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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규-현대시의 형이상성
- 불일치의 일치(discordia concors) 를 중심으로
대개 현대시는 난해하다는데 그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독자의 편에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현대시란 난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시인 자신들의 발언을 청취해 본다면 탄생은 아주 의식적이라는 견해도 성립될 것이다.
현재의 문명 속에 살아가는 시인이라면 난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들의 문명은 너무도 다양하며 복잡한 까닭에 그 다양함과 복잡함이 세련된 감수성과의 절충으로 말미암아 거듭 다양하며 복잡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시인들은 언어로 하여금 자기가 바라는 의미 속에 침투시켜 때로는 그것들을 무던히 변화시킬 목적으로 더욱 포괄적이며 풍자적이며 다시 간접적인 것으로 표현하려 한다.
이는 T.S.엘리어트의 [형이상적 시인론] 중에서 발췌한 것인데 현대문명이 빛어내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소재로서의 난해성이 존재하는 이상 온통 그것을 반영하려는.현대시의 언어표현이 단순치 못하여 난해하게 됨은 필연한 귀결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러므로 우리는 기상(conceit)과도 아주 흡사한 - 짐짓 형이상적 시인들의 수법과 거의 일치되는 - 애매어와 간결법의 사용을 채택하는 것이다" 라고 적었는데 형이상적 시인들과 방법적인 동시성을 발견코 그것을 현대시에 응화하려는 숨은 원리가 여실히 드러나 본다
그러나 형이상적(metaphysical)이라는 생소한 명명을
앞에 두고 망설이지 않을 수 없는 독자들에겐 약간의 주석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무릇 [형이상적 시인] 이라면 단, 코울리지, 마아벨 등으로서 대표되는 17세기의 영국 시인들을 통털어 지칭하는 것이지만 처음으로 [형이상적 시인] 이란 말을 쓴 존슨 박사의 코울리지론] 에 의할진데는 그 어의가 사뭇 막연하여 [형이상적] 이라고 하기보담 오히려 [철학적] 또는 [주지적] 이라고 새기는 편이 더욱 온당할 것 같다.
이러한 형이상적 시풍을 낳게 한 17세기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선 광범한 고찰과 예리한 판단이 요구될 것이나
대체로 국민들은 청교도를 포함한 [교회정치] 의 교력을 지지하면서도 한편 고페르니쿠스를 위시한 근세 과학사조의 새로운 세례하에 처했던 만큼 어디까지나 중용적이며 종합적인 세계관의 요청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특히 프라통에서 발원하여 시세로, 에라스므스, 스펜사, 벤죤슨으로 흘러온 소위 기독교적 인간주의는 종교와 윤리,정치와 문화 등에 대해 보편적인 질서를 옹호했던 것이 사실이며 항상 올바른 이성(right reason)과 존재의 위대한 연쇄(great chain of being)를 더듬는 일에 저들의 구경적 지표를 바라보았던 것이다.(포오프, 인간론 참조)
여기에 있어서의 [올바른 이성] 이란 인간의 지성 감성을 한편 <존재의 위대한 연쇄>란 최고의 신에서부터 지옥
마귀에 이르기까지의 양극 간에 있는 전체를 포유하고 연계 짓는 하나의 우주적 자학(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윽고 그의 중심에 위치한 인간은 <미묘한 매듭>이라는
단 시의 표현과 같이 저들을 유추하며 동화하는 [존재의
이유]를 조금도 거역하지 아니하였다
이 시대의 사상적 배경에는 확실히 중세기적인 태가 짙게 물들었으나 청교도 운동에 의하여 자극되고 과학사상으로 계몽된 세계관의 그늘 밑엔 어쩔 수 없는 회의주의와 오성적 몸부림이 사무치도록 깔려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문명의 특성을 그러한 시대 양상에 겨냥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일 같기는 하지만 문학사조의 단계를 주로 고전 대 낭만과의 대위적인 순서로써 고찰해 온 엘리어트의 비평관엔 어딘가 17세기와의 동시성을 해석함으로써 20세기의 현대를 비교 종합하려는 심각한 고뇌가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엘리어트가 지적한 바 [형이상적 시인들
의 수법과도 아주 흡사한] 소위 <기상>의 방법이 현대시에 어떻게 나타나 있으며 어떤 의의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것이므로 이하 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
SL베셀 작 [17세기의 문학개혁] 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정신과 물질과의 상호삼투를 하나의 실재로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형이상적 관계에 초점을 둔 것이며,
둘째는 생과 사를 대응하듯이 양극간의 역설을 수립하는
것이며, 셋째는 양극간에 있어 조화적인 유추(analogy)
를 발견하는 비유적 표현을 의미한다.
