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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271.5m봉에 바라본 두로봉, 오른쪽 뒤는 만월봉
대체적으로 이 산의 기량은 중후해서 덕이 있는 군자와도 같다. 대략 보아도 경망하고 날래
며 뾰족하고 가파른 자태가 없으니, 이것이 뛰어난 점 중 하나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숲 속
의 거목 중 큰 것은 거의 백 아름이나 되어 구름까지 들어가 하늘을 가리기조차 하는데 그 깊
숙함은 첩첩이 쌓인 산과도 같았다. 청한자 김시습이 “풀과 나무가 무성하면서도 빽빽하여
속인이 드물게 온다는 점에서 본다면 오대산이 최고”라고 한 것이 또 뛰어난 점 중 하나이다.
(蓋是山爲器重厚。似有德君子。略無輕儇尖峭之態。是一勝也。穹林巨木。大幾百圍。至其
參雲蔽日。隱若疊嶂。淸寒子所謂草樹茂密。俗子罕到。五臺爲最者。是一勝也。)
―― 전송열, 허경진 엮고 옮김, 『조선선비의 산수기행』중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
~1722)의「五臺山記」에서
▶ 산행일시 : 2016년 8월 13일(토)~ 14일(일), 맑음, 폭염
▶ 참석인원 : 16명
◦ 산행조(6명) : 버들, 영희언니, 스틸영(초반 탈출), 악수, 대간거사, 마초
◦ 야영준비조(10명) : 자연, 상고대, 사계, 신가이버, 해마, 승연, 가은,
혜연, 한계령+1(늦게 합류)
▶ 산행거리 : 도상거리 5.7km
▶ 산행시간 : 5시간 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가은 님 승용차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4 - 동서울터미널 출발
12 : 06 - 진고개, 점심
12 : 44 - 송천약수 가기 전 연곡천, 산행시작
13 : 27 - 능선마루
13 : 58 - 748m봉
15 : 17 - 만월지맥 1,130.4m봉, ┳자 능선 진입
15 : 50 - 백두대간 △1,271.5m봉, 두로봉과 동대산 중간
16 : 16 - 백두대간 1,241.3m봉, ┫자 능선 분기, 직진은 동대산 3.1km
16 : 53 - 입석
17 : 48 - 연곡천, 산행종료, 야영
23 : 08 - 취침
03 : 50 ~ 06 : 00 - 기상, 아침식사(닭죽, 짜파게티, 라면)
08 : 40 - 야영지 출발
11 : 4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야영을 마치고
2. 연곡천 와폭
2-1. 멀리 뒤는 노인봉
▶ 오대산 가는 길
오대산 가는 길이 멀고도 멀었다. 바캉스 시즌 막바지에다 광복절 연휴가 겹쳤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모든 도로는 차로 쭉 이어졌다. 야영산행이기 참고 견디지 주말 정기산행이라면 이
런 길은 애초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중부고속도로 마장휴게소에 들려 용변이라도 보기 아주
잘했다. 다른 휴게소는 수백 미터 늘어진 차량행렬 그 장관에 질려 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졸다 깨며 간다. 깨면 우리의 담론은 우리나라 아니 세계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여러 부
문을 들었다 놓는다. 대간거사 님의 전화통화도 재미있다. 화은 님에게서 우리의 상황을 묻
는 전화가 왔다. 화은 님은 우리가 지금쯤 한참 산행 중일 거라 생각했을 것. 상고대 님은 곁
에서 더덕을 수없이 캐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하도록 부추기지만 대간거사 님은 그대가 (우
리의 지금 상황을 알면) 너무 즐거워할 같아서 얘기하기가 뭐하다며 아직 영동고속도로를
기어가는 중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한다.
우리 오지산행을 잘 모르는 친구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오대산으로 비박 산행하러 가는 중
이다. 어떻게 하는 산행인데. 산중을 걷고 걷다가 날이 저물어 캄캄해지면 그 자리에서 자고
간다.” 국도가 나을까? 문막에서 국도로 방향을 틀었다. 지체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주, 봉평
을 지나 평창IC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올라탄다. 진부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
이제야 숨 좀 쉴 것 같다.
