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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창조의 매 단계에서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은 “아, 예쁘다”라는 감탄을 넘어, “이제야 제 기능을 하는구나, 제대로 작동하는구나!”라는 만족의 선언이었습니다.
2. “좋지 아니하더라”의 역설
창세기 2장에 가면 처음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아담이 혼자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외로워 보여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리라”는 사명의 기능을 혼자서는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명을 함께 완수할 ‘돕는 배필’을 주셨고, 비로소 인간의 기능은 온전해졌습니다.
3. 2026년의 우리: 독신, 소명, 그리고 꿈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통찰을 얻습니다. 어떤 이들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씀을 근거로 결혼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질은 ‘기능의 수행’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주를 위해 스스로 독신이 되어 자신의 소명을 온전히 펼치고 있다면, 그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충분히 ‘좋은’ 삶입니다. 반대로 결혼을 했더라도 서로를 파괴하며 사명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기능을 상실한 혼돈(토후)의 상태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상태란, 그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꿈, 기쁨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4. 우리의 사명: 이름을 불러주는 지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물을 다스리라 하셨고, 아담에게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통치하는 것이고, 통치한다는 것은 잠들어 있는 기능을 깨워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2026년 우리가 감당해야 할 ‘다스림’의 소임입니다.
맺으며 성경을 무턱대고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배경과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며 읽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를 향해 “보시기에 참 좋구나!”라고 미소 지으실 하나님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처한 혼돈과 공허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의 기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세상의 죽어가는 기능들이 살아나고, 그 아름다움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