존슨 박사도 "단은 일반적인 시의 독자가 미칠 수 없는 학
식의 근원에서부터 [기상] 을 이끌어 낸다" 고 적었는데 그러한 <기상>의 방법은 단이 아닌 다른 형이상적 시인이라면 누구에게서든지 얻어 볼 수 있는 형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베셸의 분류에서 주목되는 것은 아무래도
언어매체를 통하여 성립될 셋째 형태인 [비유적인 표
현) 이 아닌가 싶다.
"애매의 제4형은 서술에 있어서의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서로 불일치하면서도 한데 결합됨으로써 작가의 심리상
태를 더욱 명확히 나타낼 수가 있다."
이것은 현대시의 난해성을 누구보다도 정곡하게 분석한 윌리암 엠프슨이 [애매의 일곱 가지 형] 중에서 그의
제4형을 정의한 것인데 베셸의 셋째 형태와 대동방불하
다는 것은 짐짓 나 혼자만의 견해만은 아닐 것이다.
그밖에도 단의 시를 평가한 엘리어트 자신의 말을 들어
본다면-
단에 있어서 사고란 체험 그것이었으며 체험은 다시 그의
감수성을 변화시켰다. 시인의 정신이란 창작의 준비를 완전히 갖추었을 때 이미 이탈된 체험들을 한 가지로 결합하는데 비해서 보통 인간의 체험은 난잡하고 불규칙하며 또한 단편적인 것으로서 머물러 있다. 그들의 경우 사랑한다거나 스피노자 철학을 읽는다거나 하는 두 가지 체험은 좀체 한 가지도 되기 어려우나 시인에게 있어선 타자기의 음향이라든가 요리하는 내음과 같이 동떨어진 체험이라 할지라도 전체로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엠프슨이며 엘리어트에만 한할 것이 아니라 리챠즈
랜삼, 그리고 부룩쓰와 같은 소위 [뉴우.크리티시즘] 운동의 쟁쟁한 기사들이 항용 다루었던 시의 분석 그 중에
서도 가장 눈부신 [상상] , [연합], [전달], [비
유] 등등이 문제화된 현대적 의의에 대하면 모처럼 간과
할 수 없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존슨 박사의 [코울리지론] 에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까닭이란 기왕 문제되기 시작한 불일치의 일치(discordia concord)를 형이상적 시인들의 가장 중요한 <기상>으로서 채택할
계제가 바로 지금이라고 믿음으로서이다. 존슨 박사는 아
래와 같이 적었다
독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추상해서 말할 것 같으면 <기지
wit>란 보다 엄밀하며 철학적인 고찰로 이루어진 <불일
치의 일치>이다. 그것은 상이한 이메이지를 연결하며 표면상에서 서로 판별되는 사물들의 신비적인 유사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의 기지를 형이상적 시인들은.충분히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이질적인 사상들이 폭력으로써 연결되었다. 해설하며 비교하며 암시하기 위해서 자연과 예술이 피탈되었고 저들의 학식은 교화하며 저들의 노력은 경악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은 저들의 개혁이 너무나 값비싼 것이며 때때로 감탄은 되지만서도 쉬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녀왔다.
이긴 인용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슨 박사가 <불일치 일치>로 나타난 <기상>의 방법을 <기지>라고 명명한 사실과 다음으론 <기지>의 효능을 의혹한 나머지
"가장 이질적인 사상들이 폭력으로써 연결되었다" 고 비난한 점이다. 그러나 몇 세기를 뒤에 한 오늘날에 있어서 엘리어트가 "형이상적 시인들은 적어도 정신과 감정면의 상태에서 언어적인 동일성을 발견하는 작업에 충실하였다"는 새로운 옹호로 나섰을 때 한 마디로 그는 존슨 박사의 언명을 보다 부정적으로 접수 했다는 것일까?
