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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최한나)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태복음 27장 20-26절 말씀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사도신경의 고백 가운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말씀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으로 고발당하셨고, 아무런 잘못이 없으셨지만 십자가 형벌을 선고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붙잡혀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그분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풀려나지 못하시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되십니다.
본문 20절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바라바를 구하고 예수를 죽이도록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바라바는 강도요 반역자였으며 죄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으며 죄인들을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예수님이 풀려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에 물든 군중들은 진리를 거절하고 거짓을 선택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보다 죄인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바라바로소이다라고 외칩니다. 빌라도는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때 사람들은 더욱 크게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무슨 죄를 지으셨는지 묻는 질문에도 사람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 뿐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고, 의보다 불의를 선택하게 됩니다. 군중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메시아가 오셨을 때는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원자를 버리고 죄인을 선택하는 비극적인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사실 바라바입니다. 바라바는 사형을 받아야 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반대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게 되셨습니다. 바라바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죽어야 할 사람은 바라바였지만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실 바라바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고,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래전에 이를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고난받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침묵하셨고,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채찍을 맞으셨으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빌라도의 모습도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는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보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정의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그는 손을 씻으며 책임이 없다고 말했지만 진리 앞에서 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시선 때문에 믿음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군중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조롱을 받으셨고,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수치와 고통의 길이었지만 동시에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라고 말할 정도로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눈치를 보았고, 정의보다 자신의 자리와 안위를 지키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여론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진리 앞에서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를 더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죄하다고 선언했지만 끝내 예수님 편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진리를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진리 편에 서는 것입니다. 믿음은 손을 씻으며 책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라바처럼 용서받은 죄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예수님을 내어주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사람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도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진리를 외면했던 빌라도의 모습을 교훈 삼고,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세상의 소리보다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 편에 서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빌라도 앞에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바라바처럼 용서받은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게 하시고,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리보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사람들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빌라도처럼 진리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삶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선택하고
따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게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0)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되라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가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하였더라.
창세기 24장 60절 말씀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리브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삭의 아내로 선택되어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삭을 위하여 가나안 여인이 아닌 자신의 친족 가운데서 아내를 구하고자 종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리브가는 낙타들에게 물을 길어 줄 만큼 부지런하고 섬김의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삶을 아시고 언약의 가정에 들어갈 사람으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리브가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삭에게로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그를 축복하며 말합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이것은 단순히 자녀를 많이 낳게 되기를 바라는 덕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리브가를 통해 이어질 것을 선포하는 믿음의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이제 그 언약의 역사가 리브가를 통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리브가는 특별한 권력이나 뛰어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한 가정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을 부르셔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를 통해 이삭의 가정을 세우셨고, 야곱을 낳게 하셨으며, 결국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구속사의 계보에도 리브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놀랍게 사용하시는지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특별히 리브가의 아름다운 모습은 순종에 있습니다. 가족들이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 라고 물었을 때 리브가는 주저하지 않고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아직 이삭을 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믿음으로 떠났고,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 속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익숙한 자리를 떠나게 하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순종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두려움과 염려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순종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리브가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종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라는 말씀은 단순히 숫자의 축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수많은 생명을 살리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가정을 변화시키고, 한 사람의 헌신이 교회를 세우며, 한 사람의 순종이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게 됩니다.
리브가는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익숙함보다 순종을 선택했고, 두려움보다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삶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만약 리브가가 자신의 계산과 염려만 붙들고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순종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순종을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리 앞에서 리브가처럼 가겠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앞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천만인의 어미가 되게 하셨듯이, 우리 또한 많은 사람에게 믿음과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리브가의 삶을 통하여 믿음의 순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의 길을 걸어갔던 리브가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현실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두려움과 염려보다 믿음을 선택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리브가가 가겠나이다라고 응답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시고, 맡겨진 자리와 사명 앞에서 충성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 위에 믿음의 유산이 이어지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와 섬김과 헌신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리브가를 천만인의 어미가 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고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시고,
마지막까지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1. 더 좋은 부활을 받고자 하여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35-38절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히브리서 11장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장을 흔히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노아는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믿음의 위대한 승리를 보여 줍니다. 믿음으로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믿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믿음으로 사자의 입이 막혔고, 불의 세력이 꺼졌습니다. 약한 자들이 강하게 되었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는구나.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런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 때문에 고난받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심한 고문을 당합니다. 채찍을 맞습니다. 결박을 당합니다. 감옥에 갇힙니다. 돌에 맞아 죽고, 톱으로 켜지고, 칼에 죽임을 당합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을 떠돌아다닙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 우리 마음에는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사자의 굴에서 건져 주셨는데, 어떤 사람은 순교하게 하셨을까요?
왜 어떤 사람은 불 가운데서 나오게 하셨는데, 어떤 사람은 죽음까지 허락하셨을까요?
이 질문은 오늘 우리의 질문이기도 하지만
히브리서를 처음 읽었던 성도들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박해받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편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길이 정말 맞는가?”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바로 그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본질을 가르쳐 줍니다.
