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0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셋째 날에 불사를지니”
“그러나 그의 제사의 희생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예물이면 그는 그 희생제물을 드리는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희생제물의 고기의 나머지는 셋째 날에 불사를지니 만일 그의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요, 또 그것을 드리는 자에게도 그것이 드린 것으로 간주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가 자기 불법을 담당하리라. 그 고기가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사를지니 그 고기는 정결한 모든 자가 그것을 먹을지니라.(레위기 7:16-19)
('But if the sacrifice of his offering is a vow or a voluntary offering, it shall be eaten the same day that he offers his sacrifice ; but on the next day the remainder of it also may be eaten ; 'the remainder of the flesh of the sacrifice on the third day must be burned with fire. 'And if any of the flesh of the sacrifice of his peace offering is eaten at all on the third day, it shall not be accepted, nor shall it be imputed to him; it shall be an abomination to him who offers it, and the person who eats of it shall bear guilt. 'The flesh that touches any unclean thing shall not be eaten. It shall be burned with fire. And as for the clean flesh, all who are clean may eat of it.)”
임마누엘!!
어제 우리는 본문의 ‘고기(basar)’에 관한 히브리어 의미를 탐구하였습니다.
이 희생제물 곧 화목제물로 드려진 ‘고기’에 관한 특별한 메시지가 계속됩니다.
“그 희생제물을 드리는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희생제물의 고기의 나머지는 셋째 날에 불사를지니 만일 그의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요, 또 그것을 드리는 자에게도 그것이 드린 것으로 간주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가 자기 불법을 담당하리라.”
희생제물로 드려진 고기 남으면 드리는 날에 먹고 또 남으면 둘째 날에도 먹을 수 있으나 셋째 날에는 먹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여도 이는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지역은 낮에는 매우 더운 곳이고, 밤에는 추위를 느낄 정도로 일교차가 심한 곳입니다.
고기는 이렇게 일교차가 심한 곳에 그 당시 냉장보관을 할 수도 없는 노출된 상태에서 셋째 날에는 이미 부패하였을 것입니다. 그 부패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위생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이는 건강에도ㅗ 좋지 않음은 물론이고 또 다른 전염병이 생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좀 다른 예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몇 년 전 소와 돼지의 구제역 발샹으로 한 마리가 병들면 그 추간 농장 뿐만 아니라 온 동네 축산 농가를 폐쇄하고 살처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염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전체 농가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아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지금 장정만 60만이나 됩니다. 여기에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을 그리고 노년층을 포함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대이동의 수는 최소한 200만명이 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어린양이나 소나 염소를 잡아 드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온 민족의 위생도 매우 소중합니다. 하루 이틀을 지난 고기는 무조건 불로 태워야 합니다. 고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그것을 먹으면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애게 해악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엄한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배를 위하여 이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 ‘불법’은 히브리어 'awon(아원)'. ‘불법(iniquity)’, ‘죄(quilt)’, ‘벌(punishment)’입니다.
한글개역개정 성경에서는 ‘그 죄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30회 나옵니다.
명사 아온은 집합명사입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아모리인의 범죄, 타락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단수)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창 15:16).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에게 당신은 "내 죄(단수)를 생각나게"하려고 왔다고 불평합니다(왕상 17:18). 따라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관용구에서 나타납니다. '아온을 지다'(창 4:13, 출 34:7, 호 14:3, 시 85:3), '아온을 제거하다(히필형)'(슥 3:4), '아온을 갚다'(출 20:5) 등. 이러한 '전체'라는 개념은 집단의 죄뿐만 아니라 개인의 죄와 연관하여서도 나타납니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복수)를 지고"(레 16:22);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단수)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더욱이 위의 언급들이 가리켜주는 바와 같이 이 단어는 행위 및 행위의 결과, 범죄 및 범죄의 형벌 모두를 나타냅니다. 양 개념이 모두 나타나지만 때로는 행위('죄')에 초점이 주어지고, 또 때로는 범죄의 결과('형벌')에, 때로는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상황('죄의식' guilt)에 초점이 주어집니다. 형벌을 요하는 범죄에 초점이 주어지는 실례: "이 '죄악(sin)’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사 30:13, 참조: 겔 18:30, 겔 44:12, 호 5:5, 욥 31:11, 욥 31:28).
형벌에 강조점이 주어지는 예: "일어나라...그렇지 않으면 네가 성읍의 '형벌' 가운데서 소멸되리라"(참조: 렘 51:7, 시 39:12, 시 106:43, 욥 13:26, 욥 19:29, 스 9:7). '죄의식'(guilt)에 강조점이 주어지는 예: "이 '죄악'을 내게로 돌리시고"(삼상 25:24).
'행위로서의 죄'라는 의미와 '형벌'이라는 의미 사이의 현저한 양면적 의미는 구약성경의 사상에서 죄와 그 형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경향과 같이 근본적으로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구약성경에서 인간의 행동과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은 기본적인 하나님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전제된다. 이러한 연관성은 "삶에 대한 종합적인 견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아온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의 특성도 아니고(출 20:5, 출 20:6, 출 34:7), 인간의 속성과 행동(그러한 행동에 수반하는 결과를 포함하여)의 저항할 수 없는 특성입니다.
아온은 삼상 20:1, 삼상 20:8, 삼하 3:8, 느 4:5, 시 51:2에서 여러 종류의 시민 생활 혹은 사회적(규칙) 위반을 지칭하고, 수 22:17, 삼상 3:13-14에서는 제의적인 (규율) 위반을 가리킵니다. 이 용어는 집합 명사 혹은 유사 추상명사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과거의 범죄의 총합을 나타내는데, 이에 대한 실례는 너무 많아서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민 14:34, 삼상 25:24, 삼하 22:24, 왕상 17:18, 스 9:6, 욥 13-26장, 사 1:4, 렘 11:10가 그 예입니다.
어떤 구절에서는 아온의 성질과 내적 근원에 강조점이 주어집니다.
욥 15:4-5에서 아온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폐하는 것 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시 78:37-38에서 아온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확고 부동하지 않음과 결합되어 있으며 렘 14:10에서는 그들이 이렇게 방황하기를 좋아하였다 라는 진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온은 간음(민 5:31) 및 우상숭배(호 5:5, 렘 16:10-11)와 관련된다. 이러한 은유에서는 위반하는 행동과 그 결과인 더럽힘 모두가 묘사됩니다.
아온의 다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소외(alienation, 레 26:40, 사 59:2, 사 1:4), 그리고 부정(시 51:2)으로 나타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