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지신 십자가(이사야 53:4-6)24.03.24.종려주일설교
우리나라 신문사에서는 조사를 하였습니다.
들었을 때, 가장 정다웠던 말은 무엇입니까?
3등, 수고했다. 12% 입니다.
2등, 어디 아프니 29% 랍니다.
1등, 힘내 30% 였다고 합니다.
기타로, 밥은 먹었니? 참 대견하다. 일찍 자거라..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위로가 되어 지고, 힘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말이라도, 상처를 주고, 힘을 빼어버리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힘을 빼는 사람이 아닌, 힘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마21:8)
나무 가지를 베어 펴면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요12:13)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여” 하고
환호성을 올렸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요12:13, 계7:9).
그 당시 유대 팔레스타인 지역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먹고 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런 때 예수라고 하는 젊은이가 나타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풍랑을 잔잔케 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예수님이 무엇인가 큰일을 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우리를 살려 주세요.’하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신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눈앞에 둔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속하여 나를 살려주시기 위해 참혹한 십자가 위에서 달려 돌아가셨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온몸을 찢으시고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예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1.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본문 이사야 53:5-6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말씀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나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4절에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 된 것은 그만한 죄가 있었거나,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죽음이라고 여겨 나와 무관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처형된 십자가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받을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로마서 3:10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삶을 이루어 가장 모범적인 사람이라 해도 윤리, 도덕 양심적으로 죄인일 뿐 아니라, 그가 누구든 나를 만드시고 지으신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을 모르며,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그 자체가 씻을 수 없는 죄인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죄인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신과 죄악의 모든 형벌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대신 받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대가로 받을 형벌은 죽음과 심판과 형벌입니다.
그런데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그 심판과 형벌을 십자가의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1.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2.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구원의 문이 열리는 십자가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선행을 많이 행해서도, 공적을 많이 세워서도, 신앙인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해서, 교회를 오래 다니고 헌금을 많이 해서, 수행과 고행을 많이 해서 얻어지는 것 아니고, 반드시 십자가 보혈을 지나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속죄 하는 십자가 보혈을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 죄의 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 받을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보혈을 지나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아 의롭다함을 얻은 자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1971년 뉴욕 포스트에 실린 피트 헤밀의 칼럼 《Going Home》에 실린 실화입니다. 빙고라고 하는 한 남자가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여러 시간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침울하고 근심에 싸인 모습에 초조해 보이기도 해서 어느 친절한 사람이 다가가서 어디로 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나는 죄를 짓고 4년 동안 뉴욕 형무소에서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형량 만기로 석방이 되어서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나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기에 4년 전에 아내에게 나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아내로부터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출감일이 가까워지고 딱히 갈 데도 마땅치 않은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내 집은 브로크릴이라고 하는 마을에 있는데 그 곳은 차가 지나다니는 길 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큰 참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이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만일 당신이 나를 받아 준다면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매달아놓으라고, 그것이 나를 영접해 주는 표시인 줄 알고 집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손수건이 없으면 이미 당신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줄로 알고 그저 지나쳐서 내 갈 곳으로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이제 내가 살던 집에 거의 다 왔는데 걱정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차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같이 초조해졌습니다. 모두들 창 밖을 바라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참나무가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차안에서 함성이 터졌습니다. 큰 참나무가 온통 노랗게 꽃피어 있는 것입니다. 손수건 하나만 묶으면 혹시 남편이 못보고 지나갈까 봐 아내가 그 나무에 온통 노란 손수건을 묶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우리에게 “용서한다.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나무입니다. 십자가가 한국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곳곳에 첨탑처럼 세워져 있습니다.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멀리서도 보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한다.” 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내가 용서한다. 또 너를 사랑한다.” 는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는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1.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2.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구원의 문이 열리는 십자가입니다.
3.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치유와 평안의 십자가입니다.
구약 본문 이사야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했습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픔을 주님께 가지고 나와 십자가의 능력으로 치료 받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수시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보혈의 능력을 믿고 맡길 때 고쳐 주시고, 싸매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치유된 심령에 평안함을 주십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검프의 친구인 다섯 살짜리 제니가 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몸을 숨기려고 옥수수 밭을 가로질러 뛰어 가며 기도하는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옵니다. “사랑의 하나님, 여기서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릴 수 있도록 저를 새로 만들어 주세요.” 제니의 아버지는 어린 그녀를 성적으로 학대해 왔습니다. 비록 다음날 아버지가 체포되고 제니는 다른 사람과 살게 되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행한 일 때문에 받은 상처를 극복하려는 그녀의 투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녀는 검프를 만나러 그 작은 마을로 돌아옵니다. 이제 30대 성인이 된 두 사람은 그녀가 옛날에 살았던 버려진 오두막 주변을 걷습니다. 그녀는 그 집을 바라보자 묻혀 있던 학대의 기억들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울음을 터뜨리고 주위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어 그 오두막을 향하여 있는 힘껏 집어 던짐으로써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던질 돌멩이가 없자 구두까지 벗어 던집니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낍니다. 나중에 검프는 그 광경을 회상하며 말합니다.
“때로는 돌멩이가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아.”
여러분도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와 고통을 생각할 때 검프가 한 말에 공감하실 줄 압니다. 제니가 품었던 것과 같은 뿌리 깊은 고통과 분노가 마음속에서 곪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흔들어댈지도 모릅니다. 그때 여러분 안의 분노가 이렇게 소리칠 것입니다. “하나님, 이건 공평하지 않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무슨 일을 했습니까?”
누가복음 4:18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기로 보장된 은혜요, 축복들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통해 온전한 치유와 참 평안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구원의 문이 열리는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치유와 평안의 십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