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이 잘 안 와서 늦게 잠깐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이 깨다.
권사님이 너무 아프셔서 앰브런스로 병원으로 실려가셨는데
장로님은 혼자 옷을 빨리 입을 수가 없어서 못 따라갔다고 하신다.
"그럼 지금 내가 갈까요?"라고 남편이 물으니 구역장 집사님께 전화해보고 다시 연락하시겠다고 하시다.
구역장 집사님이 가기로 하셨다고 해서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안 와서 일어나다.
새벽예배에 다 같이 기도하고 집에 와서 떡만두국을 끓여 먹고
목사님은 그동안 응접실에 늘어놓았던 그루지야 선교 보따리를 싸다.
수건, 양말, 여러가지 약들, 공책, 연필, 볼펜 등..... 가방 두개로 가득하다.
성도님들이 정성껏 선교비를 많이 주시다.
목사님이 교회 떠나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하면서도,
불경기에 모두 허덕이면서도 넘치게 선교비를 주신다.
"주여! 저들에게 30, 60, 100배로 꼭 갚아주셔야 합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감사기도를 드린다.
"카메라를 꼭 가지고 가서 사진을 많이 찍어 오세요."
"글쎄, 난 카메라 같은 것 가지고 가고 싶지 않은데.... 귀찮아서..."
"뭐요? 당신 그게 말이라고 해요. 정성껏 선교비 주신 분들에게 보고 해야 할 의무가 있잖아요" 소리지르고 악을 쓴다.
"그냥 말로 하면 되지 뭐."
"말보다 사진을 보여주는 시청각 교육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세요?"라고 소리지르고 화를 내다.
정말 화가 난다. 사진을 잘 찍어서 선교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귀찮다고 하다니...
러시아는 13 번이나 가서 모두 다 잘알지만 그루지야는 처음인데....
비자도 낼 필요가 없고 미국과 친하다고 러시아가 폭격을 한 나라다.
교회를 세워 달라고 해서 일주일 예정으로 시찰차 가는 것이다.
영어로 설교하면 그루지야어로 누군가가 통역을 해야 한다.
거만하고 핍박하는 러시아보다 더 정이 가는 나라이다.
켈리 전도사가 병원에 심방 간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가기로 하고
목사님은 이 목사님이 10시에 공항으로 픽업하기로 하다.
병원에 심방가니 이집사님이 영어 통역하느라고 계셨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시고 작은 혹이 있어서 수술을 하셨는데
아직 마취가 덜 풀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고 아프시고....
장로님은 심장 검사를 받으시러 다른 병원으로 가시다.
켈리 전도사가 전화를 해서 일하는 남편을 불러 잠깐와서
권사님 병에 대해 차트를 꺼내보고 이야기를 해주고 가다.
아직 마취가 덜 풀린 상태라 속이 많이 울렁거린다고....
병원에서는 의사가 마치 구세주처럼 보인다.
까운을 입고 수술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키가 큰 댄이 더 핸섬해 보인다.
인생을 살면서 몸이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저렇게 온갖 치료를 받고 좋은 약을 쓰고 돈을 한푼도 안 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미국은 살기가 참 좋은 나라이기도 하고 또 너무 힘들기도 한 참 이상한 나라다.
나는 저렇게 호사롭게 치료 받을 수가 없으니 아프면 안 된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그냥 천국으로 가게해 달라고 ....
집에오니 목사님은 떠났다.
행여 예전처럼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모든 것 주님께 맡길 뿐이다.
오늘 시애틀 문인회 모임에 가야 하는데 금요철야 설교 준비하기로 하고 안 가다.
2월 5일(결혼 38주년) 배화 동문회 모임이 있는데 켈리와 댄이 여행 간다고 세 아이들을 돌보아달라고 해서 못 가게 될 것 같다.
내 인생 돌아보니 너무나 호사를 많이 해서 나는 죄송한 것 뿐이라 이제는 절대 불평하지 않으리라.
아직 기력이 있을 때에 선교해야 하는 목사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말씀과 기도로 지켜야 하리라.
첫댓글 31시간의 긴 여행 끝에 트빌리시 공항에 잘 도착하여, 30분 전에 도착하신 김바울 목사님을 반갑게 만났고, 이곳 짜르(Zaal) 목사님의 아파트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겨울 코트를 가지고 가지 않았네요. 오늘 내 오버코트를 꺼내다보니 당신의 코트도 있어서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짧은 쟘바만 가지고 갔다니..... 미혜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라면 가지고 갔을 수도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