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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예슈아의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쎄데르였을까?
예슈아 시대의 유월절은 조금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처럼, 저도 부모님과 친척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며 자랐습니다. 매년 이어져 온 가족과 공동체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맛있는 음식도 있었습니다.
제가 예슈아를 따르기 시작했을 때, 기독교인들에게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으로 알려진 예슈아의 유월절 기념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잘 기억되고 의례화된 사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여러 가지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슈아는 과연 오늘날 유대인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유월절을 지켰을까요? 제가 자라면서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쎄데르’에 참여하셨을까요? 오늘날 그분의 제자들은 이 사건을 ‘더 유대적인’ 방식으로 기억해야 할까요?
기독교식 쎄데르 만찬
지난 수십 년간 유월절을 둘러싼 기념 행사에 관심을 갖는 기독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심지어 ‘기독교 쎄데르’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는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른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이 명절에 참여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쎄데르를 개최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견해는 예히엘 푸프코(Yehiel Poupko)와 데이비드 샌드멜(David Sandmel) 랍비가 대표하며, 이들은 2017년에 “예슈아는 유월절 만찬을 먹지 않았다”라는 제목에 “그리하여 기독교인들도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부제를 단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푸프코와 샌드멜은 기독교인들이 쎄데르를 거행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쎄데르는 예슈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둘째, 기독교인의 쎄데르는 출애굽에서 초점을 옮겨 예슈아께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도 기독교인의 전통적인 쎄데르 참여에 대해 유사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2014년, 개혁파 랍비 에반 모픽(Evan Moffic)은 저서 『모든 기독교인이 유월절에 대해 알아야 할 것』(What Every Christian Needs to Know About Passover)을 통해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하며, 기독교인들이 쎄데르를 거행하도록 장려하고 이를 위한 자료까지 제공했습니다.
누가 옳을까요? 일부 기독교인들이 쎄데르를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문제일까요? 기독교 쎄데르는 일종의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다원적 종교 사회에서 환영받는 새로운 형태일까요? 기독교인들이 오랜 유대교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유익한 일”일까요? 좀 더 종교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이는 키두시 하쉠(קִדּוּשׁ הַשֵּׁם,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힐룰 하쉠(חִלּוּל הַשֵּׁם,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일까요?
예슈아와 유월절 만찬
오늘날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쎄데르(Seder)가 예슈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바루크 복서(Baruch Bokser)는 그의 저서 《쎄데르의 기원(The Origins of the Seder)》에서, 미쉬나(Mishnah)에 묘사된 쎄데르가 “성전 상실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반영한다고 썼습니다. 다시 말해, 서기 70년 이후의 유월절은 서기 70년 이전의 유월절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리고 쎄데르는 계속해서 진화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아피코만(afikoman)을 쪼개어 숨기는 관습은 미쉬나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슈아과 12사도들이 행한 것은, 당시 명시적으로 ‘쎄데르’라고 불렸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서기 70년 이전의 유월절 의식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첫 네 권 중 세 권(복음서라고 알려진)은 최후의 만찬을 유월절 만찬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어린 양, 무교병, 그리고 쓴 나물이 있었을 것입니다. 잔도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두 개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미쉬나 전통의 상당수가 더 이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네 개였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잔”이 있었다는 사실은 유월절 예식을 위해 출애굽기에서 명시한 필수 요소 이상의 전통이 이미 축적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세기에 네 개의 잔이 사용되었다면, 누가복음의 기록은 “첫 번째 잔”인 키두쉬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잔을 들어 감사드리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받아 너희끼리 나누어 먹으라’ 하셨다.” (누가복음 22:17)
그 당시 “감사를 드리는” 행위가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이라면 우리는 “בָּרוּךְ אַתָּה יְהֹוָה אֱלֹהֵינוּ מֶלֶךְ הָעוֹלָם בּוֹרֵא פְּרִי הַגָּפֶן, 바루크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누 멜레흐 하올람, 보레이 프리 하가펜” 즉, “포도나무의 열매를 창조하신 우주의 왕이시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찬양받으소서”라고 낭송할 것입니다.
