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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녹아지는 소금처럼, 태워지는 빛처럼
구약, 시편 62:1-4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신약, 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 본문 신약성경 마태복음 5장 13-16절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제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향하여 하신 윤리적 교훈입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윤리적 교훈입니다. 윤리적 교훈이란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I. 세상의 소금
먼저 마태복음 5장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본문의 ‘너희’는 제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말합니다.
본문은 모든 제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향하여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소금이란 세상 안에 있으면서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소금이란 말입니다. 본문은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금의 기능과 의미
소금은 어떤 것입니까?
소금이 무엇입니까? 화학적 주성분은 염화나트륨이고 색깔은 희고 맛은 짠 결정체가 소금입니다. 소금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1. 음식의 맛을 냄
먼저, 소금은 음식의 맛을 냅니다.
소금은 맛 없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줍니다. 인간이 지닌 4개의 미각 중 하나가 바로 짠 맛입니다.
욥기 6장 6절은 말합니다.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여러분 중에서 삶은 계란을 좋아하시는 분이 계실 줄 압니다. 그렇지만 소금 없이 삶은 계란을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간이 안된 음식을 먹는 것은 고통입니다.
소금 없는 음식은 정말로 먹기 힘듭니다. 사실 단 맛도 소금이 조금 있어야 제대로 된 단맛이 살아납니다. 신맛도 소금 맛이 첨가되어야 제대로 신맛이 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은 그냥 ‘만남’이 아니라 ‘맛나는 만남’ 즉 ‘맛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청결케 함
둘째, 소금은 청결하게 합니다.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하여 부패를 막습니다. 음식을 오래 갈무리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소금 간을 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만들 때 소금물로 사체를 처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정화하며 깨끗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3. 사람의 생존에 필요
셋째, 소금은 사람의 생존에 필요합니다.
소금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물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소금은 인체 내의 생리작용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식품입니다. 소금은 체액의 삼투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건강한 사람의 피 속에는 0.9%의 염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중 나트륨은 체내에서 혈액이나 체액의 산성과 알칼리성의 평형을 유지하는 완충제 역할을 합니다.
음식에 섞여서 몸 속으로 들어 온 소금은 위액의 염산이 되거나 알칼리성 소화액의 성분이 되어 살균, 소화작용을 돕습니다. 따라서 소금의 섭취가 부족하면 소화액의 분비가 줄고 식욕이 떨어집니다. 장기간 소금의 섭취가 부족하게 되면 전신이 무기력해지고 권태감, 피로 및 정신적 불안과 더불어 철분 부족으로 적혈구가 생성되지 않아 빈혈이 생기게 됩니다. 또 땀을 많이 흘려 급격히 소금을 상실하면 현기증, 의식혼탁, 탈력 등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뚜렷한 기능 상실이 일어납니다.
물론 과잉 섭취하면 잘 아는 것처럼 고혈압이나 위암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칼슘의 배설을 촉진시켜 골다공증의 위험이 높입니다.
반면에 적당한 소금의 섭취는 심장과 신장의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며 새로운 세포를 생성시키는 작용을 도와줍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사회를 생존하게 합니다.
4. 교역의 수단
넷째, 소금은 교역의 수단이었습니다.
소금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물질이었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고가에 거래되는 귀중한 상품이었씁니다. 소금이 산출되는 장소를 따라 문명이 발달되어 왔고 그 교역이 이루어졌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금을 주고 노예를 사는 거래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로마에서는 원래 관리나 군인에게 봉급을 돈으로 지불하지 않고 소금으로 주었습니다. 군인의 봉급을 라틴어 단어로 ‘salarium’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sal이 바로 소금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군인의 봉급을 소금으로 준다는 라틴어 ‘salarium’으로부터 영어에서 봉급을 뜻하는 salary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6,7세기까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베네치아는 지중해 동쪽에 있는 여러 나라에 소금을 팔아 번성한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한 사회 속에서 소중한 존재로,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치 척도의 기준이 되는 사회가 복된 사회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소금
구약 성경에도 소금의 여러가지 기능이 나와 있습니다.
