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침묵의 세월 [박명순]
흐르는 침묵의 세월
진한 갈색의 탁자위에
덩그마니 놓여진 찻잔 하나
침묵을 가르는 구슬픈 음악소리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지며 이어가며
멍든 가슴을 쥐어뜯고
흐르는 침묵만 타고 있구나
그대도 침묵이요
세월도 침묵이요
나리는 하얀 눈만
침묵속에 초연히 흩날리며
흐르는 시간을 쌓아가고 있는데
찻잔의 하얀 김은
침묵속의 포로처럼
싸늘한 알몸뚱이가 되어 가누나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보아도 들어도 표현 못하는
골방안에 갇힌 처량한 시간
인생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되돌아 가는 삶에
무엇을 말하리요
무엇을 남기리요
흐르는 시간만 주워먹고 있는
시간의 벌레
가는 세월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고독한 나그네
멈춘 듯 정지한듯한 시간속에
흐르는 침묵의 세월
비우지도 남기지도 못 하는
한 잔의 차와같이
다 마셔셔 비워 버리면
그만 인것을
못내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에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고독한 인생
잠재우지 못하는 침묵의 세월
초연히 흘러 가는 세월 세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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