오대산, 월정사, 진고개 가는 길은 한산하다. 한국자생식물원은 휴관 중이다. 산굽이굽이 돌
아 준령인 진고개이다. 해발 980m이다. 이쯤이면 영(嶺)이라 함이 마땅한데(종종 해발 200
m~400m는 고개, 400m~600m는 재, 600m 이상은 영이라고 구분한다.) 고개라고 하는 이
유를 모르겠다. “진고개를 한자화해서 니현(泥峴)이라고 한다.『조선지도』와 『대동여지
도』에는 이 한자식 지명이 나와 있다. 고개 이름은 비가 오면 땅이 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한국지명유래집-중부편』)
12시가 넘었다. 진고개휴게소에서 점심밥을 먹는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이다. 산행 중이 아
닌 산행 들머리로 가는 도중에 점심을 먹기는 처음 일이다.
3. 진고개에 바라본 동대산
▶ 산행 - △1,271.5m봉
산행을 그만 둘 수는 없다. 산행조는 송천약수 가기 전 연곡천 가까운 데서 내린다. 야영 준
비조는 전후치 넘어 부연동 영골로 들어간다. 작년에 야영했던 곳이다. 그때는 비가 와서 칙
칙했는데 오늘은 아주 맑다. 산행조는 연곡천 건너 만월지맥 1,130.4m봉 올라서 백두대간을
잠깐 들렸다가 바로 북동쪽 지능선을 내려 영골로 가기로 한다.
산행조는 차에서 내려 신속히 가드레일을 넘는다. 너덜 섞인 산비탈을 잠깐 내리고 평평한
숲속을 이슥 지난다. 연곡천을 건넌다. 버들 님이 물이끼가 끼어 미끄러운 바위를 잘못 디뎌
깊은 물에 풍덩 빠졌다. 때 이르게 알탕한 셈이다. 그러나 곧 모두가 땀으로 흠뻑 젖을 것이
니 꼭 남의 일만은 아니다.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워낙 가팔라 수적조차 보이지 않고 잡목과
수풀이 성긴 거의 맨땅이다.
소(小)자 갈지자 그리며 기어오른다. 엎드리게 되니 얼굴에 후끈한 지열을 맞는다. 화로다.
숨이 금방 턱턱 막힌다. 무더위가 나날이 그 기록을 갱신하는 것 같다. 제발 서둘지 말자 다
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이런 곳에 송로버섯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혹 헛걸음이라
도 할까 보아 눈 돌리지 않고 앞만 똑바로 내려다보며 간다. 긴 한 피치 올라 능선마루께에
올라서고 가쁜 숨을 돌린다.
산행 시작한 지 겨우 40분. 스틸영 님이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오던 길로 탈출하겠
단다. 오르는 사면 길에 굳이 능이버섯(?)을 따겠다며 발품을 팔더라니. 능선 길도 가파르다.
희미한 인적 쫓아 잡목 숲을 헤친다. 748m봉 넘고 날파리 떼가 극성이다. 잠시라도 쉴라치
면 온몸에 새까맣게 달라붙는다. 눈 코 귀 입으로 막 들어온다. 손 한번 휘두르면 서너 마리
는 잡힌다.
야영준비조인 상고대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비보(悲報)다. 영골 야영지로 들어가지 못하
고 뒤돌아가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거기가 오대산국립공원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작년에도
주민(말투하며 토착민이 아닌 귀농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의 항의가 심했다. 그렇다면 연
곡천 산행 들머리가 옥계반석이 수두룩한 명당이더라고 일러준다. 아울러 우리 산행코스도
변경한다. 남쪽 건너편 능선으로 내리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공제선이 몇 번이나 신기루다. 저기 가서 쉬어야지 하고 기를 쓰고 올라가보면 다만 경사가
약간 느슨해졌을 뿐이다. 쇠파리와 날파리 등살에 맘 놓고 쉬지도 못한다. 오히려 살살 걷는
편이 낫다. 등로 주변이 분위기 좋은 펑퍼짐한 초원이기에 누비며 간다. 단풍취, 우산나물,
참취 군락이다. 그들의 꽃밭이다. 더덕은 가물에 콩 나듯이 드물다. 그러나 그 향에 그 덕에
팍팍함을 한결 던다.
4. 산행 시작하자마자 생사면을 오르는 중, 저렇게 보여도 엄청 가파르다
5. 싸리버섯
6. 능이버섯(?)