아니다. 존슨의 [코울리지론] 에서 탁월한 구절들을 더듬어 가노라면 그가 <기지>라는 것을 오늘의 우리들이 일상 생각하는 의미에서 보다도 훨씬 진지한 의미로서 다루고 있었음을 알게 되리라고 적은 것과 같이 차라리 엘리어트는 존슨 박사의 비평을 선의로서 포착한 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 박사와 대립되는 서술을 그는 똑
같은 논문에서 여러번 거듭하고 있으니 예컨대 "존슨은
시인들이 소재를 분해한 뒤 다시 그것들에 대한 새로운
통일을 부여함에 동의치 않았을 것이다" 라는 엘리어트다
운 불만이다.
존슨 박사가 유독 [코올리지] 의 기지를 시인하면서도 미구에 이르러 그것을 지나치게 "앙상궂은 지성작용" 이라고 단정하면서 감동의 결핍이니 난해의 법칙이니
하여 비난한 사실에는 충분히 당대로서의 이유가 성립됨 즉하다. 아닌게 아니라 존슨 박사의 비평적 압장으로 말할진대 주로 정형적인 운율법을 고수하려는 전통주의와 독자들의 난해를 반대하는 합리적 인간주의 요소가 유달리 현저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만일 코울리지 자신을 존슨 박사와 직접 대질시켰더라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우리는 잠시 <기지>에 대한 코올리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일찌기 그는 [기지의 부] 라는 시 속에서 다음과 같이 옳고 있다.
대저 영력과도 같이 <부정 Negatives>이라고만 정의할
따름인 <기지>란 무엇일까? 참된기지 가운데는 만유가 포함되며 만유가 조화된다. 마치나 노아의 편주에 뭇 생
명들이 갈등과 싸움을 떠나서 공존하듯이------
그러나 기지는 저마다를 장식하며 도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넘는 예술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찬란한 보석인들 콧등이나 입술에 달아서야 뒷하노? 이리저리 모두가 기지인 것 같으나 정말 기지다운 것이란 부재로 있느니라.
이렇게 코울리지에 있어서의 기지관은 뚜렷한 논리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다만 <기지>로서 대표된 코울리지의 <기상>이 정서적인 단의 <기상>에 비하여 메마르고 딱딱하다는 논점에 있어서 혹은 너무나도 <기지>적이라는 이에 있어서 비난된 것은 사실이나 그의 명석예의한 형이상적 <기상>이 다가오는 시대감각에 호응되어 드라이든과 같은 위대한 사상표현의 원류를 낳게 되었음은 이미 문학사가 증명한 바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어트 [드라이든론] 은그동안의 사유를 명확히 제시해준다. 아마도 [형이상적 시인론] 에 못지않게 이 논문 엘리어트의 현대시관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그러면 현대시가 드라이든을 이해함으로써 19세기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적은 엘리어트의 저의는 어디에 있었던가?
드라이든을 비난하고 경멸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시가 아
니라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그의 작품을 구성한 소재, 즉 감정이 시적으로 되지 못하였다는 편견에 의해서이다.
동화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동화한 결과 시경을 넓히는
능력이야말로 드라이든의 걸출한 천부였다
엘리어트는 이렇게 드라이든의 <시적 능력>을 지적하였
으며 우리로 하여금 "형이상적 시인들은 적어도 정신과
감정면의 상태에서 언어적인 동일체 운운" 한 소위 <불일
치의 일치>설을 다시금 환기시켜 주고 있다. "어찌나 드라이든은 시를 보편적으로 이해함에 있어 하나의 표준이 된다" 고 말한 그의 논점이야말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현대시에의 냉철한 고전주의적 계명인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다시 1933년간인 [시와 비평의 효용] 에서 이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을 얻어 보기로 하자
코울리지만이 아니라 모든 형이상적 시인들은 지나치도록 공상적인 정신을 가졌던 것인데 만일 여러분이(코울리지의 방법대로)공상을 제거하고 상상만을 고집한다면 아주 그것들을 몰라보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가치적인 구별이라 하겠으나 공상(fancy)이란 말은 대체로 보잘것 없는 것으로서 아니면 즐겨하지 않는 시에만 적합한 것으로서 알려져 왔습니다.
상상 아닌 <공상>(실은 [구상 에 가까운)으로서 이루
어진 형이상적 시를 증명하기 위하여 엘리어트는 드라이든의 [경이의 연대] 를 그 골자로 선택하고 있다.
