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청이 받은 공양미 300석의 무게
퀴즈) 효성 깊은 심청이는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중국 상인들에게 팔려 갔지요.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이의 효심에 감동한 용왕님 덕분에 심청이는 연꽃에 실려 세상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심청이가 몸값으로 받은 공양미 300석은 쌀 몇 킬로그램일까요?
정답 : ③
2. 43,200kg의 공양미
우리나라 고전 소설 《심청전》의 내용은 모두 알고 있을 거예요.
심 봉사는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스님에게 300석을 시주하겠다는 약속을 덜컥 해 버리고 말지요. 쌀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아버지를 보고 심청이는 중국 상인들에게 공양미 300석을 받고 팔려 갑니다. 여기서 심청이가 몸값으로 받은 공양미 300석은 쌀 몇 킬로그램일까요?
옛날에는 곡식이나 가루, 액체의 양을 잴 때 홉, 되, 말, 석 등의 단위를 사용했어요. 10홉은 1되이고, 10되는 1말, 10말은 1석이에요.
1석을 미터법으로 바꾸면 쌀 1석 = 144kg이에요. 따라서 공양미 300석은 300석×144kg = 43,200kg이지요.
쌀 1포대를 20kg으로 치면 공양미 300석은 요즘 같으면 쌀 2,160포대랍니다.
잠깐 퀴즈
공양미 300석을 옮기려면 2.5톤 트럭이 몇 대 필요할까요?
정답 : 43.2÷2.5 = 약 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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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미 3백석은 효녀 심청뿐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도 마련하기 힘들었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형전(刑典)은 노비 몸값에 관해 "나이 16세 이상 50세 이하이면 가격이 저화 4천 장이고, 15세 이하이거나 51세 이상이면 저화 3천 장이다"라고 규정했다.
노비에 관한 법규가 형벌 법전에 규정된 것은 범죄자를 노비로 만들던 고대의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들을 거래할 때 지폐인 저화를 기준으로 3천 혹은 4천 장을 주고받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태종 이방원 때인 1402년부터 유통된 저화는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해 화폐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화의 가치를 가늠하려면 다른 화폐로 환산해야 한다.
<경국대전> 호전은 "저화 1장은 쌀 1되에 준한다"라고 규정했다. 15세 이하나 51세 이상인 노비는 저화 3천 장에 거래됐으므로, 이들은 쌀 3000되에 거래된 셈이다. 3000되는 300말이고, 300말은 30석이었다. 이 연령대의 노비를 매매하려면 심청이에게 배당된 공양미 삼백석의 10분의 1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노비의 실제 매매가는 저화 3천이나 4천 장보다 낮은 수준에서 책정됐다. 실제 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법전에 규정한 것은 노비 거래를 가급적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인신매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그런 거부감이 정도전이 실각된 뒤에도 계속 전승돼 <경국대전>에까지 반영됐던 것이다.
그런 배경 때문에 위 연령대 노비의 실제 몸값은 공양미 삼백석의 10분의 1보다 낮았다. 이를 감안하면 심청이가 그 삼백석 때문에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심청전>을 접한 조선 후기의 대중들도 당연히 부담을 느낄 만한 거액이었다.
첫댓글 지금돈으로 환산해보면 1억 3천만원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