7. 흰가시광대버섯. 독버섯이다.
8. 흰가시광대버섯 안쪽
9. 가지외대버섯, 식독불명
드디어 만월지맥 1,130.4m봉이다. 들머리와 고도차 720m. 이 염천에 여기를 오를 수 있을
까? 스틸영 님이 뒤돌아 갔는데 나도 그만 둘까? 망설였다. 급기야는 산행 자체를 다시 생각
하기에 이르렀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고역을 계속할 것인가 하고. ┳자 능선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전후치 넘어 철갑령으로 간다. 왼쪽은 백두대간 두로봉과 동대산 중간으로 간다.
등로가 환해졌다. 잠시 평탄한 길이다. 방금 전의 그 고역을 다 잊는다.
남서진 한다. 능선에 서도 바람 한 점이 없다. 고도 높여 그만큼 태양에 가까워지는지 더 덥
다. 쉴 때마다 웃옷을 벗어 줄줄 흐르는 땀을 짜낸다. 아마 마신 물보다 더 많겠다. 완만한 오
르막길이 이어진다. 고개 푹 꺾고 간다. 앞장 선 대간거사 님이 견인하여 오른다. 백두대간
△1,271.5m봉. 두로봉과 동대산의 중간쯤이다. 풀숲에 묻혀 있는 삼각점은 ‘연곡 449, 2000
재설’이다.
오래 쉰다. 태풍에 허리 부러진 신갈나무 거목에 오르니 모처럼 하늘이 트인 경점이다. 두로
봉과 신배령 넘어 만월봉이 보인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가하다. 남진하는 백두대간 길을
간다. 길 좋다. 삼연 선생의 말씀대로 ‘하늘에 닿을 듯한 거목의 숲속’ 오솔길을 간다. 이런
길, 이런 한갓진 맛에 산을 오른다. 온 길 뒤돌아보며 아껴 걷는다.
1,241.3m봉. ┫자 능선이 분기한다. 우리는 백두대간 길을 벗어나 왼쪽으로 간다. 인적 없는
바로 ‘우리의 길’이다. 미역줄나무 숲 헤치자 죽은 산죽지대가 나온다. 불과 골짜기 하나 건
넌 능선일 뿐인데 식생상태가 오른 능선과 전혀 다르다. 여기는 사막이다. 사면 훑으며 갈 일
이 없으니 쭉쭉 내린다. 죽은 산죽, 잡목, 바위지대가 연속해서 번갈아 나온다.
바윗길은 미리 겁먹고 사면을 돌아서 넘기보다 직등하는 편이 낫다. 암봉에 오르면 나무숲
빈틈 기웃거려 노인봉과 백마봉을 들여다본다. 눈과 손이 심심하던 중에 등로 옆 광개토대왕
릉비 닮은 잘 생긴 입석을 만난다. 가파른 죽은 산죽지대를 지쳐 내리고 650m봉에서 멈칫한
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거의 수직인 사면을 쏟아져 내린다. 저 아래 물소리가 들리는데 길기도 하다. 낙석! 여기서는
비석(飛石)이 맞다. 발에 차이거나 스틱에 걸린 돌이 비산한다. 돌에 맞을까봐 앞뒤 일행 간
어긋나게 내린다. 수적이라도 보이면 수적을 쫓는다. 이래저래 땀난다. 비지땀과 진땀 뺀다.
여기로 오르지 안 했기 천만다행이라며 우리의 당초 결정을 극구 자찬하며 내린다.
연호에 이은 골짜기 화답을 찾아 내린다. 평평하고 너른 숲속이 나타나고 텐트촌이 보이고
숯불 지피는 일행들과 만난다. 승연 님이 마중 나와 냉맥주를 따라 준다. 악우애 안주한 이
시원한 맥주 맛을 어디다 비기랴! 다 반갑다. 하이파이브 힘차게 나눈다. 야영준비조는 산행
들머리보다 훨씬 더 좋은 명당을 찾아냈다.
