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아버지의 삶!👌🏿
할멈 먼저 떠나고 혼자인 나는 매달 연금 130만 원을 받는다.
그중 80만 원은 늘 아들 집에 보탰다.
그런데 아들이 나한테 한 말은 이거였다.
“아버지, 그냥 시골집에 내려가서 사는 게 어때요.
며느리가 아빠한테 노인 냄새가 난대요.”
나는 한마디만 했다.
“그래!”
더 말하지 않았다.
서운하지도 않았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 짐부터 쌌다.
옷장에 있는 옷은 대부분 아들이 안 입는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자주 입던 옷 몇 벌만 골라서 낡은 여행 가방에 넣었다.
머리맡에 두던 혈압 약, 혈당 측정기, 평소 쓰던 보온병도 하나씩 챙겼다.
30분도 안 걸렸다.
아들 집 물건에는 손대지 않았다.
며느리 얼굴도 굳이 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말을 더 보태 봐야 나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아들은 거실 입구에 서서 내가 짐 싸는 걸 보고만 있었다.
말은 끝내 없었다.
내가 가방을 끌고 나가려 하자 그제야 5만 원을 내밀었다.
길에서 뭐라도 사 먹으라고 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손만 한번 저어 보이고 그냥 나왔다.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시골집으로 내려가는 시외버스표를 샀다.
세 시간쯤 걸리는 길이었다.
창밖만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서운함보다 먼저 든 건 해방 감이었다.
시골집은 오래된 기와집이다.
대문 자물쇠도 녹이 슬었고, 마당에는 온갖 잡초가 수북했다.
방 안 가구마다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먼저 집 안을 청소하고 마당 풀을 뽑았다.
그다음 탁자랑 의자를 닦고 물을 끓였다.
뜨거운 물에 믹스 커피를 타서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집은 낡았어도 내 집이었다.
눈치 볼 사람도 없고, 괜히 맞춰 줄 사람도 없었다.
아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밖은 아직 어두운데도 며느리 눈치가 보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들 내외 식사가 끝날 즈음에 들어가 남은 반찬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주방을 정리하고 바닥을 닦았다.
아들이 출근하면 경로 당에 가서 지내다 아들이 퇴근할 때쯤
집에 들어가 저녁 얻어먹고 방 안에서 지냈다.
내 연금 130만 원 가운데 내가 쓰는 돈은 50만 원뿐이었다.
나머지 80만 원은 전부 아들한테 줬다.
주택 담보 대출 갚는 데 보태고, 아이 키우는 데 보태라고 했다.
나는 내 몸에서 냄새날까 봐 늘 신경 썼다.
매일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세탁할 때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까지 썼다.
그런데도 결국 돌아온 건 핀잔이었다.
시골로 내려온 뒤에는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가 없어졌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됐다.
아침엔 시래깃국 한 그릇 끓여서 김치랑 먹었다.
소박했지만 편했다.
오후에는 동네 장터에서 채소를 샀다.
신선했고 값도 덜 부담스러웠다.
마당 한쪽 빈 땅을 다시 뒤집었다.
거기에 푸성귀랑 대파, 고추를 심었다.
반찬거리 하나는 내 손으로 해결됐다.
할 일 없을 때는 마당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근처 사는 나이 든 이웃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하루가 천천히 갔다.
연금 130만 원이면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남았다.
읍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도 다시 받았다.
의사는 내가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혈압이 흔들렸던 것 같다고 했다.
지금처럼 마음이 편해지면 수치도 안정될 거라고 했다.
나는 나를 위해 새 옷도 샀다.
이불도 새로 들였다.
집 안을 다시 정리해 놓고 보니 숨이 좀 트였다.
누구 허락 없이 내 돈으로 내 생활을 챙긴 게 참 오랜만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며느리가 요즘 돈 문제로 자꾸 싸운다고 했다.
내가 매달 주던 80만 원이 끊기고 나니 생활이 팍팍해졌다고 했다.
대출 갚는 것도 벅차다고 했다.
며느리도 잘못한 걸 안다면서, 다시 들어와 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이제는 절대 그런 말 안 하겠다고도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난 여기서 잘 지낸다. 안 돌아간다.”
