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잘 아는 노래 가사입니다. 우리 모두의 꿈이고 희망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습니까? 현실로 이루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말 그대로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같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냥 심리적 현상인 줄을 알면서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니까요. 나도 이런 집에서 살아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감희’는 과연 그보다 못한 집에서 살까요?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대.’ 그렇게 5년을 남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니 5년 만의 외출입니다. ‘외출’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지요. 남편이 없는 집을 벗어나 지인의 집에서 밤을 지냅니다. 이미 남편을 벗어난 두 언니를 만납니다. 텃밭을 일구며 자신에게 충실하려는 ‘영순’의 집을 방문합니다. 고기와 술을 사 들고. 탐하듯이 잘 먹습니다. 그 동안 참아왔다 싶듯이 말입니다. 소소한 대화 속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다 이웃 사람이 방문합니다. 길고양이 문제로 협조를 부탁한다고 찾아온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데 이 집에서 도둑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자꾸 이곳을 맴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지 못하도록 먹이를 주지 말라는 부탁인 모양입니다. 인간의 이기심? 고양이들도 먹고살아야지요. 그래도 사람이 먼저 아닙니까? 그런 자연법칙은 누가 만든 겁니까? 전에는 흔히 ‘도둑고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자꾸 도둑고양이라고 부르십니까? 도둑질 하는 거 보셨습니까? 요즘은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줄 알고 있습니다. 남자가 도무지 타협이 되지 않는 줄 알고 돌아갑니다. 아마도 ‘주민센터’에라도 신고할 모양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곳을 나와 다른 언니네 집을 방문합니다. 역시 혼자서 살고 있습니다. 미혼은 아니고 아마도 헤어진 모양입니다. 영순의 집은 옆에 텃밭도 있는 시골풍을 가지고 있지만 ‘수영’의 집은 한결 도시풍이 풍깁니다. 집안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멀리 인왕산이 창문으로 액자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와 경치 정말 좋네, 언니.’ 그렇지? 이 집 산 거야? 아니 전세. 주인이 5억에 내놓았었는데 4억에 해주었어. 세상에, 전세 4억! 하기야 요즘 서울이라는 주소 안에서는 흔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자랑합니다. 나 10억이나 모았어. 노후 걱정은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대단!! 뭐 걱정 없겠네. 인생길에 가장 큰 걱정거리를 덜고 사는 셈입니다.
한 남자가 자꾸 초인종을 누르기에 나갑니다. 문 앞에서 마주합니다. 오지 말라고 했지요? 낯선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잠자리까지 한 번 가졌던 남자입니다. 실수든 뭐든 지나간 일로 수영은 잊고 싶은 일입니다. 더구나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얘기 좀 하자고 자꾸 치근덕댑니다. 당신 스토킹하는 거야? 아니 사람 마음에 뭔가 정을 심었으면 그 쪽도 조금은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참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싶습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싫든 좋든 육체적 관계를 가지면 여자는 그 남자에게 붙어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섹스 한 번은 여자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거는 일이기도 했지요. 옛날이야기입니다. 요즘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소극장 겸 카페에 갔습니다. 그런데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우진’은 남편과 같이 일하면서 잘 나가는 남편의 실제 모습에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 방송도 타면서 남들에게는 인기가 있고 잘 나가고 있지만 작품에서보다는 실제 삶 속에서 드러나는 위선에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 남편과 감희는 과거에 어떤 관계였을까 궁금합니다. 입구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잘 알고 있는 사이이면서도 어색합니다. 그냥 일상의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가 감희는 그 자리를 떠납니다. 카페를 나와 돌아오는 듯 하다가 다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미 보았던 영화관으로 들어가 앉아 화면을 응시합니다. 아직도 마지막 장면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계속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장면.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제가 예전에 낸 책의 제목이 생각납니다. ‘일상이 의미다,’ 하는 수필집입니다. 홍 감독의 작품 이야기가 여기에 딱 맞는다 싶습니다. 그런데 왜 ‘청소년 관람 불가’인지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한 가지 특징 중 하나가 영화마다 음주와 흡연 장면이 너무 잦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못 보게 막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말 꼭 그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나옵니다. 하기야 그렇지 않은들 청소년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제목이 ‘도망친 여자’일까요? 누가 어디서 도망했다는 말인가? 어쩌면 모두들 자기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은 희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도망친 여자’(The Woman Who Ran)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