그리고 10계명을 전혀 몰라도(신약의 서신서들만 알아도) 여전히 높은 도덕을 살수 있답니다. 논리는 논리일뿐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숙고해보겠습니다.^^ 생명과 율법, 은혜와 노력, 값없이와 충성스런 댓가, 믿음과 행위 등등에 관해서 말입니다......
님이 말하는 높은도덕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담이후부터 율법의 원칙이 계속 전수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양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두 십계명의 사상과 본질안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율법은 포괄적이지요
사람은 죄이후 -다 율법아래 있었지, 율법밖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높은 도덕이라고 그렇게 말하는자체로서 비교할수가 있는것은 십계명을 기준하여 비교할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고요
모세를 통해 주어진 십계명을 주의하지 않으면서도, 신약의 말씀들을 통해 주님만이 자기 인생의 모든의미요 힘이며 기쁨이고 소망인 사람들, 주님의 임재안에 살고 안에서 운행하시는 성령을 따라 사는 분들의 삶을 보면, 바로 빛고 소금이지요? 순수하고 관대하고 의롭고 사랑이 많고 기뻐하고 배려하고 양보하고 품어주
고, 욕심없고, 거짓없고, 낮아져 섬기고, 세속적이지 않고 주님과 말씀으로 풍성하고 화평하고 다가서기 쉽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받아주고, 등등등.. 마태복음 5~7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삶이 높은 도덕이겠지요? 모세이전에도 인간의 생명과 양심은 이러한 삶이 옳고 높은 삶임은 알고 있지 않았나요?^^ 타락하여 행하는
사람은 적었겠지만, 행하진 않아도 옳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무시하고 내맘대로 살때에도 무엇이 높은 도덕인지는 알고 있었고, 주님을 아예 믿지 않는 수많은 불신자들도 어떤 삶이 높은 도덕을 사는 삶인지는 알고 있고 또 매우 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성희님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위해서 입니다 사랑의 교제는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일주일 제도를 만드시고 제칠일을 당신과 만나는 날로 거룩하게 구분 하신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사람으로 부터 찬양과 감사를 받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 다 알수는 없지만 성경대로 믿으시면 틀림이 없는 것이고 여러 핑개를 대어 그것을 무시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범죄하기 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범죄후에 더한 율법으로 같이 취급하면 안되겠지요 십계명은 에덴 동산에서 안식일과 결혼제도로 주어진 영원한 법이고 그 후에 두 계명을 10개로 구체화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이웃을 사랑하라고 십계명을 설명한 것입니다.
제가 핑게를 대는 걸로 보이세요? ^^ 10계명이 사랑의 율법으로 제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이 되나 형제님들은 그렇지 않은것이 다를뿐 핑게를 대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안식일과 결혼제도가 영원한법으로 주어졌다는 성경근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십계명은 양면성은 있지만, 원래부터 사랑의 본질을 가진 율법이지요 이것을 님께서 이해하는것이 가장 급선무요.큰 변화일것입니다 율법을 바로 이해하지못하면 믿읍도 바로 생기지 않을뿐더러 결국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것이니, 계명지키는것!"(요이1:16)이란뜻을 보십시오,계명과 사랑은 연관이 있지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도 보십시오 (롬13:10)(요일2:4)그리고 마22;35절을 보십시오 사랑의 본질 두계명이 십계명이라고 예수님이 말했지요
성령으로 거듭난 마음은 율법에 순종하는것이 속박이 아니라, 참다운 자유를 누리도록 주신 사랑의 발로라는것을 깨닫게 될것입니다 (약2;12)그러므로 새언약의 백성들은 사랑의 법을 마음에 새기실것입니다
안식일도 주의 계명이고 주의 "모든계명이 진리"(시119:151)이니 고로 진리는 영원하지요 그러므로 안식일도 진리이고 영원한 법입니다 (시119:142)
좀 깝깝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율법전쟁, 율법준수, 계명은 곧 10계명 등등, 자신들의 논리를 잊어버리고 다른 글에 마음을 열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만....^^
안식일은 안식일교회가 만든 무슨교리가 아닙니다 이성희님 잘생각해 보십시오 님께서 율법에 대한 개념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참사랑과 참믿음은 절대로 율법을 싫어하지 않는 믿음이 될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바른복음의 길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이 이것을 모르니 자꾸 반복이야기를 하는것뿐이고요
사단은 성도들이 율법과 관계없는 예수믿음을 가지도록 그렇게 노력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특히 지방교회가 그중에 그런 유형의 논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런것이 신약시대의 버른신앙이라는 착각에 모두 빠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