믿음은 기적을 경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믿음은 기적이 없어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눈물이 흐르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한 구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은 현재보다 영원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35절은 먼저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라고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건과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하지만 그 아이들은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그 부활은 잠시 생명을 회복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은 전혀 다른 부활을 말합니다.
더 좋은 부활 이 부활은 다시 죽는 생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다시는 죽음이 없는 영광의 부활입니다.
죄도 없고, 사망도 없고, 눈물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로 이 부활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앞의 생명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주실 생명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었던 믿음의 이야기가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마카비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조금 더 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주실 부활이 훨씬 더 귀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수없이 많은 선택 앞에 살아갑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면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면 편해질 것 같지만 말씀대로 살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당장의 유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히브리서는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느냐?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오늘의 눈물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오늘의 십자가 뒤에 반드시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피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실 수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주님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십자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믿음은 눈앞의 자유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여기서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라는 표현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는 풀려날 길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다. 우상 앞에 절하겠습니다. 믿음을 부인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면 고문이 멈추고, 감옥 문이 열리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이 원했던 자유는 단지 이 땅에서 몇 년 더 사는 자유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 신실함으로 얻는 더 좋은 부활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관계가 불편해지지만, 거짓으로 넘어가면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세상 방식을 따르면 유익을 얻을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신앙의 자리를 지키면 외로워지지만, 신앙을 내려놓으면 인정받을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한 번만 눈감아. 아무도 모를 거야. 이번 한 번뿐이야.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압니다.
지금 잠깐의 편안함을 위해 신실함을 내려놓으면, 결국 더 좋은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믿음은 지금 당장 풀려나는 것보다, 끝까지 신실하게 서 있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도, 매를 맞으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붙들었던 것은 눈앞의 자유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실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유를 구하고 계십니까? 잠깐의 편안함을 구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을 구하고 계십니까? 구차히 풀려나는 것보다, 끝까지 믿음으로 서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좋은 부활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셋째, 믿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세상은 그들을 버렸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놀라운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세상이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실패자처럼 보였습니다.
광야를 떠돌고, 동굴에 숨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살았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세상보다 크고 위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초라했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존귀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평가에 너무 쉽게 흔들립니다. 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헛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다르게 말합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보다 더 큰 나라, 더 좋은 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 앞에서 작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손해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인생,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히브리서 11장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가르쳐 줍니다. 믿음은 기적을 경험하는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앞의 자유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믿음의 끝에는 더 좋은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눈물과 고난이 끝이 아닙니다. 오늘의 십자가 뒤에는 반드시 부활의 아침이 옵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신실하게 주님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적으로 응답받은 사람들뿐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붙들었던
이들의 걸음을 통해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가 눈앞의 편안함과 세상의 인정을 좇아가지 않게 하시고,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정직함으로 인해 손해를 볼 때에도, 믿음을 지키느라 외로울 때에도,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소망으로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워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음을 믿음으로, 오늘의 눈물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께서 앞서 걸으신 그 길을 저희도 따라갈 수 있는 은혜와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2.야곱의 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세기 28:12-13절 말씀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에는 미래를 꿈꾸고, 청년은 성공을 꿈꾸며, 부모는 자녀를 위해 꿈을 꿉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획한 꿈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는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만 기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머니와도 이별했고, 아버지와도 작별했습니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날 밤 야곱은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잠이 듭니다. 세상은 그를 실패자라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이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절망의 자리에서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벧엘에 일부러 간 것이 아닙니다.
도망가다가 해가 져서 어쩔 수 없이 머문 곳입니다. 집도 없었고, 침대도 베개도 없어 돌을 베고 잠을 잤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이 아니라 광야에서 야곱을 만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패와 눈물의 자리에서도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준비되면 만나 주십시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말합니다. 우리가 무너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하늘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한 사닥다리를 봅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서 계십니다.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인간이 연결되는 길입니다.
죄로 인해 끊어진 관계를 하나님께서 다시 이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이 장면을 자신에게 적용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이 바로 참된 사닥다리이시며 오직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가 가능한 이유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구원이 가능한 이유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늘이 열린 이유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약속으로 미래를 세우십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을 야곱에게 다시 들려주십니다. 야곱은 실패했고, 속였으며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를 먼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약속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너를 지키겠다. 너를 떠나지 않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언약은 계속됩니다.
야곱은 그날 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였습니다. 형 에서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앞으로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환경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먼저 찾아오신 이야기였습니다. 야곱은 도망자였고, 늘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내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라고 자신을 나타내시며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의 인생이 바뀐 이유는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전히 형 에서는 그를 죽이려 했고, 앞으로도 라반의 집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야곱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벧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광야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실패한 것 같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한다. 내가 반드시 너의 삶을 이루어 가겠다. 오늘 예배를 드리며 우리의 마음에도 이런 믿음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광야가 벧엘이 되고, 돌베개가 예배의 자리가 되며, 두려움이 믿음으로 바뀌는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야곱의 꿈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야곱이 가장 외롭고 두려운 밤에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도 때로는 인생의 광야를 걸으며 두려워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염려하고,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더욱 굳게 하여 주옵소서.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마다 벧엘의 은혜가 있게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믿음의 세대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거룩한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걸음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받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위하여 참된 하늘의 사닥다리가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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