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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에서
전 호 준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간다.
법이 산 봉수대 허물어진 돌담 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대구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아지랑이가 춤을 추듯 나뭇가지 사이로 어른거린다.
저 멀리 산 아래 흐릿한 안갯속 형형색색 크고 높고, 작고 낮은 상자 더미들을 양쪽으로 밀쳐놓은 듯 쭉 뻗은 공간 속에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개미떼들의 행렬같이 바삐 오고 간다. 은물결 반짝이는 수성 못 물 위에 두어 척의 오리 배들이 한가로이 떠 있다.
무상의 산소를 가슴 깊숙이 배가 터지도록 들이마시며 상념에 잠겨본다.
그 옛날 통신 수단이었던 이 봉수대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휴대폰이 조용하던 산천의 적막을 깨운다.
나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화창한 봄 날씨가 내 마음을 꼬득인다.
갑갑함을 달래려고 훌쩍 뛰쳐나온 산행 나들이 길,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빈집이라 궁금증에 신호를 보낸 모양이다. 이산 꼭대기에 전화라니 정말이지 너무나 편리하고 좋은 세상에 사는 것 같다.
그 옛날 봉수대에서 봉홧불을 올리던 혼령들이 내 옆에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느 이름 모르는 별에서 온 외계인이 SOS를 부르는 줄 착각하고 글자 그대로 혼비백산할 것 같다. 광속으로 진화해가는 현대 문명이 놀랍다기보다도 신기하다.
60년대 농촌 지역 면 소재지에 사설우체국이 생겨나고 우체국을 통한 전화가 유일한 통신수단이었으며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70년대 관공서나 마을회관(이장 집)에 설치한 전화기가 고작 이였다. 외지에서 전화가 오면 마을 이장이 앰프 방송으로 00댁 전화 받으세요. 하면 달려가 전화를 받던 시대가 어저께 같다
80 년대 들어 개인용 무선 통신수단인 호출기 일명 삐삐가 한때 성행했다.
직장인들이나 일선 공무원들이 출장 근무 중 급한 일이 생기면 허리에 차고 있던 호출기가 삐삐 소리를 낸다. 조그마한 화면에 호출한 사람의 전화번호나 약속한 암호가 숫자로 뜨면 인근에 있는 전화기를 찾아가 연락을 취하곤 했다. 특히 일선 공무원들은 산불 비상이 걸리면 38388282(산불, 산불, 빨리, 빨리)로 산불 발생 비상소집을 알리던 기억이 새롭다.
80년대 초 휴대폰이 처음 도입되었지만, 농촌 지역 일반서민들에겐 꿈의 대상이었다.
90년대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그 기능이 광속으로 진화하며 이젠 단순한 통신기기가 아닌 생활 전반에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는 똑똑한 전화기(스마트 폰)로 변신, 급기야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요술거울 같은 이 기기의 마술에 걸려 스마트 폰 중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우리 생활전반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문명의 이기라 할까? 기계는 나날이 진화해 가는데 그것을 창조하고 만든 사람들은 오히려 바보가 되어 가는 듯 걱정스럽다. 삼척동자도 즐겨 쓰는 스마트 폰 아내의 권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는 나의 아집은 고집 인지 진짜 바보인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시대에 뒤떨어진 초로의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일까. 유행과 최첨단 기기에 무작정 열광하는 현대인들의 병폐에 대한 막무가내 나만의 반항심일까?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물론 지하철 시내 버ㅡ스 가릴 것 없이 스마트폰에 빠져버린 군상들을 만난다. 퀵 서비스 오토바이 맨 은 물론 자장면을 배달하는 철가방 사람들까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핸드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볼 때 걱정 아닌 걱정이 앞선다.
먹고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뿐인 목숨을 담보할 만한 바쁘고 급한 연락인지 중독을 넘어 심각한 병리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위험천만한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움을 넘어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이 손안에 있소이다.” 오래전 어떤 사극 드라마 속 주인공의 말같이 모든 문명의 이기가 손안으로 들어온 지금 이 편리함의 축복을 까짓것 누리며 사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며 자신들의 자유이다.
편지가 사라져 가고 간혹 눈에 띄는 공중전화 부스가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사진관이 불황이고 책장 속의 책은 먼지만 쌓여간다. 운전자의 길을 안내해주고 온갖 기억을 요술 폰이 대신해주니 머릿속의 뇌가 졸고 있다. 오직 손바닥만 한 엷고 네모난 기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고 있으니 손안에서 잠시라도 떠나면 바보 아닌 바보가 되고 병이 되니 중독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무엇이든 순기능과 역기능은 있기 마련이다. 세계 최첨단의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우리 국민의 자부심이며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말 자랑스럽고 어깨가 뿌듯한 박수를 보낸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진화가 어디까지일까?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현대 문명이 인간을 퇴화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조바심이 생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업자득 선택한 사람들의 몫일뿐이다.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지혜롭게 사용할 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무한의 서비스와 행복 지식을 전해주는 생활의 필수품이다.
"e~편한 세상" 어느 건설사의 아파트 이름이 아니라 무한대의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 때 스마트한 생각과 마음으로 스마트하게 이용하면 독이 아닌 약으로 우리 생활 전반에 진정한 활력소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직도 스마트 폰 을 갖지도 쓸 줄도 모르는 초로의 구차한 논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산을 내려오면서 스마트 맨은 못될망정 스마트 폰이라도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5년 어느 봄날 법이 산 봉수대에서~
첫댓글 그리운 옛 추억에 잠겨 즐겁게 읽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공중전화 부스를 잠시 쳐다 보며 외면 당하고 잊혀지는 우리세대와 닮았구나 생각한 적 있습니다. 수필은 이렇게 써라 하는 것 같습니다.
예부터 이어지는 통신수단의 역사를 새롭게 되새겨 보게 하는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손 안으로 들어온 요술쟁이 스마트폰을 절제하면서 생활에 유용하게 쓸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통신수단 변화의 산 증인 세대.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문명의 이기, 나날이 진화해가는 발달 덕분에 사람들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내와 가족, 심지어 자기집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다보니 핸드폰이 없으면 바보가 되고 맙니다. 어쩌다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생각해보면 참 난감해집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자.
법이산 봉수대는 경산의 봉화불을 보고 불을 피우면 고산3동에 있는 성동 봉화로 이어지는 당시의 긴급상황을 알리는 통신수단이지요 저도 산불 책임자일때 몇번 올라가본 기억이 있어 실감이 느껴집니다.잘 읽었습니다.
봉화불로 긴급상황을 알리던 시대가 휴대폰 하나로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언제 어떻게 될지? 조바심도 납니다만 문명의 이기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