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문①-樓유.불.선 주춧돌 위에 선 한국적 이상향 |
구례 화엄사 보제루(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완주 화암사 우화루(보물 제662호)
일주문.중심법당과 일직선에 놓여 주로 법회.강학.집회 장소로 활용 만세.보제.덕휘.구광 등으로 불려
누(樓)는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 형식의 집을 말한다. 누는 궁실 원림(園林) 속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후대에 일반 사대부들이 야외에서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일반화 되었다. 풍광이 좋은 산야에 있던 누각이 사찰 구성 요소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누각은 보통 법회나 강학, 또는 대중 집회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나, 그 이름 속에는 불교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추구하는 모든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원래 누각은 자연과 함께하는 남성위주의 풍류와 휴식의 공간이다. 그러나 사찰의 누각은 단순히 자연 경관을 감상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조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누각처럼 사방이 활연히 트인 경우보다 전면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판벽이나 여닫이문으로 마감된 경우가 많다. 사찰의 누각은 보통 일주문과 중심 법당을 잇는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사례가 많아 다락식인 경우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누각 밑을 통과하여 법당 앞마당으로 진입하게 된다. 사찰 누각은 만세(萬歲).보제(普濟).덕휘(德輝).천보(天保).안양(安養).구광(九光).구룡(九龍).침계(枕溪).영월(映月)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 사찰의 누각 이름은 불교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도교, 또는 유교적 정서를 배경으로 한 것이 더 많은데, 이점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이다. 누각의 이름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만세루이다. 그러나 만세라는 말은 불교 자체에서는 그리 많이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천수만세(天壽萬歲)’, ‘왕비전하만세(王妃殿下萬歲)’라는 말에서 보듯이 ‘만세’는 ‘현재의 복락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랄 때 쓰는 말로 도교적 시간 개념에 가깝다. 예컨대 ‘지금 이대로 죽지 않고 오래 살기’ 또는 ‘현재의 번영이 계속되기’를 빌 때 ‘만세’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경우에는 현재 상황의 연장만이 중요할 뿐, 과거나 미래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이것은 모든 사상(事象)을 과거.현재.미래, 즉 삼세(三世)를 통섭하는 인연법으로 설명하는 불교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현존 만세루 유적을 살펴보면, 통영 안정사, 영광 불갑사, 태안 흥주사, 달성 남지장사, 청도 운문사, 고창 선운사, 고령 반룡사, 양산 통도사의 만세루 등 많은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만세루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보제루다. ‘보(普)’는 ‘널리 두루’, ‘제(濟)’는 ‘건너다’, ‘건지다’는 뜻이니, ‘보제’는 ‘두루 구제한다’, ‘널리 보살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에 보제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다. 보제원은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된 사람을 도둑이나 짐승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살림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는 지역 사람들을 구호하고 가난한 병자를 치료했던 곳이다. 보제원 경내에 보제루가 있었는데, 이 누각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로연(耆老宴)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사례를 통해서 ‘보제’라는 말이 사회복지적인 의미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는데, 보제루가 있었던 자리는 지금 알 수 없으나 보제루가 사찰에만 있는 누각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한편, 불교에서는 ‘보제’를 중생이 생사 왕래하는 세 가지 세계를 뜻하는 삼계(三界)에 투망을 놓아 인천(人天)의 고기를 건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에서는 ‘보제’라는 말이 자주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법구비유경〉 제1권, 무상품(無常品)의, “옛날 제석천이 부처님 처소로 달려갔을 때 부처님께서는 기사굴산(耆山)의 석실 안에서 좌선하시며 보제삼매(普濟三昧)에 들어 계셨다.”라는 대목에서 한 예가 찾아진다. 현존 보제루 유적 중에 구례 화엄사 보제루가 유명한데, 자연 상태의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삼고 있어 ‘방심(放心)의 미’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이밖에 동래 범어사 보제루, 속초 신흥사 보제루, 김제 금산사 보제루, 포항 보경사 보제루 등이 현존한다. 안동 봉정사 만세루 안에는 아직도 덕휘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덕휘’는 ‘덕이 빛난다’는 뜻으로, 나라가 태평하면 하늘에서 봉황이 내려온다는 전설과 관련되어 있다. 