즉 "공상이란 독창적인 착상을 의식적으로 노작함을 의미한다"고 적었으며 이른바 창의(Invention)에 의하여 얻어진 것들을 "공상은 의식적으로 하나의 시로써 신중히
결합시킴을 의미한다" 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무릇 [공상] 이란 지성작용에 의해서 얻어지기보담 차라리 상상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에 불구하고 "판단력의 적성에 따라 사상을 형성한다" 고 규정한 드라이든설을 그대로 부연하여 "<공상> 중에는 이미 언어의 발견이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공상>의 일부는 언어로써 형성되는 것입니다" 라고 그는 역설하였다.
이러한 엘리어트의 공상론은 다분히 코울리지의 기지설과 상맥하는 것이라고 보아지며 그것은 또한 단 시에 있어서의 사고(사상)가 시적 감수성을 변화시켰다고 말한 그의 논리와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선택한 상상이 언어화 되는 모습을 그는 <공상>이라고 새겼으며 <공상>은, 즉 지성인 것이며 아울러 시인의 비평정신이 발동한 결과라는 것을 무척 강조하고 있다.
[형이상적 시인론] 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내용들이 이
제야 [시와 비평의 효용] 에서 대부분 보족되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나 <공상>에의 과대시로 말미암아 시에 대한 주지적 이해만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 [옥쓰훠드) 연구논문총서에 들은 J.E.V크롭트의
존.단 이란 에세이를 대해보면은 그러한 엘리어트의
주지론이 상당한 공박을 당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롭트는 [형이상적 시인론] 중 단 시에 관하여 엘리어트가 감수성을 변화시킨 것이 사고였다고 요약한 구절을 논변하면서 오히려 사고를 변화시킨 것은 감수성이었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계속해 그는 감수성을 지배하는 사고가 아니라 <감수성의 지향력>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어느 쪽이 단의 세가지 [기상] 에 보다 가까운 해석인지 함부로 단정할 순 없는 것이다. 물론 상상에 대한 <공상>의 우위를 역설한 엘리어트인 만큼 상상적인 감수성은 으례 <공상>적인 사고에 의하여 변화됨이 원칙이겠으나 이와 전적으로 대립되는 입장에 선 크롭트가 <신앙의 열정>이란 말을 되풀이할 적에 있어선 그 자신이 굉장한 부정력을 시사하려 하였음이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엘리어트와 크롭트와의 상반되는 관점에서 우리가 취할 바는 어떤 태도여야 하겠는가가 문제인데 시인 코울리지와 합송하여 우리는 "노아의 편주에 뭇 생명들이 갈등과 싸움을 떠나서 공존하듯이..." 결국은 신앙에 대하여 열정하는 낭만적 방법이거나 아니면 이성에 대하여 근엄하는 고전적 방법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칠 수없다는 것이 현재의 어설픈 나의 답변이다
사고에 의하여 변화된 감수성이 다시 사고와 결합되는 영
원한 운동을 가리켜 형이상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어느 듯 <불일치의 일치>는 시의 본질인 새로운 전체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뉘우치게 된다
오늘날 존슨 박사의 충고를 귀담으며 <불일치의 일치>를 시 아닌 시극을 통하여 지양하려는 엘리어트의 [세 가지
소리] 에는 어딘가 사고적인 <공상>과 감성의 상상과를 한 가지로 통일하려는 흔적이 보이며 전게한 크롭트의 기우를 훨씬 넘어선 비유전체인 상황(situation)의 의미가 바로 그 모두를 증빙해 주는 것이다. 드디어 시(언어)의 형이상성이 극(행동)의 현실성으로 육박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아이로니]인가. 옛날 희랍의 하늘 밑에서 이루어졌던 파토스에 대한 <로고스>의 접전이며 저들의 성스런 혼약! 그리곤 다시 번져나는 [예이토스)의 구현!
참으로 현대의 우리는 환연한 꿈만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아직도 현대시의 형이상성은 언어의 무덤을 헤쳐
가는 우리들의 숭엄한 희생이어도 좋을 것이다.
'시작이란 모든 작업 중에서 가장 무후한 것. 그런 고로 모
든 재산 중에서 가장 위험한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존재의 건설을 위한 시는 그 중의 속박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M.하이데거 )
<1957. 12. 7 부대학보>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