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는 어떻게 현재가 되는가
-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와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시학으로 읽는 송정자의 「하심주」(Ⅲ)
권대근
문학박사, 중국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Ⅲ. 공간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 바슐라르의 공간시학으로 읽는 「하심주」
프랑수아 줄리앙이 시간과 감각의 철학자라면,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과 상상력의 철학자이다.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인간은 공간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집, 다락방, 서랍, 물, 숲, 둥지와 같은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력이 머무는 장소이다. 그는 "거주한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며, 기억한다는 것은 상상한다는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공간을 존재의 근원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바슐라르의 공간론으로 보면 신춘문예 출신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는 공간의 이동을 통해 존재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이 수필에는 단 한 곳의 공간도 단순한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죽란(竹欄), 서련지, 연밭, 법천사지, 친구의 집, 그리고 부엌은 각각 기억을 불러내고 시간을 품으며 삶을 성찰하게 하는 시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작품은 단순한 체험담을 넘어 하나의 존재론적 풍경을 완성한다.
1. 죽란은 울타리가 아니라 마음의 경계이다
작품에서 가장 먼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공간은 다산의 죽란이다. "다산의 집 마당 돌담에 대나무로 만든 담장, 죽란이 있었다." 이 문장은 공간을 설명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산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작가는 이어서 죽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행여 오가는 그들에 의해 꽃이 다칠까 대나무 울타리를 쳤다."이 대목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죽란은 꽃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꽃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의 공간이다. 꽃을 지키는 일은 자연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바슐라르는 공간은 인간의 내면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죽란은 단순한 담장이 아니라 다산의 마음이 외형화된 공간이다. 꽃을 보호하려는 그의 마음이 울타리의 형태를 빌려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죽란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윤리적 공간이다. 이러한 해석은 작품 후반부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친구를 떠올리는 화자의 마음 역시 상대를 소유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배려의 감정이다. 죽란의 배려는 결국 우정의 윤리로 이어진다.
2. 서련지는 자연이 아니라 상상력의 무대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단연 서련지이다. "여름이면 동틀 무렵 서련지에 조각배를 띄우고 잘 여문 연꽃잎이 마침내 '북' 하고 터지는 소리를 듣는 청개화성의 풍류를 즐겼다." 이 장면을 사실적으로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꽃이 피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단 말인가. 그러나 바슐라르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의 여부가 아니라 상상력이 공간을 어떻게 변형하는가이다. 서련지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 아니다. 그곳은 기다림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꽃은 피기 위해 존재하고, 사람은 기다리기 위해 그곳에 간다. 연못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응시하는 공간이 된다. 이처럼 공간은 기능을 잃는 대신 시성을 획득한다.
특히 다음 대목은 공간을 시적으로 전환하는 뛰어난 문장이다. "군무를 하듯 일렁거리는 연잎들 사이로 살그머니 노를 저어 길을 내고, 죽란시사 벗들은 연꽃 틈 사이에 귀를 대고, 눈을 감고, 숨을 죽였으리라." 이 문장은 서술이라기보다 한 폭의 동양화에 가깝다. '노를 저어 길을 낸다'는 표현은 물리적 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상의 길을 연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귀를 대고', '눈을 감고', '숨을 죽인다'는 동작은 독자의 감각을 하나씩 열어 간다. 시각보다 청각이, 행동보다 침묵이 강조된다. 공간은 점차 외부의 풍경에서 내면의 풍경으로 이동한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공간을 '꿈꾸는 공간'이라 불렀다. 인간은 그 공간 안에서 현실을 잊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깊이 경험한다.
3. 친구의 연밭은 기억이 자라는 공간이다
작품의 시선은 다산의 연못에서 친구의 연밭으로 옮겨간다. "원주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갔을 때다. 함께 법천사지에 다녀오는 길에 친구가 연 밭에서 연잎을 몇 장 따주었다." 이 대목은 작품의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역사가 현재로 이동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다산이 연꽃을 감상하던 공간은 친구가 연잎을 따주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풍류는 현재의 우정으로 변한다. 특히 작가는 연잎을 가져오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차곡차곡 한 장씩 신문지에 켜켜이 끼워 냉동실에 보관했다." '차곡차곡', '켜켜이'라는 부사는 단순한 동작을 넘어 마음의 결을 보여준다. 연잎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마음을 보관하는 것이다. 바슐라르는 사물은 기억을 저장한다고 말하였다. 연잎은 시간이 지나도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우정을 간직한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냉동실은 음식 보관 장소가 아니라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로 변모한다.
4. 부엌은 가장 일상적인 시적 공간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 가운데 하나는 부엌이다. 보통 부엌은 노동의 공간이다. 그러나 송정자는 부엌을 가장 따뜻한 시적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마늘을 넉넉히 집어 밀양 대추와 은행, 황기, 인삼을 차례대로 넣고 마지막에 연잎 한 장을 솥에 가득 덮어 푹 고았다." 문장을 자세히 보면 서두름이 없다. 재료 하나하나를 천천히 넣는다. 이 문장의 리듬은 요리의 리듬인 동시에 마음의 리듬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갈변한 연잎을 걷어낸 뽀얀 국물은 거짓말처럼 말간데다 닭 비린내까지 말끔하게 잡아주었다." 겉으로 보면 요리의 효능을 말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문학적으로는 정화(淨化)의 이미지가 강하게 작동한다. 연잎은 닭의 잡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탁함을 씻어내는 상징이 된다. 여기서 부엌은 단순한 조리 공간이 아니다. 과거의 풍류가 현재의 삶으로 변환되는 연금술의 공간이다. 다산의 하심주는 이제 삼계탕의 향기로 다시 태어난다. 공간은 역사를 생활로 번역하는 장소가 된다.
5. 공간의 연결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수필에 그의 작가적 재능과 인격과 성품이 한껏 내장되어 있는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의 가장 큰 미학적 특징은 공간들이 서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죽란은 서련지로 이어지고, 서련지는 친구의 연밭으로 이어지며, 연밭은 부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부엌은 다시 친구를 떠올리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공간의 흐름은 단순한 배경의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다. 각각의 공간은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거대한 시적 세계를 형성한다. 바슐라르는 집의 한 방이 다른 방과 연결되듯이 인간의 기억도 서로 연결된다고 하였다. 「하심주」 역시 하나의 공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간은 기억을 낳고, 기억은 우정을 낳으며, 우정은 풍류를 낳는다. 결국 작품 전체는 하나의 '거주하는 세계'를 구축한다.
인본적 태도를 지양하면서 더불어 사는 자세를 가져 누구보다도 가끼이에 많은 지인을 둔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가 뛰어난 이유는 공간을 설명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는 데 있다. 독자는 죽란을 보며 배려를 생각하고, 서련지에서 기다림을 배우며, 연밭에서 우정을 만나고, 부엌에서 풍류가 일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체험한다. 이처럼 공간이 사건의 배경이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는 주체가 될 때 수필은 단순한 생활의 기록을 넘어선다. 바슐라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작품의 공간들은 모두 '상상력이 거주하는 집'이다. 그 안에서 독자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음미하며, 미래의 삶을 꿈꾸게 된다. 이것이 「하심주」가 지닌 공간시학의 핵심이며, 이 작품을 수준 높은 문학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미학적 성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