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록에서의 일주일
글/스텔라 박
지난 6월 19일부터 꼬박 일주일간 샌프란시스코 인근, 마린 카운티(Marin County)에 위치한 스피릿 록 명상센터(Spirit Rock Meditation Center)에 다녀왔다.
보통인들의 경우, 생업이 있다 보니 일주일간 묵언 수행(Silent Retreat)을 다녀올 만한 시간적 여유를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확실히 많은 장점이 있다. 돈 버는 재주가 없는 대신,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있음을 감사했다.
내가 참가했던 묵언 수행은 <마인드풀니스의 기초(Foundations of Mindfulness)>라는 주제로 UCLA 마음챙김 연구센터(Mindfulness Awareness Research Center)의 디렉터, 다이애나 윈스턴(Diana Winston) 외 몇몇 강사들이 공동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이 묵언 수행에 가기 위해 나는 지난 3월부터 스피릿 록 명상센터의 홈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며 지원서를 제출하고 참가비를 내고 일정 조정 등 준비를 해왔다. 별달리 내가 대단히 영적이고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다. 현재 이수 중인 TMF(Training as Mindfulness Facilitator) 과정 중 일주일 이상의 묵언 수행 피정retreat 참가가 필수 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자원해서는 아니었지만 일주일 동안, 스피릿 록 명상센터에서의 묵언 수행은 존재의 지반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스피릿 록 명상센터는 명상 홀, 참가자들의 숙소, 식당, 매니저 관리 사무소 등의 건물이 411에이커의 숲속에 띄엄띄엄 배치돼 있다. 곳곳에는 서 있는 붓다, 앉아 있는 붓다의 조각상들이 은은한 미소를 띄며 참가자들을 반겨준다. 식사 시간, 명상 시간을 알리는 커다란 종도 여기 저기 있다.
첫날 도착하면 수행 참가자들은 방과 함께 요기 업무(Yogi Job)를 배정받는다. 가족과 함께 왔더라도 한 방에 기거할 수 없다. 특히 부부의 경우, 여성들의 숙소와 남성들의 숙소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피정회 기간 동안은 생이별을 해야 한다. 이번 피정회에는 한 일본인 부부가 참가했었는데 매일 밤, 남편이 아내를 묵언 속에서 여성 숙소로 데려다주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던지. 동성 친구들이 함께 와도 각자 다른 방이 배정된다.
요기 업무(Yogi Job)는 명상센터에 있는 동안 계속 반복되는 노동으로 일 명상(Work Meditation)이라고 칭한다. 함께 먹을 식사 준비, 설거지, 식당 청소, 화장실 청소, 시간을 알리는 종 울리기 등 여러 업무 가운데 도착한 순서대로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늦게 도착한 관계로 화장실 청소가 당첨됐다. 도착하기 전에 어떤 요기 업무를 할까, 생각하면서 “나는 부엌 일을 좋아하니까 부엌 일은 내게 있어 수행이라기보다는 즐거움이야. 그러니 내게 가장 도전이 되는 일, 화장실 청소 같은 것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현재(Presence)는 우리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경험들만을 가져다준다더니 그 많은 요기 업무 가운데 내게 맡겨진 것이 화장실 청소임이 놀라웠다. 일주일 동안 매 식사 후, 화장실 청소를 마음을 다해 하면서 청소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나는 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첫 날 저녁 식사에는 대화가 허락됐다. 약 100명의 참가자들은 잠시 후부터 시작될 오랜 묵언의 시간에 대비하듯, 마지막 대화 시간을 만끽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명상센터의 한 가운데 위치한 명상 홀에 모두 모였다. 강사들이 앞자리에 나와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이제 공식적으로 묵언 수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전화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묵언이라 함은, 친구들 사이일지라도 속삭임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꼭 필요한 대화는 쪽지를 통해서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쪽지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대화가 지금 꼭 필요한가를 성찰한 후에, 최소한의 쪽지만을 나눌 수 있다. 명상 센터 내부를 다닐 때에는 시선을 아래로 깔고 다녀야 한다. 눈인사조차 상대의 묵언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삼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 주간의 수행에는 나와 함께 UCLA 마인드풀니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자격증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들이 10여 명 있었다. 그들과 눈인사조차 나눌 수 없음이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이틀째 이후부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편안했다.