중국 한나라의 유명한 시인 가의(賈誼)가 지은 〈조굴원부(吊屈原賦)〉에 이런 대목이 있다. “봉황새가 천 길을 높이 날다가(鳳凰翔于千兮) 덕의 빛남을 보고서 내려오거니(覽德輝而下之), 덕이 없고 험악한 조짐이 보일 때면(見細德之險微兮) 날개를 더욱 세게 치며 멀리 간다(遙增擊而去之).” 덕휘루는 이 글의 내용 중 ‘覽德輝而下之’의 ‘德輝’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치자(治者)의 덕을 기리고 칭송하는 뜻을 담은 누각이 화성 용주사에도 있다. 천보루가 그것인데, 이름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편에 나오는 ‘천보(天保)’시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했다. ‘하늘이 뒤에서 도운다’는 의미의 ‘천보(天保)’ 시는 달.해.남산.송백.산.언덕.작은 언덕.큰 언덕.개울 등 아홉 가지 영원의 상징형을 열거하면서 임금도 이들처럼 오래 살기를 축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용주사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명복을 빌어 주는 능사(陵寺)로 창건된 절이고, 누각은 정조가 이 절에 행차할 때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건물이므로 그와 같은 이름을 지은 것은 매우 적절한 것처럼 생각된다. 한편, 하동 쌍계사는 팔영루가 있어 더욱 유서 깊은 고찰이 되었다. 팔영루의 유래는 중국 양(梁) 나라 때 학자이며 시인인 심약(沈約, 441~513)이 영가 태수(永嘉太守)로 있을 때 지은 원창루(元暢樓)에서부터 시작된다. 심약은 이 누각 위에서 여덟 편의 주옥같은 시를 지었는데, 이로 인해 뒷사람이 누 이름을 팔영루로 고쳤다고 한다(성호사설 제29권 시문문(詩文門) 팔영루 조). 팔영은 곧 ‘팔영 시’를 말하는 것이므로 불교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문학적 용어이다. 사찰 누각 중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 완주 화암사의 우화루(보물 제662호)다. 우화루는 조선 광해군 때 지어진 것으로 주법당인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정문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고색창연한 건물이다. 누각의 이름은 법화육서(法華六瑞), 즉 설법서(說法瑞).입정서(入定瑞).우화서(雨花瑞).지동서(地動瑞).중희서(衆喜瑞).방광서(放光瑞) 중에서 우화서를 직접 인용한 것이다. 우화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려 할 때 하늘에서 흰 연꽃, 붉은 연꽃 등의 꽃비가 내린 상서로운 현상을 말한다. 이에 연유하여 스님이 불경을 강설하는 곳을 우화대(雨花臺)라 부르기도 한다. 누각 가운데는 영주 부석사 안양루, 서산 개심사 안양루처럼 안양(安養)이라는 말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안양은 모든 일이 원만 구족하여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으로, 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를 지나간 곳에 있다는 극락정토를 말한다. 부석사 안양루는 법회나 강학보다는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곳으로 어울리는 누각이라 할 수 있고, 개심사 안양루는 다락식이 아닌 접지식이라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여주 신륵사에는 구룡루가 있다. 혹자는 구룡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부처님 몸을 깨끗이 했다는 불전설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동양 고래의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합천 해인사에는 구광루(九光樓)가 있다. 일설에 구광은 부처님이 7처(七處) 9회에 걸친 법회를 열 때 설법 전에 백호에서 빛이 나왔다는 ‘방광(放光)의 상서(祥瑞)’와 관련된 것이라 하나, 구광이라는 말은 불교 쪽보다 도교 쪽에 가까운 개념으로 봐야 한다. 도교의 호(號)에 구양(九陽), 구운(九雲), 구허(九虛), 구학(九鶴), 구진(九眞) 등 구(九)자가 들어간 것이 많은데 구광(九光)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선호되는 호이다. 또한 ‘구광사조(九光四照)’, ‘구광등(九光燈)’ 또는 ‘구광주박(九光珠箔)’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경우 구광은 ‘아홉 색채의 아름답고 신령스러운 빛’을 말하는 것으로 최고의 상서(祥瑞)를 나타낸다. 도교적 풍류가 넘치는 이름을 가진 누각이 해남 대흥사, 울주 석남사, 순천 송광사에도 있다. 이름이 침계루인데, 대흥사 침계루는 진인(眞人), 곧 신선을 찾는 다리라는 뜻의 심진교(尋眞橋)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침계루는 말 그대로 계류를 베개 삼은 누각이라는 의미로서, 그 뜻에 걸맞게 석남사, 송광사 침계루도 대흥사 침계루처럼 모두 계류 가에 서있다. 부안 내소사에는 봉래루(蓬萊樓)라는 이름의 누각이 있다. 이것은 도교적 발상에서 나온 이름이라 할 수 있는데, 봉래는 도교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로, 방장.영주와 함께 신선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밖에 신선사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구름을 탄다’는 뜻을 가진 의성 고운사 가운루(駕雲樓)가 있고, 낭만적 서정이 가득한 통도사 극락암의 영월루(映月樓)가 있다. 야외에서 사찰 안으로 들어 온 누각은 지금 법회나 대중 집회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 이름 속에는 불교의 이상세계와 함께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풍류의 여운과 원천적 자유를 누리는 도교의 신선계가 펼쳐져 있다. 그런가 하면 덕을 중시하는 유교 정신이 살아 있고, 임금을 기리고 칭송하는 군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으며, 인간의 원초적 욕망까지 담겨 있다. 한 마디로 사찰 속의 누각은 한국인이 추구하는 모든 정신적, 윤리적 이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건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86호/ 12월13일자] |