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포구에는 고독과 외로움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은 에고에 대한 집착과 현실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기대임이 증폭한다. 그에 따라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욕망과 의타심은 깊어만 간다. 그런 가슴에 고독이 들고 외로움이 둥지를 튼다.
몽산포, 몽대포구, 몽산포 등대, 몽산포 해안. 언젠가 한 번 찾아가 회포도 풀고 지나온 날을 고백하며 만나고 싶은 곳이다. 이름만 들어도 몽환처럼 다가오는 단어들. 바다의 밀물이 밀려와 모래사장을 이리저리 빗질하는 해안가를 바라보니 가슴이 아려온다. 바다는 그저 보기만 해도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태동시키는 그리움의 시원이다.
바닷가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모래사장과 바닷물의 수면을 따라 끝없이 달려가는 아련한 수평선.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 전설과 바다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어부들. 이번 생애의 설움과 눈물을 토해내는 잔잔한 파도가 마치 삶을 위안이라도 해주려는 듯 잔잔한 물결을 일렁인다.
이른 아침에 몽대포구 부둣가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해안선을 따라 옹기종기 들어선 주택과 보이지 않는 밧줄에 연결된 조각배의 모습이 화폭에 담긴 그림처럼 다가온다. 아침부터 바지락을 캐는 아주머니와 바다를 향해 밀려 나간 썰물로 드러난 갯벌의 휑한 모습. 해변은 해송과 안개가 뒤섞여 몽환의 포구처럼 다가온다. 원유 유출 사고로 번성할 횟집은 문을 닫고, 해송과 모래사장이 어울린 펜션만이 오고 가는 사람을 유혹한다. 하늘그리고바다, 들꽃집, 블루오션, 솔향기, 트윈하우스, 무지개 등 이름만 불러도 이국적인 감정이 전해온다.
가족과 머무는 블루오션을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바다와 섬 구경을 나서본다. 태안 남면의 몽산포에서 해안을 따라 안면도를 향해 차를 몰아가자 바다도 우리를 따라 동행한다. 남면에서 안면도를 향해 한참을 내달려 내려오자 안면암이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안면암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차의 운전대를 돌렸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을 지나 안면암에 이르자 바다의 뿌연 해무가 마중을 나왔다.
안면암에 도착해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해무가 말끔히 사라지고 무인도로 건너가는 조잡한 구름다리가 드러났다. 이 세상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가 보다. 비록 무인도지만 변변치 않은 구름다리를 통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허락해준다.
바닷가의 바위 위에 세워진 안면암. 나는 절에만 들어서면 生은 무엇이고 死는 무엇인가 하는 삶의 철학적 물음이 떠오른다. 스님의 목탁 소리와 경을 읽는 고독한 목소리. 바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님의 목소리와 뒤섞이며 대중을 향해 ‘生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안면암에서 무인도로 연결된 구름다리 아래로는 야생의 갯벌이 발가벗고 누워 우리를 맞이한다. 다리가 비좁아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옆에 비켜서서 길을 내주어야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듯이 구름다리에서 마주치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 안면암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목탁 소리만이 겨울 바다를 고독하게 한다.
구름다리를 건너가 무인도에 가서 안면암을 다시 바라보자 안면암이 소림사처럼 웅장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무인도를 한 바퀴 휘휘 돌아보고 다시 안면암을 향해 걸어간다. 구름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한 아주머니가 다슬기를 팔기 위해 누군가를 기다린다. 다슬기 한 봉지를 사서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다. 가끔 씹히는 모래알과 다슬기를 앞뒤로 돌려가며 속을 빨아먹는 맛.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밋밋한 인생의 맛과 비슷하다.
무인도에서 안면암으로 돌아오자 스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탁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안면암과 무인도와 구름다리와 이별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런 마음을 아는 듯이 차가운 겨울바람이 바다에서 불어와 어서 빨리 세상사로 돌아가라며 등을 떠민다. 안면암을 빠져나와 차를 남쪽으로 틀었다. 그러자 바다가 차를 따라 다시 동행한다.
차의 운전대를 잡고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안면도 자연휴양림이란 간판이 보인다. 적송이 우거진 산과 갖가지 나무가 심어진 휴양림. 휴양림은 사람이 쉬는 곳인지 나무가 쉬는 곳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나무가 휴식하는 곳이면 사람이 들어가서 휴식을 방해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무가 휴식을 취하는 휴양림에 들어가 적송의 진한 향기도 맡고 적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찰나의 순간을 담았다.
