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아버지...
오늘은 주일입니다.
주께서 구별하신 이 날, 복되고 기쁜 날 되게 하소서.
주의 말씀이 능력 있게 선포되게 하시고, 복음이 온 천하에 선포되게 하소서.
특별히 3.1절 96주년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는 3.1절이 되게 하소서.
순간순간 죄의 세력이 엄습할 때, 그 앞에서 꼼짝 못하고 마치 고양이 앞에 쥐 같은 신세가 되어 잡아먹히고 마는 나를 봅니다.
내 안에 육신으로 인하여 온갖 죄의 양상들이 나타날 때 주님의 이름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나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
오늘도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죄의 몸을 불구로 선언하오니 내 입술과 나의 눈 그리고 손과 발 생각이 내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으로만 보고 듣고 말하며 생각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나의 입술을 선하게 사용하시어 주의 복음이 교회와 세상에 온전히 선포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말씀 / 본문 : 요 15:1-8
- 제목 : 내가 쉐마하도록 주님은 그동안 얼마나 참으셨을까?
1. 나는 참 포도나무이고 내 아버지는 농부시다.
2. 누구든지 내게 붙어 있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잘라 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알려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므로
4. 나의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내가 사람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를 것이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룰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너희는 내 제자가 될 것이다.
* 나의 묵상
주님과 나는 언약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나는 그의 가지이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며 만약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더 이상 포도나무와 하나가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 할지라도 열매를 맺는 가지여야 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농부 되신 아버지께서 그 가지를 잘라서 밖에 버리므로 사람들이 그 가지를 가져다가 불에 살라 버린다.
농부 되신 아버지는 가지치기를 통해서 포도나무를 깨끗하게 하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잘 맺도록 잘 보살펴 주신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 가지된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계속 강조되는 것은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우리 역시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되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잘라 버린다고 하셨다.
또한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그 가지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가지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조건의 규정이다.
주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건의 규정인 계명을 잘 지켜야만 한다.
내가 지켜야 하는 조건의 규정은 곧 쉐마이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했던 한 가지가 바로 듣는 마음, 즉 쉐마였다.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다.
다윗은 임종 직전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오직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고 계명과 율례를 잘 지키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말한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 쉐마하는 마음을 구한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그 마음을 얼마나 기뻐하셨는가?
나는 쉐마를 모르던 자였다.
솔로몬이 구한 것도 그저 ‘지혜’로 알고 있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해서 얼마나 지혜를 구했는지 모른다.
그 지혜가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들을 구하곤 하였던 것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였다.
쉐마는 종이 주인의 말을 경청하여 듣고 그 일을 준행하는 자세를 말한다.
쉐마는 내시가 임금의 명령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명령을 준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대충 듣고 귓등으로 들으면 온전한 쉐마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엉뚱한 것에만 쉐마를 적용한 자였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에서 쉐마를 했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것에만 집중을 하였던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런 말씀에서 쉐마는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 마디로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 창조 언약을 통하여 아들이신 주님의 복종을 기쁨으로 받으셨다.
그때 아버지는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 창조 언약은 아담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창조 언약을 깨트리고 말았다.
아담은 불의하나 언약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기에 그에게 복음으로 찾아가신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존재로써의 복음이요,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시는 행위로써의 복음으로 말이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도 횃불 언약을 맺으신다.
그 언약은 자손과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하든, 너의 후손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입애굽과 출애굽을 행하신다.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시면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요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고 언약 백성을 삼으신다.
그리고 그 언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건의 규정인 계명을 주신다.
그런데 불의한 백성들은 쉐마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고 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쉐마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시내산 언약이 파괴된다.
그래도 선하신 하나님은 언약을 갱신하셔서 ‘모압 언약’을 세우신다.
모압 언약이 파기되므로 ‘세겜 언약’을 세우시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쉐마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맺으신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실하셔서 끝까지 언약을 이루시고 그 새 언약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신다.
<눅 22:20>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새 언약 백성된 우리는 그 언약을 유지하기 위하여 조건의 규정으로 새 계명을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담대함이다.
이제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들을 힘입어 담대하게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그분의 아들이 된다.
주님은 나의 포도나무가 되고 나는 주님의 가지가 되는 언약 공식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거하므로 연합된 자가 되어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영생을 누리게 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 종은 열매 맺는 것을 전도의 열매, 삶의 열매로만 착각하였던 자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서도 열매는 맺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맺어야 할 열매는 다름 아닌 쉐마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청종하여 주님과 언약 안에 거할 때 그에 따른 열매는 주님이 주십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사는 존재이오니 주님 말씀에 청종하여 주님 안에서 연합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이 종의 무지함을 하감 하옵시고 날마다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여전히 땅의 사람들은 땅의 것을 채워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는 능력 없는 목사라고 매도합니다.
하지만, 복음과 생명을 아는 자로서 이제는 이런 반응을 벗어나기 위하여 막연한 위로나 물질의 축복을 비는 그런 삯군 노릇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먼저 주님 안에 거하여 그 기쁨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자 되겠나이다.
주여, 이 종을 긍휼히 여기시고 오직 주님으로 기뻐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