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배를 매일 일주일동안 하다(미주현대불교 2007년)
서경은
서경은님은 불심 돈독한 집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불가에 입문, 일주일 동안 매일 3000배 정진, 사경, 간경기도로 수행 정진하고 있다.
인생 되는 일 별로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회의감으로 갈 길을 잃었을 때 희망을 간신히 걸고 저는 부처님께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그 시절은 참 몸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끈질기게 나를 붙잡아 오던 출가에 대한 갈등과 작금의 현실을 극복하는 문제였습니다. 많은 생각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 즐겨 읽던 금강경을 하루 세 번 삼칠일을 기한으로 독송을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칙을 세우면 힘든 것처럼 이것이 기도라는 원칙을 세워놓으니 기도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도가 중반쯤 이르자 여러 가지 피곤한 일들이 겹쳐 몸이 고단해지고, 하루 세 번의 독송조차 졸리고 피로하여 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금강경 기도를 회향하고 나니 이번에는 참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하루 삼천 배씩 칠 일간 절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부처님을 향해 먼저 거룩한 서원을 세운 뒤 종이에 적어 절하는 옆에 두고, 그 마음을 되 내이며 절을 시작하며 세상사 모든 일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절에 왔다갈 처지가 아닌지라 방안에서 부처님 계신방향을 향해 맨바닥에 서절을 시작하였습니다. 참회를 하고자 하는데 몸을 사려서는 안 된다 생각이 일어 맨바닥에서 절을 시작 한 것입니다. 도중에 흘러내리는 땀이 미끄러워 할 수 없을 때에는 얇은 여름 모시패드를 깔고 절을 이어 갔습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몹시 더웠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밥 먹고 절 만했던 것 같습니다.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무릎은 조금씩 따끔거리는데 한순간 ‘두툼한 방석이라도 깔고 할까?’
이런 안일한 생각이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어떻게 고통을 피하는 길목에 참회하는 마음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옛 스님들은 참회를 위해 망신 참을 하기도 하였거늘. 시간이 점점 흘러 무릎은 까지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마음은 더 없이 맑고 가뿐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 밥을 많이 먹으면 절이 힘들어 아주 조금 하루 두 끼만 먹어야 했고 절을 끝낸 저녁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날 입은 옷을 모조리 빨아야 했는데 욕실에 앉아서 빨래를 하자니 다리가 참 많이 아리더군요.
첫날은 어찌어찌해서 넘어갔지만 문제는 이튿날 부터였습니다. 전날 무릎이 까진 곳에 물집이 잡혀서 절을 하니 이내 물집이 터지며 무릎이 짓이겨져 절을 한번 할 때마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한 번의 절이 그렇게 공포스러울수가 없었습니다. 참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인상을 쓰면서 하는 절이 부처님께는 너무도 송구스러운데도 전날 밤새 부은 다리근육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더하는 바람에 절 한번하고 일어날 때는 사력을 다해야 했습니다.
평상시 유일하게 하는 운동이라면 동네 산책 하는 것이 전부였던 저였기에 전 날의 천배는 몸에 무리였는지 뻣뻣해진 허벅지에서 오는 고통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였고 절이란 정성을 깃들여 마음으로 참회가 없으면 그것은 굴신운동 밖에 안 된다는 저의 평상심 때문에 절하는 시간은 더욱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고통도 더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전날보다 몇 시간을 더 들여서 절을 마치고 저는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지만 고통은 밤에도 이어져 다리 근육 의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을 한 그날 밤은 고통스러운 경련으로 다리를 붙잡고 어찌 할 바를 모르다 새벽이 되어서야 지쳐서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가끔은 이러다 다리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일어났습니다. 옛 스님은 몸이 부서지는 것을 잊고 참회를 하였는데 이 까짓것 내 다리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참회하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잡고 그 다음날도 절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5일이 지나니 몸이 참 가벼워 져 절이 그다지 힘든 줄 모르겠더군요.
무릎은 이미 검고 딱딱한 딱지가 붙어있었고 몸은 이미 이골이 나서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데 마음속은 처음 힘들게 절을 할 때보다 방일한 것이 문제로 다가 왔습니다. 몸이 가벼우니 잡념과 망상이 일어나서 초심을 지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으로 피로에 지친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비록 몸이 절을 수없이 절을 한들 마음이 참회의 정념에서 벗어³다면 수만 배의 절도 의미가 없으리라.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을 떠나 오직 마음으로 뉘우치고자 하는 그 마음 에서 한시라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마음먹은 데로 다 따라주지 않는 그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해 저는 그동안 스스로 잘못이라 자책하던 수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한 가지에 절 한배를 정성스럽게 올리며 마음을 잡아갔습니다.
기도 때는 오로지 채식만을 하고 사람도 일체만나지 않았습니다. 허긴 만날 시간도 없었든 것 같습니다. 절이 힘이 들어서였는지 중반쯤 넘어갔을 때에는 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래저래 칠일을 채우고 회향을 하고나니 왜 그랬을까요.
머리카락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 삭발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 등까지 흘러내리던 머리카락을 제 손으로 단박에 확 잘라내고 일회용 면도기를 사서 머리를 밀어버렸습니다. 한 점 미련이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그때의 개운함이란! 그리고는 기다란 머리채를 집 부근 공터로 가져가 불태웠습니다. 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 혼자 일사천리로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머리카락이 안타면 어쩌나 했는데, 머리카락의 기름기 때문인지 정말 잘 타더군요. 저는 제 머리카락이 타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며 인생사 집착하는 그 모든 것에 부질없음을 느꼈고 한줌 재가 되어 휘날리는 그 모습 을 오래도록 진지한 생각에 잠겨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 이였는지 저는 그 후로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어떤 물건에도 애착을 느끼지 못해 가지려고 하는 소유욕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다 줘버리고 무엇이던 나에게 잠시 머무르는 것일 뿐이었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항상 남을 줘버리는 생활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중에 필요할지 모른다고 만류해도 그건 그때의 일이지 나에게 지금 이 물건은 집착일 뿐이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는 큰절과 인연이 있어 잠시 절에 들어가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마음을 짓누르던 고민과 의문은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며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모를 때에는 인생의 답답함으로 한걸음조차 번민 속에 있었지만 지금은 커다란 여유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조금은 가진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기도의 성취는 한 점도 빠짐없이 하나하나 세월을 타고 이루어지는 것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법우님들도 인생의 막막한 길목에 들어서시면 기도해 보십시오. 분명 그간절함에 길은 열릴 것입니다. .
첫댓글 _()()()_
감사합니다 -()()()-
기도의 성취가 한 점도 빠짐 없이 하나 하나 세월을 타고 이루어 지는 것이 무서울 정도라는 경험의 말이 공감이 가는군요. ()()()
()()() 감사합니다
아~ 감사의 눈물이 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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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동.. 제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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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