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정체성
마지막 합동연수에서는 복지관, 아동센터, 시설 등 다양한 복지 기관의 정체성을 주제로 공부했습니다. 복지관은 이용 시설과 사회사업 기관의 결합체인데, 복지관의 본체는 사회사업 조직으로서의 기관입니다. 이용 시설은 기관에 부수적으로 딸린 것으로, 그 활용 주체도 당사자와 지역사회입니다. 즉, 이용 시설은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당사자의 어떤 복지를 이루는 데 이용하는 시설”입니다. 복지관이 복지관 이용 시설을 활용하여 복지를 이루어주는 사업은 최소한으로 해야 합니다.
현재 복지관에서는 소위 ‘서비스 제공 기능’의 일환으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복지관이 문화센터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본래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현상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저렴한 가격에 문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어딘가엔 있어야 하고, 그 기능을 복지관이 수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복지관에서 피아노 수업을 듣는 그 아이는 복지관이 제공하는 피아노 교육 서비스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는 음악에 대한 접근 기회 자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복지관의 문화교육 서비스 덕분에 아이의 문화 복지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복지관 본연의 기능은 문화교육프로그램 제공에 있지 않습니다. 복지관이 다른 좋은 일을 위해 본래의 정체성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복지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문화교육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역사회조직을 당사자가 활용하게 주선하는 것입니다. 복지관이 할 수 없는 일을 덧붙이기보다는, 그 일에 전문성 있는 다른 조직을 활용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익합니다.
시설은 사람사는 곳
시설은 주거 시설과 지원 기관의 결합체입니다. 주거시설은 일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할 목적의 사회주택이고, 지원 기관은 입주자를 일상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시설은 당사자의 ‘집’이고, 당사자는 그 집에 적을 둔 ‘입주자’입니다. 집에서 사는 당사자를 지원하는 일을 ‘재가복지서비스’라 부른다면, 시설에 사는 당사자를 지원하는 내용 역시 재가복지서비스에 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입주자 한 명 한 명을 독립된 가구로 보고 개별적으로 도우며, 지역사회와 통합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시설 사회사업에서 가장 유의해야 하는 건 입주자를 ‘사람’으로 보고 사람답게 도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설 입주자가 일상적으로 사는 데 사람답다 하려면 ‘자기 삶’이 있어야 하고, 자기 일에 주인 노릇 하거나 주인 되어야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 구실 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기 삶을 산다는 건 각자의 희망 계획 필요에 따라 살아가게 돕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고 꿈꾸고 계획하는 게 있습니다. 여느 사람이 그러하듯 장애인도, 시설 입주자도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바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집단 활동을 삼갑니다. 입주자를 보호 감독의 대상으로 보고 통제하려 들지 않습니다.
사고로 전신마비 상태에 이른 입주자 역시 사람답게 돕습니다. 목욕하거나 옷 갈아입는 등 일상생활을 지원할 때 당사자에게 묻고 당사자의 일이게 돕습니다. 때때로 친구들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게 돕고, 어머니 생신날 선물하게 돕습니다. 그렇게 도울 수 있다면 전신마비 입주자도 사람답게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생소한' 주거 지원
주거 지원이란 입주자가 시설 밖에서 살게 돕는 일입니다. 자취, 본가살이, 외박 등을 지원합니다. 주거 지원은 관계 지원의 결과이고, 시설 입주자의 주거가 여느 사람과 같거나 비슷하게 해야한다(평범하게 한다)는 사회사업 철학에 따른 일입니다.
월평빌라에서 시설 입주자의 자취를 지원하는 모습은 다양한 측면에서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먼저, 입주자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생소합니다. 흔히 입주자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 사회사업가 또는 활동지원사의 직접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자취를 시작한 월평빌라 입주자는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냅니다. 위험하고 두려운 일일 수 있지만, 시설 직원으로부터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당사자에게는 혼자 무엇을 해볼 여지가 넓어집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직접 해보며 시설 안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생겨납니다. 길눈이 어두운 분이 길을 익히고, 손님 대접한다고 수박을 자릅니다.
물론 입주자는 홀로 모든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관계’입니다. 자취에서 핵심은 ‘집’이 아니라 ‘관계’라 합니다. 의지하고 서로 돕고 나눌만한 관계가 있다면, 아니 그런 관계가 있어야 자취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사업가는 입주자의 집에 찾아가고, 자주 교류하고, 때때로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시설에 살면서 쌓은 관계가 자취의 기반이 되고, 또 그 관계가 자취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둘째로, 시설 운영의 관점에서 생소합니다. 자취를 시작한 월평빌라 입주자는 여전히 월평빌라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체험홈, 그룹홈 등 이른바 중간단계 주거로 전환한 시설 입주자가 기존 시설에서 완전히 퇴소하게 되는 다른 시설의 운영 방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월평빌라와 같은 운영 체계에서는, 기존에 입주자를 지원하던 인력이 자취 이후에도 지원을 계속합니다. 당사자와 당사자의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회사업가가 지속해서 지원하는 겁니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당사자의 기회가 사라진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취하는 당사자는 자립생활지원센터 인력이 지원하게 하고, 월평빌라에서는 완전히 퇴소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설에서 퇴소한 당사자를 지원하는 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음을 고려합니다. 활동지원인력을 교육, 훈련하는 체계, 양질의 처우를 보장하는 체계가 갖춰지기 전에 지원 기관과 인력을 전환했다가는 자칫 그간 쌓아온 관계가 허물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상 출판식
공부가 끝나고 가상 출판식을 진행했습니다. “나의 구직일기 – 정선영 씨의 구직을 도운 사회사업 기록”이라는 제목의 가상 보고서를 구상해보았습니다. 책에 들어갈 목차를 상상하니 정선영 씨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정선영 씨의 구직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합동연수 과정에서 정선영 씨가 직접 구직과 관련된 문헌을 찾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글을 잘 읽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둘러보고 인터넷을 활용해 자료 검색을 하는 경험 자체만으로 정선영 씨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찾아보는 행위 자체가 정선영 씨를 구직 과정의 주인으로 세울 겁니다.
구직 활동을 시작하기 전, ‘일을 하려는 뜻과 이유’를 명확히 세우고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일하려는 이유”를 목차로 포함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니 선영 씨와의 의사소통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영 씨의 의사소통 방식이 여느 사람과 다를 뿐이라는 걸 배우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서지연 선생님의 일지에서 공부한 것처럼, 선영 씨에게 맞는 의사소통 방식을 찾으면 됩니다. 의사소통 장애는 선영 씨의 소통 방식과 사회사업가의 소통 방식이 서로 맞지 않아 겪게 되는 현상이니, 선영 씨의 뜻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의사소통 방식을 맞춰가면 될 것 같습니다.
또 반드시 대단한 뜻과 이유가 서야 구직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거창한 포부가 아니어도, 다만 자취를 시작해서 돈이 필요하고, 평상시 좀 적적한 것 같다는 마음 정도로도 구직할 수 있고 일할 수 있습니다.
‘나라면, 여느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 질문을 마음속에 항상 품고 다니려 합니다. 이 질문을 따라 선영 씨를 도와야 보편적이게, 평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천릿길
저녁 식사 이후 지우와 천릿길을 불렀습니다. 의성 선생님이 열심히 일지를 쓰는 동안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첫댓글 배운 내용 잘 정리해주어 고맙습니다. 오늘 전채훈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고 복지인권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화음 듣고 깜짝 놀랐어요. 송지우 선생님의 쌍따봉은 언제봐도 기분 좋아요. 😊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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