그 빵은 규정된 “무교병”인 마짜였을 것입니다:
예슈아께서 빵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바치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 또한 식사 후에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은 새 언약이다.” (누가복음 22:19–20)
다시 말해, 우리는 감사의 기도가 어떤 형태였는지 알 수 없는데, 오늘 날의 감사의 기도는 “בָּרוּךְ אַתָּה יְהֹוָה אֱלֹהֵינוּ מֶלֶךְ הָעוֹלָם הַמּוֹצִיא לֶחֶם מִן הָאָרֶץ, 바루크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누, 멜레흐 하올름, 하모츠이 레켐 민 하아레츠” 즉, “땅에서 빵을 내시는 우리 하나님, 만물의 왕이신 주님, 찬양받으소서”입니다.
누가복음은 “그들이 먹고 난 뒤”에 잔이 있었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세 번째 잔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예슈아께서 빵과 포도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는 것이며, 이는 오늘날의 하가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전형적인 쎄데르 식사에 부합하는 다른 상징적 행동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먹고 있을 때, 예슈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리라.” 그러자 제자들은 매우 슬퍼하며 차례로 예슈아께 물었습니다. “주님, 저입니까?” 예슈아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자가 나를 배반하리라.” (마태복음 26:21–23)
빵을 찍어 먹는 행위는 유월절 저녁 예식의 일부이며, ‘네 가지 질문’ 중 하나를 구성합니다. “다른 모든 밤에는 단 한 번도 찍어 먹지 않지만, 오늘 밤에는 두 번 찍어 먹습니다.”
바로 그 배신자인 유다가 ‘쓴 나물’인 마로르에 빵을 찍어 먹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는 유월절 관습과 부합하며 배신의 쓰라림을 상징하는 적절한 행위로 의미가 깊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0절에서 볼 수 있듯이 할렐 찬송을 부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찬송을 부르고 나서, 감람산으로 나갔습니다.” 예슈아와 제자들은 시편 113편부터 118편으로 구성된 할렐 시편으로 유월절을 마쳤습니다.
이 모든 것은 복음서를 합리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예슈아 시대에 출애굽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월절의 기원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예슈아의 유월절 만찬을 ‘쎄데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는 이제 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것은 초기 원형의 쎄데르였으며, 서기 70년 이전의 쎄데르였고, 형성 중인 쎄데르였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든, 쎄데르라는 표현이 이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합니다. 요셉 클라우스너(Joseph Klausner)가 그의 저서 『나사렛의 예수(Jesus of Nazareth)』에서 반복해서 묘사한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월절 의식에 관한 예슈아의 가르침
유월절에 예슈아께서 빵과 포도주에 부여한 새로운 의미는 무엇일까요? 푸프코와 샌드멜은 최후의 만찬에서 출애굽 사건에 대한 강조가, 예슈아께서 새로운 의식을 창시하신 그분의 새로운 신앙 표현에 비해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출애굽 사이의 연관성을 항상 잘 인지해 왔으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쎄데르를 위한 새로운 의식을 창안하거나 기존 관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앙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최근 일부 참가자들이 소외된 유대인들을 상징하기 위해 쎄데르 접시에 오렌지를 올리는 관습이 생겨난 것처럼).