우리들은 대화와 문자 메시지 등의 커뮤니케이션만 소통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온 몸으로 체험한 것은 침묵 속에서도 서로 교감하고 인류애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함께 자애명상을 하고났을 때, 명상홀 가운데 넘쳐 흐르던 아름다운 에너지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스피릿 록 명상센터는 시내에서 떨어진, 숲속에 위치해있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고 나비와 벌이 훨훨 날아다닌다. 땅바닥에는 도마뱀들이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스르륵 빠른 속도로 기어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야생 칠면조들도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은 채 평화롭게 풀들을 쪼아댄다. 3일째 아침에는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사슴 가족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은 침묵 속에서 사슴을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며 가슴 가득 일체 생명체와의 합일을 느꼈다.
411에이커의 숲에는 상록수 나무, 참나무, 그 외 크고 작은 나무와 풀이 조화롭게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자연을 더 자주 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터라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걷기 명상을 하고 나무를 껴안고, 나무와 함께 호흡하고, 또 나무 아래 앉아 명상도 하면서 자연을 만끽했다.
숲속의 새들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명상홀에 앉아 있다 보면 고요함 가운데 간간히 새소리가 들려왔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음악도 새들의 콘체르토concerto만큼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숙소는 2인용과 1인용이 있었다. 나는 운 좋게 1인용 방에 배정됐다. 방은 트윈 베드와 침대 옆 작은 테이블, 그리고 의자 하나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홀과 식당, 그리고 야외에서 보내고 침실에 들어가는 시간은 옷 갈아입을 때와 잠잘 때 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각 층에는 약 6개의 방이 있고 한 가운데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둘째 날 아침, 5시 45분에 기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스피릿 록 명상센터에는 얼 그레이, 민트 등 여러 종류의 차(Tea)는 무료로 준비하고 있지만 커피는 없었다. 그래도 커피를 만들 수 있는 포어오버 커피메이커(Pour Over Coffee Maker)와 필터는 준비해놓고 있었다. 잠자리가 바뀌어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커피를 가지고 식당으로 내려가 커피를 만들었다. 함께 여러 클래스를 들은 적 있는 엘리스(Ellis)라는 여성도 창가에 앉아 고요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커피는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음료이다. 불편하게 한 잔 한 잔을 내리며 나는 다시 한 번 커피 콩을 재배한 아프리카와 남미의 농부들과 커피 콩을 영글게 한 자연, 커피를 이곳까지 가져다준 트럭 운전 기사와 세상 모두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6시 15분에 첫 좌선이 있었다. 45분간 이른 아침의 청명한 공기를 마시며 좌선에 드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참가자들 중 2/3 정도는 방석에 앉아 좌선을 했고 나머지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척추에 문제가 많은 이들은 사전 허락을 받고 누워서 명상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침 명상 후, 7시부터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아침 식사는 오트밀, 요거트, 과일 등으로 꾸며졌다. 참가자들이 두 줄로 식당 앞에 줄을 서면 요리사가 식당 안의 불상 앞에 놓인 종을 세 번 울렸다. 그러면 참가자들은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 후, 한 사람씩 차례로 접시에 먹을 것을 덜어 자리에 가서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아무런 대화 없이, 천천히, 한 입 한 입을 음미하며, 중간 중간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 놓고, 먹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며 하는 식사는 그 자체가 명상 수련이었다. 이렇게 밥을 먹다 보면 평소 먹던 양보다 훨씬 적게 먹어도 배가 부른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과식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아무 생각 없이 먹기 때문이다. 천천히 먹다 보면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오트밀을 한 숟가락 떠서 눈으로 잘 살펴보고 코로 냄새도 맡아본 후 입에 넣고 느린 속도로 꼭꼭 씹는다. 몇 번이나 씹는지, 숫자를 세어본다. 100번 정도 씹고 나니 이제 삼켜도 될 정도의 상태가 된다. 그 동안 수저는 테이블 위에 놓아둔다.