10. 앞 왼쪽은 두로봉, 오른쪽 멀리는 만월봉
11. 뒤는 만월봉
12. 뒤는 만월봉
13. 동대산 가는 백두대간 길
14. 동대산 가는 백두대간 길
15. 노인봉
16. 백마봉
17. 입석 앞에서
18. 죽은 산죽지대 내리는 길
19. 막바지 내리막길, 저렇게 보여도 거의 수직사면이다
▶ 야영 - 오대산 연곡천
우선 알탕이다. 연곡천 암반 훑는 와폭 아래 넓고 깊은 소가 있다. 최고 수심 170cm, 너비 5
m, 길이는 25m나 된다. 금년 최고의 노천 알탕이다. 개운하다 말을 다할까. 입술이 파래지도
록 몇 번이고 자맥질한다. 그리고 모기에 물릴라 긴팔 긴 바지로 갈아입는다(그러나 모기는
없었다).
산골짜기에서는 해도 일찍 지고 어둠도 빨리 온다. 숯불 석쇠 주위로 둘러앉는다. 야외용 램
프를 공중에 달아 불을 밝혔다. 밤이슬이 내릴까 염려하여 타프를 칠 필요가 없다. 쪽동백나
뭇잎이 가려준다. 열하루 반달이 우리를 살짝 엿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어항을 놓아 작년
처럼 물고기(버들치)를 다수 잡을 없다는 것이다. 작년에 영골에서 재미 좀 보았던 터라 어
항과 튀김가루, 튀김기름 등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소용없게 되었다.
물이 맑아서 물고기가 살지 않는가 보다. 이튿날 아침까지 어항에 든 물고기는 손바닥 크기
의 산천어 1마리, 손가락 크기의 쉬리 1마리, 버들치 2마리가 전부다. 방생하였다. 삼겹살,
양념갈비, 닭백숙이 메뉴다. 술은 생더덕주 4홉들이 15병. 나는 술주전자를 앞에 두고 잘못
(?) 앉아 빈 잔을 채워 주느라 팔 몸살하게 생겼다(그간의 가은, 대포, 무불 님의 술 따르는
수고를 새삼 알게 되었다).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괜히 웃고 하는 사이 밤은 깊어 간다. 야영 때마다 느끼지
만 우리들의 노래가 참 빈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대간거사 님이 폭 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흑산도아가씨, 목포의 눈물, 사의 찬미, 편지, 작은 별, 애심 등. 한계령 님의 ‘한계
령’은 언제나 명창이다.
우리들의 모습이 오오시마 료오끼치(大島亮吉, 1899~1927)의 『山, 硏究와 隨想』에서의
묘사와 같다. 다만, 모닥불이 아니라 숯불이다.
“산의 밤, 모닥불, 불꽃이 그리는 사람의 실루엣. 그것은 렘브란트의 힘 있는 명암의 붓놀림.
아니 그것뿐이랴, 그것은 자연이 그린 가장 오래된 조용한 인물화(山の夜に焚火の焔(ほの
お)がえがく人体のシルウェット。それはレンブランテクスの力強い明暗の筆触。いや、そ
れどころか、それは自然の描いた最も古い、静かな人物画)”
(부기) 숯불이 사위고 술기운이 올라 덥기도 하고, 옥계반석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술판을
벌였다. 나는 밤 11시가 약간 넘어 텐트에 들어가 잤다. 밤에도 더웠다. 저절로 새벽 3시 50
분에 잠에서 깨었다. 물가로 가서 반석에 팔베개 하고 누웠다. 밤하늘에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것은 어릴 때 말고 처음이다. 방향 없이 떨어져 순식간에 사라지는 별똥별을 보는 것도 그렇
다. 초롱초롱한 별들만큼이나 내 정신도 또렷해진다.
20. 참취꽃
21. 당귀꽃
22. 숯불 피우는 중
23. 연곡천
24. 연곡천 와폭
25. 연곡천 와폭
26. 와폭 아래 소. 상당히 깊다
27. 연곡천
28. 야영을 마치고
29. 노인봉 연봉
30. 노인봉 북쪽 지능선들
첫댓글 참석한 것처럼 상세하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그래도 올여름 알탕은 제대로 하신거죠?
반짝이는 별들의 감상 어린시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능이같은데...개능이도 아주 비슷하니~ㅠ
아주 션한 알탕이었겠네요^^ 함께 못한 아쉬움을 대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쩝,^^
허리고장으로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아직 수리중입니다.
선배님을 못 뵈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속히 쾌차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