휴양림의 굳건한 나무처럼 아이들도 비바람에 잘 견디며 성장을 할 것이다. 날씨는 비록 쌀쌀하지만, 휴양림과 안면암을 구경한 것은 삶의 한 부분이란 것쯤은 알고 있겠지. 삶이 그렇듯이 따뜻할 때도 있고 추울 때도 있다는 것을, 언젠가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휴양림 구경을 마치고 다시 남쪽을 향해 차를 내몰았다.
세상의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차로 내쳐 달려볼 생각이다. 길이 끝나는 것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여는 시작점이다. 길은 땅과 바다와 우주로 연결된다. 휴양림을 나와 남쪽으로 차를 운전하고 내려오는데 도로표지판에 패총박물관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세찬 바닷바람도 피할 겸 박물관에 들어서자 태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박물관에 박재 되어 있다.
박물관의 해설사에게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다 보니 태안 사람이 살아온 삶의 역사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흙에서 돌로, 돌에서 청동으로, 청동에서 철기로 이어진 생활의 변화.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흔적도 고스란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어느 시대나 생은 평화롭게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얻어진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향이 같은 사람이다.
박물관의 해설사보다 오히려 내가 농사짓는 도구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어 해설사가 설명을 듣고 있다. 내가 해설사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것을 겪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패총박물관의 관람을 마치고 이번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해안가를 따라 올라갔다.
차가 안면도에서 반대로 몽산포를 향해 출발하자 어김없이 바다가 동행을 한다. 해변의 바위를 무섭게 때려대는 파도와 성난 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세상을 향해 거칠 것 없다는 듯이 부딪치는 파도가 마중을 나와 우리의 갈 길을 방해한다. 차창 밖에는 해넘이를 하는 검붉은 기운이 서녘 하늘에 넘실거린다.
안면도는 삶의 조건이 좋은 곳이다. 바닷가에서 농사도 짓고 고기잡이도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해안가를 따라 올라가다 꽃지해수욕장에서 저무는 해를 배경 삼아 아이들과 살아 있는 순간을 담기 위해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삶은 목적을 달성하는 결과가 아니라 현재의 순간을 선택하고 누리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마치 뜬구름처럼 구름 위를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세상은 은혜로운 축복이지만 그런 축복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저 멀리 수평선 위로는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려 찬란한 일몰의 광경을 볼 수가 없다. 오늘은 비록 태양이 지는 일몰을 볼 수 없어도 언젠가는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보게 될 것이다.
안면도에서 몽산포로 가족과 돌아가는데 숙소인 블루오션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숙소를 퇴실하지 않았느냐고. 지금 안면도 해안을 따라 구경하며 올라가는 중인데 퇴실이라니. 꽃지에서 일몰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알려주었다.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가족이 머물 곳을 향해 달려가는 삶. 오늘따라 삶이 무엇인지 여행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거친 바닷가의 숨결 소리처럼 삶도 잔잔함이 아닌 거칠게 부딪치는 생명의 소리로 들려온다.
안면도 해안가에 늘어선 순백한 해수욕장. 백사장, 꽃지, 몽산포, 기지포, 방포, 청포대, 안면해수욕장. 해안가를 따라 줄지어 선 해수욕장의 이름을 읽어가며 숙소를 향해 귀소를 서둘렀다. 얼마 후 블루오션에 도착해서 가족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곁들이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랬다.
오늘로써 이곳에 온 지 이틀째다. 이틀이란 생명의 시간이 마치 썰물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바닷물이 밀물이 되어 해변까지 차오르더니 썰물 때가 되자 흔적 없이 빠져나갔다. 채움과 비움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며 바닷가를 바라본다. 가족과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바닷가의 안온한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쌀쌀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를 산책했다. 해안가의 가로등 불빛이 명멸해가는 삶의 불나비처럼 다가왔다. 바닷물을 조용히 거두어들이는 썰물의 흔적처럼 나도 세상에 머물다가 조용히 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해안가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지난 이틀간의 시간이 마치 몽환의 꿈결처럼 지나갔다.
첫댓글 몽산포, 안면도, 안면암 잘 다녀오셨군요~
문득 내 고향 바다가 보고 싶습니다.
저도 도시의 콘크리트 숲에서 탈출하여 주변 바다로 달려가 보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 세 식구 후배네 세 식구 함께 안면도에 갔었지요.
근데 위의 명소들은 들른 곳이 없고 백사장에 텐트 치고 1박만 하고 왔어요.
분명 안면도에 가서 들른 곳인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한번 더 가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