너희 살림은 너희가 꾸려야 한다.
나는 이제 늙어서, 내 집 지키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
아들은 더 말하려고 했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아들은 가끔 전화를 했다.
나는 짧게 만 받아줬다.
다시 돈을 좀 보태 달라는 말도 했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자식 인생까지 끝까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는 걸.
나는 평생 가족 챙기느라 내 몫을 미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되는 나이다.
지금 내 생활에는 며느리 눈치도 없고, 돈 때문에 끌려 다닐 일도 없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내가 정한다.
나는 그게 좋다.
늙어서 야 비로소, 자유를 찾고 내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옮겨온글 중에서
☕️바람직한 노후 생활☕️
♢ 첫째
집안과 밖에서 넘어지지 말고 끼니를 거르지 말되 과식을 삼가며, 이사하지 말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야 좋다.
♢ 둘째
설치지 말고, 헐뜯는 소리, 잔소리를 하지 말라.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말 것이며, 묻거들랑 가르쳐 주기는 하되 모르는 척 어수룩해야 편안하다.
♢ 셋째
어차피 젊은이들에게 신세 질 몸, 이기려 들지 말고, 칭찬을 아끼지 말라.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이 편하고 원만히 살아가는 비결이다.
그러나 불의의 부도덕하고, 무례한 행위에는 불호령을 내려라.
이것이 사회를 위한 늙은이의 마지막 봉사일지도 모른다.
♢ 넷째
돈 욕심을 버려라.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눈감으면 공수래공수거이다.
인색하게 굴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베풀고, 좋은 일 많이 하고, 덕도 쌓으라.
하지만 돈이란 것은 늙어서 더욱 필요한 것이니, 죽을 때까지 놓지 말고 꼭 쥐어라.
돈은 늙은이를 지켜주고, 모두가 받들어 모시는 원동력이다.
물려줄 만큼 물려주되, 두 늙은이 몫은 가지고 쓰면서 살아라,
혹 재산을 넘보는 자녀가 있거든 "이 재산 어디 안 간다"라고 따끔히 타이르라.
♢ 다섯째
멍청하면 안 된다.
신문, 잡지, 책을 통해서 꾸준히 두뇌를 세척하고, 두 가지의 취미 생활을 하라.
건전한 오락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
♢ 여섯째
늙을수록 건강에 유념해서 부부가 해로하되, 영감이 먼저 눈을 감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보약은 부인에게 양보하라.
☕️물은 언제 얼마큼 마셔야 하는가?
- 심장 전문가의 권고,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 일정한 시간에 물을 마시면 몸에 미치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 아침에 눈 뜬 후 물 두 잔은 인체 내부 기관을 활성화시킨다
- 식사 30분 전 물 한잔은 소화를 도운다
- 목욕 전 물 한잔은 혈압을 낮추어 준다
- 취침 전 물 한잔은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를 예방한다
이 메일을 당신의 주변 분들에게 전하시면 감사할 것입니다.
두 다리로 걷는 오늘이 최고의 선물 아침에 눈을 뜹니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이불을 밀치고 바닥을 딛는
그 순간,
나는 오늘도 기적 위에 서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몰랐습니다.
걷는다는 것이, 숟가락을 드는 일이,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이 이렇게 고마운 축복인 줄을.
돈이 많으면 다 가질 줄 알았고, 자식이 잘되면 다 이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수백 억 통장보다 오늘 내 발로 동네 한 바퀴 도는 일이 더 값지다는 걸 나이 들어 알았습니다.
작은 집이라도 좋습니다. 비가 새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눕고 싶을 때 눕고,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 천국입니다.
내 리모컨이 있고, 내 밥그릇이 있고, 내 이름으로 들어오는 작은 연금이 있다면, 나는 이미 당당한 사람입니다.
혼자 걷는 길이 처음엔 쓸쓸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바람이 말을 걸고, 햇살이 등을 토닥이며 “잘 버텼다”라고 속삭여 준다는 것을..
친구가 없어도, 약속이 없어도, 오늘 하루를 내 힘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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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삶이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사랑하며 내일을 희망한다
오늘도 작은 행복에 미소 지으며
편안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