소금은 성결과 거룩함의 상징이 되었는데 ‘하나님께 드릴 훈향을 만들 때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쳤습니다.
예언자 엘리사는 소금으로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하였으며, 소금은 또한 언약을 상징(레2:1)하기도 했습니다.
II. 세상의 빛
다음으로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향하여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14-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빛이란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빛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1. 비치게 하기 위한 것
첫째, 빛은 비치기 위한 것입니다.
빛은 숨겨둔 것을 드러나게 하고, 감추어 둔 것을 나타나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궁극적 진리를 비추어 주어서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2. 생명이다
둘째, 빛은 세상에 생명을 줍니다.
빛은 온 세상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으로부터 온 에너지는 온 세상의 생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태양 빛은 생명을 살아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빛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빛은 곧 치료이며 기쁨이고,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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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소금과 빛의 공통점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실 때 소금과 빛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1. 청결의 법칙
첫째, 소금과 빛은 청결하게 합니다.
소금은 세상의 부패를 막아줍니다. 빛은 어두운 곳을 비추어서 소독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의미의 빛은 죄악을 보이게 함으로써 죄악을 감출 수 없게 해줍니다. 빛은 선의 상징이고 어두움은 악의 상징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선이 악을 몰아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깨끗케 하며, 그가 살아가는 사회를 정화합니다.
2. 소량의 원리
둘째, 소금과 빛의 작용 특징은 소량의 원리입니다.
소금은 작은 양으로 강한 작용을 합니다. 건강한 사람의 피 속에는 0.9%의 염분이 함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 전체의 건강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작고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의 작용은 전체의 생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것입니다.
한 랍비의 제자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가장 작은 것으로 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향기’입니다. ‘소리’입니다. ‘빛’입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촛불하나라도 불을 붙이기만 하면 그 빛으로 방을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빛을 보십시오. 빛은 작은 빛도 멀리 피춥니다. 작은 담배불은 4km 떨어진 곳에서도 관찰이 가능합니다. 어두움이 아무리 강해도 작은 반디물 하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도리어 어둠은 강할수록 빛에 약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은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은 온 사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3. 자기 희생의 원리
셋째, 소금과 빛의 원리는 자기 희생의 원리입니다.
소금과 빛은 모두 자기 희생에서 작용합니다. 소금은 자기가 녹아짐으로써, 빛은 자기가 태워짐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죽음으로써 당신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한 죽었습니다. 제자들도 세상에서 핍박을 받았지만 바로 그 세상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빛과 소금의 삶은 자기 희생의 삶이요, 자기 희생을 통하여 남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사랑은 우리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면서 살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사랑이라도 사랑의 고백을 할 때 그 고백이 작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부부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사랑과 신뢰의 고백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문화의 지나간 세대는 사랑의 고백에 인색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 표현을 별로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길을 갈 때도 아버지는 5미터 앞서서 가십니다. 더구나 어머니와 손을 다정하게 잡고 가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한 부부 관계 세미나에 70대 부부가 참석해서 부부간의 대화법을 배웠습니다. 이 부부는 이 세미나를 먼저 참여한 자녀의 권유로 오게 되었습니다. 세미나 진행 중에 부부가 손을 잡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잡으니까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 후 처음 잡혀보는 손이라면서 말입니다.