우리는 입 안에 음식이 있으면서도 다음 번 먹을 것을 수저에 담는 준비를 한다. 물론 바쁜 일상 생활 중에 이처럼 ‘세월아, 네월아’ 하는 방식으로 식사하기란 쉽지 않을 터이지만 첫 몇 술 만이라도 마음챙김 식사를 한다면 살과의 전쟁을 그만둘 수 있음은 물론, 평생을 학대해왔던 위장을 이제라도 사랑으로 대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 후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요기 업무를 하는 일 명상(Work Meditation) 시간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사람, 셰프의 지시에 따라 야채를 써는 사람 모두 일을 하면서 오직 일에 몰입했다. 나 역시 매뉴얼에 따라 화장실을 청소했다.
요기 업무 후 두 번째 좌선이 시작되는 8시 45분까지 잠시 짬이 나면 천천히 숲속 길을 걸었다. 온 몸으로 나무들이 내뿜는 진한 향기와 화학물질을 흡입한다. 두 발은 지구 어머니의 숨결을 느끼고 그녀의 사랑과 치유의 에너지를 가득 느낀다. 지구의 심장부에서 강력하게 퍼져나오는 자기장과 열기가 내 몸, 특히나 제 1차크라에서 강렬하게 느껴진다.
만약 지금 당신이 어지럽고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뭔가 부조화되었다고 느낀다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산길을 걸으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구 어머니와 연결되어야 조화로울 수 있다. 지금 서구의 영적 소사이어티society에서는 영적 그라운딩(Spiritual Grounding, 마음이 허공을 떠도는 게 아니라 땅-지금 현재-에 접속해 있음을 자각한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핀란드는 다른 나라보다 우울증, 알코올 중독, 자살률이 높았던 나라이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연구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자연과 도심을 방문한 후에 그들의 기분과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인간들은 한 달에 적어도 5시간 이상 자연에 둘러쌓여 있어야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한 시간 정도만 숲속을 걸어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상쾌해지고 주의력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땅을 밟는 것을 영적 그라운딩(Spiritual Grounding)이라고 한다. 그라운딩은 다른 표현으로‘지구와의 합일(Earthing)’이다.
첫 날 아침에 우리는 휴대폰, 태블릿, 그리고 컴퓨터 등 전자기기와 이별하는 의식을 치렀다. 온전히 나의 내면과 깊게 연결되기 위해 방해되는 전화기를 일주일 동안 보지 않겠다는 의도를 구체적으로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강사는 커다란 바구니를 앞에 가져다 놓고 한 사람씩 자기 이름 꼬리표를 붙힌 전화기를 넣게 했다. 각자의 용기와 결단을 격려하기 위해 커다란 종소리를 울려주셨다.
8시 45분부터 밤 9시 45분까지는 중간의 식사 시간과 법문(Dharma Talk) 시간, 마음챙김 요가(Mindful Yoga) 시간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45분 좌선, 30분 걷기 명상을 반복했다. 하지만 식사도 명상 수련, 요기 업무도 일 명상 수련, 요가도 움직이는 명상 수련, 모두가 명상이었다. 좌선을 하다가 다음 순서로 전환할 때마다 우리들은 다시금 마음을 챙겼다.
마음을 챙겨 걷다보니 터벅터벅이 아니라 발뒷꿈치를 들고 살포시, 천천히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앞뒤로 섬머슴처럼 흔들어대던 두 손은 배꼽 아래에 단정하게 포개져 있었다. 그렇고 보니 마치 조선시대 궁궐의 임금 앞에서나 했을 법한, 조신하고 정중한 태도를 갖게 됐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현존하는 몸가짐은 아기 붓다, 또는 나 스스로의 내면 아이 또는 내 안의 신성을 향한 것이었다. 스피릿 록에서의 피정회가 지난 지금도 나는 조선시대의 궁녀들처럼 조용하게 행동거지를 살피고 다닌다.
묵언 속 정진을 계속하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스스로 각성의 상태에 있음을 발견했다. 와.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눈을 뜨는 순간 내가 들숨이었는지 날숨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람다스 등 미국의 영적 구루들은 스승으로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한다. “자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의 숨이 들숨이었나, 날숨이었나?”
스피릿 록 명상센터 탐방기는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