유월절은 단순히 출애굽을 회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종적인 구원을 향해 앞을 내다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메시아의 도래를 바라며 엘리야를 위해 문을 열어둡니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대하며 “내년에는 예루샬라임에서!”라고 외칩니다. 예슈아 또한 유월절 의식에 대해 새로운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유월절을 기념할 때마다 접하는 풍부한 역사는, 성경의 선지자들이 출애굽의 이미지를 재사용하고 재해석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적이고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표현됩니다. 메시아적 희망은 최종적이고 절정적인 출애굽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성경의 선지자들이 더 위대한 미래의 구원을 말하기 위해 이집트 출애굽의 이미지를 사용한다고 자주 지적해 왔습니다:
“내가 그들을 열국 가운데 흩어 놓았으나, 그들은 먼 나라에서도 나를 기억할 것이며, 자녀들과 함께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려오고, 그들을 앗수르에서 모아,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데려가리니,
그들이 들어갈 곳이 없을 때까지. 그가 환난의 바다를 지나가며 바다의 파도를 쳐 부수리니,
나일강의 깊은 곳들이 모두 마를 것이니라.
앗수르의 교만은 꺾일 것이며, 이집트의 왕권은 사라질 것이다.” (스가랴 10:9–11)
이집트에 대한 암시, 바다를 건너는 일, 그리고 이집트 세력의 멸망은 모두 출애굽 이야기에서 차용된 것입니다. 심지어 “나일강의 깊은 곳”을 말리는 것조차 10가지 재앙 중 하나를 변주한 것처럼 읽힙니다.
신약성경은 이러한 구원에 대한 예언적 갈망이 예슈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분은 모든 민족을 아우르도록 예정된 소망을 성취하셨습니다(창세기 12:3).
신약성경은 출애굽 사건 그 자체와 동일한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슈아의 가르침은 우리 하나님이 그 강력한 손과 뻗은 팔로 우리를 위해 구원을 베푸셨다는, 시대를 초월한 우리 민족의 핵심 서사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저에게 유월절의 의미는 예슈아을 믿게 된 후 더욱 깊어졌습니다. 마치 새로운 안경을 쓰고 오래된 전통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출애굽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월절을 더 풍성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쯔학과 야아콥의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이끌어내셨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알고 경배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시기 위해 메시아 예슈아를 보내셨다는 사실이 제게는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예슈아께서 유월절 만찬을 드셨다면,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푸프코와 샌드멜은 기독교인들이 유월절을 차용하는 것이 “존중의 결여”를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기독교인들의 유월절 만찬을 장려하는 유대인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최후의 만찬’으로 알려진 예슈아의 유월절 만찬은 물론, 기독교 신앙 자체가 전적으로 유대인의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장 12-13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때에 너희[이방인]는 [메시아]와 분리되어 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약속의 언약들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었고, 소망이 없으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자들이었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메시아] 예슈아 안에서, 한때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메시아]의 피로 말미암아 가까이 오게 되었다.”
예슈아를 믿게 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을 대체하거나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려 온 것입니다. 이는 열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이스라엘 자신의 소망이 성취된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기독교 쎄데르가 유대교 신앙에 대한 존중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역사에 대한 해석에 정당하게 동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독교의 유월절을 유대인의 고유한 전통을 침해하는 것으로 일축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 이야기와 최후의 만찬 기록 사이에는 말하자면 ‘메히짜(מְחִיצָה), 즉 ‘분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포용적인 쎄데르에서 이루어지는 유대인의 소망
유월절이 돌아올 때마다 가족과 공동체의 역사는 재현됩니다. 예슈아이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믿는 우리에게 있어, 그 가족은 이제 예슈아에 대한 동일한 믿음을 가진 비유대인들까지 포용하며 확장되었습니다. 물론 유대인은 여전히 유대인이며, 비유대인은 여전히 비유대인입니다.
히브리 성서는 메시아가 오시면 이방 나라들이 그분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가르칩니다(이사야 2:1–3; 이사야 11:10). 따라서 믿음의 가족은 더욱 넓어졌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예언적 소망을 성취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유월절 만찬이 첫 번째 구원을 회상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구원자가 오셨으며, 출애굽보다 더 위대한 구원이 이미 임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미래의 소망이 남아 있기에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기독교 신앙을 지탱하고 구축하는, 결코 제거될 수 없는 유대교의 토대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유월절 이야기가 차지하는 역할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by Rich Robinson / Jew for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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