한 부부의 사랑
청년부 때 하루는 친구 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어머니는 친구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아버지께 인사드려라.” 저는 친구와 함께 아버지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 지 몰랐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매우 수척하여 전신마비로 누워계셨습니다. 저는 전에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온 가족의 얼굴에 전혀 어두운 구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12년의 투병 생활로 인해서 너무나 수척한 모습으로 꼼짝하지 못하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친구 아버지께 무어라고 해야 인사가 되는지 인사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친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 이제 다른 쪽 할께요. 조금만 참아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렇게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 찬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름이라서 열어 놓은 방문 사이로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 표정이 얼마나 다정하고 사랑이 가득 차 있는지 천사의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를 듣고 그 얼굴을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정말로 전혀 피곤하지도 않을까? 정말로 전혀 지치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가정 이야기를 합니다. 오래 전에 어머니가 심하게 앓으면서 누워계셨는데 아버지가 5년 간을 대소변을 받아내는 병 간호를 하셔서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전신 마비가 되어 12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음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교회에서 발인을 할 때입니다. 장지를 향해 출발하기 위해 운구를 시작하려는 순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시작되었습니다. 슬피 우시던 어머니가 울음을 멈추고 고인이 된 남편에게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하십니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 또박 말씀하십니다.
“여보, 사람들은 나보고 하는 인사말이 ‘얼마나 힘드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지난 십삼년간 조금도 힘들지 않았어요. 당신이 저를 정말 사랑하는 줄을 알기 때문이예요.
정말 힘들었던 사람은 병과 싸우는 당신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없는 지금부터가 힘든 시간이네요.”
여러분은 이 부부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 부부는 오랫동안 병과 싸우느라고 인생의 시간과 힘을 소진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이 부부를 향해서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당신들은 그 좋고 좋은 시간을 서로 병과 싸우느라고 20년씩을 낭비하고, 재산도 다 써버리고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불행하게 살았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과연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고 사랑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교통사고로 아들 잃은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 씨가 아들을 교통 사고로 잃고 오랜 기간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친구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가진 어떤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집에는 교통 사고로 인한 극심한 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이 누더기 같은 이불을 덮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이구 이 원수아 왜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고생을 하느냐’ 하며 운명을 저주하는 한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박완서 씨는 돌아오는 길에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당신이 나보다 행복합니다. 중증 장애인 아들이라도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십니까?”
나를 불사르고 나를 녹여서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내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재산은 행복과 사랑을 도와 줄 수는 있어도 재산으로 행복과 사랑을 살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나를 희생하여 사랑할 사람이 없다면 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은 내게는 무덤이요 불행의 장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빛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십자가에 태워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빛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4. 수동성의 원리
네번째, 소금과 빛의 원리는 수동성의 원리입니다.
소금은 스스로를 양념으로 줄 수 없습니다. 빛은 스스로 타오를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소금을 넣어야 되고, 소금은 넣어져야 맛을 냅니다. 빛은 스스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불을 붙여서 태워져야 빛이 나옵니다. 빛은 태워져야 빛납니다.
우리는 상황을 탓하면 안됩니다. 도리어 내가 녹아져야 할 상황이라면 행복한 상황입니다. 내가 녹아질 때, 나는 진정한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워져야 할 상황이라면 이것은 억울한 상황이 아닙니다. 도리어 행복한 상황입니다. 나는 태워져야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수동성의 원리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이 수동성의 원리의 두번째 교훈은 우리 자신이 빛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자신이 빛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진정한 빛인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은 우리 자신의 빛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빛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빛입니다. 진정한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광체로서의 빛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반사시키는 반사체로서의 빛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발하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태워서 발산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빛을 비추어서 잠자는 사람들은 암흑에서 깨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기적인 장님 상태에서 사랑의 빛으로 눈뜨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눈먼 상태에서, 이웃을 향해, 하나님을 향해 눈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누구시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착한 행실
16절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빛을 사람 앞에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통하여 빛을 발하십니다(16절). 사람들이 우리의 빛을 보는 순간 우리를 통해서 비치는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의 착한 행실(소금과 빛의 역할)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착한 행실을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만약 우리의 행위가 잘못되었거나, 선한 일에 게으르거나 한다면, 등불 위에 됫박을 덮어 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은 말씀하십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요한 복음 8장 12절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말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에베소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오늘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어 생명을 주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맛 없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녹여 맛을 주고 깨끗케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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